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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지난주에 엔도 슈사쿠의 신간 <사무라이>를 읽었다. 그리고 <침묵>으로 시작된 나의 엔도 선생에 대한 사랑은 <깊은 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지난주에 산 <바보>도 대기 중이다. 이제는 절판된 <숙적>도 구해서 읽어 보고 싶은데, 책이 없다. 또 헌책사냥에 나서야 하나.
엔도 슈사쿠가 1993년에 발표한 <깊은 강>의 시간적 배경은 1984년 가을, 인디라 간디가 암살되기 직전의 시기다. 그리고 제각각 사연을 지닌 네 명의 인물들이 인도 바라나시에 모인다.
첫 번째 주자인 오사무 이소베는 최근 35년간의 무난해 보이는 결혼생활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잃었다. 일본 남자답게 아내에게 애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고 그는 고백한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다시 태어날 테니(환생), 꼭 자신을 찾아오라고 부탁한다. 그의 절대 고독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소베는 병상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돌본 자원 봉사자 나루세 미츠코를 알게 된다.
다음 주자는 바로 나루세 미츠코다. 기독교 대학 불문과 출신의 시골 처녀 나루세 미츠코는 자유연애의 신봉자로 집안의 도움으로 도쿄에서 화려한 대학생활을 펼친다. 그런 그녀에게 오츠라는 이름의 순진한 피에로가 등장한다. 친구들은 ‘모이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미츠코를 부추겨서 신실한 남자 오쓰를 유혹하자는 기묘한 게임을 제의한다. 사실 미츠코에게 오츠에게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신이 거대한 사랑의 덩어리라는 둥의 스콜라 철학에서나 나올 법한 타령을 하는 오쓰를 망가뜨려보겠다는 일그러진 욕망을 가지고 그를 유혹한다. 나루세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 오쓰를 단박에 걷어차 버린 미츠코는 화려했던 대학 시절을 마무리 짓고, 유복한 집안 출신의 일과 자동차 그리고 골프 밖에 모르는 남자와 결혼에 골인한다.
동화작가 누마다는 엔도 슈사쿠의 선생의 문학적 페르소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육군 최악의 작전으로 알려진 임팔 작전에서 살아남은 기구치가 차례로 등장한다. 각자 사연을 품은 이들이 모두 인도 바라나시에 모이면서 엔도 슈사쿠 서사의 수레바퀴는 힘차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엔도 슈사쿠 선생이 <깊은 강>에서 다루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 중에서는 나는 바로 미츠코와 오쓰가 벌이는 핑퐁게임과 ‘양파’에 대한 설전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로 끝난 임팔 작전의 생존자 기구치의 고뇌가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일본, 프랑스 그리고 인도로 이어지는 미츠코와 오쓰의 끈질긴 인연의 설정이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오쓰가 촉발시킨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신념에 찬 미츠코의 긴 여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삶과 죽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기구치를 간호하고, 오쓰와 마지막으로 만나면서 과연 그녀는 그토록 갈구하던 공허로부터 안식을 얻을 수 있었을까? 양파라고 그들이 명명한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대화는 결국 엔도 슈사쿠 문학의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마다로부터 출발한 저자의 삶은 자신이 버린 ‘양파’에게 다시 귀의하여 프랑스 신학교에 간 오쓰에게 전이되기에 이른다.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공허함을 달랠 수 없었던 미츠코는 자신의 피에로였던 오쓰를 계속해서 찾아 희롱한다. 물론 그럴수록 자신이 공허 속으로 침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사실 난 이 소설을 문제적 인물은 기구치 때문에 읽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얼마 전에 너튜브를 통해 NHK에서 제작한 임팔작전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5년에 걸친 태평양전쟁 당시 300만 정도의 일본군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 20% 정도가 아사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군은 전쟁에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병참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전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배고픈 병사가 어떻게 최전선에서 보급을 잘 받아 잘 먹고 튼튼한 병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최악의 사령관 중의 하나였던 무다구치 버마군 사령관의 무모한 작전에 임팔작전에서 숱한 일본군 병사들이 그렇게 죽어 나갔다. 그들을 추격하던 영국군과 구르카 병사들보다, 기아와 말라리아 그리고 이질이 일본군에게는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퇴각하던 중에 빈사의 상태에 빠진 기구치를 구한 동료가 바로 쓰카다였다. 그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주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생환하는데 성공한 쓰카다는 결국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병상에서 죽어가는 그를 도운 청년이 가스통이라는 이름의 외국 청년이었다.
제각각 다른 목표를 가지고 이렇게 모인 일단의 관광객들을 통솔하는 가이드 에나미 또한 흥미로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4년 동안 인도 철학을 전공했지만, 고국 일본에 그를 위한 일자리를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가이드를 하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인도의 이모저모를 보여 주는 것이 그의 본업이 되었다. 수박겉핥기식 인도 여행을 하는 자신의 손님들을 경멸하면서, 차문다 여신을 일행에게 소개하는 장면의 역설이란. 결국에 가서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갠지스강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장면을 찍어 사단을 내고야 포토그래퍼 산조 부부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엔도 슈사쿠의 다른 작품들처럼, <깊은 강> 역시 독자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60억 인류의 사고방식과 얼굴 그리고 살아온 내력이 다른 만큼, 엔도 슈사쿠 문학의 수용 또한 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지의 어머니 같은 갠지스강은 도도하게 흐르며, 구도와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아낌없이 내준다. 아니 스스로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고 해야 하나.
소설에서는 인도의 어머니라 불리는 인디라 간디가 시크 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종교 갈등이 다시 폭발한다. 산조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결국 아무런 죄 없는 오쓰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되고, 범신론적 신념 때문에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하던 오쓰가 ‘양파’의 희생을 재현한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구사하는 마성 같은 서사와 양심을 타격하며삶의 본질을 관통하는 질문들이 매혹적이면서도 두렵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읽게 되는 모양이다. <깊은 강>을 읽다가 사유의 심연에 빠져 버린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미리 수배해둔 <바보>를 바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