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을 무려 개봉일에 관람했다. 오래전, 시사회족 생활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에는 개봉날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아예 개봉도 하기 전에 시사회로 만나곤 했었더랬지.

 

이미 <나폴레옹>은 본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호오가 갈린다고 했으나 역사덕후라고 할 수 있는 나로서는 호였다. 물론, 몇몇 아쉬운 점들이 있긴 하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그리고 알렉산더와 시저에 버금가는 영웅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을까.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프랑스에서 대혁명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왕권신수설에 의해 국왕이 전권을 행사하던 국가 프랑스의 사회 시스템을 통째로 뒤엎어 버린 그런 인류사적 사건이었다. 국왕 루이 16세는 이미 9개월 전에 처형이 되었고, 17931016일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가재산 탕진과 반역죄 등 세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어 기요틴으로 처형되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기요틴은 프랑스혁명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 다음에는 공화국이 들어서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실시되었다. 왕당파 일당은 국가의 적으로 규정되어 숱한 처형이 기요틴에서 이루어졌다. 훗날 나폴레옹의 유일한 사랑이 되는 조세핀 드 보아르네의 전 남편 역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예나 지금이나 난세는 영웅을 위한 무대였다. 프랑스혁명에 질겁한 유럽 각국의 왕가들은 대불동맹을 결성해서 프랑스 혁명정부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프랑스 해군기지가 있던 툴롱항을 왕당파와 결탁한 영국군과 스페인이군이 점령했다. 이때 24세의 나이로 포병 대위였던 나폴레옹에게 국민의회 실력자였던 폴 바라스는 툴롱항 탈환을 명령한다. 나폴레옹과 그의 뤼시앵은 간신히 규합한 오합지졸의 프랑스 부대를 이끌고 강력한 요새에 주둔한 영국군을 기습해서 툴롱항 주변에 집결해 있던 영국 함대까지 격멸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나폴레옹과 뤼시앵을 파리의 인사들은 코르시카 깡패(thugs)”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툴롱 전투를 승리로 이끈 나폴레옹은 단박에 공화국을 수호하는 군사 영웅이 되었다. 이 때 맺어진 조세핀과의 사랑과 우정은 나폴레옹의 평생 동안 지속된 애증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전쟁물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어쩌면 영화 <나폴레옹>은 로맨스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에서 조세핀 역을 맡은 바네사 커비의 연기는 대단했다.

 

1795105, 파리에서 2만에 달하는 왕당파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폴 바라스로부터 전권을 부여 받은 나폴레옹이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 간단하게 그들을 진압해 버렸다. 그 다음은 청년기 나폴레옹의 일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탈리아 원정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아쉽게 아예 빠져 버렸다.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생각한 한겨울에 알프스를 넘는 기동으로 결국 부르봉 왕가 이래 유럽에서 숙적이었던 오스트리아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영화에서는 비교적 짧게 다루어졌지만, 나폴레옹은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 나선 이집트 원정에 나섰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이집트 호족부대원들 앞에서 자신의 장기인 대포로 피라미드 꼭대기를 포격해서 무너뜨리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에 필요했던 볼거리는 거의 완벽했다. 하지만, 자신의 부관이 파리에 남아 있던 조세핀이 정부 이폴리트 샤를과 애정행각을 벌인다는 뉴스에 전선을 이탈해서 파리로 돌아와 한바탕 18세기판 사랑과 전쟁을 찍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역사에 근거한 서사를 추구하다 보면 리뷰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판이다. 권력욕에 불타는 남자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그 다음에는 결국 황제가 되었다. 공화국의 구세주로 칭송받던 영웅이 독재자로 변신해서 왕의 권위를 능가하는 황제가 돼 버린 역사적 아이러니라니.

 

격변하던 시대를 장식하던 특징적 인물이었던 조제프 푸셰의 활약(?)을 볼 수가 없어 역시 아쉬웠다. 잠시 등장하고 사라져 버렸던가. 탈레랑을 내세워, 숙적 영국을 포위하겠다는 대전략은 러시아의 애송이 짜르 알렉산드르와의 악연으로 결국 실패해 버렸다. 훗날 러시아 원정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 그런 인물이 바로 이 청년 짜르였다.

 

역시 영화의 압권은 누가 뭐래도 나폴레옹의 빛나는 승리였던 아우스터리츠 전투였다. 당시 유럽 대륙 최강의 대국이었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체코 모라바 근처의 아우스터리츠 근처에서 나폴레옹의 빛나는 전략전술로 대파해 버렸다. 영화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유인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나폴레옹이 숨겨 두었던 대포 포격으로 수장되는 시퀀스에서는 대가 리들리 스콧의 연출이 빛났다. 후방을 향해 빙판에서 전력질주하던 오스트리아군 기수가 프랑스군의 대포에 맞아 깃발, 기수 그리고 군마가 그대로 수장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런 나폴레옹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애정전선 역시 조세핀이 후계자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제국의 위기로까지 비화됐다. 아이를 갖기 위한 각종 비방이 동원되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빨리 이혼해 달라는 조세핀의 요구가 이어졌다. 영화는 화려하고 장엄한 전투씬만큼이나 인간 나폴레옹과 그의 연인 조세핀이 이런 갈등에도 상당한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아마 그런 점이 호만큼이나 오가 득세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 자신의 생산 능력을 확인한 나폴레옹이 법원 서기(?) 앞에서 황후 조세핀과 공식 이혼을 선언한다. 이 장면도 역시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런 장면이었다. 조세핀과 15년에 걸친 결혼생활을 청산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의 장녀 마리 루이즈와 결혼해서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후계자를 얻었다. 소중한 아들을 안고 옛 부인이자 애인인 조세핀을 찾아가는 나폴레옹.

 

자신을 배신한 애송이 짜르 알렉산드르의 볼기짝을 쳐주기 위해 무려 60만 대군을 동원해서 모스크바 원정에 나선 보로디노 회전에서 많은 사상자(28,000)를 내긴 했지만 승리하고 마침내 모스크바까지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애송이 짜르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홀랑 태워 버리는 비이성적 청야전술로 대군의 보급이 끊기고 러시아의 무시무시한 동장군의 공격까지 겹치면서 결국 4만 명만 귀환하는 참혹한 패배를 맞이한다. 기아와 추위에 허덕이는 프랑스 병사들 사이에서 아우스터리츠의 용사들을 외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개인적으로 러시아 침공 초기, 러시아 게릴라부대원들이 프랑스 정예병을 상대로 유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침공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잔악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황제 퇴위, 엘바섬 유배, 탈출, 조세핀의 죽음, 95일간의 천하 그리고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워털루 전투가 이어진다.

 

자신의 운명을 가른 마지막 전투였던 워털루 회전에서 영국의 웰링턴 공작과는 초반에 비교적 대등한 전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프랑스 기병대가 영국군의 방진대형을 뚫지 못하고 병력이 계속해서 소모되고, 12만 프로이센을 이끈 블뤼허 원수가 등장하면서 전세가 기울자 꼴사납게 나폴레옹은 자신의 상징처럼 되버린 바이콘(이각모자)에 총구멍이 난 채 도주해 버렸다.

 

나폴레옹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역시나 출중했다. 사십대 배우가 이십대 청년 연기를 한 게 좀 걸리긴 하지만 그 정도야 뭐. 호아킨과 극중에서 합을 맞춘 바네사 커비의 연기도 좋았다. 영화에서는 나폴레옹 평생의 연인이라는 점에 치중했지만, 역사에서 조세핀은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는데 있어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고 한다. 황후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버금가는 사치의 극한을 보여 주기도 했다. 나폴레옹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애송이 짜르가 나폴레옹의 옛 애인을 찾아가 마리오네트와 춤을 추듯 댄스홀을 누비는 장면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유럽대륙을 제패하고 호령한 영웅 나폴레옹의 이면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엄마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니 그 다음에는 조세핀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외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마마보이 같은 인물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허풍일지는 몰라도 알렉산드르와 대면하면서 평화 타령을 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결국 무력을 동원하는 전쟁광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영화가 스케일 큰 전쟁 시퀀스와 조세핀과의 로맨스에 집중하다 보니 나폴레옹 법전이나 내치 같은 역사적 부분들을 거의 다루지 않은 면도 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자그마치 3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야망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인원의 희생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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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2-07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폴레옹 영화, 개봉했군요.
전혀 몰랐던 사실입니다.
가족들과 보러 가야겠어요.
호아킨 피닉스라~~
나폴레옹과 매치가 잘 되지 않는데 영화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할 듯요^^
300만명의 죽음!
뭐라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12-07 14:31   좋아요 1 | URL
넵, 어제 막 개봉한 따끈따끈한
영화랍니다.

호아킨 피닉스, 연기는 쵝오였습니다.
바이콘 쓰고, 전장에서 돌격하는 장면
이 멋지더군요.

나폴레옹 전쟁으로 너무 많은 인원
이 사망했는데, 정작 자신은 평화타령
을 하고 있다는 점이 역설적이었습니
다.

얄라알라 2023-12-10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샥매냐님께서는 평소 역사공부 역사소설을 깊게 하시니 같은 영화를 보셔도 찾아내시는 것도 다르시네요
저는 만약 보러 간다면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궁금한 딱 그 수준의 물음표를 가지고 극장 갈텐데^^;;

나폴레옹의 평화타령이라!
어제 밤에 보고 온 [서울의 봄]에서 ˝추워추워˝를 연발하며 귀막이를 챙기는 국방장관 캐릭터가 생각나네요.

레삭매냐 2023-12-10 16:12   좋아요 1 | URL
12-12 사건의 가장 큰 책임자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추워추워 국방장관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명분도
없는 반란군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자신의 안위
타령만 하다가 결국 비극이 시작되
었지요.

<나폴레옹>에 제가 아쉬운 점은
너무 방대한 이야기라, 여러 포인트
들을 생략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
니다. 알프스 원정이 제일로 아쉽습
니다. 영화에 담았다면 정말 스케일
이 대단했을 텐데 말이죠.

얄라알라 2023-12-10 16:27   좋아요 1 | URL
영화보고 새벽에 관련 영상 뒤져보니 참으로 그 ˝쫌˝스러운 귀막이
실제 청문회 모습에서도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비열하고 입만 살았더군요....분노수치 급상승해서 숨돌리느라 밤중에 야식이 필요했습니다
 


 

스트레이트에서 다룬 까까오 제국에 대한 콘텐츠를 봤다.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깨톡으로 천하통일을 이룬 까까오가 문어발식 확장을 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사실 주식의 세계로 입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까까오가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 지 미처 몰랐다.

 

2020년 까까오게임즈를 필두로 해서 까뱅 그리고 까페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숨가쁘게 공모 흥행과 상장을 해오면서 한 때 시총 기준으로 국내 3위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동시에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상장 일정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높게 잡힌 공모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까페이의 스톡 옵션(44만주)8명의 까까오 임원들이 주식 시장에서 실행하면서 자그마치 877억원을 챙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연속 상장의 어두운 그림자가 끼기 시작했다.

 

까페이에 이어 상장 계획 중이었던 까까오 모빌리티의 상장에 당장 제동이 걸렸다. 2021년과 2022년 잇달아 상장을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누구나 사용하는 깨톡 메신저를 기반으로 해서 성장한 까까오 택시 호출과 까까오 대리는 그야말로 천하통일을 이루어냈다. 해외투자로 8,000억원의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빠른 상장으로 투자금 회수를 원했던 사모펀드 혹은 해외투자자들의 상황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더 큰 문제는 의장까지 연루된 에셈(SM) 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주가 조작 정황이 밝혀지면서 검찰 수사를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기세등등하던 까까오의 성장 전략이 멈추게 되었다. 아마 에셈 인수전은 10조원 규모라던 까까오 엔터테인먼트 상장을 위한 초석이 아니었을까. 아직은 검찰 수사 중이라 잘 모르겠지만, 만약 유죄로 판정이 난다면 까까오 그룹의 핵심인 까뱅의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비슷한 소프트파워 테크기업인 네이버와 비교해 볼 때, 각각 해외매출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 네이버는 매출의 40% 정도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메신저 라인으로 그리고 북미에서는 웹툰이 호성적을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 반면, 까까오는 해외 매출이 20% 정도라고 한다. 네이버가 실적을 바탕으로 신사업을 추구하는 반면, 까까오는 대규모 해외투자를 받아 진행하는 공격적 영업전략을 구사한다. 에셈 인수전에서도 실탄 마련을 위해 싱가폴 투자청과 사우디 국부펀드(?)의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까페이까지는 쪼개기 상장 전략이 승승장구했지만, 20211210일 까페이 스톡옵션 먹튀 사태를 기점으로 해서 브레이크가 걸려 버렸다. 모기업이 까까오도 한 때 17층까지 달리면서 엄청난 기세를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5층에 턱걸이한 상태다. 까까오 모빌리티와 까까오 엔터테인먼트도 과연 언제 상장에 나서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떨어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까까오는 <준법과 신뢰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내부인사의 폭로로 사측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방만한 경영 같은 이슈들이 외부로 드러나게 되었다. 까까오가 망한다면 그건 골프 탓이라고 말할 정도라고도 하고, 안산 데이터센터와 서울아레나 같이 메가 프로젝트를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면서 현재 내부감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까까오가 구축한 강력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엄청난 성장세를 과시해온 까까오가 과연 작금에 당면한 위기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마련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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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카오가 아닌 까까오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네이버도 naver나 nhn과는 다른 것 같고요. 레삭매냐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레삭매냐 2023-12-06 10:59   좋아요 1 | URL
네이버에서 책 리뷰를 통해 세습하는
교회 실명으로 깠다가 블라인드 처리
되는 트라우마 덕분에, 혹시 하는 마
음에 까까오루다가.

이래서 스크리닝이 무서운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3-12-05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12-06 10:59   좋아요 1 | URL
아이구 감사합니다 써니데이님.

그레이스 2023-12-06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원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쇄신하고 도약하는 기회가 되길 바래봅니다.

레삭매냐 2023-12-06 11:0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한국 최고의 소프트파워 테크기업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최근 하
는 걸 보면 기존의 재벌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구독 서비스는 이제 수익 모델의 기본이 되었나 보다. 예전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한 번 사면 평생 사용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서비스는 없어지고 대신 연간 구독을 하라고 권한다. 어도비 포토샵이 대표적인 경우다. 아니 왜 해마다 돈을 내야 한다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대단한 기능들이 새로 탑재된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서비스만 필요한데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들을 탑재하고 1년에 오십만원씩 내라니...

 

그런데 이제는 SNS도 돈내고 할 판이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놀랍군 그래. 사실 그동안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서비스들은 알게 모르게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된 광고들을 보는 것으로 소비자들은 SNS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기업들이 어떤 집단인가? SNS에 노출되는 광고로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회사들은 바로 광고비 집행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를 진작에 알아챈 뉴욕타임즈 같은 회사들은 아예 소비자들에게 광고비를 직접 받는 방식으로 수익모델을 바꾸어 버렸다. 나도 가끔 NYT 홈피를 방문해서 현지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고는 했었지. 처음에는 무료였다가 언제부터인가 한달에 기사 5개만 보게 해주고, 지금은 전면 유료화를 시켜 버렸다. 물론 돈을 1원도 낼 생각이 없는 나는 더 이상 NYT를 찾지 않게 되었다. 내가 없어도 NYT는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 중이라고 하니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북플이나 네이버 블록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애용하던 인스타마저도 유료 구독서비스에 돌입할 기세라고 하니 기가 막히는구나 그래. 소비자들이 만드는 컨텐츠들로 거저 먹던 인스타가 광고 매출이 현격하게 줄어드니 아예 이제는 소비자들에게 과금하겠다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이것 참,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인스타로 할 필요가 없겠는 걸 그래.

 

그전에 정말 잘 이용하지 않던 트위터도 일전에 개인신상 누출 파동으로 단박에 탈퇴해 버리지 않았던가. SNS까지도 돈을 내야 하면서 이용해야 하는지, 구독 서비스라면 일절 이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그런가.

 

아니 그렇지 않아도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과다한 광고에 대한 피로도로 SNS 하기가 꺼려지는 마당에 그런 광고를 보고 싶지 않다면 돈까지 내라고? 이건 아니지 그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사람들이 질려 버려서 SNS 자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걸 소위 마케팅의 귀재라는 잘난 분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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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12-04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그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 같아요.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하나 유료로 보는 중...ㅠㅠ)터무니 없는 유료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건 소비자들의 반응인데 달라는대로 내는 사람들이 꽤 있기에 이렇게 한다고 봅니다. 손해가 날 정도로 구독자가 줄어들면 다시 무료가 되겠죠. 안타깝게도 SNS중독자가 많아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현대판 노예제의 탄생 같아요.

레삭매냐 2023-12-04 22:16   좋아요 1 | URL
이래서 습관이 무섭지 싶습니다.

아마 구독의 세상에 입문하게 되면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저도 SNS 중독이 아닌가... 그러면서
도 또 돈내라 하면 바로 끊어 버리겠
다고 이 연사 외쳐 봅니다!!! 카오

건수하 2023-12-04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스타그램이 무료라…. 비지니스 계정부터 유료화할 모양이군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
기회에 끊어야겠어요;; (북플이 유료가 되진 않겠죠?)

독서괭 2023-12-04 20:58   좋아요 2 | URL
설마요..! 북플은 마지막 보루..!

레삭매냐 2023-12-04 22:17   좋아요 1 | URL
저도 위의 끄적 거리면서 바로
아니 이러다 북플도 유료로?
하고 호곡했답니다. 부디 젭알
그러지 않기만을. 키펀고잉 북플~

독서괭 2023-12-04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도비 1년에 50만원을 내라 한다고요? 너무 하네요 와;;;

건수하 2023-12-04 21:14   좋아요 2 | URL
포토샵 1년 50만원 세네요… 이제 일반인은 웬만하면 안쓰게 될듯;

레삭매냐 2023-12-04 22:19   좋아요 0 | URL
일단 대략적으로 질러 보고 다시
검색해 보니 월 62,000원 정도
하나 봅니다 세상에나...

그리고 취소 수수료가 사악하게
도 24만원이라고요.

그런 이유로 해서 어도비도 안녀엉 -
전 아주 기본적인 사진 사이즈 줄이
기 그리고 약간의 보정 정도만 필요
한데 무얼 1년에 오십만원씩이나...
됐다고!

cyrus 2023-12-04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인만 받을 수 있는 인스타그램 인증마크를 일반인도 달 수 있다면서요? 노랫말처럼 이 세상에 짜가가 판을 치겠어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3-12-04 22:20   좋아요 0 | URL
아니 세상에 돈 내고 꼴랑 인증마크?
그게 뭐랍니까 기래.

전 필요 없으니 가비얍게 패스하갔습
니다. 인증마크 따위는 댕댕이에게나
주라고. 아주 웃깁니다 -

초란공 2023-12-04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포토걉, 캐드 같은 거 학생 계정으로 저렴하게 사서 사용했었는데, 어느 순간 더이상 사용을 못하게 하더라고요. 사용 유저가 줄어들면 결국 회사는 언젠간 망할겝니다. 기업용은 살아남겠죠? 회사에서 그럼 교육시켜야겠네요.

레삭매냐 2023-12-04 22:22   좋아요 1 | URL
포토샵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CAD
는 정말 빡시게 단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정말 조심
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답니다.

페넬로페 2023-12-04 2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스타 하지 않는데,
제 주변에 그럴 자격이 없는데도 사진만 잘 올려서 인스타에서 독서 모임 진행하는 사람을 봤어요.
그 사진을 보고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니까요.
유료화되는 것도 문제지만 sns의 헛점도 많은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3-12-04 22:49   좋아요 1 | URL
우와~ 대단한 능력이시네요.
호기심에 예의 독서 모임에 한 번
가보고 싶더라는 :>

그렇죠 SNS 가 점점 더 자기과시용
에 장삿속에 물들어 가면서 현실계
와 괴리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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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올해 처음 본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후배 녀석은 정말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그렇게 나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10개월 전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나의 기억도 그 녀석이 수정해 주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좀 추워서 집에 오는 길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뭐 정도는 감수해야지.

 

주말행사인 도서관 방문을 했고, 난 세 권들의 책들을 빌렸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만 읽을 수 있는 만화를 좀 읽었다. <앨런의 전쟁>은 분량이 좀 있는 책이라, 다음에 가서 또 읽는 것으로. 그래도 한 60쪽 정도 읽었나 보다. 간만에 마스다 미리의 책이 눈에 띄어 골라 읽었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그전에 심심한 그림체의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들을 계속 읽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0년차 서점 직원인 쓰치다 신조가 주인공이다. 나이는 32. 도쿄에 작은 공간에 서식하는 초식남이다. 연애는 6년인가 7년 전이 마지막이라고. 당연히 설정은 성실하고 마음에 따뜻한 친구다. 이 책이 나온 게 9년 전이니 또 지금의 서점 상황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출판시장과 서점은 동반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걸 집어 삼켜 버린 너튜브와 각종 OTT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극 중에서 마스다 미리는 쓰치다의 입을 빌려 왠지 흔들리는 전철에서 문고본을 읽는 어른들의 모습이 참 멋졌다는 말을 무심코 내던진다. 어제 약속 장소로 가는 전철 안에서(만원 전철이라 무엇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유디트 헤르만의 신간 <레티파크>를 가방에 담아 갔지만 정작 읽지는 않고 대신 핸드폰 게임을 했다. 2023년 한국의 전철 풍경은 그랬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 충동구매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문제는 주변에 그럴 만한 서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서점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신간 소설 대신 참고서와 문제집만 즐비하다. 왜냐구? 소설책 판매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갔던 경인교대 근처에는 서점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인데 말이다. 이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책과의 연결점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뭐 대충 잡아 2014년의 일본에서는 그래도 월급날이면 주머니가 두둑해진 월급쟁이들이 스스로에게 보상해 주기 위해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그러던 시절이었나 보다. 왠지 낭만이 느껴지지 않나 싶다. 월급날이면 서점의 매출이 올라갔다는 말이 좀 신기하게 다가왔다. 정말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로구나. 요즘에는 주머니에 돈이 생겨도 책을 사지 않는다구요 마스다 미리 씨. 그리고 보니 나는 소소하게 공모주 청약으로 번 돈을 책 사는데 쓰고 있구나 싶다. 지난 금요일에 번 돈으로는 옆지기에게 타코 플래터를 사주었다. 다음주에 혹여 공모주로 조금 벌게 된다면, 이달에 나올 예정이라는 존 밴빌의 <케플러> 펀드에 응모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쓰치다 씨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소시민의 전형이다. 보통 혼자 먹는 저녁 메뉴로 할인된 장어 도시락을 기대하기도 한다. 거기에 나마비루까지 한잔 곁들인다면 아마 더 바랄 게 없겠지. 나도 아까 마트에 들렀다가 몰슨 비어가 4캔에 7,000원이라고 해서 잠시 혹했다. 지난주에만 두 번이나 달렸는데 당분간 자제해야지 싶어서.

 

서점 직원으로 아마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쓰치다 씨는 자기 인생의 의미에 생각하는 멋쟁이다. 우리는 보통 그런 생각을 잘하지 않으면서 살지 않나? 어려서 읽은 SF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빗대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스다 미리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서사라면, 왠지 작가의 심리 상태에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쓰치다는 후배 마쓰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일들을 무람하게 해낸다. 서점 고객을 찾아 간다거나, 다른 서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좌석 배치 혹은 동화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을 자신의 서점에도 도입하는 건 어떻겠냐며 점장을 설득하기도 한다. 책을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서점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젝트가 아닐지.

 

요코하마에서 병으로 고생하시는 큰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는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역기 사람 좋은 쓰치다 씨는 큰아버지를 찾아가 쓸데없는 이야기로 웃기기도 한다. 병이 나으면, 긴자의 맛집을 찾아가자고 했던가. 병상의 큰아버지는 큰어머니에게 조카가 좋아하는 장어덮밥을 사오라고 부탁하신다. 병실에선 먹는 장어덮밥은 맛있지 않았다고 돌아오는 길에 쓰치다는 회상한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마쓰다가 주선한 미팅은 완벽한 실패였다. 미팅에 나온사키에게 쓰치다는 호감을 표현하지만, 사키는 결혼할 애인이 있고 대타로 나온 거라고 말했다. 아니 이런! 그런데 정작 마쓰다의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야요이가 여자사람친구였고 쓰치다에게 관심을 보여 둘은 영화도 보고 연애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첫날 쓰치다가 야요이에게 대담한 제안(?)을 해서 독자를 놀래키키도 한다. 어라 이 친구, 이런 면이 다 있었네하고 말이다.

 

뭐 이 정도면 내가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서 읽은 것들에 대한 대강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시간에 쫓기며 관내열람 전용 만화를 보고 낮잠을 늘어지게 잔 다음, 일어나 교촌에서 허니콤보 치킨을 주문해서 실컷 먹고 나서 낮에 본 만화에 대한 소소한 감상들을 적는다. 그거면 된 거다. 그런데 설거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손등이 많이 텄다. 핸드크림을 발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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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12-03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주식으로 돈을 버시는 분이셨군요 레삭매냐님 존경♡ 직장 근처에 큰 서점이 있어서 가끔 점심시간에 책을 사곤 했었는데(현저히 줄었다는 충동구매 일인;) 최근 그 서점이 폐업을 했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3-12-03 22:17   좋아요 2 | URL
아닛 누가 보면 목돈을 버는 줄
알갔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아주 소소하게
초큼 책값 정도 모으고 있답니다 ^^

새로 회사가 이사간 곳에 K문고
가 있어서 저도 점심 먹고 나서
가끔 구경간답니다. 새책 구경하
는데 제격이지요.

서점의 폐업, 그저 안타깝습니다.

2023-12-04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4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12-06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핸드크림 어디거 쓰시나요?
치킨 먹고픈 마음이 들게 하네요.
잔잔한 이야기인듯 보입니다.

레삭매냐 2023-12-06 10:58   좋아요 1 | URL
저는 아트릭스를 사용한답니다 ^^
집에도 하나, 사무실에도 하나
그리고 차에도 비치해서 며칠
동안 죽어라 쳐발쳐발했더니
손등이 다 나았답니다.

어젯밤에 먹다 나은 허니콤보 치
킨에 샘 애덤스 비루 한 깡 했습
니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세계사를 흔든 패전사 이야기 - 유튜브 채널 패전사가 들려주는 승리 뒤에 감춰진 25가지 전쟁 세계사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윤영범 지음 / 북스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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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튜브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절이 왔다. 이제는 너튜브로부터 책으로 진화하는 그런 시절이 되어 버렸다. 사실 <패전사>는 예전에 빌레르 보카주 전투를 다룬 콘텐츠로 이미 접했지 싶다. 무장친위대 소속 SS 전차지휘관이었던 미하엘 비트만의 신들린 활약에 아마 넋을 놓았더랬지. 어떻게 아무리 독일군의 티거 전차가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영국군 전차여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단 말인지.

 

세상은 승리만 기억할 뿐, 패배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쓰라린 패배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승리보다 패배가 훗날 더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전쟁에서 그런 점을 배우게 된다면 그건 비극이다. 인명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지휘관의 명령과 고집 때문에 수십만의 병사들이 전장에서 죽어나간 게 불과 100년 전의 일들이다. 아니 전쟁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된 진주만 공격을 예를 들어 보자. 중일전쟁으로 광대한 중국이라는 전장에 발이 빠져 버린 일본에 대해 태평양에서 서로 이해가 충돌하던 미국은 전쟁을 그만 두고 철군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군부가 조종하는 일본 정부는 그럴 수가 없었다. 19417월 일본군이 비시 정부의 식민지였던 남부 베트남에 진주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은 미국내 일본 자산의 동결, 그리고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인 석유금수조치를 취하면서 좀 더 강경하게 중국에서 철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연합함대 총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처음에는 대미개전에 반대했지만, 미국의 석유금수조치로 앉아서 죽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결국 기동부대를 진주만에 전개하게 된다. 미국도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안일한 대응으로 결국 진주만에서 정박 중이던 태평양 함대의 상당수가 격침되고 파괴되었다. 일본군이 무리를 해서라도 진주만에 대한 3파 공격에 나섰다면, 확실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고 미국은 진주만에 침몰한 전선들을 인양해서 곧 반격에 나서게 된다. 항모전단이 진주만에 없었던 것도 천운이었다. 미국의 진주만 패전은 패배가 아니었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 성공은 완벽한 성공도 아니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후, 파죽지세로 파리를 해방하고 독일의 심장부로 진격해서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영국군 원수 몽고메리의 야심찬 계획이 바로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겠다는 마켓가든 작전의 기본 얼개였다. 몽고메리는 우선 노르망디 상륙 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국 82, 101 공수부대와 영국 1공정사단을 마켓 부대로 네덜란드 요충지에 강하시켜 교량을 확보하고, 지상에서 영국 30군단이 전차로 밀어 붙이는 가든 부대로 서부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던 독일군을 일거에 섬멸하겠다고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설득했다.

 

원대한 계획이었으나, 이 또한 처절하게 실패한 작전으로 판명되었다. 현지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들이 수집한 정비를 위해 2개의 독일 SS 기갑부대들이 집결해 있다는 정보를 영국군은 애써 무시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인 아른헴 대교(영화 <머나먼 다리>의 배경)를 영국 1공정사단인 붉은 악마들이 악전고투 끝에 성공적으로 확보했지만, 후속부대인 30군단의 진격이 독일군의 치열한 저항에 요격되면서 결국 실패했다. 연합군이 압도적인 공군력을 이용해서 공중 보급에 나섰지만, 대부분의 물자들이 독일군에 수중에 들어갔다. 훗날 영국군을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이 연합군이 공중에서 보급한 보급품으로 적군과 싸우는 수지 맞는 장사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마켓 가든 작전>은 처음부터 너무 낙관적인 전개를 기대했기 때문에, 작전이 실패할 경우 어떻게 한다는 플랜 B에 대한 구상도 없었다고 한다. 경무장한 소수의 공수부대가 독일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한다는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전투가 그렇듯, <마켓 가든 작전> 역시 지휘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애꿎은 병사들만 전장에서 소모된 경우였다. 아니 성공하면 오히려 이상한 작전이 아니었을까.

 

진주만 기습 후, 말레이 앞바다에서 벌어진 영국과 일본의 말레이 해전 역시 전쟁사의 흐름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전은 거함거포 위주의 포격전이 중심이었다. 세계의 바다를 제패한 영국은 해상에서 압도적 전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해 왔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역시 적어도 바다에서는 영국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재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해전은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미 진주만에서 항공모함이 주축이 된 기동함대로 재미를 본 일본은 이번에는 영국을 상대로 자신들의 혁신적 기술과 전략을 시험대에 올렸다.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 전투기 조종사들은 훈련과 실전을 통해 얻은 실력으로 미영 연합군을 압도했다. 본국이 독일과의 사활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동방에 주력 부대를 파견할 수가 없었던 영국은 그래도 동양의 양대 진주(홍콩, 싱가폴)로 불리는 거점 가운데 하나인 싱가폴을 방어하기 위해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를 파견했다. 하지만, 먹잇감을 발견하고 그야말로 벌떼처럼 달려드는 일본 함재기의 공격 앞에 대영 제국의 전함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본국에서 두 전함들의 격침 소식을 듣고 전시 수상이었던 처칠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훗날 비슷하게 일본이 자랑하던 거함 야마토와 무사시가 비슷한 궤적을 겪게 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비교적 가까운 사례인 20056월 네이비 실이 투입된 레드윙 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탈레반 2인자 아흐마드 샤를 암살하기 위해 투입된 네 명의 네이비 실 정찰조의 위치가 탈레반 전투원들에게 노출되면서 적들의 공격에 노출된 대원들의 이야기다. 악전고투 끝에 마이클 머피 중위가 무선전화로 본부에 구조 요청하는데 성공했지만, 결국 탈레반의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한다.

 

애초에 정찰 대원들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자신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들을 처치해야 한다는 논쟁부터 시작해서 본부와 무전연락이 두절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고립된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했던 동료 대원들이 탄 치누크 헬기가 탈레반의 RPG 공격을 받고 추락하면서 헬기에 탑승했던 대원들이 모두 전사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론 서바이버>라는 영화가 8년 뒤에 제작되기도 했다. 마크 월버그가 연기한 마커스 러트웰은 부상당한 채, 현지 파슈툰 사람인 모하메드 굴랍의 도움을 받아 구출되었다.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실제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연기를 스턴트 없이 직접 연출했다고 했다던가.

 

너튜브 패전사에는 나오지만 책에서는 빠진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독일군이 처음으로 맞붙은 시디부지드 전투와 카세린 협곡 전투도 주목할 만하다. 토치 작전으로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미군이 약체 비시 정부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다가, 정예 독일군과 처음으로 상대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쓴맛을 제대로 보게 됐다. 모래먼지가 이는 사막에서 전차 운용을 해본 적이 미군의 기동부터 시작해서, 미군 지휘관 로이드 프레덴덜은 처음부터 너무 안일하게 독일군을 상대했다.

 

미군이 독일군과의 첫 교전에서 당한 쓰라린 패배에서 교훈을 얻었다가 이 패전의 주된 서사다. 난 그런데 그 점보다 패튼 장군의 사위가 포로가 되었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결국 패전 무렵에 가서야 포로생활에서 풀려난 패튼의 사위는 훗날 장인보다 더 많은 별을 단 사성장군이 되었다던가.

 

다양한 패전의 서사 속에서 내가 읽어낸 것은 전쟁은 반드시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9-19 합의파기로 한반도에 다시 무력충돌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반대한다. 어떤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지 그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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