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섬들의 지도 -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권상희 옮김 / 눌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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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가 큰 어느 주말 나는 도서관에 들러서 희망도서를 대출하고, 지난달에 빌려서 읽다말고 반납한 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를 빌려다 다 읽었다. 나는 구간을 빌려서 읽었는데 이 책에는 모두 50개의 섬들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과연 동독 출신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는 과연 이 섬들 가운데 몇 군데나 직접 방문했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간 적 없고, 아무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이라는 책 표지의 문구를 고려해 볼 때 작가는 지도상에서 그리고 문헌과 기록으로만 그 섬들을 방문한 게 아닌가 하는 사유를 해봤다. 요즘처럼 너튜브가 발전한 세상이라면 세상에 안가본 적 없는 곳들을 탐험하는 인간 고유의 욕망이 담긴 콘텐츠를 참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문득 책에 소개된 50개의 섬 가운데 한 곳을 검색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게을러서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어려서 지리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지금은 작고하신 큰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다 주신 <아틀라스>라는 지도책을 정말 소중하게 애지중지하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엄격한 검열이 존재하던 시절이라, 북한의 인공기가 매직으로 죽죽 그어져 있었지.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구판에는 오대양에 존재하는 모두 50개의 섬들이 소개되었는데 개정판에서는 5개의 섬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관내 도서관에는 재개정판 책이 없어서 그 섬들은 만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익숙한 섬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전유럽을 석권했던 풍운아 나폴레옹이 대서양의 외딴섬인 세인트헬레나라는 섬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미 그전에 유배되었던 엘바섬에서 탈출한 이력 때문인지, 이번에는 무려 일개 연대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 세인트헬레나에서 6년을 보내고 나서 죽었다. 문득 어디선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에서 비소 중독으로 서서히 죽음을 맞았다는 음모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에서 죽은 뒤, 19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조국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그 뒤 그는 앵발리드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오래 전부터 태평양전쟁 같은 전쟁사에 관심이 있다 보니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격렬하게 맞붙은 장소였던 이오지마도 빠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1945223, 6명의 미군 해병대원들이 일본군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오지마섬의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전쟁사진사가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세계 전쟁 사진 중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하고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오지마는 미군이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한 불침항공모함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전략적 가치 때문에라도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만 했다. 일본군의 발악적인 저항은 수리바치산에 성조기를 꽂고도 한달이나 지속됐다.

 

최근 미군의 이란 공격과 관련되어 다시 한 번 관심을 끈 섬이 바로 디에고가르시아다. 영국령인 디에고가르시아의 해공군 기지 사용 문제로 미국과 영국이 출동했다. 영국은 모리셔스를 독립시켜 주는 대가로 디에고가르시아가 포함된 차고스 제도를 영유하게 되었는데, 그 지역에 군기지를 설치하면서 그곳에 살던 500가구의 원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세계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영국이 배후에 있다는 점, 오래전 종식된 식민지배의 유산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유디트 샬란스키 작가가 소개하는 다양한 형태의 세계 각처에 흩어진 섬들에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계 곳곳에 자신들이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통제할 수가 없는 그런 모양이다. 알려지지 않은 섬에 자신이 처음 상륙하겠다는 욕망을 가진 모험가들의 이야기는 대항해시대 이래 작가들의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까 싶다. 토막지식으로 툴레(thule)가 로마인들이 망하는 세상의 끄트머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자동차 위에 매달고 다니는 그 툴레가 맞는 거지.

 

코스타리카령이라는 코코섬에서 보물을 찾는답시고 무려 19년을 보낸 독일 출신 아우구스트 기슬러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어디선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코코섬의 곳곳을 파헤친 의지와 집념의 사나이 기슬러의 무모한 도전을 어떻게 봐야할까. 가끔 그런 엉뚱해 보이는 도전들이 의외의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번 경우에서만큼은 포르투나가 그에게 미소를 보내지 않았나 보다.

 

고립된 섬에 외래종의 도입은 낙원을 지옥으로 바꾸는 하나의 재앙일 수도 있다. 언젠가 너튜브에서 본 영상에서는 어느 섬에 살지 않던 토끼를 풀어 놓았다가 섬의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는 내용을 볼 수가 있었다. 굴파기를 좋아하는 토끼들 때문에 섬의 지반이 약해지고, 섭생이 가능한 풀들을 다 뜯어 먹는 바람에 섬이 황폐해져 버렸다고. 결국 섬의 생태계를 원상복귀 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고래잡이가 완전히 금지된 줄 알았는데, 포경이 지구의 어디선가에서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남극 근처의 디셉션섬에서 잡혀온 고래가 해체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보자니 그저 서글퍼질 따름이었다.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 땔감으로 사용된 게 펭귄의 사체라는 사실에서는 망연자실해졌다. 인간 탐욕의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남극 대륙 근처의 로리섬에서 최후를 맞은 탐험대원 앨런 조지 램지의 장례식에서 스코틀랜드 대원 모두와 몇 마리의 아델리펭귄이 경례를 했다는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유디트 샬란스키가 작가였다는 점을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공간은 태생적으로 외로운 곳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에 축복이자 자연의 실험장이라는 작가의 지적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런 섬이라는 곳이 낙원일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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