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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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읽는다. <세피아빛 초상>으로 워밍업을 한 다음, 작년 말에 사둔 <바다의 긴 꽃잎>도 내쳐 읽었다. 다음 주자는 <영혼의 집>이다. 이래서 책을 미리미리 사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구나 싶다. 이런 날들을 대비해서 미리 책들을 사둔 나를 칭찬한다.

 

책의 제목 <바다의 긴 꽃잎>은 소설의 두 번째 무대가 되는 칠레 국가를 상징한다. 북쪽으로는 아타카마 사막,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남쪽으로는 남극 그리고 서쪽에는 태평양 너른 바다가 버티고 있는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의 섬 같은 나라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나라의 형상을 보면, ‘바다의 긴 꽃잎이라는 시적 표현이 바로 이해가 된다.

 

1938년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 노르테역에서 심장은 멎은 어린 병사 라사로를 주인공 빅토르 달마우가 살려내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것은 죽은 라사로를 살려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인가. 의대생 출신 빅토르는 음대 교수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마르셀 류이스와 교사 출신 어머니 카르메의 영향을 받아 공화군 진영에 서서 지난 3년 동안 현장에서 인턴으로 활동해왔다. 빅토르와 다른 기질의 동생 기옘은 처음부터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프랑코가 지휘하는 국민전선 반군과 맞서 싸웠다.

 

테루엘 전투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빅토르는 후방으로 이송된다. 테루엘 전투와 에브로 강 전투에서 패배한 공화군은 내전에서 지고 있었다. 아버지 마르셀은 죽기 전에 장남 빅토르에게 어머니 카르메와 동생과 동생의 연인 로세르 브루게라를 데리고 국민전선의 보복을 피해 해외로 망명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공화국은 모로코 출신 식민지 병사들을 앞세운 국민전선 일파의 만행을 선전했다. 하지만, 공화군 역시 거점 지역들이 국민전선 반란군에게 함락될 위기가 되면, 국민전선 포로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서로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이들이 벌인 비극의 현장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공화파 역시 프랑코 군대가 승리했을 때, 벌어질 보복을 예상하고 자진해서 망명길에 나섰다. 기옘은 전선에서 전사했고, 기옘의 아이를 가진 로세르는 추위와 기아를 딛고 노쇠한 시어머니 카르메와 함께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길에 나선다.

 

여기서 잠깐 스페인 내전의 실상에 대해 살펴 봐야할 점이 하나 있다. 작년말부터 읽기 시작한 앤토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에 따르면 1936년 초에 있었던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했더라도, 내전은 피할 수가 없었을 거라는 예상을 읽은 기억이 난다. 좌우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무력 충돌은 기정사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화국에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의 국민전선을 악으로, 그리고 그 반대편을 선으로 규정하는 단순한 이분법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정든 고향 땅을 떠난 스페인 아니 카탈루냐 사람들인 로세르와 빅토르는 프랑스 땅에서 마침내 무사히 재회하는데 성공한다. 좌파라는 낙인을 찍힌 패배자들은 이웃 프랑스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부에서도 말이다. 84년 전에도 여전히 난민이란 존재는 이방인이었고, 불청객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스페인 난민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는데 그건 라틴 아메리카의 섬으로 불리는 바다의 긴 꽃잎인 칠레였다.

 

물론 칠레에서도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칠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파블로 네루다가 특별 영사로 등장해서 칠레에 필요한 이들만 선발하라는 본국의 훈령을 어기고 다수의 스페인 난민들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해서 선택받은 인원들은 위니펙호를 타고 대서양 바다를 건너 발파라이소 항구에 도착한다. 그나마 망명 스페인 사람들에게 유리했던 조건은 칠레 역시 같은 스페인어권 국가였다는 점이다. 오랜 타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언어가 얼마나 그 사회에 동화되는데 필요한 요소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참 그전에 빅토르는 난민 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제수였던 로세르와 위장결혼을 한다. 의대 출신 청년이었던 빅토르는 다른 이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칠레 사회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로세르 역시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서 초기에는 빅토르보다 더 달마우-브루게라 집안에 공헌한다.

 

소설의 두 번째 공간의 무대가 되는 칠레를 대표하는 집안으로 델 솔라르가 선택됐다. 가장 이시드로는 오로지 돈과 성공을 밝히는 전형적인 사업가로 등장한다. 도냐 라우라는 보수적인 칠레 가정을 수호하는 인물로 그리고 조력자이자 델 솔라르 집안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인디오 출신 후아나 낭쿠체오가 차례로 등장해서 서사를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집안의 장남 펠리페는 댄디 스타일의 청년으로 칠레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나중에는 우파 진영으로 변신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딸 오펠리아는 위장결혼한 빅토르와 불장난을 벌이다가 파국적 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작가 이사벨 아옌데가 달마우 가족들을 칠레로 보내는 순간부터, 1973911일 선배 독재자 프랑코를 존경하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세계에서 최초로 선거 혁명으로 집권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뒤엎은 쿠데타 시절에 과연 달마우 가족들의 생존기가 궁금해졌다. 더군다나 원래 조국이었던 스페인에서보다 칠레에서 보낸 시절이 더 많아진 빅토르 달마우는 스페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 버렸다. 어머니 카르메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달마우 가족은 재회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아옌데의 체스 파트너일 정도로 전직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을 밀고한 사람은 바로 이웃집 여자였다. 그 결과, 예순의 나이에 가까운 빅토르 달마우는 군부에 의해 연행되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청년 시절에는 공화군 의사로 활동했던 빅토르가 노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잃고 수용소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로세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석방되고, 결국 다시 한 번 베네수엘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피노체트 군부 독재의 끝이 다가오면서 빅토르와 로세르는 칠레로 귀국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빅토르는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로세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때 가서는 진정한 사랑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남편이 심장전문 의사였지만, 정작 자기 아내의 병을 진단하지 못했다는 역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말기암으로 죽어가는 로세르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세계사적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계속되는 간난신고를 이겨낸 빅토르와 로세르의 인생역경 서사의 빌드업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을까. 이사벨 아옌데가 치밀하게 구상해서 한 방에 터뜨린 서사의 힘이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궁금해 하던 마지막 퍼즐(???)까지 맞춰주는 서비스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렇지, 바로 이 맛에 우리가 소설 읽기를 끊지 못하는 거지.

 

빅토르와 로세르의 진보적 목소리만큼이나 그 대척점에 서 있던 이시드로/펠리페와 오펠리아의 보수적 입장에도 작가는 균형감을 발휘한다. 칠레 선거혁명 당시 모든 칠레 국민들이 인민연합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자칭 입헌 군주주의자라는 펠리페 델 솔라르를 과거에서 온 혈거인이라고 풍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들 마르셀처럼 아예 정치하고는 담과 쌓고 산 이들도 많았다. 글을 아는 모든 이들은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교육 투사였던 카르메 여사의 불굴의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몸으로 보여준 멋진 캐릭터가 아닐 수 없었다.

 

이사벨 아옌데가 <세피아빛 초상>에서 19세기 칠레 근대사를 다루었다면, 이번의 <바다의 긴 꽃잎>에서는 20세기 스페인과 칠레 현대사를 연결하는 서사시에 문학적 방점을 찍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빅토르, 로세르, 펠리페나 오펠리아 같은 캐릭터들이 모두 불세출의 영웅은 아니다. 그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삶과 욕망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한 치 앞의 미래조차 보이지 않던 순간을 살아낸 이들에 대해 이사벨 아옌데는 경의를 표한다.

 

<바다의 긴 꽃잎>은 나에게 여러 의미에서 참 멋지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새해 벽두에 만난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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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1-17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옌데 그 삼부작을 중고로 드뎌 다 모았습니다.
이젠 읽기만 하면 되네요.
고수님들이 다 칭찬을 하시는 작품이라 참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3-01-18 17:39   좋아요 1 | URL
오오 다 모으셨군요 !!!

전 아직 <운명의 딸>은 못 샀네요.

<영혼의 집>은 중고서점에서 잘
사서 쟁여 두고 있답니다.

독서괭 2023-01-23 0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리미리 사두신 선견지명을 칭찬합니다!ㅎㅎ 아옌데 쭉쭉 읽어나가시겠군요. 역사 배경을 좀 알고 읽으면 더 재미날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님 남은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01-24 23:48   좋아요 2 | URL
연휴 대비, 아니 꼭 특정 시기를 대비하지 않으셔도 미리미리 사두셔서 연휴가 즐거우신 레삭매냐님을 칭찬해. ‘미리 책들을 사둔 나를 칭찬한다‘눈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고 기분이 좋아져서 웃고 갑니다. ^^

얄라알라 2023-01-24 23:50   좋아요 2 | URL
칠레를 지도에서 보면 길쭉하다는 것만 알지, ˝바다의 긴 꽃잎˝이라니! 괭님 말씀처럼, 역사 배경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도 있겠지만 큰 공부도 될 것 같습니다^^ 연휴 끝나가지 폭풍 책 욕심!

레삭매냐 2023-01-26 13:56   좋아요 2 | URL
아이고 연휴가 다 지나가서야
댓글을 달게 되네요.

너무 추버서 책도 제대로 못
읽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1-26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스페인에 빠지셨나보네요ㅎ

소설이 주는 감동, 서사의 힘. 이 맛에 소설읽기를 멈출 수가 없지요^^

레삭매냐 2023-01-26 13:57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그러합니다.

오래 전에 바르셀로나에
가보겠다고 티켓값 알아
보던 시절 생각이 문득
나네요 ^^

소설읽기, 심각한 중독입니다.
 
야스미나와 감자 먹는 사람들 미래그래픽노블 6
볼테르 마나에르 지음, 이희정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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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수원에 새로 생겼다는 국립농업박물관에 다녀왔다. 일단 새로 지은 곳이라 그런지 깨끗하고 넓직한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주차장이며 입장료가 무료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진 몰라도 주차자리도 많았다. 출입구 밑으로 전시되어 있는 수직정원에서 자라나는 초록이들의 향연도 볼만했다. 문득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식물들을 재배하면서 먹고 살 수 있지 않나 싶더라.

 

책을 넘겨보면 아주 다양한 모양새의 감자 품종들(?)이 등장하는데 과연 실재하는 종자들인지 살짝 궁금해졌다. 그래픽노블의 주인공은 학교에 다니는 야스미나가 주인공이다. 십대 청소년 정도로 보이는데, 야스미나는 학업보다 요리에 더 관심이 많다. 공부하는 이야기는 1도 등장하지 않고, 오직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도시락을 만들고 또 식재료들을 구하는 이야기만 나온다.

 

그리고 보니 야스미나는 친구도 없다. 자신의 텃밭을 키우는 시릴과 마르코가 그녀의 유이한 친구들이다. 시릴이 농약도 치고, 질서정연한 농작물 재배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르코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자연농법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다. 그러니까 일체의 비자연적인 요소들을 배제하자는 극단주의자라고나 할까.

 

야스미나가 사는 아파트의 꼭대기층에는 아마릴리스라는 괴짜 연구자가 살고 있다. 그곳은 야스미나에게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공간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아빠의 허브 도시락을 만들기 위한 돈이 없다. 그래서 위층에 지천으로 깔린 천연 식재료들을 슬쩍한다는 거지. 처음에는 서양배를 슬쩍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연 식재료를 고집하는 야스미나의모습에서는 재작년에 작고하신 방랑식객 아저씨가 떠오르기도 했다. 장 몇 가지만 가지고,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맛난 음식들을 뚝딱 만들던 그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지.

 

문제는 기업가 톰 드 페르가 시릴과 마르코의 텃밭을 사들이고 이른바 슈퍼 감자를 대량생산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야스미나의 아빠까지 배가 고파서 유행하는 슈퍼 감자 칩을 먹고는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인도의 모처에서 댕댕이처럼 되어 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슈퍼 감자를 미친 듯이 먹어댄 야스미나가 사는 곳 근처에 사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무엇보다 야스미나의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국 자본과 결탁한 유전자 조작과 기업가 톰 드 페르의 욕심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돈만 된다면 사람들의 건강 따위는 고려할 바가 아니라는 말일까. 자신이 하는 연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채 연구에 매진했던 아마릴리스에게 책임이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선의에만 의지한다는 게 궁극적인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만화는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일단 한 번 잘못된 걸 바로 잡기 위해서는 처음의 노력보다도 더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는 점도 말이다.

 

톰 드 페르를 막기 위한 야스미나들의 게릴라전은 왠지 19세기 초반 벌어졌던 러다이트 운동을 연상시켰다.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자본과 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앙숙인 시릴과 마르코도 연대해야 한다는 걸 여실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겠지만.

 

아마릴리스가 개발한 스스로 벌레를 퇴치하는 식물에 대한 연구는 나름 신선했다. 폭발적인 지구별의 인구증가로 식량난에 시달리지도 모른다는 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식량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으로 한쪽에서는 과식에 의한 과다체중 문제가 또 한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식량 부족으로 굶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톰 드 페르가 개발한 슈퍼 감자 같은 종자혁명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너무 멀리 나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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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16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그냥 감자라고 하지만 남미에 가면 시장에 감자가 종류별로 수십종이 있대요. 다 다른 감자! 원래 감자가 남미에서 구대륙으로 넘어온거잖아요. ^^

레삭매냐 2023-01-17 09: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신대륙에서 온 작물이지요.
감자 고구마, 예전에 구황 작물로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나네요.

만날 장에서 사다 먹지만 그렇게
종류가 다양한 지는 미처 몰랐네요.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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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리뷰의 제목을 인생 한방이다라고 쓰려고 했다. 아니 존버 아니면 엑싯도 후보에 있었다. 하지만 역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동력인 욕망에 초점을 맞춰 보았다. 결국 욕망이다, 모든 건.

 

소설 <달까지 가자>의 서사는 초코밤으로 유명한 마론제과에 근무하는 세 명의 여성 노동자들인 다해, 지송 그리고 은상 언니가 엮어 간다. 일단 그들의 임금은 타직종에 근무하는 이들에 비해 너무 짜다. 하지만, 다른 데 갈 데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다. 화자 정다해의 기준에서 집필된 일기 형식이랄까. 같이 빌려온 정지아 작가의 <자본주의의 적>을 보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하룻밤 새에 다 읽어 버렸다. 그만큼 재밌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보니 작가의 전작 소설집도 그렇게 읽었지 아마. 그 책은 다 읽고 나서 팔아 버렸다.

 

항상 서설이 길다. 마론제과 삼총사는 따라지 인생들이다. 일단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삶이 팍팍하다. 주인공은 외부의 먼지와 욕실에서 스물스물 새어 나오는 물이 들지 않는 그런 거주 공간을 원한다. 그러려면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많은 보증금과 월세를 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법칙이다. 보다 나은 것을 원한다고? 그럼 돈을 더 내라고. 모두가 알다시피 월급쟁이에게 추가 소득은 언감생심이다. 하긴 요즘에는 배민 배달 같은 투잡으로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세태를 포착해서일까? 돈에 진심인 은상 언니는 아예 사내에 강은 상회를 차리고 치약부터 스타킹, 대일밴드 그리고 컵라면에 이르는 잡화를 팔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한 달에 버는 돈이 9만원이었다. 찌질하지만 정말 공감이 갔다. 회사 동료들과 점심 먹을 때 보통 내가 계산을 하고 카카오페이로 이른바 뿜빠이를 하는데, 지역화폐를 이용하면 한 달에 한 3-4만원 정도는 떨어진다. 커피값 정도 되는 셈인가. 암튼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장류진 작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탈출구가 없는 젊은이들이 한 때 열광했던 비트코인/이더리움을 전면에 내세운다. 존버와 엑싯 그리고 손떨림과 집착으로 가득한 이렇게 좋은 소재를 작가들이 그냥 놔둘 리가 없었으리라. 은상 언니가 다해와 지송을 이더리움 투기에 끌어 들이기 시작한다. 물론 지금처럼 비트코인이 폭락한 상태에서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겠지만, 불과 몇 년까지만 해도 코인으로 돈벼락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나마 주식은 법으로 보장되고 거래시간이라도 있지, 코인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벼락부자들이 나고 또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많았지 않았나 싶다.

 

소설에 어느 지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같은 흙수저들에게 성공 혹은 쉽게 돈 벌 수 있는 포탈이 아주 잠깐 열린 거라고. 얼마나 집중했는지 아니 내가 코인에 투자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삶에 몰입해서 코인이 더 폭락하기 전에 엑싯하라고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 인간이 어디 그런가 그야말로 영끌해서 모은 돈 2천만원을 투자해서, 아홉자리 숫자를 찍고 십수년을 일해도 벌 수 있을까 말까 한 돈이 나의 가상화폐 지갑에 들어온다면 나라도 사리판단을 흐리게 될 것 같다. 도대체 언제 팔아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J커브를 그리며 올라가는 그래프의 아름다운 모습에 영혼을 빼앗겨 버릴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반대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삼총사의 제주도 7성 호텔 여행은 비트코인 판타지의 끝판왕이었다. 그들이 투기한 이더리움의 떡상은 과거의 구질구질한 삶들을 모두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렸다. 달까지 가보자는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까지 자신들을 옥죄던 물질적 조건과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자, 매 순간들이 행복으로 치환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우리가 얼마나 물질의 노예가 되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조마조마한 순간들을 넘기는 삼총사 모두 한몫 든든하게 챙기고 엑싯에 성공했다. 이거야말로 현대판 동화가 아닌가. 이더리움의 선구자이자 강장군 은상 언니가 다해와 지송을 차례로 비트코인 투기판에 끌어 들이는 장면은 전형적인 불안 마케팅이다. 억대를 넘어가는 이더리움 지갑을 눈앞에 들이미는데 아마 당해낼 장사는 없을 것이다. 후발주자인 지송이 주저주저하며 조금 더 먹겠다고 엑싯 순간을 늦추는 장면에 어찌나 공감이 가는지 몰랐다.

 

이더리움이 그들의 관계에 균열을 내기 전에 야근을 위해 의기투합한 삼총사가 테이크아웃 맥주를 마시면서 떠들다가 직장 상사에게 들킬 뻔한 장면도 압권이었다. 물질이라는 외부적 조건이 개입하기 전, 정말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한 묘사는 경쾌했다.

 

우리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욕망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하거나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추기는 욕망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뱀다리] 안윤 작가의 소설집에서 만난 "윤슬"이라는 단어를 다시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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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10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말은 참 많이 들었는데요. 하룻밤 새에 다 읽으셨군요! 내용 보니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3-01-10 13:47   좋아요 1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바로 드라마 각이지 싶습니다.
비트코인과 제주도 바다 같이
콘텐츠와 비주얼에서 어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과업계의 이야기까정 !!!

라로 2023-01-10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또 이렇게 뚝딱 쓰셨군요!! 저는 오늘 <쇼사> 100페이지 (전화기로) 읽었어요,, 그러니 책으로 한 50페이지도 안 되게 읽었겠죠??^^;;;
윤슬이 반짝이는 잔물결?인가요??
제가 아이 한 6명쯤 낳았다면 막내의 이름으로 짓자고 했던, 아 놔~~~.ㅎㅎㅎㅎ

레삭매냐 2023-01-10 13:53   좋아요 1 | URL
저의 기분 가는 대로
적는 날림 리뷰~이지효
ㅋㅋㅋ

밤에 읽고 낮에 희미한
기억에 의지해서 쓴다는.

<쇼샤>는 정영문 작가가
번역을 한 것 같은데...
왠지 18년 전 번역을 울궈
먹은 게 아닌지 합리적 의
심이 드네요 ㅋㅋㅋㅋ

분명 사둔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겠
습니다.

윤슬, 니름이 반짝반짝합니다.

페크pek0501 2023-01-10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좋아하게 된 작가입니다. 이 책도 탐나는군요...

레삭매냐 2023-01-10 19:09   좋아요 0 | URL
다른 단편들을 모두 잊어
버리고 오로지 거북알만
기억이 나네요 ^^

일상의 소소함을 퍼올리
는 트렌드세터답다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적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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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상한 신문에서 따뜻한 자본주의 3.0 시대를 준비하라는 뭐 그런 식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자본은 생리적으로 따뜻할 수가 없는 그런 것이었다. 이익의 추구를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매일 같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을 정도로 산업재해가 많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그 노동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조금은 살벌했나?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을.

 

<자폐가족> 이야기로 시작되는 정지아 작가의 <자본주의의 적> 소설집을 보면서 든 사유의 파편들이었다. 작년 세간에 화제가 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정지아 작가를 알게 됐다. 만부 작가답게, 나의 레이더망 밖에 있었던 모양이다. 책의 발간 순서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보다 <자본주주의 적>이 먼저 나왔지만 왠지 모르게 전자가 후자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낙인을 평생 달고 살아야 했다. 박사님에 교수님이 되어서도, 샤넬백을 매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출신은 사회주의자의 자식이면서도 자유와 평등 혹은 공평한 분배 같은 고상한 이데올로기 용어보다도 누가 봐도 산뜻한 샤넬에서 만든 클래식 플랩백을 갖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가 없는 욕망이다. 작가의 고백처럼, 자본은 인간의 욕망을 그야말로 무한으로 유도한다. 신상백, 자동차 그리고 휴대폰 삼총사는 욕망의 디폴트로 제시되며 시대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꼬맹이조차 아이폰 타령을 해대니 할 말이 없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본의 세례를 받은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방현남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십년도 넘은 차를 타고 있으며 핸드폰은 직장 동료가 넘겨준 것을 수년째 사용하고 있다. 내가 왜 남들이 타는 그런 삐까뻔쩍한 신상 자동차 그리고 최신형 휴대폰을 사용해야 하는 거지? 어쩌면 경쟁을 아예 포기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물질적 소유로 내가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그런 심리적 만족감을 욕망은 노린 게 아닐까. 방현남 패밀리처럼 새로운 것이나 사람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는 편은 아니지만(사실 좀 너무 극단적 설정이 아닌가 싶다),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보수적 성품이라 그런 지도 모르겠지만.

 

설원 출신의 개의 입장에 대입해서 작금에 자신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관찰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화자가 사람인가 개인가 헷갈렸다. 그러다가 개를 의인화해서 주인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그 무엇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이데올로기 전사로 산사람이었던 작가 부모들의 이상적 도전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근처 사는 똥개는 주인이 던져주는 고기에 길들여져 버렸다. 고기를 임금으로 치환하면, 자본가가 던져 주는 얼마 되지 않는 임금에 영혼을 파는 우리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 댕댕이는 주인의 선심 삼아 던져주는 삼겹살 대신 이웃의 닭을 사냥해서 잡아먹는다. 그리고 자신을 덮친 똥개를 비웃는다. 그것 참. 주인의 먹이는 거부하고 남의 걸 몰래 잡아먹는 건 괜찮다는 말인가? 그 닭들은 심지어 이웃이 애지중지하던 오골계였다고 한다. 똥개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건사하게 되는 웃픈 상황도 이어진다.

 

댕댕이 스토리는 나중에 새끼 냥이들을 내팽개친 어미 고양이 서사로 이어진다. 잘 나가는 로펌 대표 변호사 지원을 애인이자 미래의 남편감으로 둔 화자는 얼결에 고양이 가족을 부양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일보다 현재 자신의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 남친 지원은 자신이 일과 자신의 애인이 최근에 돌보게 된 고양이보다도 못하다는 투정을 날린다. 집사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성장 배경과 사회적 조건들이 상이하게 다른 객체들의 이해란 결국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포기하는 거지. 어떤 면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조차 물적 토대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서글픈 현실을 직격하지 않나 싶다.

 

K읍에 사는 원어민 교사들의 이야기도 심상하게 다가온다. 독서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 서울에서 지내던 그들과 접점이 있어서일까. 편리함과 즐거움을 원한다면 응당 서울에서 지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거창하게 세계화 경쟁에서 밀려난 스텔라나 존 같은 이들이 남도의 어느 카페에 모여 봄밤 축제에 참가하고 그러며 산다는 거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끊임없이 선전하고 불안을 조성하는 소비와 성공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음에 대해 걱정하라는 부추김이라고나 할까. 남도에 사는 우리 친구 B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전부터 구상 중이라던 글쓰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묻지 못한 지 참 오래됐다.

 

단기 기억상실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케냐 커피 피베리를 즐겨 마시고, 안캅 팔레르모 잔의 미학을 아는 화자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나에게 커피란 그저 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데 또 누군가에게는 수준 높은 취향의 문제로구나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한 번 피베리 커피를 먹어 보겠다고 근처에서 파는 곳이 없나 찾아보겠지만, 이젠 그럴 마음이 없어져 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 것이고 나는 또 내 나름의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을 때,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게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해서 작품으로 형상화한 작가의 상상력이 마음에 들었다.

 

어제 도서관에 이 책을 빌리러 갔는데, 보통 사이즈의 책이 대출 중이어서 큰글자 책으로 읽었다.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큰 글자책이 나쁘지 않았다. 큰 글자든 작은 글자든 내용이 중요하지 껍질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소설집에 실린 9편의 소설 모두 마음에 들었다. 계속해서 자본에 종속되어 살 수 밖에 우리 평범한 독자들의 각성을 위해 건필해 주시길 바란다. 그나저나 정지아 작가가 표제에서 규정한 자본주의의 적은 어지간한 것도 사지 않는 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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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01-09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큰 글자 책 궁금했는데 나쁘지 않군요@_@;;; 저도 자본주의의 적인가봐요.ㅎㅎ(은근슬쩍 레삭매냐님과 한 편 하고 싶은^^;;;) 십년 훨씬 넘은 차를 애지중지하며 타고 있어요. 신상백 같은 건 전혀 관심 없고 휴대폰 먹통 되어야 바꾸고ㅎㅎ;;;;

레삭매냐 2023-01-09 20:56   좋아요 1 | URL
오호라 저의 편이 여기 있으
셨군요, 달밤 동지님하 !!!

옷도 닳을 때까지 입은 닝겡
이가 바로 저랍니다. 구식이
지요.

헤진 청바지 보수해서 입겠
다고 세탁소에 맡겼다가 돈
만 날렸습니다 ㅠㅠ

고양이라디오 2023-01-10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었군요ㅎ 레삭매냐 님 덕분에 정지아 작가 다음 책 정했네요ㅎ

레삭매냐 2023-01-10 19:12   좋아요 1 | URL
출간 순서로는 <해방일지>에
앞서 나온 책이더라구요 :>

부담스럽지 않은 소설집이었
습니다.

그레이스 2023-01-1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2022년 베스트셀러였더라구요?!
읽어봐야겠어요.
이 책이 먼저면 이것부터 읽어얄까요?

레삭매냐 2023-01-12 10:21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적>
을 읽고 나신 다음에, <해방일지>
를 만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목련 2023-01-12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소설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레삭매냐 2023-01-12 15:07   좋아요 0 | URL
정지아 작가 삶의 내력을
살펴 보면, 제목의 유래가
읽힌다고나 할까요.

<해방일지>와 셋트인 책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을 읽고 나서, 비축해 둔 그녀의 다른 작품 <바다의 긴 꽃잎>에 돌입했다.

 

작년 말에 램프의 요정에서 중고책 할인해 준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 나가서 사온 책이다. 지금 열심히 읽고 있다.

 

그 때 같이 산 책이 에시 에디잔의 <워싱턴 블랙>이다. 이 책도 읽기 시작하긴 했었지. 바베이도스 노예 제도를 다룬 기대작 <워싱턴 블랙>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그 어느 소설보다 잔혹해서 당분간 접어 두었다. 리얼리티라면 정말...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그전에 본 영화 <안테벨룸> 생각이 자꾸만 났다.

 

현실의 미국에서 벌어진다고 해도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을 만한 그런 설정이지 싶다. 그만큼 인종차별의 유구한 역사는 지울 수가 없다는 거겠지. 사람들의 의식에서 비롯된 편견을 수정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고.

 

내가 새해 으로 산 책은 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이었다. 잔뜬 쟁여둔 적립금과 럭키백 할인으로 7,900원에 데려왔다. 조금도 책값이 아깝지 않았다. 몰입, 즐거움 그리고 의미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사냥한 드문 책이었다.

 

칠레와 볼리비아/페루가 맞붙은 태평양 전쟁(War of the Pacific)이 궁금해서 군사전략연구소인가에서 나온 논문을 다 찾아봤다. 지금까지도 분쟁 중인 아타카마 사막과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대해 알 수가 있었다.

 

다시 <바다의 긴 꽃잎>으로 돌아가 보자. 1938, 프랑코 파시즘에 맞서 싸운 공화군 소속 일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빅토르 달마우는 내전의 성패를 가른 테루엘 전투에서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동생 기옘은 에브로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버지 마르셀 류이스는 돌아 가시기 전에 차남의 전사를 예언하고, 프랑코 독재가 시작되면 엄청난 보복이 따를 거라며 어머니와 딸 같이 지내던 피아니스트 제자 로세르 브루게라를 데리고 망명을 떠나라고 권한다. 패배한 사람들의 집단 망명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목적지는 아마도 칠레겠지.

 

내가 살던 집, 언어, 사회 문화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에 가서 정착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그나마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에스파냐 말을 쓰니 그나마 좀 낫지 않았을까.

 

앤서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내전 기간 동안 프랑코 독재집단의 공화파에 대한 만행에 대해서만 줄로 알고 있었다. 물론 프로파간다이긴 하지만 공화파의 파시스트들에 대한 만행 역시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제와 수녀들을 공화국의 적으로 돌려 살해하고, 포로로 잡은 국민전선 포로들은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했다. 사실 조금 충격이었지만, 공화파가 내전에서 승리했다면 그들 역시 프랑코 못지 않은 보복을 자행했을 거라고 앤서니 비버는 말한다. 이사벨 아옌데는 불굴의 전사 기옘의 말을 빌어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있었노라고 서술한다. 이런 균형 잡힌 서사를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국민전선 일파가 실질에 중점을 두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내전을 유리하게 이끌어 갔다면, 공화파의 지나친 이상주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서방의 지원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서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새해 첫 주말, 나는 그렇게 <바다의 긴 꽃잎>이 구사하는 장대한 서사에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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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3-01-09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균형잡히고 장대한 서사....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23-01-09 20:54   좋아요 0 | URL
연초에 여러 책들을 번갈아
가며 읽다 보니 순위가 좀
뒤로 밀리긴 했어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읽고 있답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한 이
들이 위니펙 호에 올라 칠레
로 망명한다는 설정이 참 -

흥미진진의 연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