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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원래 리뷰의 제목을 인생 한방이다라고 쓰려고 했다. 아니 존버 아니면 엑싯도 후보에 있었다. 하지만 역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동력인 욕망에 초점을 맞춰 보았다. 결국 욕망이다, 모든 건.
소설 <달까지 가자>의 서사는 초코밤으로 유명한 마론제과에 근무하는 세 명의 여성 노동자들인 다해, 지송 그리고 은상 언니가 엮어 간다. 일단 그들의 임금은 타직종에 근무하는 이들에 비해 너무 짜다. 하지만, 다른 데 갈 데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다. 화자 정다해의 기준에서 집필된 일기 형식이랄까. 같이 빌려온 정지아 작가의 <자본주의의 적>을 보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하룻밤 새에 다 읽어 버렸다. 그만큼 재밌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보니 작가의 전작 소설집도 그렇게 읽었지 아마. 그 책은 다 읽고 나서 팔아 버렸다.
항상 서설이 길다. 마론제과 삼총사는 따라지 인생들이다. 일단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삶이 팍팍하다. 주인공은 외부의 먼지와 욕실에서 스물스물 새어 나오는 물이 들지 않는 그런 거주 공간을 원한다. 그러려면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많은 보증금과 월세를 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법칙이다. 보다 나은 것을 원한다고? 그럼 돈을 더 내라고. 모두가 알다시피 월급쟁이에게 추가 소득은 언감생심이다. 하긴 요즘에는 배민 배달 같은 투잡으로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세태를 포착해서일까? 돈에 진심인 은상 언니는 아예 사내에 강은 상회를 차리고 치약부터 스타킹, 대일밴드 그리고 컵라면에 이르는 잡화를 팔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한 달에 버는 돈이 9만원이었다. 찌질하지만 정말 공감이 갔다. 회사 동료들과 점심 먹을 때 보통 내가 계산을 하고 카카오페이로 이른바 뿜빠이를 하는데, 지역화폐를 이용하면 한 달에 한 3-4만원 정도는 떨어진다. 커피값 정도 되는 셈인가. 암튼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장류진 작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탈출구가 없는 젊은이들이 한 때 열광했던 비트코인/이더리움을 전면에 내세운다. 존버와 엑싯 그리고 손떨림과 집착으로 가득한 이렇게 좋은 소재를 작가들이 그냥 놔둘 리가 없었으리라. 은상 언니가 다해와 지송을 이더리움 투기에 끌어 들이기 시작한다. 물론 지금처럼 비트코인이 폭락한 상태에서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겠지만, 불과 몇 년까지만 해도 코인으로 돈벼락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나마 주식은 법으로 보장되고 거래시간이라도 있지, 코인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벼락부자들이 나고 또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많았지 않았나 싶다.
소설에 어느 지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같은 흙수저들에게 성공 혹은 쉽게 돈 벌 수 있는 포탈이 아주 잠깐 열린 거라고. 얼마나 집중했는지 아니 내가 코인에 투자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삶에 몰입해서 코인이 더 폭락하기 전에 엑싯하라고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 인간이 어디 그런가 그야말로 영끌해서 모은 돈 2천만원을 투자해서, 아홉자리 숫자를 찍고 십수년을 일해도 벌 수 있을까 말까 한 돈이 나의 가상화폐 지갑에 들어온다면 나라도 사리판단을 흐리게 될 것 같다. 도대체 언제 팔아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J커브를 그리며 올라가는 그래프의 아름다운 모습에 영혼을 빼앗겨 버릴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반대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삼총사의 제주도 7성 호텔 여행은 비트코인 판타지의 끝판왕이었다. 그들이 투기한 이더리움의 떡상은 과거의 구질구질한 삶들을 모두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렸다. 달까지 가보자는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까지 자신들을 옥죄던 물질적 조건과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자, 매 순간들이 행복으로 치환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우리가 얼마나 물질의 노예가 되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조마조마한 순간들을 넘기는 삼총사 모두 한몫 든든하게 챙기고 엑싯에 성공했다. 이거야말로 현대판 동화가 아닌가. 이더리움의 선구자이자 강장군 은상 언니가 다해와 지송을 차례로 비트코인 투기판에 끌어 들이는 장면은 전형적인 불안 마케팅이다. 억대를 넘어가는 이더리움 지갑을 눈앞에 들이미는데 아마 당해낼 장사는 없을 것이다. 후발주자인 지송이 주저주저하며 조금 더 먹겠다고 엑싯 순간을 늦추는 장면에 어찌나 공감이 가는지 몰랐다.
이더리움이 그들의 관계에 균열을 내기 전에 야근을 위해 의기투합한 삼총사가 테이크아웃 맥주를 마시면서 떠들다가 직장 상사에게 들킬 뻔한 장면도 압권이었다. 물질이라는 외부적 조건이 개입하기 전, 정말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한 묘사는 경쾌했다.
우리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욕망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하거나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추기는 욕망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뱀다리] 안윤 작가의 소설집에서 만난 "윤슬"이라는 단어를 다시 만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