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단 한 건의 케이스 때문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 내일이면 마무리가 될 것도 같은데 결과는 또 어떻게 나올지. 요점만 이야기하자면 자료와 정보준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 클라이언트를 이해시키면서 자료와 정보를 충분히 준비해서 케이스를 준비해야 했고 이에 따라 진행은 계속 늦어졌고, 중간에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왜 X는 그간 문제가 없이 다 했는데 너는 못하냐'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큰 소리를 내는 직전까지 가면서 이해를 시켰고 이제는 과거 케이스들이 운좋게 무사히 처리됐었지만 기실 대충 진행된 것이었음을 어느 정도 인지한 것 같고 진행은 마무리 단계에 왔다는 것. 


이 바닥엔 벼라별 인간들이 다 있는데 (1) 사무장이 변호사를 고용해서 영업을 하는 브로커법인과 (2) 변호사 한 명이 각 나라별 언어가 되는 사무장을 고용해 이들이 모두 일을 하고 변호사와 돈을 나누는 형태가 가장 거지 같은 practice의 대표적이 모습이다. 과거 케이스를 진행했던 곳이 (2)의 계통이라서 자료고 정보고 과거의 것들을 제대로 전달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런 이해를 못하는 클라이언트를 가르치면서 여기까지 온 끝에 지금은 아주 진절머리가 나버렸지만 내가 할 도리는 다 해야 한다.


일이란 것이 하다 말다를 반복하면 재개할 때마다 추가로 시간이 발생하고 그 덕분에 다른 케이스의 진행이 전체적으로 미뤄진다는 문제가 있다. 덕분에 내일까지 이걸 빨리 마무리하고 다시 남은 한 주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중간에 일정을 조절해온 댓가를 치뤄야 한다. 이 나이를 먹어서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땐 그냥 욕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번 달 안에 일단 밀린 두 건을 알맞게 진행시키고 hopefully 위에 말한 문제의 케이스가 잘 되면 좋겠다. 9월 중으로는 그간 클라이언트가 속도를 내지 못해서 계속 늘어지고 있는 몇 건의 케이스를 확 잡아댕겨서 마무리 해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서 9월 말에서 10월 초의 늦은 휴가는 다른 몇 건의 케이스와,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둔 홈페이지를 개정하기 위한 자료준비에 사용해서 10월 중으로는 이 또한 오더를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쪽으로는 워낙 부족해서 회사의 홈페이지는 내 사무실의 구성 상태와 마찬가지로 좀 별로라서 늘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이곳에서 매우 저가로 영업하는 변호사가 개발새발 남을 의식한 글을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홈페이지를 보고서 정리가 잘 된 것이 맘에 든다는 사람도 있으니 홈페이지의 feature가 중요하긴 한 것 같다. 


오른쪽 어깨와 삼두가 함께 아픈지 좀 됐는데 여전히 완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침을 맞아볼까 생각하고 있다. push운동이 가장 어렵고 pull운동의 경우 그간 열심히 노력해서 많은 진전을 보인 pull-up이 완전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하체 2, 상체 1의 비율로 운동을 하는 것으로 어쨌든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실천하고 있다. 걷기는 거의 매일 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월 100마일 정도의 거리는 가능할 것 같다.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십대나 이십대, 아니 삼십대의 운동량을 따라가는 건 어려울 것이라서 나이와 몸 상태에 맞춰 열심히 꾸준히 하면 그만이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어떤 우연한 기회에 reference를 접하고서 아마존을 통해 구입해두었다가 최근에 읽었다. 워낙 dense한 글이라서 속도는 나지 않았지만 엄청 재미있게 조금씩 읽은 끝에 지난 주말에 완독을 했다. 갑부이자 의사인 Dr. John Silence는 자선을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나 실제로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전형적인 빅토리아시대에서 20세기 초 흔했던 젠틀맨이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사건은 모두 초인지, 초자연, 초현상에 관련된 병이나 컨디션이고 세밀한 분석을 통해 단순한 정신이나 마음의 병이 아님을 판별한 후 사건을 맡아 해결한다. 악한 영혼의 흔적이 남은 공간에서 향정신성 약물을 흡입한 결과 개안이 되어 접촉된 작가의 이야기, 불의 정령의 이야기, 그리고 초공간을 인식하고 이를 컨트롤하지 못해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사람의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국어로 번역되어도 좋을 작품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점차 읽어볼 생각이다. 















21권까지 나온 걸 다 구해놨으니 이제 다섯 권이면 이 시리즈도 끝난다. 특이하게도 사건을 해결한 후 임의로 하는 판단에 따라 뒷처리를 하는 매그레 경감을 보면 프랑스인 (이미지화 된) 특유의 liberal함이 보인다. 정통추리라고는 말할 수 없을만큼 작가와 독자의 승부를 도모하지 않고 스토리를 서술해주는 방향이란 것도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만화를 좋아하게 된다. 복잡한 머릿속 생각을 식혀주는 용도를 넘어 '만화'라는 매개체에 대한 편견을 넘을 수 있다면 기실 잘 쓰인 이야기와 다를 것이 없다. 요즘 핫한 넷플릭스의 한국 컨텐츠도 상당수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꾸준히 읽어가는 '맛의 달인'도 이제 50여 권만 더 가면 완질/완독을 할 수 있다. 요즘 같이 달러가 좋을 땐 특히 더 달려들어 사들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계속 읽으면 아무래도 테마가 비슷하여 좀 지루하지만 이렇게 가끔씩 보면 맛깔스런 요리의 이야기에 즐겁다. 


삶이란 축복도 아니고 저주도 아닌 것이 내가 살아온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어떤 이들이겐 축복이겠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지구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저주에 가까운 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다행이라고 본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면서 살아남아 최선을 다해 종착역을 향해 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모자란 건 내일 더 노력하고, 그 다음에도 그렇게 노력해서 매일 새롭게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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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술 마실 일이 종종 있을만큼 networking이 되고 있다. 마치 지난 5-6년의 networking을 한번에 하는 것처럼 우연한 초대를 통해 만난 분들과 그렇게 가끔 만나서 술자리를 갖고 있다. 


운동은 나이의 탓도 있겠지만 지난 달부터 언젠가 오른쪽 삼두, 거기서 어깨로 해서 뒤의 날갯죽기까지 골고루 pain spot이 생긴 탓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무리하게 try를 하다가 이번 주 월요일의 맨몸운동 후 상체는 쉬고 있다. 어제도 가볍게 하체를 했고 내일은 상태를 봐서 당기는 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다시 하체를 해주는 것으로 상체를 더 쉬게 해줄 생각이다.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전체적인 운동의 패턴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들고 걷기만 하니 몸이 굳는 것 같기도 하고. 내년에는 진짜 뭐 하나를 찾아서 기능성 운동을 해야할 것 같다. 


책은 이번 달 들어서는 정말 성적이 참담하다. 딱 두 권을 완독했으니까. 


세상을 살아버리고 나면 살면서 겪은 많은 것들, 경험, 배움 등으로 해서 행간을 읽는 독서가 가능해진다. 물론 젊은 시절의 스펀지 같은 독서는 그대로의 매력이 있고 특히 읽고 나서도 내용이 사라지지 않는 엄청난 이점이 있기에 굳이 선택을 한다면 젊은 시절의 독서가 더 맘이 간다만, 나이를 먹은 사람의 독서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주게 된다. 책에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듯이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으로 context를 더해줄 수도 있고 경험에서 온 비판적인 시각으로 책의 이야기를 곱씹어볼 수도 있다. 독서에 정답이란 것은 없거니와 나이을 먹은만큼의 이런 변화는 바람직하고 말고를 떠나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운명일게다. 지금 나이에 와서 읽는 GTO가 어린 시절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에서 읽던 GTO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잊고 추리소설이나 만화에 푹 빠져드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아마 고전문학을 제대로 읽어본다면 이런 나이든 이의 독서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이제 몇 년 있으면 반 세기를 꾸역꾸역 살아낸 인간이 되어 있을 그 무렵엔 더욱 이런 경향이 강해질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뭐 복잡한 마음이다. 유쾌한 술자리에서 나를 보면 그냥 어릴 때의 내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게 적당히 잘 망가지고 즐겁게 개소리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다소 설득력이 없는 살인의 방식이지만 일단 그 방식이 먹혀들 수 있었다는 당위성을 인정하고 나면 신선하고 천재적인 발상이라고도 인정해줄 수 있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성서의 말씀이 연상되는 매그레 경감의 homecoming. 모든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고향에서 그는 경감이면서도 그때 그 아이로 약간은 당시의 신분에 따른 대접을 받는 듯한 경우가 있고 자신도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섞여 당혹스러워 한다. 


살인의 동기도 좀 별로였고 진범이 밝혀지는 과정도 그다시 설득력은 없다. 어쩌면 진짜 사건이란 건 이런 모습에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딱 두 권. 참으로 초라한 성적인데 머리가 복잡한 날도 있고 일을 많이 한 날도 그렇고 책을 매일 꾸준히 읽고는 있지만 한 권을 진득하지 잡고 즐기지 못하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이번 사무실로 입주한 것이 2019년인데 그때 와서 개발새발 같은 자계서를 많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꾸준히 사들인 책으로 인해 현재 대략 8000여 권의 책을 갖게 되었으니 늘어나는 행복과 함께 고민의 덩치도 계속 커지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사고 읽는 건 어떤 카르마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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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3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사무실의 책 8000권에 깜놀합니다. ㅎㅎ 제 직장 책상에는 지금 보고ㅠ있는 책 1~2권에 자료책 4~5권이 다인데 말이죠. ㅎㅎ 아 그러고보니 몇만권의 책이 있는 도서실이 바로 옆에 있긴 하네요. ㅎㅎ

transient-guest 2022-08-13 12:13   좋아요 2 | URL
달리 둘 곳도 없고 해서 사무실을 서재처럼 쓰고 있습니다 많아서 좋기는 한데 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계속 읽고 모으다가 이담에 은퇴해서 보려고 합니다

박균호 2022-08-13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8천권이라뇨 !! 대단하십니다. 저는 이제 1천권이나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운동하는 지식인이세요. 제 책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22-08-15 00:22   좋아요 1 | URL
8천개의 고민이자 행복이죠. 권수가 중요하진 않지만 어쨌든 안 버리고 잘 버티고 있으니 만족합니다. 늘 좋은 책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고 배우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지면 서재도 사라진다는 취지의 글을 보았다. 그냥 이런 저런 잡담 같이 다른 분의 서재에서 글을 주고 받으면서 책을 읽고 사들이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서재를 만들고 유지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에 나도 동참했는데 어느 맥락에서인지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읽는 즉시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서글픔이 밀려왔다. 생로병사에 대해서야 점점 더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기 때문에 딱히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현재는 없다. 물론 매우 다행스럽게도 큰 병을 앓거나 다른 사고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고 나중엔 바뀔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사람이 살아지는 것으로 인해 서재도 함께 흩어져버린다는 건 막연하게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갑자기 이렇게 많은 책을 사들이고 고생하면서도 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사무실을 멋진 서재공간으로 만들고 즐길 꿈을 꾸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묘하게 오늘도 그 서글픈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요즘도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실 임대아파트처럼 호텔에 장기투숙하면서 사는 건 모르긴 해도 한 두어 세대는 전의 모습일 것 같다. LA에 위치한 리슐리외 호텔이라는 가상의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으로 트릭을 구성했다. 자살로 위장된 살인이 거듭되고 모든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몇 가지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는데 기실 추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들이란 면에서 상당히 훌륭한 엄폐라고 본다. 범인의 정체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늘 눈앞에 있어도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는 이를 훌륭하게 사용했다. 전개는 다소 느린 편인데 확실히 엘러리 퀸을 봐도 그렇고 미국의 추리소설에는 20세기 초 유행했었던 라디오 단막극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반칙을 사용하지 않고 작가가 정정당당하게 걸어온 도전의 훌륭함이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간이 나면 조금씩 읽어가는 것으로 심농의 매그레 경감 시리즈 스물 한 권을 다 읽을 생각이다. 그런 마음으로 잔잔한 드라마 한 편씩을 보는 방식으로 깊은 추리에 대한 고민 없이 이야기의 전개를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다. '센 강의 춤집에서'는 경찰이 주시하던 어떤 사람의 우연한 죽음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심리묘사가 훌륭했다면 '게물랭의 댄서'에서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꼬인 이야기를 따라가야 했다. '댄서'가 경찰이 심어 놓은 세작이었던 것 같다는 기억이 희미하게 남는다.


와칸다처럼 신비롭게 세상에서 감춰져 있는 왕국으로 잠입하게 된 홈즈와 왓슨. 아무리 봐도 홈즈가 감행했을 것이라고 보기엔 컨트롤 할 수 없는 불안요소와 돌발적인 위기요소가 너무 많다. 하지만 고객의 의뢰와 함께 대영제국을 위해, 그리고 홈즈의 형이자 대영제국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실세인 마이크로프트의 부탁과 꼬드김 등의 이유로 사막을 가로질러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다. 추리의 요소보다는 모험소설의 면모가 강한 이번 이야기 또한 Val Andrews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아마존에서는 더 구할 수가 없었는데 우연히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에 위치한 미국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라는 Powells에서 몇 권을 주문할 수 있었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사이트를 남긴다. https://www.powells.com) YouTube에서 보니 엄청나가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독립서점인 것 같다. 서점과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에도 어디엔가 여러 가지 인연이 겹쳐 이렇게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서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갑다. 


일본 근대문학의 유수 작가들의 글에서 계절을 테마로 엮은 책. 서글픔과 쓸쓸함과 함께 신선함, 설레임까지 계절마다 바뀌는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 정경을 묘사한 글을 모았다. 요즘과는 달리 뭔가 문학의 근사함과 낭만이 느껴지는 시대적 특성 때문에 20세기 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같은 시리즈인 '작가의 마감'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갖고 싶고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 늘어나는 건 여전한 일이라서 장바구니를 비울 겨를이 없다.



기묘한 살인사건. 목격자가 있는 듯 없고, 용의자가 있는 듯 하면서도 오리무중 범위를 좁히기 어렵다. 돈이 싹 없어진 걸 보면 분명히 강도상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나 누가 돈을 가져갔는지 왜 죽였는지 알 수가 없는 듯한 시작. 열심히 발로 누비고 탐문하는 경감의 노력을 통해 하나씩 단서를 추적하고 소거해가면서 범위는 좁혀지고 뜻밖의 결말을 보게 된다. 잘 생각해보면 분명히 범인은 너무도 당연히 '그'였을 것이지만 그건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같은 이야기. 그저 너무도 심한 nagging spouse의 인생굴곡 그 이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전 남편, 비전이 없어 보여 자신이 버린 남편이 거부가 되어 나타났고 매일 그 돈을 보면서, 당시엔 더 나아보이던 지금의 남편이 다시 못마땅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매사 타인과 주변의 상황을 탓하면서 인생을 너무 쉽게 사는 듯 불만속에서 살아간다. 과정부터 결말까지 입맛이 쓰다.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혼재하는 듯한 테마는 로저 젤라즈니가 즐겨 쓰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들은 이런 다차원의 교차를 잘 사용한 것으로 기억하니까. 


문득 일생을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기실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아닌, 각각 나름대로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지점에서 만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는 어떤 노인은 내가 미래에 볼 어떤 젊은이의 과거일 수 있고, 나 또한 미래 어떤 이의 과거를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한 권의 장편이라고 보기엔 단막극처럼 짧게 이야기의 중간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잠시 엿본 느낌.















여행과 책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면서 다르게 보면 극단에 서 있는 행위 같다. 발로 누비는 동적인 행위가 여행이라면 정적인 행위의 독서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합쳐져야 마땅한, 아니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하나는 반쪽의 모자란 행위가 되어버리는 그런 이상한 관계로 볼 수 있다. 오죽하면 '독만권서 행만리로'라는 말이 있을까. 도시라는 공간의 텍스트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이 독서, 이를 통해 여행이라는 컨텍스트가 탄생한다는 취지로 이해되는 유시민작가의 이야기. 공부라는 정적인 행위에 생명을 부여하려는 듯 필경 못해도 20년 이상을 떠돌고 있는 nomadic scholar 공원국의 유라시아 기행. 2019년 5월 이후 여행이란 걸 해볼 수 없었던 낭비된 지난 3년의 시간. 나는 뭘 이루겠다고 이렇게 살고 있나.
















괴랄하기 짝이 없는 나머지 다섯 권. 란포와 세이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뜩이나 관심이 넘치는 근대문학의 작가들을 더 알게 되어 많은 책을 주문했고 마리오와 오락기의 이야기에서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렸다. 문구점의 필기구보다는 글씨체가 좋았었던 20대까지가 그리워졌으며 장정일이 읽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에서 몇 권의 책을 더 쟁여놓을 생각을 했다. 과거 힘차고 신선하게 느낀 금정연은 이제 불혹의 남편이자 아비가 되어 피곤함에 찌든 것 같아서 안타깝다. 



개발새발 정리하더라도 일단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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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로 신경을 쓰다가 일을 하니 오전에는 그럭저럭 지나갔지만 점심을 넘겨 고객과 통화를 마치니 운동을 다녀오기엔 무리가 있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지난 팬데믹 기간동안 익숙해진 패턴으로 하체와 복근 및 어깨운동을 마치고 나서 잠시 뭘 좀 먹으니 금방 오후 세 시를 찍는다. 원래 여름은 slow한 편이기도 하고 불경기의 초입을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 더더욱 조용한 일상이라서 늘 하던 일을 하고 밀어내는 것 빼고는 달리 급하게 달려들 것은 없다. 그래서인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설렁설렁 아까운 하루를 보내버리고 있다. 딱히 더 열심히 뭔가를 하거나 새로운 걸 시작할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엄청 밀려버린 책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할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한국의 대선과 동유럽의 대리전쟁, 예상은 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힐러리의 낙선이 아쉽게 느껴지는, 성큼 다가온 불경기의 조짐까지 제정신을 갖고 살아내기 어려운 요즘 오히려 말도 생각도 잠시 꺼버리고 속으로 다져보는 연습을 하곤 한다. 끝까지 변치 않는 신념으로 살아내려면 가끔씩 이렇게 쉬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니, 좌충우돌 정신 없이 난리를 치다 문득 돌아보면 자신이 서있는 곳이 엉뚱한 곳이 되어있는 걸 발견하게 될 것 같아서다. 10년을, 아니 평생을 우리 앞에서 함께할 것 같았던 사람들의 우스운 꼬라지들을 보면서 그런 맘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기록을 보니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남긴 것이 6월 16일이었으니 거의 한 달을 겨우 책을 읽고 짧은 후기만 남기면서 지나간 것이다. 이것도 슬럼프를 타는 것인지 예전 초기의 글들을 읽어보면 뭔가 기름끼는 많이 빠진 것 같으면서도 그만큼 심드렁해진 것 같다. 


















열 아홉 권을 세트로 구매하고 나중에 조금씩 나온 몇 권을 더해서 모두 스물 한 권으로 갖고 있었던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경감 시리즈를 시작했다. 모아놓은 홈즈, 뤼팽,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그리고 캐드파엘 시리즈는 이미 예전에 다 끝냈고 구할 수 있는 일본의 고전추리도 되는 대로 구해서 읽은지 오래. 이번에 시작한 이 시리즈도 더 이상 안 나온지 오래라서 남은 걸 다 보면 다시 복습이라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번득이는 추리나 캐릭터의 소설적인 매력은 홈즈 같은 인물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사건과 해결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발로 뛰고 탐문하고 심문하고 사건의 쟁점을 하나씩 펼쳐서 분석하면서 차분히 알아내는 과정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음미하게 되는데 이 나름대로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여 구할 수 있는 대로 하나씩 가져다 보고 있는 셜록 홈즈 이야기. 당연히 코넌 도일의 작품은 아니고 아마도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을 다른 작가들에 의해 파생된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의 이야기. 시대의 고증에도 나름 충실한 것 같고 있음직한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어 읽는 맛이 좋다. 기왕 가상현실이나 평행우주론을 펼치려면 트럼프가 재선된 세상 따위를 믿지 말고 차라리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이 실존했다거나 지금도 베이커가 221B번지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내일이면 도착할 것으로 트래킹 되는 이번의 주문에는 모처럼 장정일 작가의 신작 '신악서총람'이 들어 있다. 먼저 알았더라면 이 책은 사지 않았을 것인데. 짧은 후기에도 남겼거니와 이런 책은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자체가 책을 읽고 남긴 짧은 후기들의 모음인데 그걸 다시 편집해서 책으로 만들어내니 나의 경우엔 시간도 돈도 다 아까웠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독서일기'가 나온 것도 오래전의 일이고 구할 수 없는 책도 있을테니 새롭게 장정일의 비평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유용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좋은 변화를 보여주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정점에 이르지 못한채 시들어버리거나 정점을 지난 후 내리막을 줄창 내딛는 경우도 허다한데 장정일이 정말 간만에 정리한 책의 이야기는 그의 책을 접한 후 10년을 넘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온 세상 부의 90% 이상이 약 10%도 안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있고 나머지 90%의 사람들은 10%의 부의 지분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정규직과 보험, 땅과 집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필연이다. 발전된 부국이자 강국이라는 미국의 현실이고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은 이 새로운 breed의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house-less라고 부르며 커뮤니티를 공고히 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뭔가 여행과 함께 정주하지 않는 삶에 대한 낭만이 느껴지지만 현실은 이들을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공짜로 차를 댈 수 있는 곳으로, seasonal job이 있는 곳으로, 국경 근처로, 물을 찾아, 주차장을 찾아 돌아다니게 만든다. 다쳐도 몸을 고칠 수 없고 노동권도 보장을 받지 못하지만 살기 위해서, 그리고 몸에 밴 습관으로 열심히 일하는 덕분에 아마존을 비롯하여 이런 seasonal 노동력을 원하는 곳에서는 꽤 우대를 받고 법정최하수준의 임금을 위해 빈약한 보호장치와 노령에도 불구하고 하루 열 두 시간 이상의 육체노동을 감수한다. 영화를 보면 뭔가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에서 느껴지는 건 가난의 대물림, 중산층의 붕괴, 가족의 해체와 붕괴, 사실상 대다수에게서 사라진 upward mobility같은 냉혹하고 절망적인 현실 뿐이다. RV여행은 여전히 내 버킷리스트에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낭만의 지방이 싹 빠져나가버린다. 


공원국이란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으나 이번에 보니 그의 책을 읽는 것 처음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작가와 책은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래 지금까지 숱한 부침을 겪고 사라져버린 것들을 빼고라도 깊고 넓은 세계라서. 중국과 티벳으로 몽골로 중앙아시아를 누비면서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궁금하여 몇 권을 더 주문했고 그가 쓴 춘추전국이야기도 언젠가 구해서 읽을 생각이다. 여행기도 자계서도 독서에 대한 책도, 인생 코칭도 넘쳐나지만 최소한 여행에 대한 책들 중에서는 단연코 발군의 수준이 아닌가 생각될 만큼 한번 책을 펼치면 닫기 어려웠던 지난 6월의 기억이 있다. 현대에도 모험가 혹은 탐험가가 있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여행하면서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는데는 역시 술과 음식을 나누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임을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는데 나름 두주불사의 몸이었던 나는 더 늙기 전에, 그러니까 술이 약해지고 음식의 양이 줄기 전에 이런 여행도 해봐야할텐데 하는 막연한 조바심을 갖게 된다. 여전히 술은 어느 정도 마실 수 있지만 마신 후 다음 날 몸이 회복하는 시간이 갈수록 많이 걸리고 종종 잠을 들기 직전부터 잠에서 깨는 시간까지의 기억이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책에서 본 갑작스럽지만 호쾌한 대포지교를 맺을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다. 


 














한번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려고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구해보는 만화 시리즈. 반 정도 가까이 왔고 내용도 이젠 많이 비슷한 구조라서 대충 넘겨볼 때도 있다. 한때 식객이나 맛객을 표방하는 블로그로 유명세를 타던 사람들도 많이 사라져버렸고 YouTube에서는 이런 것보다는 그저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것이 대세가 되어 버렸으니 이런 먹부림계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 한때 방송도 타고 요리와 먹부림 하면 대명사 같이 나오던 '건다운'의 YouTube채널의 초라한 구독자수와 구독횟수를 보니 뭔가 격세지감 같은 것이 몰려온다. 황교익 선생 정도가 남아서 방송도 타곤 하지만 이 분은 이명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쳐 신정국가이자 섭정체제에 다다른 한국에서는 요리보다는 반체제인사에 가깝게 취급되고 있으니. 

















드디어 마지막으로. 지난 한 달간 공원국의 책, 그리고 Nomadland와 함께 단순히 즐거움만 추구한 것이 아닌 책 몇 권을 읽었더랬다. 뭔가 위안이 되는 듯한 산티아고 순례의 고생길 엿보기, 서경식 선생의 기행은 예전에 본 걸 어쩌다 보니 다시 읽었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기차를 타면서 철학을 이야기하는 기발함과 친절한 에세이풍의 글에 취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뭘 해도 심드렁한, 반세기의 삶을 몇 년 앞둔 아저씨의 일상은 특별한 것도, 특별할 것도 없이, 심지어 즐거워야 하는 일도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삶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회사에 와서 일하고 밥을 먹고, 다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서 마무리로 좀 걷고 들어와 두어 시간 노닥거리다 보면 잘 시간이 된다. 이걸 은퇴할 때까지 매일 반복해야 하는데, 이미 15년 정도 (최종학력을 기준으로) 반복하고 나니 남은 15년의 지난함에 속이 콱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은 것들이 아주 bleak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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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추종하는 공화당의 막가파식 행보와 무능하고 분열된 민주당의 원 투 펀치로 이미 방향을 잃기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 거기에 코로나로 인한 중국의 봉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유류비의 급상승, 그리고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시작된 이자율 상향조정으로 인해 나락으로 가버린 주가. 


대부분의 연금이나 기금이 주식시작에 들어있는 미국의 특성상 이는 단지 주식을 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은퇴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 은퇴에 가까운 나이의 사람들, 그리고 성실하게 매달 일정한 금액을 적립해온 사람들까지 난리가 난 상황. 고유가와 이미 조정시기를 한참 놓친 부동산시장, 거기에 물가는 30%가 올라버렸고 이젠 주식은 떡락을 거쳐 Bear마켓으로 진입했다고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대략 일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란 것을 믿을 수가 없을 만큼 난리도 이런 생난리가 없다. 


생활을 건강하게 가져가는 것으로 그간 단련을 잘 해온 덕분에 여러 모로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기에 30%이상 거의 모든 것이 오른 지금 코로나 이전의 생활비로 모든 걸 해결하면서도 더 나은 환경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시작부터 2/4분기 초입까지는 괜찮았으니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상황이 나빠지면 결국 모든 비즈니스가 다시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이미 client들을 통해 이런 저런 소식을 들어보면 중소상공인들은 다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기실 작년에 구제금융의 힘이 남아있을때 바이든 행정부의 Build Back America가 제대로 실현을 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수박들이 일을 망치는 건 매한가지인 듯. 어렵게 다수당을 만들어 준 유권자들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게도 상원의 수박 두 마리가 번번히 개혁의 발목을 잡은 끝에 이미 행정부 2년차로 들어온 지금 급작스러운 경제위기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힘은 거의 다 빠진 것 같다. 11월의 총선에서 압도적인 공화당의 지지세가 거의 확실시되느니만큼 총선 후에는 더더욱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손발을 꽁꽁 묶어두고 이를 다시 2년 후 대선을 위한 포석으로 사용하려는 공화당은 여전히 트럼프 밑에서 헤롱거리고 있고 민주당 또한 급진파가 아니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꼴이니 희망이 없다. 그저 남은 10-15년 열심히 아끼고 투자해서 이 무간지옥인지 나선미궁인지 모를 곳을 떠나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버린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뭔가 서글프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것이 표현이 안 된다. 


판형의 크기나 두께가 딱 옛날 계림사 문고에서 부록으로 받은 셜록 홈즈 모음집의 낱 권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방송작가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 작가가 쓴 수 많은 셜록 홈즈의 팬소설. 최대한 어투와 구성을 원전에 가깝게 해준 덕분에 읽으면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고 약각은 엉성한 추리까지도 전형적인 홈즈의 소설 그대로의 맛이 있다. 작품도 많고 어떤 건 구할 수 없지만 종종 몇 권씩 주문해서 심심할 때다가 하나씩 읽으면 좋겠지 싶다. 브람 스토커를 모방한 살인사건에서의 의외성은 나름 기발했고 완전범죄를 꿈꾸던 사기꾼이 홈즈가 나타났음에도 대담하게 일을 꾸미다가 탈탈 털리는 Yule-Tide 미스테리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이 이 괴짜 아재를 젊은 시절부터 영국에 빠져들게 했을까. 젊을 때 영국으로 와서 일을 하며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늙어서 다시 영국으로 이주를 해버린 그가 보고 느낀 영국의 모든 걸 그의 인생에서 시간차를 두고 변한 모습에 대한 추억까지 함께 읽을 수 있다. 영국이라고 하면 펍, 축구, 홈즈, 여왕, 처칠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 고작인 나에게는 빌 브라이슨처럼 여행을 많이 하고 많이 보고 걷고 들어본 사람의 삶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늘 책 바깥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서재활동을 기준으로 해도 벌써 십 년이 넘도록 그런 점에서 나의 삶은 변한 것이 없다. 그야말로 Mr. Homeostasis와도 같은 이런 건 언제 바뀌려나. 목표에 조금 더 다가갔다고 생각한 그 순간 다시 멀찌감이 골대의 위치가 바뀌어 버리는 듯한 것이 요즘의 일상이라서.
















*서경식 선생의 방황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 내가 한참 그의 책을 구해 읽던 시기에서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재일조선인이라는, 대한민국도 아닌 인공도 아닌,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닌, 어디에도 속한다고 볼 수 없고 '국가'라는 틀 안에 규정되지 못하는 그 모습 그대로 예술과 인문을 이야기한다.

 

*MAUS에서 보여준 작화기법과 스토리텔링은 아픔이나 비극만을 강조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다. 트라우마가 뭔지도 모르고 평생 사로잡혀 살았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모여 세운 국가에서 이것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고 아이러니.


*중남미의 친미극우정권에서 자행된 공안정치는 한국에서 21세기형 검사정치로 진화한 지금의 모습은 또 언제 어떻게 누군가에 의해 회고될까.


두 권의 책 모두 매우 흡족하게, 돈이 전혀 아깝지 않게, 심지어 양질의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대단함이 있다. 헤세의 책에서는 모두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오래된 책이 지금의 상황에 대입해도 될만큼 세련됐다는 점에서도 놀랐고, 독서라는 외로운 행위에 대해 다시 반추해볼 수 있어 좋았다. '이상한 나라의 책 읽기'에선 책에 밑줄을 긋거나 색칠을 하거나 글을 남기는 걸 싫어하던데, 그건 아무래도 헌책으로 먹고 사는 저자의 직업 때문일 것 같다. 정답은 없으나, 아니 정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꾸준히 이런 저런 독서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여전히 찾아다니게 된다. 그 와중에 잘 만나기도 하고 이상한 걸 만나서 15000-20000원을 날리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소설 한 무더기. 그냥 재미로 소소하게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이 머리에 마사지를 받는 기분으로 읽으면서 그대로 그 맛을 음미한 수 많은 이야기들. 심농의 책은 이제 다섯 권째를 읽고 있는데 과거 시리즈를 구해서 읽은 캐드파엘 처럼 일단 완주하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고 있다. 뤼팽, 홈즈, 크리스티, 캐드파엘, 엘러리 퀸 등 언제든 다시 꺼내 읽어도 좋을 시리즈들을 갖고 있다는 건 참으로 근사한 일이다. 요코미조 세이시나 마쓰모토 세이초, 에도가와 란포도 있으니 언젠가는 추리소설만으로도 한 가득 벽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한가한 날, 건성으로 잡무를 처리하면서 이런 날이 늘 그런 것처럼 의욕도 떨어졌기에 운동도 제끼고 앉아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언제 발을 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하루를 허비한 것 같아서 게으르게 보낸 날엔 이 시간 즈음이면 늘 후회를 한다. 운동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6월도 이제 반이 벌써 지나가버렸으니 매년 빨라지는 시간의 흐름, 정확하게는 갈수록 빠르게 느껴지는 aging이 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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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16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ransient님 스톼일~~을 딱 뭐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 페이퍼야말로 님의 스톼일~~ 느낌 멋지게 보여주는 글입니다.

미국의 상황이 그러하군요...이미 어려웠던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더 고단해질까요....잘 버텨오던 사람들도 힘들어지는데

transient-guest 2022-06-17 05:14   좋아요 1 | URL
방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두서없고 난삽하기도 한 제 감정과 감성을 표현이죠 뭐. 늘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 심해지고 있고 양차대전 이후 발전된 국가들에선 큰 전쟁도 없었던 덕분에 체제가 더욱 공고화되었으니 1차대전 이전의 세계의 모습도 있고 2차대전 직전의 분열과 무력함도 보이네요.

책읽기.com글쓰기 2022-06-16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죠...저도 며칠 계속 기준금리인상만
눈빠지게 봤었는데..결국..서평이란 이렇게 써야 하는군요. 또 노력해볼랍니다.^^

transient-guest 2022-06-17 05:16   좋아요 2 | URL
앞으로도 더 인상한다고 하니 한국은 정말 어려워질겁니다. 대책을 마련해도 어려울 지경인데. 글을 잘 쓰는 분들은 정말 많습니다. 저의 경우 서평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읽은 흔적을 제 일상과 함께 남기는 정도입니다. 잘 쓰인 서평이라면 아무래도 긴축/요약을 거쳐 적절한 줄거리의 정리가 곁들여져야 하는 것 같은데 전 자꾸 잊어버리니 어렵네요.

책읽기.com글쓰기 2022-06-17 0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어려운데 서서히 혹은 급격히 더 어려워 지겠군요..책을 읽고 요약을 한다는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자꾸 저는 제 감상대로 흘러가서 독후감이 되어버리는 지경인데 계속 연습해봐야죠^^

transient-guest 2022-06-17 05:57   좋아요 2 | URL
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ㅎㅎ 줄거리는 읽고서 금방 잊어버리는 걸 개선할 방법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