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바쁜 어제와 오늘을 보내면서 어쩌다 보니 오늘은 운동을 아예 빼먹었다. 역시 새벽을 이용하는 것이 (1) 시간의 배분에서, (2) 하루를 멋지게 시작하는 의미로, (3) 바쁜 일상에서, 그리고 (4) 오후가 되면 하기 싫어지거나 할 수 없게되는 경우가 많은 나에겐 최고인데. 아직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나의 새벽운동과 달리기는 그렇게 try하겠다는 각오면 현재진행중.
띄어쓰기를 비롯한 한글맞춤법은 계속 퇴행하는 것 같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맞춤법도 자꾸 바뀌니까 언젠가는 나의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는 옛날에 아주 일찍 한국을 떠난 내 친척어른들의 그것과 같아질 것이다.
그야말로 술과 맛난 안주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트리오가 아니겠는가. 어제 '입고'된 (아무래도 일본어의 영향이 찐하게 느껴지는 이 표현은 사실 서점에나 어울리는 말이지만) 것들 중에서 자투리시간에 읽은 세 권이 다 술과 맛과 멋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별히 술을 가리지는 않지만 몸의 반응만 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와인이 가장 좋다. 어떤 술이든지 많이 마시면 다음 날엔 고통이지만 적절한 수준으로 취할 정도의 양이라면 다음 날이 편한 술은 와인이다. '신의 물방울'이나 '마리아주'에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싼 것이라고 해도 소매가 50-70불대의 와인이고 조금 괜찮다 싶으면 100불, 아니 아예 구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서 여기서 소개된 와인을 마시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 비해 '술 한잔, 인생 한입'이나 '심야식당'의 술과 안주는 아주 현실적이고 언제든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도락의 멋을 보여주니 가끔씩 들어오는 이들을 보면서 힐링을 받게 된다. 특히 어제나 오늘처럼, 아니 요즘처럼 일을 많이 하고, 많이 해야 하고, 많이 하려는, 이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은퇴에 가까워지고픈 시기에는 더더욱.
이 두 권 말고도 '서점'과 '책'을 테마로 한 멋진 녀석들이 네 권이나 더 '입고'됐다. 우선 읽은 이들에서 '서점'과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모아들인, 이제는 꽤나 자리가 잡혀버린 듯한 '이상북스'를 본 후, 2018년에 나온 '이후북스'의 생존분투기와도 같은 이야기를 보니 이런 대조가 또 없다. 필력이라고까지 하기엔 좀 뭐하지만 이야기를 펼치는 솜씨도 '이상북스'의 주인장은 보다 더 원숙한 모습이고 '이후북스'는 아직은 원더걸스의 데뷔시절이나 심지어 'No. 1'으로 뜨기 전, 1집시절의 보아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얘네 (책을 말함)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이고, 고작 어제와 오늘 읽은 책인데도 강하게 남는 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책을 읽을 땐 언제고 느끼는, 책으로 둘러싸인 소박한 공간에 대한 로망과 요망의 흔적이다. 좀 얇은 책장으로, 책을 두 겹으로 꽂이 않고 벽마다 넓게 펼쳐진 높은 책장 가득히 책과 그간 살아온 흔적과도 같은 VHS, DVD, Blue-ray와 CD를 채우고 앉기 편한 자리를 여기저기에 만들어 놓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낮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해가 지면 영화를 감상하고, 달이 뜬 후 밤이 깊어감에 맞춰 딴 술 한 병과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삶을 정리해가는 날을 기다려보다가 그런 날이 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뭔가 정리가 되지 않고 복잡한 마음으로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여기에 꾸준한 단련과 여행이 곁들여질 수 있는 여유의 연금생활자라면 그만큼 늙어버리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그 시간과 함께 다가올 주변과의 이별은 두렵다 못해 지금도 벌써 가슴이 아픈 것이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에도시대로 날아가 버린 것처럼 이 두권을, 순서로 보면 가장 먼저 정리했어야 할, 떠올리게 됐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위의 이야기가 나의 미래에 대한 끼적끼적이었다면 이건 누군가가 살았음직한 평행세계의 과거가 아니겠는가.
일본의 문화에서 어떤 '념'에 대한 개념은 아주 무겁고 깊게 다뤄지는 걸 종종 보는데 이 주술적인 면은 내가 좋아하는 일본문화의 한 부분이다. 짦은 단막극을 모아놓은 두 권의 책은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처럼 '미시마야'의 괴담자리와 함께 평행으로 흐른다. 요즘은 미미여사의 추리소설보다는 시대극이 더 즐겁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사회'는 이미 소설보다 더 복잡하고 난리법석이라서 굳이 '사회파'추리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적기 때문이다.
'Band of Brothers'의 Dick Winters소령의 책에 이어서 Bill Guarnere와 Heffron이 함께 회상하는 Easy중대의 이야기. 같은 시간, 같은 사건, 같은 경험을 이렇게 교차해서 다른 관점에서 보는 건 거의 모든 리서치에 통용되는 방법인데 그런 복잡한 공부가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 'Band of Brothers' 시리즈는 정말 많이 봤지만 정작 지금 읽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은 근 8000여권의 책더미에 깔려 어딘가 숨어버린 탓에 찾지 못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집에 대충 1000권 정도가 있으니 7000권 정도의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전체를 구성하는 piece를 두 권 읽었으니 'Band of Brothers'를 읽는 것으로 전체를 한번 조망하면 좋으련만 책을 다시 찾을 날까지는 어렵겠다. 드라마나 책이 나온지도 어언 시간이 꽤 흘러서 Winters소령도, 이 두 용사도, 심지어는 'Band of Brothers'의 Ambrose작가도 돌아가셨으니 2022년이란 시간만큼 달려온 2000년대, 2010년대를 넘어 2020년대라는 엄청난 distance를 느낀다. 시간의 개념을 넘어 지난 20여년의 시공간을 그대로 그려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다음 20년은, 그 다음은?
다시 현실의 문제로 돌아와서, 기후변화에 따른 대재앙급 시나리오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시장의 변화와 다양한 국제적요소로 인해 갑자기 급등한 정유회사의 주가를 보면서 gasoline이 에너지시장에서 퇴출되는 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해결책이 제기되지만 3D를 넘어 4D, 아니 5D급으로 입체적이고 동시적인 액션이 지구전체의 각성을 통해 취해지지 않으면 어럽겠다는 결론을 내린 바, 생각보다 불투명하고 우울한 미래를 본다.
여담이지만 빌 게이츠는 '지구'적인 문제에, 일론 머스크는 '지구'보다는 바깥의 일에 매진하는 것 같아서 가끔 둘을 비교하면 재밌다.
매일 일정한 양의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미룰 틈이 없는 일상이라고해서 딱히 피곤한 건 없다. 어차피 직업으로서의 일이고 하는 만큼 버는 것이니까 바쁘면 그만큼 더 벌고 더 쌓아가면서 미래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니까. 그저 너무 미래에만 살지는 않고 조금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