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구픽 콤팩트 에세이 4
듀나 지음 / 구픽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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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은사라고 할 수 있는 교수님이 두 분 계시는데 둘 다 역사학과의 교수님들이다. 한 분은 당시에도 연세가 꽤 있었던 정교수로 지금은 은퇴한 것 같고 다른 한 분은 당시 비교적 젊은 편의 강사였는데 프린스턴을 거쳐 스탠포드에서 박사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사로 계시는 것 같다. 이 두 번째 교수님의 강의를 정말 많이 들었었는데 개론부터 문학사도 즐거웠었지만 특히 영화사를 들은 것이 그 방향으로 내 지평을 크게 넓혀준 계기가 되었었다. History of European Cinema개론을 들었고 4학년 무렵엔 세미나를 한 학기 들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덕분에 영화라기 보다는 moving pictures였던 초창기 film부터 차근차근 감상하면서 원래 좋아하던 '영화'라는 걸 진짜 처음부터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성영화나 흑백영화에 대한 재미도 이때 배웠고 헐리웃의 영화나 중국무협의 세상 너머로 넓게 펼쳐진 영화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지금은 컨텐츠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비디오로 구해서 소중하게 보관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꺼내보던 재미가 남다른 시절이었다. OTT시장조차도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streaming의 세상에서 영화를 접하기 시작한 세대는 조금 모를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세상에서도 나 같은 사람은 굳이 물리적인 매체로 영화를 구해서 보관하고 싶어하는데 아마 지금과 많이 다른 시대를 살아온 흔적 같은 그런 것이다. 당시의 물가에서 보면 값이 상당히 비싼 편이었던 비디오테잎에서 DVD로, 거기서 blue ray로, 이젠 4K로 계속 진화하면서 아직도 손에 넣을 수 있는 물리적인 매체가 계속 나오는 건 아직 세상엔 나 같은 이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좋던 시절의 기억이 뭉글뭉글 올라왔는데 덕분에 조금 전에 옆 방에 가득 쌓이 박스들을 뒤지면서 VHS테잎과 DVD를 뒤적거렸다. 버리라는 목소리들이 주변 한 가득이지만 정 안되면 몰래 작은 personal storage를 빌려서라도 일단 보관할 결심을 굳혔다.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홀로 모든 bread earning을 맡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평등'이 뭔지 내가 살아온 세월과 시절을 존중받지 못하는 이런 꼴이라니. 암튼 이건 앞으로도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그리고 하루키처럼 지독하게 모아들이고 열심히 살겠다는 선언이다. 미니멀리즘은 개한테도 주지 말아야 할 문화의 말살정책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인에 의해 주창된 일본스러움 가득한 가치관.


이 책은 단순히 옛날 영화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거나 개발새발 추억담을 늘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읽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어느 정도 비평의 입장에서, 그리고 행간과 배경을 갖고 영화를 대해야 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영화란 것이 linear한 시간의 관점에서 계속 '발전'한다고 볼 수만은 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그저 영화에 대한 소중한 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미 이 책을 읽은 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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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2-17 15: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transient-guest님 전공이 역사...?
암튼 그런 교수님이 계셔서 정말 좋았겠습니다.
더구나 영화사라니!
그러고 보니 저도 오래 전 김홍준 영화감독한테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영화 이론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꿈꾸듯 재밌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transient-guest 2023-02-18 02:54   좋아요 3 | URL
네 정말 좋은 교수님이셨고 지금도 계속 teaching하고 계십니다.
강의마다 short film도 자료로 많이 봤고 가끔 저녁때 따로 강의실을 빌려서 영화를 보곤 했어요. 그리운 시절이네요.ㅎ

yamoo 2023-02-17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그 테잎의 아날로그 감성! 하나씩 사모아서 꺼내보눈 맛..몇번씩 다시보는...귀했던 물건들의 추억~~

transient-guest 2023-02-18 02:54   좋아요 1 | URL
테잎도 디스크도 지금의 스트리밍과는 다른 감성이 있죠. ㅎㅎ

고양이라디오 2023-02-23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좋아하는 저로써는 꼭 보고싶은 책이네요! 여기 소개된 옛날 영화들 찾아볼 수 있는 영화들이겠죠ㅎㅎ?

transient-guest 2023-02-23 11:12   좋아요 1 | URL
아주 오래된 건 유툽에 있다고 하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ㅎㅎ

고양이라디오 2023-02-23 15:56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네요ㅎ 감사합니다^^
 

http://bookple.aladin.co.kr/~r/feed/241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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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소화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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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난리를 치면서 정신 없이 준비를 하긴 했지만 토요일 오전에는 워낙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일정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저런 단도리를 하고 짐을 싣고 나섰을 때만해도 이제 대충 한두 시간은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공항의 long-term parking에 도착하니 건물을 자리가 없어서 막아놨고 밖에 멀리 차를 대고 보니 공항까지는 셔틀은 운행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짐을 챙겨서 한참을 걸어서 모노레일을 탈 수 있었고 이후 약 20분 만에 터미널에 들어갔다. 짐을 부치는 건 미리 준비한 대로 간단히 했고 그나마 시간이 좀 남겠다고 생각하면서 security checkpoint로 갔다.


주말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checkpoint에는 이미 엄청나게 긴 줄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안으로 들어간 시점에는 탑승까지 딱 20분이 남아있었던 것. 어젯밤 말한 jinx가 된 것일까.


비행시간이 길어서 물론 책을 읽는 것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만년'은 작품의 이름이 아닌 소설집의 제목이다. '인간실격'이나 '여학생'같은 유명한 작품은 실려있지 않지만 다자이 오사무가 창조한 오바 요조라는,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희귀한 인간의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모티브로 재해석된 이토 준지의 '인간실격'만화에서 차용된 이야기들을 즐겁게 읽었다. 이 작품집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여러 번 읽었는데 확실히 재독 삼독에는 그 특유의 매력이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21일 21권의 프로젝트가 좀 미진한 대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당분간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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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6 0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행기 무사히 타신것도 드디어 목표 달성하신 것도 모두 축하드려요. 작은 목표도 이루려면 노력이 엄청 필요한데 훌륭하세요.👏👏👏👏👏

transient-guest 2022-09-26 16: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일하면서 하는 건 정말 힘들으더라구요 ㅎ

페넬로페 2022-09-26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1일의 프로젝트, 성공하셔서 넘 축하드려요.
아시죠?
이것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프로젝트예요.
마지막 책이 궁금했는데 만년이군요^^

transient-guest 2022-09-26 16: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은 만년이 되어버렸습니다만 나름 의미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얄라알라 2022-09-26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비행기 타시기까지 마음 많이 졸이셨겠어요
그래도 비행 중에 편안하게 책 읽으셨다니, 또 이렇게 21 out of 21리뷰 올려주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transient-guest 2022-09-26 16: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매일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덕분입니다 ㅎ

yamoo 2022-10-01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한권 프로젝트였나요? 21일 21권...와~~~미션 성공 축하드립니다요!!!
저도 해보고 싶지만, 이제는 이런 프로젝트는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적당히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정신건강에 좋은 듯해서요..ㅎㅎㅎ

transient-guest 2022-10-02 19:18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은퇴하기 전까지는 다시 하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Jinx가 된 것인가
허둥지둥 댔지만 출발 3시간 전에 공항 도착
Longterm parking에 주차하고 보니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지고 모노레일만 운영 중
열심히 걸어서 역에서 타고 터미널 도착
짐은 미리 준비해서 다 부쳤지만 checkpoint 통과에 40분 이상 걸림
결국 일찍 와서 넉넉하게 라운지에서 시간 보내면서 책을 보려던 계획이 꽝이 됨
지금부터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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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3
아베 도모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소화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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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딱 하루, 한 권이 남았다. 그간 일도 그랬고 개인적으로도 매우 바쁜 일이 계속 된 탓에 처음에 생각했던 '의미'있는 책이나 길고 두꺼운 책은 읽지 못했다. 이번 주에 들어서는 더욱 스케줄이 빡빡해진 탓에 결국 cheating과 같이 느껴지는 한림신서의 문고판을 주로 읽는 것으로 하루의 한 권씩을 채워갈 수 밖에 없었다. 


Jinx를 할까봐 좀 무섭지만 일단 내일은 하루 내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한 권을 읽었다는 건 결국 21 out of 21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꽤나 묵직한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집' 또한 그렇다. 


화자는 대학졸업을 앞둔 괜찮은 집안 언저리의 하숙생. 돈이 없어 싸게 들어간 하숙집의 주인남자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이런 저런 파란 끝에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내각조사국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는 조사국의 '수위'이자 방탕하고 거친 사내다. 그런 집안을 꿋꿋히 지키고 있는 안주인은 크리스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술주정과 폭력과 전당포. 도박과 기생질이 반복되는 정신 없는 집구석. 신앙으로 버티는 듯한 인상이지만 화자는 어느 지점에서 안주인의 자기희생에 따른 희열과도 같은 주인남자와의 관계를 본다. 두들겨 맞으면서 묘하게 피어나는 안주인의 황홀경 같은 이상함. 어렵고 어려운 살림과 더 어려운 탕자인 남편과 아이들을 자신의 힘으로 건사하는 희생에 대한 종교적인 열정 같은 것. 순교를 위한 순교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가 조금 두서 없이 진행되고 갑자기 예전의 하숙생을 통해 '고'씨라는 조선인이 하숙생으로 들어온다. 중간에 조선인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내 관점에서는 일본 작가의 '조선론'이 재일조선인의 좌절이 가득한 말에서 튀어나올 뿐이다.


그간 읽은 이 시대의 이야기들 속에서 면면하게 흐르는 대다수 국민들의 가난. 군국주의로 미쳐버린 시대. 입신양명을 떠들지만 실상은 원래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라면 혁명을 꿈꾸거나 군문에 투신하거나 염세주의에 기반한 냉소주의에 빠진 인텔리겐챠의 모습이 보인다. 


짐싸고 자야할 시간. 새벽에 일어나 점검하고 잠시 거처를 떠나게 된다. 좋은 시간일지 뭔지는 모르겠고 그저 일과 잠시 미뤄둘 일상에 대한 부담으로 가득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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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5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제 하루 남으셧군요. 마지막 책은 뭘지 궁금해집니다. ^^

transient-guest 2022-09-26 04:20   좋아요 1 | URL
같은 시리즈에서 골랐어요. 이제 끝났습니다.

yamoo 2022-10-01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일 21일 프로젝트를 한다면 살림문고 11~32권 읽겠습니다..ㅎㅎ
어쨌건 하루 한권이니깐요..ㅎㅎ

transient-guest 2022-10-02 19:20   좋아요 0 | URL
뭐든 매일 하는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뭔가 늘 딴 일이 생기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