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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집 ㅣ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3
아베 도모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소화 / 1999년 6월
평점 :
이제 딱 하루, 한 권이 남았다. 그간 일도 그랬고 개인적으로도 매우 바쁜 일이 계속 된 탓에 처음에 생각했던 '의미'있는 책이나 길고 두꺼운 책은 읽지 못했다. 이번 주에 들어서는 더욱 스케줄이 빡빡해진 탓에 결국 cheating과 같이 느껴지는 한림신서의 문고판을 주로 읽는 것으로 하루의 한 권씩을 채워갈 수 밖에 없었다.
Jinx를 할까봐 좀 무섭지만 일단 내일은 하루 내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한 권을 읽었다는 건 결국 21 out of 21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꽤나 묵직한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집' 또한 그렇다.
화자는 대학졸업을 앞둔 괜찮은 집안 언저리의 하숙생. 돈이 없어 싸게 들어간 하숙집의 주인남자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이런 저런 파란 끝에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내각조사국에서 일한다고 소개하는 조사국의 '수위'이자 방탕하고 거친 사내다. 그런 집안을 꿋꿋히 지키고 있는 안주인은 크리스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술주정과 폭력과 전당포. 도박과 기생질이 반복되는 정신 없는 집구석. 신앙으로 버티는 듯한 인상이지만 화자는 어느 지점에서 안주인의 자기희생에 따른 희열과도 같은 주인남자와의 관계를 본다. 두들겨 맞으면서 묘하게 피어나는 안주인의 황홀경 같은 이상함. 어렵고 어려운 살림과 더 어려운 탕자인 남편과 아이들을 자신의 힘으로 건사하는 희생에 대한 종교적인 열정 같은 것. 순교를 위한 순교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가 조금 두서 없이 진행되고 갑자기 예전의 하숙생을 통해 '고'씨라는 조선인이 하숙생으로 들어온다. 중간에 조선인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내 관점에서는 일본 작가의 '조선론'이 재일조선인의 좌절이 가득한 말에서 튀어나올 뿐이다.
그간 읽은 이 시대의 이야기들 속에서 면면하게 흐르는 대다수 국민들의 가난. 군국주의로 미쳐버린 시대. 입신양명을 떠들지만 실상은 원래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라면 혁명을 꿈꾸거나 군문에 투신하거나 염세주의에 기반한 냉소주의에 빠진 인텔리겐챠의 모습이 보인다.
짐싸고 자야할 시간. 새벽에 일어나 점검하고 잠시 거처를 떠나게 된다. 좋은 시간일지 뭔지는 모르겠고 그저 일과 잠시 미뤄둘 일상에 대한 부담으로 가득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