굥의 당선과 함께 온 인식과 사유의 겨울은 나의 일에도 지장을 주는 듯 매우 조용하기만 한 4월의 두 번째 주간을 맞고 있다. 기다리던 비가 가끔 오기는 하는데 봄의 끝에 오는 거라서 차가 더러워질 그 만큼만 오고 그치고 나서 바람만 심하게 불어 걷거나 뛰기에 나쁜 날씨만 올 뿐 비가 온 날의 싱그러움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새로운 것이 없어도 늘 바쁜 것이 자영업자 11년차의 일상이라서 게으름을 피울 틈은 없다. 조금만 손을 놔버리면 금방 쌓여버리는 잡무를 보면서 잡초를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한가하게 느껴지는, 좀 풀어져버리고 싶은 날이라도 가능하면 뭐라도 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매일 풀을 뽑고 거름을 주고 땅을 파고 다듬는 그런 농부처럼 늘어지는 오후라도 머리를 쓰지 않지만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라도 찾아서 하게 된다. 


잘 모르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재즈와 클래식을 많이 듣게 된다. 젊은 시절의 감성에서 확실히 멀어져가는 듯 어지간한 가요나 팝은 그다지 마음에 남지 못하는 걸 많이 느끼는데 세월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재즈와 클래식은 하지만 워낙 늦게 시작한 탓도 있고 해서 귀가 잘 안 트이는 것이다. 매우 적은 곡을 제외하고는 재즈든 클래식이든 연주자나 작곡가를 구부하지 못하고 곡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것도 어릴 때 귀를 단련하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어릴 때부터 재즈나 클래식을 아주 못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깊이 자주 듣지는 않았기에 역시 지금부터는 한계를 인정하고 즐기는 정도에서 만족하려고 한다. LP판을 구해서 듣는 것도 이미 값이 많이 올라간 지금은 공간과 함께 비용의 면에서 큰 호사라고 생각하기에 CD로 구해서 듣는 정도로도 다행이 아닌가 싶은데 이 책을 보면서, 정말 95% 정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아마존에 들어가 CD를 구했을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은 여전하다. 일일이 찾아보지는 못했고 여유도 없었지만 그 덕분에 마침 오늘은 번스타인의 피아노 컬렉션 (CD 11장), 생상의 Complete Symphonies (CD 3장), 글렌 굴드의 브람스, 그리고 클라라 하스킬의 1953년 리사이틀이 도착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책을 읽을 때에는 재즈나 클래식을 틀어놓을 때가 종종 있는데 독서에 집중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그 분위기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이런 책을 쓰게 될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모아놓은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삶의 다음 단계에서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심정적으로 힘든 하루가 이어지고 있는 4월, 이런 기분을 느끼는 날엔 그렇게 미래를 보면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죽지 않는 이상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잘 쓰인 무협지는 상당히 즐거운 시간을 주는데 한국의 작품들 중에서는 아직은 좌백의 '생사박 (앞서 흑저라고 잘못 쓴)'. '대도오' 그리고 용대운의 '태극문'을 넘는 수준의 작품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양각양' 또한 어느 정도의 재미를 주었지만 딱 기대했던 정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수준의, 그러니까 여러 번 볼 것 같지는 않은 그런 정도의 이야기였다. 어지간한 수준이면 돈이 되던 시절 쓴 작품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냈다고 하니 내가 가늠하는 정도가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건 매우 대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요즘 내 마음이 당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서 무협의 형식을 빌어서라도 통쾌하게 복수를 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능력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현대판 동창이 주도하여 현대판 드레퓌스 사건을 만들어 냈고 이를 발판으로 내시들의 두목이 대권을 잡았으니 소설보다 더 소설같아 그야말로 기가 찰 일이 아니겠는가. 


첫 번째 작품 'The Alienist'에서의 화자가 아닌 다른 등장인물을 화자로 내세운 관점의 변화는 신의 한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주 신선하게 익숙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이미 이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또다시 serial killer의 단서를 우연한 사건에서부터 따라가는데 단순한 serial killer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여성이 마주한 한계와 사회의 강요속에서 빚어진 왜곡된 현실의 비극을 보면서 많은 걸 생각해보게 된다. 현대의 여성이었다면 훨씬 던 많은 선택의 길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이 비극적인 방향으로 인생이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현대의 여성이라서 더욱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건의 발단이 되는 삶으로 들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마도 단순한 serial killer의 악이나 악에 이르는 길이 아닌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음이 꽤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세 번째 작품은 없으니 당분간은 이들의 활약은 여기에서 끝이 났고 나는 작가가 세 번째 작품을 빚기를 기다릴 뿐이다.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을 주문했으나 세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더 많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스라한 환상처럼 남아 있는 68의 혁명과 전후 일본의 젊은 세대로써 유럽에서 공부하고 살아가면서 다양한 작가와 작품 및 시대정신을 접하고 이런 '사유'의 산물 혹은 '사유'를 빚어낼 수 있는 좋은 재료와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을 사물이나 사건, 장소 등의 매개를 통해 적절하게 조화시켜 만든 이런 에세이가 더 많이 보고 싶은 것이다. 아쉽게도 내가 구할 수 있었던 스가 아쓰코의 책은 모두 읽어버렸으니.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내 기억이 금방 바랠테니 그 즈음해서 다시 책을 꺼내 읽으면 되지 않을까? 이건 무슨 치매도 아닌데 책은 여러 번 읽어야만 머리에 남길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라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다독보다는 정독과 숙독으로 오래 깊이 읽어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도, 나 역시 그러한 나이에 들어온지도 이미 오래인데 나만 모르거나 애써 부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춥고 헐벗은 듯한 하루. 멀쩡하게 밥 잘먹고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사는 내가 이런 기분이니 우크라이나, 아니 세상 곳곳의 전쟁과 테러로, 가난으로, 여타의 이유로 진짜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조금은, 아주 조금만이라도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이것이 또 양심의 가책에 의한 스트레스가 되는 때가 있다. 


뭔가 먹먹하고 쓸쓸한 하루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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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에 멈춰버린 나의 시계를 다시 돌리려 한다. 책은 언제나 열심히 읽고 있지만 글을 남길 마음도 없고 뭔가 써보려고 하면 욕만 계속 나오는 탓에 뭔가를 쓰고 싶지 않았다. 달리기도 하고 날도 좋은 (북켈리포니아의 봄은 정말 좋다) 이런 날 사무실에서 일찍 나와서 실로 2년만에 서점에 나와 커피와 함께 마침 난 넓은 탁자를 차지하고 노트북을 켰다. 기억이란 것이 가물가물하니 그간 읽은 것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어렵겠지만 일단 이렇게 뭔가 다시 써보려 한다.


서점에 들어와서 책을 구경하면서 눈에 들어온 건 신간 말고도 새롭게 판본을 만들어 나온 - 그 많은 'Great Gatsby'들 중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 Great Gatsby였다. 책은 그렇게 예쁘지 않고 그저 두껍게 느껴지는 것이 눈에 띈 모양이다. 펼쳐보니 고급스러운 재질의 아주 두꺼운 종이에 코팅을 한 것처럼 인쇄가 된 사실 무척 차갑게 느껴지는 제본이다. 뭔가 Great Gatsby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질감이 확 다가온다. 이유는 모르지만 Great Gatsby는 Catcher in the Rye와 함께 닳고 구겨진, 마치 누군가의 뒷주머니에 들어있었을 듯한 정도록 낡고 손떄가 묻은 모습이 더 어울린다. 


인생의 황혼기를 시작하려는 나이에 보는 Great Gatsby는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일일이 적지도 표현하지도 못할 아련한 기억과 함께 가슴이 팽~ 하는 느낌의 아픔까지 줄 수 있는 소설인데 문제는 내 경우 그런 느낌은 나이를 많이 먹고 나서부터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많은 경우 젊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어린 시절부터 읽고 공감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그런 사람이라서 하루키처럼 글로 먹고 살게 되는 것일까.


서점에 다니지 못한 사이에 나온 책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미 3월까지를 살아버린 개인사업자의 입장에서 게다가 먹고 사는 걸 넘어 은퇴를 준비하느라 붓고 있는 이런 저런 것들까지 하면 늘 주머니가 가벼운 기분이다. 기실 알라딘에서 한번에 수 백불은 쉽게 결제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막상 뭔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땐 늘 지갑이 비어있다. 서점에 온 김에 눈이 가는대로 이런 저런 책을 몇 권 사들고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마스크를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했기에 서점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나오는 것으로 어제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조금 더 자주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구입하려고 한다.


운동을 가려고 일찍 일어난 토요일 새벽. 커피캡슐이 다 떨어진 것을 주중에 사놓지 못해서 차를 한 잔 우려내고 (티백이지만) 다시 정리를 시작해본다.


상당수는 거짓과 억측이 난무하고 함부로 떠들어대면, 즉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기 딱 좋은 주제. 메타적인 주제라서 그런 면도 있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은 초과학적인 UFO와 시공간을 초월한 이동의 원리를 나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저자의 credential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매우 정신과 영성의 관점에서 UFO와 외계문명과의 조우를 말한다. '그림자 정부'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매우 전통적인 음모론 계통의 냄새도 나지만 Qanon처럼 그리고 상당히 많이 퍼져있는 종교 base의 음모론 내지는 종말론과는 다른 설득력이 있다. 직접 본 것은 아니라서 전체적인 내용이 쉽게 와닿지는 않지만 이 책을 처음 읽고 책에 나온 대로 몇 날 집중해본 어느 즈음에 조금 이상한 걸 보기는 했다. (믿거나 말거나) 새벽에 본, 달 옆에 떠 있던 그건 무엇이었을까? 별은 확실히 아니고 인공위성도 아닌, 육안으로 확연히 보이는 빛의 구체가 육안으로 보이는 크기와 위치에 뜬 달 옆에 딱 떠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갖고 있는 폰으로 찍었지만 사진은 꽤 구리게 나와서 뭔지 알 수가 없다. 


약 10세기 경 바그다드의 이븐 팔할란이란 사람이 칼리프의 명령으로 머나먼 불가리아 (당시의 불가리아)의 왕에게 사절로 가는 여정에서 만난 바이킹을 따라 그들의 나라로 가서 겪은 모험의 이야기. 원본은 소실된지 오래라서 이후 다양한 판본으로 전해지는 걸 19세기 무렵부터 조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팩션처럼 만들어진 이야기. 영화 13th Warrior의 원작. 별도로 펭귄북스에서 나온 이븐 팔할한의 여행기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구해놨다. 10세기에는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진, 대모신의 숭배하는 고대의 인류가 현생인류와 공존했다는 추측을 낳은 이야기로 바이킹의 여러 나라들이 웬돌이라는, 감히 name되면 안되는 무서운 존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팔할란이 포함된 13인의 전사들이 이들과 싸워 물리친다는 이야기. 순전히 상상의 산물일 수도 있으나 아랍어의 표현상 추측과 사실을 잘 구분해서 서술했다고 저자는 말하며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는 영화 Rudy와 함께 힘든 시절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영화라서 못해도 13번 이상은 본 것 같다. 극장에서만 2-3번은 본 것으로 기억하니까. 









3월 10일 이후 읽은 나머지 책들. '채링크로스'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여러 번 읽었고 책이 잘 안 잡힐 때 가끔 꺼내어 보는 책이다. '사라진 서울'은 그다시 감흥이 없었던 것이 내가 서울사람도 아니고 서울에 대한 추억도 없으며 굳이 말하면 나라의 '암'처럼 느껴지는, 그러니까 서울을 잘 찢어놓아야 균형잡힌 발전과 지속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라서. '침묵의 시대'는 읽을 당시의 감성이 잘 떠오르지 않고 '마션'과 '녹나무'는 그냥 재미로 읽어서 별로 남은 것이 없다. '마션'은 영어로 먼적 읽고 영화를 봤기에 한국어로는 뭔가 밋밋하게 느껴진다. 폴 오스터는 심심하면 뒤적거리는 작가인데 '빵굽는 타자기'는 편하게 읽기 딱 좋다. '고양이'도 좋았지만 '이렇게 책으로'는 별로. '밀라노'는 지금 읽을 때의 그 마음이 잘 떠오르지 않기에 늦게하는 정리의 아쉬움과 문제를 새삼 느낀다.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저자의 두 번째 이야기. 미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경양식이 서양음식의 전부로 알고 있었고 스파게티가 미국음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에겐 매우 추억돋는 이야기. 세기말 끔찍한 콜라텍 화재사건 이전까지 인천의 중심은 대한서림과 전통있는 학교들이 모두 있었던 동인천이었는데 신포동 어디엔게 어머니가 데려가주신 경양식집, 석바위근처 경양식집 등에서 맛있게 먹던 빵, 밥, 채소스프, 비프까스가 생각나서 내내 추억에 젖어 읽었다. 

이곳에 독일계 이민자가 하는 Gunther's라는 식당에서 일본식 '카츠'의 원조인 슈니첼을 먹어봤는데 내 입맛엔 '까스'가 더 맞는 것 같다. 저자도 말하거니와 슈니첼-카츠-까스로 이어지는 현지화에 따라 짜장면과 짬뽕처럼 사실상 한국음식이라고 봐도 무방한 '까스'는 경양식 레스토랑이 유행의 중심에서 벗어난 지금은 돈까스 전문점이 아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뭔가 좀더 lasting하는 문화가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지만 이럴 땐 정말 아쉽다. 


21세기 OECD 국가들 중 유일한 신정국가로 탈바꿈한 한국. 굥과 그를 내세운 건건의 수렴청정의 이 빨리 끝나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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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ll not flag or fail.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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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이는 부고소식이나 듣고 싶다
술처먹고 경찰서에서 깽판치던 사법연수생 주제에
그놈의 여편네도 의사면허 취소 당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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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2-03-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역풍이 불고 있습니다. 현재 분위기 나쁘지 않습니다. 어제 저도 선제 타격 날리고 왔습니다. 홧팅하세요 ^^

transient-guest 2022-03-07 00:48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포탈은 어차피 안 믿고 이런 저런 경로로 나오는 대인뉴스로 계속 보고 있습니다 모두들 끝까지 파이팅입니다
 

벤치마킹을 할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그럴 능력도 뜻도 없었으니 트럼프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전투표가 시작됐고 그 어느 선거보다 사전투표율이 높다고 하는 이번 대선에서 아직도 선거공약서 없는 후보가 있다. 무려 허경영조차 제출한 이것이 없다는 것은 그의 무능함과 무지를 넘어 대통령이 되어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목표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뜻이 없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되어 정적, 기자, 시민, 그리고 장모와 거니의 돈벌이를 더욱 가열차게 돕고 경쟁자들은 모조리 검찰에게 넘겨버리겠다는, 아니 어쩌면 그것도 장모와 거니가 그린 밑그림일 뿐 이자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리가 아닐까. 살면서 그런 사람을 보기도 했고 나 또한 어느 시절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시기가 있기는 하지만 지천명을 넘은 사람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권력을 잡았던 것, 더 큰 권력을 손아귀에 넣는 건 비극이었고 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지도자가 경제를 안다고 국민들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란 그는 오늘도 첫 합동유세에서 명언을 제조하는 것으로 본인의 뇌=우동사리라는 걸 다시 한번 인증했다고. 


준석이나 철수나 석열이나. 이들 중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자. 물론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혹시라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봐. 






















5년간의 고용살이를 마치고 LA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창업을 하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무에서 유로 나아가기 시작하던 그 무렵. 가진 건 없었지만 책값은 모든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기에 나의 독서와 구매가 급증하던 그때 아다치 미츠루를 처음 접했고, 이후 절판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그의 작품을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H2, 미유키, 러프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은 지난 10년간 그렇게 자유롭게 사들인 수많은 명작들과 함께 빛을 볼 언젠가를 기다리면서 점점 더 mancave로 변해가는 내 사무실에 모여있다. 


카츠!는 나온지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구했고 코믹스판으로 나온 덕분에 일단 가격이 괜찮아서 첫 두 권을 먼저 구한 후 바로 남은 것들을 구해 읽었다. 주인공 두 명, 남주와 여주 각각 이름이 카츠키라서 카츠! 또 일본어로 승리를 뜻하는 카츠!에서 복싱만화로서의 카츠! 


아다치 미츠루는 스포츠만화를 많이 그리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슬슬 인생의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드는 아저씨의 눈으로 보면 그저 추억 혹은 추억의 기시감을 주는 고교청춘연애물에 가깝다. 언제나 티격태격하는 남주와 여주, 삼각관계, 사각관계 등 나이가 들어갈수록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십대의 풋풋함 (비록 인공적이거나 요즘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다고 해도)을 유쾌하게 그려준다. 그의 작품속에서 기실 스포츠는 테니스든, 수영이든, 복싱이든, 야구든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매일 한 권씩 나오는 대본소만화는 소장가치가 없지만 잘 그린 만화는 두고두고 꺼내보게 된다. '오르페우스의 창'이나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순정만화의 명작도 사들여야 하는데 아직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도 다 구하지 못해서 일단 미뤄두고 있다. 아~ 이 절판과 품절의 공포라니. 그러고 보니 황미나 작품도 (비록 좀 표절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어릴 때 즐겨본 기억이 있다. 















'고양이'를 먼저 읽었어야 순서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완벽한 수면의 통제와 조정으로 꿈의 세계를 개척해서 의식 깊은 곳으로 가려는 연구. 

가끔은 꿈이 예지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꿈은 전생의 한 자락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의 꿈은 가슴이 시린 연애나 life의 could have been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렇게 꿈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소설을 보면 실제로 시도해보고 싶어진다. 


처음엔 좀 집중을 못해서 조금 읽다가 던져놓고 3년 정도 지난 지금 갑자기 다시 펼쳐서 금방 읽어버렸다. 만년작가지망생인 주인공이 여친에게 버림받고 각성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모티브를 얻기 위해 수퍼마켓에 취직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기를 띄기 시작한 창작. 프랭크라는 이상한 직원과 친해지고 Mia라는 매력적인 여성과 연애도 하고. 


그러다가 엄청난 반전을 맞고, 그 반전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채 2부로 넘어가 다른 의미로 가상과 현실을 섞어 스토리가 이어진다. flow는 좋은데 뭔가 Fight Club과 Legion같은 소설이 떠오르는 모티브. 



사회학자 노명우가 낸 서점. 배움을 실천하는 삶이랄까, 책을 더 읽게하고픈 마음도 있고, 정작 사회에 들어가지 않고 살던 사회학자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모습이기도 하고, 또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보이기도 하는 진짜 이야기. 작은 서점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건 여전히 책을 많이 팔아서가 아닌 책을 팔면서 모자란 건 다른 일로 보탤 수 있어서. 연예인이 책방을 하면 그나마 나은 듯, 심지어 건물을 사서 서점을 열고 개발에 맞춰 7억의 시세차익을 남긴 이도 있으니까. 유행처럼 작은 서점들이 열렸고 유행이 지나가면서 망한 곳이 태반이라고 하는데 책만 팔아서 유지할 수 있는 서점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는 주인장의 의지의 깊은 곳에는 사람들이 책을 더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강한 것 같다. 실제로 접해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 서비스업이고, 그 성격이 강한 서점의 일도 그래서인지 꽤 이상한 인간들이 특히 초기에 많이 드나들었던 듯 몇 개의 에피소드에서 읽는 내가 '미친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서점은 책을 팔아야 한다는 점에서 적자를 면하는 것도 어렵게 생각되는 버거운 꿈이다. 


유명한 에세이스트 치고는 번역되어 들어온 작품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두 권을 읽었으니 이제 남은 두 권을 마저 읽으면 끝이다. 책과 사람, 이탈리아의 추억이 아련한, 뭔가 과거로의 꿈을 꾸는 듯한 쓰가 아스코의 문체가 좋아서 우연히 어디선가 보고 읽은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서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작가. 어린 시절의 독서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여행도 필요한 것 같고, 배움도 있어야 하고, 게다가 단련되 빠질 수 없고, 무엇보다 벌어먹어야 하니 삶은 고될 수 밖에 없다. 주로 이탈리아와 일본의 책과 작가들이거나 그렇지 않다해도 나한테는 생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면을 과감하게 넘어가면서 사방 가득한 향기속에 몸을 맡기는 듯한 독서.


단편의 아쉬움을 날려준 장편. SF의 불모지에서 국산 SF가 이런 높은 수준과 창의성을 주었다는 수사는 차치하고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박수를 치게 된다. 나노연구실에서 유출된 무언가로 세상이 멸망 직전까지 갔다가 재건된 후 어떤 특이한 식물의 현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진실. 작가의 성별이 작품의 우수성을 좌우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texture이랄까 테마랄까 분명히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 남성이 절대다수였던 이 세계에서 몇 안되는 과거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확실히 달랐던 것도 기억하고 김초엽 작가의 approach와 구성도 익숙한 majority와 차별되는 감성이 분명히 보인다. 올리비아 버틀러도 그랬고 아직은 너무도 부족하지만 더 많은 좋은 작가들이 나와서 균형을 잡아주었으면 한다. 작품을 읽는 즐거움도 그렇지만 그 관점이나 방향의 신선함과 특이함은 아직은 너무도 rare한 것 같다.


어느새 주말의 운동시간이 다가왔다. 비온 뒤 추운 아침이지만 나가야만 한다. 즐겁고 건강한 지천명을 맞기 위해서. 내 머리와 정신줄을 위해서. 요즘 연신 어퍼컷을 날리면서 출렁출렁한 배때기를 까는 어떤 놈의 배처럼 튀어나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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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22-03-0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윤석열만이 문제가 아니라 저런 수준의 인물이 유력한 대선후보라는 게 문제인듯합니다.
걸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고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그 위험성을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거르지 못하는 상태라는 게 한심하게 합니다. 대선에 누구라도 출마할 수 있죠. 그러나 저런 인물이 유력한 인물이 될 수 있는 원인과 이유들을 우리가 놓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언론, 검찰,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이 드러나는 걸 보고 있음에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 현실에 분통이 터지네요.

transient-guest 2022-03-07 10:42   좋아요 1 | URL
트럼프가 경선에서 이기고 대통령 까지 됐고 임기도 다 채운 걸 본 후엔 저도 일종의 검증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뭘 해도 법원 검찰 재벌 언론 정치 카르텔이 부정과 부패로 권력과 재물을 만드는 구조라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가히 혁명적인 수준의 개혁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일단 선거 무사히 마치고 하나씩 해나가야 하는데 지난 번 조국 선생 때처럼 사람들이 호도되지 말있으면 좋겠고 개각 때 사람 잘 보고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워낙 흠 없는 이들을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인사는 너무 아쉽습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