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ㅣ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1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운동 외에는 딱히 취미라고 할 것도 없고 담배나 약(?)을 하지 않는 나에겐 어쩌면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을 풀어주는 건 술 밖에 없다고 말하겠다. 그래서 그랬나 30대 중반까지는 거의 격일로 뭔가를 마셔댄 것 같다. 혼술을 주로 했기에 그리고 소주는 혼자서는 안 마시는 술이라서 맥주를 많이 마시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와인을 더 자주 마신 것 같다. 40대의 후반에 온 지금은 가급적이면 소주든 맥주든 안 마시려고 하고 주로 와인이나 니혼슈, 가끔은 수정방 같은 중국술을 먹곤 한다.
지난 주간에는 술자리가 많았던 것에 더해서 주말의 혼술까지 세 차례의 술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쉬어가는 의미로 돌아오는 월요일의 송년회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금단증상이 올 것만 같이 조금씩 괴로워지고 있는데 하필이면 읽은 책이 와인에 대한 책이다.
12.3 내란 전에 알라딘에서 결제한 두 건의 주문이 무려 2주를 넘겨 도착했다. DHL이라서 빨리 왔어야 하는데 주문에 들어있었던 몇 권이 계속 locate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모든 건 굥거니 탓이다.
늦게 배송된 책들을 정리하고 읽기 편한 것들부터 하나씩 보다가 목이 컬컬하여 술 대신 술에 대한 책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생각을 했음이 분명한 이 선택으로 엊그제부터 일하는 틈틈히 조금씩 읽었다.
좋은 입문서도 많고 교과서수준으로 방대하고 깊은 정보로 가득한 와인책은 많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런 책에서 다루는 유수의 와인들은 보통 평생 살면서 한번 마셔볼까 싶은 수준의 매우 교과서적인 것들이 많다. 하물려 '신의 물방울'에서 보통 나오는 와인은 매우 고가의 빈티지들이고 가끔 서민적인 가격이라고 나오는 것들조차 내 기억에 100불대가 대부분이었으니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뤄지는 와인들의 경우 지식수준에서 나열되는 유수빈티지와 지역이 아닌 이상은 모두 저자가 직접 마셔본 와인들이다. 즉, 가격면에서 보통의 우리가 접근해볼 만한 수준이라는 것. 실제로 책을 보면서 나온 와인들을 찾아보면 미국의 기준으로 제일 싼건 13-15불대가 있고 보통은 4-50불대, 거기서 힘을 좀더 쓰면 몇 개의 100-300불대 와인이었으니 와인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리고 좀더 심도있게 접근해보고 싶은 보통의 earning을 가진 보통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와인시장이라는 것이 워낙 넓고 깊은 것이라서 여기라고 모든 와인이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었지만 몇 개는 wine.com을 통해 찾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은 것이 화근(?)이 되어 예정에도 없었던 와인 여섯 병을 세금포함 $190에 주문해버리는 짓을 했다. 사실 중가형 한 병이고 나머지는 다 저렴이라서 평소였으면 구하지 않았을 와인인데 호기심에 주문했다. 매일 비슷한 걸 마시는데 좀 색다른 맛을 보고 싶기도 했으니 저자의 말처럼 매회 다른 와인을 마시는 것을 기본으로 삼되 정말 좋았던 와인만 몇 병 더 구하는 방식으로 넓혀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Ridge Vinyards Monte Bello의 위상이 대단했음이다. 9월에 미국을 방문한 지인을 위해 tour를 하다가 덜컥 연 $500이상의 와인을 사야 하는 membership을 질렀는데 여기가 그 유명한 tasting 경연의 와인이었다니. 그것도 76년에 5위를 하고 30년 후 76년 빈티지를 그대로 가져다가 다시 겨룬 자리에서는 1위를 했다고 하니 갑자기 membership을 산 내가 자랑스러워지려고 한다.
market에 늘 나오는 와인도 즐겁지만 이렇게 지역적으로 특색있는 와인들의 상당수가 market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끔 충동적으로 구매한 지역 winery의 와인에 즐거울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건 또다른 수확이다.
술이 고파서 말이 횡설수설 떠들어 봤는데 일단 와인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와인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를 갖고 와인을 마시면서 조금씩 더 깊은 공부로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