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이라는 말은 political correctness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나쁜 표현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함부로 부르는 표현이 되며 적어도 요즘에는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무기한 목숨을 건' 단식을 선언했다. 단식을 시작하기 하루 전날 그는 영양제를 맞았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분들께는 너무도 죄송하지만 '병신'이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교활하고 또 교활한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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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란 말을 한다. 경험상 너무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 40을 넘기면서 사회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그간의 경험과 지금의 삶이 주는 여유 혹은 다른 것이 합쳐져 자신의 생각을 나름 자신있게 피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종종 발생하는 바, 이야기의 대상이 누구인지, 그가 어떤 상태인지 등등 나와는 다른 타자에 대한 공감이 상실되는 것이다.  


내가 이 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히 젊은 시절의 시간이 그립고, 그때 했더라면 좋았을 것들이 있다. 


여행을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입자에서 아무리 돈이 없고 이런 저런 여유가 없더라도 짬을 내서 젊은 시절에 여행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내가 볼 때 그런 것이고 그 당시의 나는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을 일이다.


그걸 인정하는 것이 꼰대가 되지 않는 시작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내가 여행은 좋다라고 한다.


젊은이가 부럽다고, 자기는 더 준비가 되고 여유가 되면 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다시 그래도 젊을 때 여행을 하라고 한다.


젊은이는 다시 그걸 알지만 지금은 실행할 수 없는 상황임을 설명한다.


나는 다시 그건 알겠지만 그래도 젊을 때 여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꼰대의식은 이 무한반복을 탄생시키는 요인이며 이 순환은 결국 젊은이가 '당신이 옳습니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그냥 답을 포기하는 지점에서 끝날 수 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포기하고 먼저 끝내고, 무엇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의 나이에서 보는 젊은 시절의 아쉼움에 기인하지 않고, 젊은이의 그 나이에 맞는 지점에서의 관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 정도는 어른의 나이에서 보는 걸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만. 


책을 많이 읽고, 온갖 경구를 인용하는 것도, 대단한 성공의 경험도, 나이도 소용이 없다.  '넌 모르고 난 알아'의 자세로는 될 것이 없다.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다.


내 밑의 하수도 끝이 없고 고수는 더욱 많다. 늘 그런 자세로 산다.  도움이 될 말은 하되 한번이면 족하다. 


조국장관을 지지하고 조국장관의 개인사와 호불호를 떠나 검찰이 자신을 격하는 상대는 직속상관인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도 격하는 대한민국 70년의 역사를 고칠 때가 됐다.  입진보의 수준도 안되는 의식과 책의 짜집기로 자신의 fairness를 가장하는 저열한 꼰대는 참기 힘들다.


홍콩과 함께 하고 싶다. 80년대에 나온 소설에서 이미 지금의 미래를 그렸다는 예강의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다.  홍콩 출신의 친구에게 오늘 위로의 문자를 보냈다.  We are Hong 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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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 아시안영화의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Shaw Brothers의 무협영화시절도 좋았고 Golden Harvest사의 영화들도 좋았고 무엇보다 8-90년대를 풍미한 홍콩느와르는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고룡 같은 명배우들의 열연과 세기말, 중국본토로의 반환을 앞둔 혼란과 절망을 반영했고 오우삼감독에 의해 성공적으로 현대 홍콩으로 이식된 고전무협의 강호를 배경으로 많은 멋진 이야기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영화치고 '명화'라고 할 만한 것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돈을 쳐바른 프로파간다만 있을 뿐이다. 온갖 드라마와 영화가 양산되어 가히 춘추전국시대라고 할까, 영화산업혁명이라고 할까, 엄청난 양의 중국발 프로그램이 게시판을 채워가고 있으나 음으로 양으로 중국정부의 입김을 벗어난, 아니 벗어나기는 커녕 중립유지도 못하는 정부편향의 엔터테인먼트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무협영화든 무엇이든 그래서 난 이제 중국영화를 안 본다. 가장 마지막으로 본 '일대종사'와 '엽문'시리즈를 끝으로.  


그 시절의 훌륭한 영화들은 다행이 DVD를 광적으로 수집하던 시절 많이 모아놓았다. 


 























































정말이지 국민학생시절부터 십대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멋진 따거들과 강호의 기인협사들의 애정과 복수, 의리, 배신의 이야기는 지금 봐도 가슴을 뛰게 한다.  이런 위대한 시절을 지나고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정권의 프로파간다로써의 역할 외엔 별다른 것이 없는 중국의 영화판에선 그 시절, 공산중국에서 자유의 등대 같았던 홍콩의 멋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We are Hong Kong!  홍콩의 시민들을 지지합니다.  세계뉴스에서 잘 다뤄주지 않는 현 시위상황과 경찰과 군대, 그리고 삼합회의 무차별 체포, 여성혐오와 성희롱, 그리고 계속 나오는 희생자들.  5.18이 생각날 수 밖에 없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오늘 밤엔 박스를 뒤져서 그 시절의 멋진 영화를 몇 편 집에 가져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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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 PB 건은 그야말로 언론과 검찰이 어떻게 연합해서 각을 맞춰 사건을 만들어내고 키우는지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싶다. 개백수의 법조팀장이 취재를 유도해서 김PB를 끌어냈고 이후 바로 검찰로 불려들어간 김PB는 자신이 말한 것들이 그대로 검찰에 올라가 있는 걸 보았다고 하니.  


유시민작가의 방송에서 이 단독인터뷰가 나가자마자 부르르 떨면서 변명을 하는 개백수나 검찰을 보니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진다.  잘은 몰라도 법조팀장과 검찰의 누군가와는 안면이 있거나 공생관계를 떠나서 어쩌면 학연 같은 것으로 연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 황당한 건, 유시민작가와 김PB가 나눈 대화의 녹취록 전문이 그대로 검찰에 떡하니 가 있었다는 것. 이걸 유출한 것이 거의 확실해보이는 건 김PB의 변호인. 아니라도 부인해도 어쩌랴 자기 아니면 유시민작가 밖에 이걸 유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건 김PB의 변호인의 정체.  아마도 김PB가 개인적으로 사건을 맡긴 변호사가 아닌 회사의 변호사로써 사건에 관여하면서 이 연장선상에서 김PB의 변호인으로 들어가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 


한투는 검찰과 이런 저런 일로 얽혀 있고 건드리면 나올 사건이 꽤 될 듯. 그러니 한투를 변호하는 것과 김PB를 변호하는 건 이해충돌의 소지가 120%는 될 것 같다.  


한국의 변호인법이나 사법체계가 개판이라서 이런 '이해충돌'의 개념에 상당히 무지하고 또 무식하게 접근하는 건 다 알고 있다. 일단 돈문제라서 그런지 '이해충돌'로 인한 사건수임취하를 원하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주로는 대형로펌에서 마구잡이로 수임을 하는 과정에서 무시되는 개념으로 본다.


예를 들어 굴지의 로펌 KNK라는 집단이 있다고 하자. 이들은 이미 여러 차례 대립관계에 있는 회사들 각각의 편에서 변호인단을 꾸려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누가 봐도 이해충돌인 이런 걸 피해가는 꼼수가 기가 막힌다.  KNK라는 집단의 경우 엄연히 로펌이고 하나의 회사고 Founding 파트너, 시니어 파트너, 주니어 파트너, 그 밑으로 내려가는 시니어 변호사, 주니어 변호사 등의 하부구조까지 완벽한 하나의 몸뚱이를 갖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법적으로는 일종의 합동법률사무소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각 변호사가, 혹은 몇 개의 묶음이 별도의 회사로 되어 있는 걸로 안다. 즉 '법'적으로는 '남남'인 명목상의 한 지붕 여러 가족이라서 KNK 브랜드 내의 변호사들이 각각 편을 갈라 X vs. Y의 민사소송을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뻔한 꼼수를 몰라서 문제를 안 삼는게 아니라는 것.  원래 이건 세금을 덜 내려고 하는 짓인데 이렇게 업자로 따로 나누면 내가 알기론 상당한 법인의 payroll tax와 관계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말이 길어졌는데 한국에선 변호사-고객간의 비밀엄수나 '이해충돌'에 따른 문제가 아주 가볍게 패씽되는게 아닌가 하는 말이다.  


여기에 숟가락을 얹은 최경영기자는 덩달아 똥볼을 차버렸다는...특히 페북으로 다시 정리한 요점 1의 '그들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고 4의 자기는 기자로서 이해하나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 내는 것도 일리가 있다는 취지의 말은 지금 시점에선 특히 불필요한 듯.


암튼 뭔가 엄청 시끄럽다. 검찰-언론-자유당의 삼각 쿠데타로 한국은 정신이 없고 미국은 트럼프 덕분에 2017년부터 지금까지 내내 개판이다.  아~ 20년이 다 되어가는 희망찬 21세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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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7년이 더 지난 이야기. 당시 여름학기과정을 한국에서 듣고 인턴쉽을 하는 (이 건은 당시 프로그램을 관장하던 모씨가 다 망쳐버렸는데 이건 또 다른 이야기) 과정을 하고 있었다. 매일 들어야 했던 강의는 담당교수인 모씨 (같은 사람)가 일부 맡고 나머지는 섭외된 외부의 법조인사들이 세 시간씩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달리 명강의라고 할 것도 없고 대다수는 지겹게 원고를 읽거나 Q&A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과정을 한 덕분에 조국장관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유일하게 멋진 강의와 질의시간까지 꼼곰하게 잘 진행된 시간이었고 당시 아마도 40대였을 장관은 모든 여학생들의 눈에서 하트뿅뿅을 시전하게 만들었더랬다.  당시만 해도 꽤 민감한 국가보안법의 적법성에 대한 질문에 단호히 폐지되어야 하는, 내가 기억하기론 헌법에 위배되는 법이란 그의 답변이 기억난다. 서울대학교 교수라면 잃을 것도 많고 아직 올라갈 곳도 많은 자리가 아닌가 하면서 참 강단있고 멋진 사람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당시 좀 알고 지내던 검사들하고 조국장관에게 받은 내 감상을 이야기했을때의 반응은 대부분 '별로' 또는 '재수없다'는 정도였다.  뚜렷한 이유는 없고 주로 '사시패쓰'안한, 혹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냥' 이런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당시엔 뭐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더 잘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이만큼 흐르고 그들도 나도 조국장관도 17년의 삶을 더 살고 나서, 유례가 없는 검찰의 억지스러운 강공을 보면서 조국장관에 대한 검사들 전반의 질투와 시기를 넘는 그 무엇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였구나 싶다. 


예전부터 싫었을 것이다. 공부도 자기들보다 잘하고, 집안도 좋고, 인물도 좋고 키도 크고, 학문적인 성과도 대단하고 (SJD는 법학박사에 해당하는 학위로써 흔 법학박사로 오역되는 JD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어려운 과정이다), 거기에 삶도 일관적이었으니 얼마나 싫었을까. 그나마 학계에 남아있었으니 별다른 충돌이 없었겠지만 사시출신들, 그것도 판검사들에게는 안경환교수 (그의 과거이력은 논외로 치더라도)와 함께 꽤나 미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실 안경환교수가 그렇게 과거의 안좋은 일로 날아가서 그렇지 그 또한 아마 본격적인 검증대상이었더라면 조국장관이 받고 있는 수준 이상의 공격을 받아야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억측과 의혹, 검찰과 언론과 자유당이 짬짜미로 쏟아낸 모든 것들을 봐도 어떤 행위에 대한 법리해석 또는 범죄여부가 아닌 사실관계자체가 아직 명확한 것이 없고 이 모든 것들에 조국장관이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준의 관여를 했다는 정황조차 없다. 


그들의 잣대로 그들 자신부터 한번 파보았으면 좋겟다.  아마 90%이상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고 변호사등록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고로 난 조국장관을 변함없이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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