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과 무엇이 다른지 아직은 모르는 2021년의 1월도 마지막 주간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나이가 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서 새삼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자만, 문득 돌아보면 시간의 흐름이란 것에 대하여 미처 어떤 생각을 form할 겨를도 없이 날짜가 지난 것을 알게 된다. 2021년의 365일 중에서 25일이 그렇게 지났고 2주 후에는 Super Bowl과 함께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난 NFL의 한 시즌이 끝난다. 매달 일을 하고 일을 만들고 earning을 만들어가며 한 달의 살림을 꾸리느라 분주하게 살다가 보면 한 달씩 시간이 흐르고 3월이면 또다시 한 해의 1/4이 지나감을 이야기하다가 고개를 들면 6월이 되어 한 해의 반이 지나감을 이야기하는 것을 repeat하게 될 것이다.
여건이 될 때마다 조금씩 구해서 읽으면서 106인가 107권까지 나온 걸 모아들이고 있다. 이제 24권까지 봤으니 이야기속의 세계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경제대국이고 미국을 집어삼킬 것처럼 기세등등한 부국이다. 그 대단하던 시절의 사람들이 지금의 일본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은 G7 국가들 중에서 가장 아날로그한 감성(?)을 자랑하는 일본을 보면 technology 대국을 과시하던 8-90년대의 일본을 떠올릴 수가 없다. '맛의 달인' 시리즈는 꽤나 화제의 만화였었는데 블로그 시절의 맛객들이나 달인들이 많이 언급하면서 '극단'으로의 맛의 추구를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시절 잘 나가던 전문가들은 뭘 하고 있을지. 음식은 그저 맛있고 배를 채워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이런 극단적인 추구는 별로 와닿지 않지만 지식차원에서 소소하게 배울 것도 있고, 버블시절의 일본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의 가치도 없지 않기에 계속 읽어나갈 것이다.
이 작품을 접한 건 한창 일본의 망가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던 초창기, 한국책은 미국에서 구하기 매우 어렵던 터에 코믹스 만화를 그렇게 영어로 읽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감성과 기억이 새록새록 한글로 다시 묻어나오는 재미와 함께, 뭔가 용두사미로 끝난 듯한 스토리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대기권에서 머무르면서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는 주인공의 설정이 매우 특이했고 언젠가 날아다니는 우주쓰레기가 우주여행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미 꽉찬 그 공간을 엘론 머스크의 인터넷 인공위성들이 에워쌀 것이니 인류의 지구탈출은 그 시작부터 쓰레기라는 물리적인 제약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나긴 여정의 세 번째 권까지 다 읽어놓은 상태. 네 번째부터는 속도가 나지 않아서 잠시 다른 책들과 섞어서 아주 조금씩 읽고 있지만 시리즈를 다 합치면 대략 천만자가 넘는다는 이 Wheel of Time 이라는 대서사시는 분명 언젠가 다 끝내기는 할 것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의 문제는 권마다의 전개나 구성이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어 자칫하면 덜 재미있는 권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명석하게도 분명히 한 명의 주인공이지만 그의 주위를 여럿의 주인공 격의 주변인물을 배치하고 중간 중간 주인공과 연결되기도 하고 독립적이기도 한 각각의 모험을 따로 그리면서 권말에 가면 모든 것이 합쳐지는 형태로 만들어낸다. 사실 LOTR 시리즈도 그랬고 많은 장편 시리즈에서 사용되는 방법인 듯, 이 시리즈에 국한된 특별한 형태는 아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여성과 남성 마법사를 따로 구분짓고 남성이 마법을 시전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된 사회라는 설정에서 시작하면서 여성캐릭터의 권력과 차별화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통상 판타지에서 요정이나 주인공의 애인 정도로 misuse되는 여성캐릭터의 이야기를 스토리의 중요한 축으로 사용하는 것이 좀더 현대적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5/1까지 왔지만 앞으로의 긴 여정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들이 겪는 모험과 마법의 세계, 그리고 각각의 성장하는 모습이 궁금하다.
양자물리학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라고 한다. 매우 쉽게 풀어썼을, 그러나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간신히 하나 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상태라는 것이 그 상태를 관찰하는 행위 혹은 행위의 부재에 따라 바뀐다고 하는 것, 그리고 원자인지 분자인지 아무튼 아주 작은 것의 단위에서는 그것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하여 흔히 거론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왜 살았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는지, 즉 양자상태로 존재 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아니 믿는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알라딘 US를 차려서 경영하다 정리하고 은퇴한 이형렬 대표의 팟케스트에서 그가 읽은 과학책이 약 2000여권이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나름 야심차게 '나도 그래야지'하고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한 것이 2012-2013이었는데, 지금까지도 나의 자연과학상식은 별볼일이 없고 그렇게 많이 모아들인 책들 중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숫자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권이 채 못될 것이니 나이를 덜 먹은 탓인지, 은퇴를 하지 않은 탓인지...
머리가 자꾸 나빠지는 것 같아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자꾸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아서, 계속 뭔가 배우고는 싶어서, 그리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자극을 받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읽은 책. 너무나도 유명한 선생의 책이지만 기실 내용은 별 것이 없다. 책이 쓰인 대상은 내가 잘못 파악한 듯, 내 나이대의 사람보다는 더 젊은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였고 저자의 다른 책들, 구체적으로 나이나 인생의 시기를 명시한 책을 보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부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걱정하고, 요즘 사람은 이러네 저러네 하면서 라떼를 홀짝거리는 짓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늘 머릿속에 새겨두고 산다.
이 나이엔 젊은 사람들과 만나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말은 무척 지혜로운 격언과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보면서는 입도 열고 지갑은 독자가 열게 만든 것 같아서 좀 그랬다. 워낙 유명한 분이고 자신의 관리에 철저하고, 실제로 자기가 늘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로 사는 실천의 당당함은 있되 그걸 너무 부각시키면 '나는 이렇게 한다. 너도 이렇게 해라'로 옳은 이야기라도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니 나이를 먹을수록, '성공'을 한다면 할수록 말은 적게 하는 편이 낫겠지 싶다.
'시계관의 살인'은 그저 그랬는데 사실 무척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본겨추리를 표방하면서도 '추리'설정이 빈약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본 것 같은데, 일단 저자의 스타일을 좀 지루하게 본 것 같고, 살인동기나 목적도 그저 그랬던 것 같다. 결론 또한 내 기준에서는 그냥 흐지부지. '어나더'는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이건 또 꽤나 대단한 물건이었다는. 교묘하게 추리의 요소와 호러소설 + 학원물을 섞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착시를 유도하는데 결말로 가면 오! 정말 그랬단 말인가 하는 감탄이 나온다. 이래 저래 어린 시절 못했던 것이 추리소설이나 만화책을 읽는 것인데 이 나이가 되도록 보상심리로 이런 책들을 사들여 읽고 모으고 있으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약간의 vice는 허락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내 경험에서 느끼는 '양육'에 대한 소신아닌 소신이다. 가끔은 어른의 능력을 광적으로 게임소프트와 만화나 판타지/추리물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위에 그렇게 써놓고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하필이면 '창룡전'이다. 이것도 시리즈가 좀 진부하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을 좋아하기에 느낀 초기의 열광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아르슬란 전기'도 해적판으로 나온 구판을 보다 말았는데 신판은 좀더 잘 되어 있으려나 궁금하다.
사해용왕의 환생인 4형제는 이제 중국에 가서도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일본이 막강한 버블경제를 발판으로 세계를 정복할 듯 기세등등하던 시절의 후진국스러운 중국의 모습이 새삼 우습다. 더 황당한 건 지방정부수준으로 가면 아마 지금도 80년대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치에 밉보이면 세계 최고의 부호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강제수용소에서 대대적인 민족말살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 세계최강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모습이라니. 중국문화와 음식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1월의 긴 페이퍼가 정리됐다. 읽은 것이 너무 빈약해서 80까지 총 만 권을 읽을 수 있을지. 이제 그 1/10을 마친 것이 2017-2020인데 요즘 나의 모습을 보면서 가능하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80까지 못 산다면 어차피 꽝이니까 사실 제대로 매번의 목표치를 한다고 해도 불가항력으로 못 이룰 수도 있는 독서인생마감의 목표인데. 책읽기, 여행, 글쓰기, 몸쓰기, 외국어, 이런 것들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다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