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과 무엇이 다른지 아직은 모르는 2021년의 1월도 마지막 주간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나이가 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서 새삼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자만, 문득 돌아보면 시간의 흐름이란 것에 대하여 미처 어떤 생각을 form할 겨를도 없이 날짜가 지난 것을 알게 된다. 2021년의 365일 중에서 25일이 그렇게 지났고 2주 후에는 Super Bowl과 함께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난 NFL의 한 시즌이 끝난다. 매달 일을 하고 일을 만들고 earning을 만들어가며 한 달의 살림을 꾸리느라 분주하게 살다가 보면 한 달씩 시간이 흐르고 3월이면 또다시 한 해의 1/4이 지나감을 이야기하다가 고개를 들면 6월이 되어 한 해의 반이 지나감을 이야기하는 것을 repeat하게 될 것이다.


여건이 될 때마다 조금씩 구해서 읽으면서 106인가 107권까지 나온 걸 모아들이고 있다. 이제 24권까지 봤으니 이야기속의 세계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경제대국이고 미국을 집어삼킬 것처럼 기세등등한 부국이다. 그 대단하던 시절의 사람들이 지금의 일본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은 G7 국가들 중에서 가장 아날로그한 감성(?)을 자랑하는 일본을 보면 technology 대국을 과시하던 8-90년대의 일본을 떠올릴 수가 없다. '맛의 달인' 시리즈는 꽤나 화제의 만화였었는데 블로그 시절의 맛객들이나 달인들이 많이 언급하면서 '극단'으로의 맛의 추구를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시절 잘 나가던 전문가들은 뭘 하고 있을지. 음식은 그저 맛있고 배를 채워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이런 극단적인 추구는 별로 와닿지 않지만 지식차원에서 소소하게 배울 것도 있고, 버블시절의 일본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의 가치도 없지 않기에 계속 읽어나갈 것이다. 


이 작품을 접한 건 한창 일본의 망가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던 초창기, 한국책은 미국에서 구하기 매우 어렵던 터에 코믹스 만화를 그렇게 영어로 읽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감성과 기억이 새록새록 한글로 다시 묻어나오는 재미와 함께, 뭔가 용두사미로 끝난 듯한 스토리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대기권에서 머무르면서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는 주인공의 설정이 매우 특이했고 언젠가 날아다니는 우주쓰레기가 우주여행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미 꽉찬 그 공간을 엘론 머스크의 인터넷 인공위성들이 에워쌀 것이니 인류의 지구탈출은 그 시작부터 쓰레기라는 물리적인 제약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나긴 여정의 세 번째 권까지 다 읽어놓은 상태. 네 번째부터는 속도가 나지 않아서 잠시 다른 책들과 섞어서 아주 조금씩 읽고 있지만 시리즈를 다 합치면 대략 천만자가 넘는다는 이 Wheel of Time 이라는 대서사시는 분명 언젠가 다 끝내기는 할 것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의 문제는 권마다의 전개나 구성이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어 자칫하면 덜 재미있는 권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명석하게도 분명히 한 명의 주인공이지만 그의 주위를 여럿의 주인공 격의 주변인물을 배치하고 중간 중간 주인공과 연결되기도 하고 독립적이기도 한 각각의 모험을 따로 그리면서 권말에 가면 모든 것이 합쳐지는 형태로 만들어낸다. 사실 LOTR 시리즈도 그랬고 많은 장편 시리즈에서 사용되는 방법인 듯, 이 시리즈에 국한된 특별한 형태는 아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여성과 남성 마법사를 따로 구분짓고 남성이 마법을 시전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된 사회라는 설정에서 시작하면서 여성캐릭터의 권력과 차별화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통상 판타지에서 요정이나 주인공의 애인 정도로 misuse되는 여성캐릭터의 이야기를 스토리의 중요한 축으로 사용하는 것이 좀더 현대적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5/1까지 왔지만 앞으로의 긴 여정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들이 겪는 모험과 마법의 세계, 그리고 각각의 성장하는 모습이 궁금하다.


양자물리학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라고 한다. 매우 쉽게 풀어썼을, 그러나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간신히 하나 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상태라는 것이 그 상태를 관찰하는 행위 혹은 행위의 부재에 따라 바뀐다고 하는 것, 그리고 원자인지 분자인지 아무튼 아주 작은 것의 단위에서는 그것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하여 흔히 거론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왜 살았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는지, 즉 양자상태로 존재 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아니 믿는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알라딘 US를 차려서 경영하다 정리하고 은퇴한 이형렬 대표의 팟케스트에서 그가 읽은 과학책이 약 2000여권이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나름 야심차게 '나도 그래야지'하고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한 것이 2012-2013이었는데, 지금까지도 나의 자연과학상식은 별볼일이 없고 그렇게 많이 모아들인 책들 중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숫자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권이 채 못될 것이니 나이를 덜 먹은 탓인지, 은퇴를 하지 않은 탓인지...


머리가 자꾸 나빠지는 것 같아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자꾸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아서, 계속 뭔가 배우고는 싶어서, 그리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자극을 받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읽은 책. 너무나도 유명한 선생의 책이지만 기실 내용은 별 것이 없다. 책이 쓰인 대상은 내가 잘못 파악한 듯, 내 나이대의 사람보다는 더 젊은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였고 저자의 다른 책들, 구체적으로 나이나 인생의 시기를 명시한 책을 보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부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걱정하고, 요즘 사람은 이러네 저러네 하면서 라떼를 홀짝거리는 짓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늘 머릿속에 새겨두고 산다. 


이 나이엔 젊은 사람들과 만나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말은 무척 지혜로운 격언과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보면서는 입도 열고 지갑은 독자가 열게 만든 것 같아서 좀 그랬다. 워낙 유명한 분이고 자신의 관리에 철저하고, 실제로 자기가 늘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로 사는 실천의 당당함은 있되 그걸 너무 부각시키면 '나는 이렇게 한다. 너도 이렇게 해라'로 옳은 이야기라도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니 나이를 먹을수록, '성공'을 한다면 할수록 말은 적게 하는 편이 낫겠지 싶다.


'시계관의 살인'은 그저 그랬는데 사실 무척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본겨추리를 표방하면서도 '추리'설정이 빈약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본 것 같은데, 일단 저자의 스타일을 좀 지루하게 본 것 같고, 살인동기나 목적도 그저 그랬던 것 같다. 결론 또한 내 기준에서는 그냥 흐지부지. '어나더'는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이건 또 꽤나 대단한 물건이었다는. 교묘하게 추리의 요소와 호러소설 + 학원물을 섞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착시를 유도하는데 결말로 가면 오! 정말 그랬단 말인가 하는 감탄이 나온다. 이래 저래 어린 시절 못했던 것이 추리소설이나 만화책을 읽는 것인데 이 나이가 되도록 보상심리로 이런 책들을 사들여 읽고 모으고 있으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약간의 vice는 허락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내 경험에서 느끼는 '양육'에 대한 소신아닌 소신이다. 가끔은 어른의 능력을 광적으로 게임소프트와 만화나 판타지/추리물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위에 그렇게 써놓고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하필이면 '창룡전'이다. 이것도 시리즈가 좀 진부하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을 좋아하기에 느낀 초기의 열광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아르슬란 전기'도 해적판으로 나온 구판을 보다 말았는데 신판은 좀더 잘 되어 있으려나 궁금하다. 


사해용왕의 환생인 4형제는 이제 중국에 가서도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일본이 막강한 버블경제를 발판으로 세계를 정복할 듯 기세등등하던 시절의 후진국스러운 중국의 모습이 새삼 우습다. 더 황당한 건 지방정부수준으로 가면 아마 지금도 80년대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치에 밉보이면 세계 최고의 부호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강제수용소에서 대대적인 민족말살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 세계최강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모습이라니. 중국문화와 음식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1월의 긴 페이퍼가 정리됐다. 읽은 것이 너무 빈약해서 80까지 총 만 권을 읽을 수 있을지. 이제 그 1/10을 마친 것이 2017-2020인데 요즘 나의 모습을 보면서 가능하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80까지 못 산다면 어차피 꽝이니까 사실 제대로 매번의 목표치를 한다고 해도 불가항력으로 못 이룰 수도 있는 독서인생마감의 목표인데. 책읽기, 여행, 글쓰기, 몸쓰기, 외국어, 이런 것들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다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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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3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7-2020까지 천권을 읽으셨다는 말이죠.... 우와 우와 대단하세요. 저도 계속 분빌하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transient-guest 2021-01-30 13: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냥 좋아서 그리고 뭔가 목표가 없이 사는 것이 싫어서 그나마 큰 돈 들이지 않는 목표로 삼았어요 ㅎ 건강히 잘 지내세요

얄라알라 2021-01-30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엄청나게 읽으셨네요^^ 2020년과 2021년 1월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하신 말씀, 공감이예요. 동선도 최소화, 만나는 사람도 최소화, 오로지 책으로만 다양성을 충족하는 이 삶이 1년 째네요.....코로나 제발 빠이!

transient-guest 2021-01-31 01:22   좋아요 0 | URL
뭐 그냥 열심히 읽었어요. 그렇게 목표치를 정하고 나니까 여러 모로 자극도 되고 좋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2021년에도 계속 될 것 같아요. 변종이 자꾸 나오는데 전염력도 발병률도 높아지는 것 같아서 힘드네요. 제발 좀 끝났으면 좋겠어요.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일이 결국 다 무산되어 한 가지 확실해진 건 앞으로 다시는 누군가를 돕는 의미가 포함된 recruitment을 통한 비자/hiring을 하지 않겠다는 것, 나아가서 정규직으로 누군가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결심이다. 


원래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함께 일한다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했기에 적절한 조건과 상황이 맞지 않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적은 보수로 사람을 부려먹지는 않겠다고 늘 다짐했던 나는 이런 저런 걸 다 맞춰 내 최선을 다해 support한 일이지고 사실 그가 deserve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투자를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 지인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습과 태도, 및 삶의 자세, 그리고 work performance를 보인 끝에 내 참을성을 다 소진시켜가다가 제풀에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먹튀를 해버린 것. 사람이 각각 사정과 관점이 다를 것이라서 자신도 할 말이 있겠지만 어쨌든 들락날락 거리면서 업무와 회사운영에 방해만 된 이번 건에서 배운 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며, 사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불운한 수재란 건 소설이고 대부분 수재든, 천재든 그가 '불운'에 이른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 말이다. 


어쨌든 연민을 기초로 나의 필요에 맞춰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고 최대한 긍정적이든 부정적은 의미로든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미리 어떤 이미지를 덧씌워 그를 평가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다. 특히 이렇게 costly한 실수는.


근육운동을 했고 달리기도 했고 걷기도 했다. 새해의 첫 운동을 그렇게 원하는 걸 다 했으니 좋은 시작이라고 본다. 


모든 걸 다시 좋은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그간 상황을 탓하면서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지만) 의욕을 갖지 못하고 겨우 겨우 일을 처리하면서 따라가는 상황을 타개할 것이다. 1월 한 달만 제대로 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날씨가 여전히 춥기 때문에 그리고 새벽은 많이 어둡기에 1월은 새벽에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면 빨리 회사에 나와서 오전에는 진지한 업무를 수행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한 근육운동 후, 다시 신경을 덜 쓰는 행정업무나 서류정리에 시간을 쓴 후 오후 늦게 달리기/걷기를 수행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계산해보면 딱 1월 한 달만 제대로 해도 그간 밀린 업무는 다 날려버리고 보다 더 productive한 것들을 찾아서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2021년에는 시험공부도, 스페인어도 시작하고 싶고 일도 더 열심히 하고 싶다. 몸관리도 더 철저히 해서 좋은 상태를 만들고 더 멋진 내가 되었으면 한다. 


목표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나라는 인간이라서 이렇게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면 어느새 모든 걸 놓아버리고 둥둥 떠가는 인생이 될 것이다. 


2021년이 더 힘들지 더 나은 한 해가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는 자세와 각오로 새롭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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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4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1-13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새로운 직원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었는데 공감가네요. 잊어버리시고 마음의 평안 얻으시길^^

transient-guest 2021-01-14 06:11   좋아요 0 | URL
네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나가는 것 같다. 여전히 말을 안 듣는 사람이 더 많고 한국이나 여기나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라서 내년의 전망도 썩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돈을 버는 건 주식시장과 과열된 주택경기가 전부이고 소상공인을 넘어 중소기업들의 경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모두 그럭저럭 버텨낸 한 해에서 하룻밤을 자고나면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이 2021년이 시작된다. 


백 권이 넘게 나와있으니 다 모아서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읽으면서 내내 느끼는 건 집요한 맛의 추구가 아닌 만화에서 보이는 일본의 마지막 호시절이다. 세계정복에 나선 냥 모든 걸 사들이던 그 때 마치 일본이 미국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던 그 직전의 거품속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감탄스러운 건 없고 그저 극상의 맛을 추구하면서 도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은 돈지랄 같아 보인다. 만화의 유명세나 상징성도 그렇고 요리의 세계와 자세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건 맞지만 나에겐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료로 남을 것 같다.


80년의 평화와 함께 공고히 자리잡은 현 체제속에서는 이미 타고난 천운을 거스를 수 있게 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 어려운 집에서 태어났다면 공부를 잘해야 대기업취업이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고작이고 그나마도 좋은 학교일수록 부잣집 아이들이 들어갈 확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기회의 균등, 결과의 자유라는 자본주의의 법칙은 이제 먹힐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떻게 말해도 균등할 수 없는 기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내가 가진 모든 요소에서 좋은 것들 중 상당한 부분은 그저 운의 작용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4년 후 트럼프 2.0을 경고하는 이 책을 보면서 미국의 자부심이자 민주주의의 큰 지지세력이었던 블루컬러 중산층의 붕괴를 생각해보니 오바마 2기가 될 수도 있는 바이든의 4년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진다. 80년의 평화를 끝으로 체제변혁을 수반할 거대한 시대의 힘이 다가오는 건 아닌지. 무력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낳은 히틀러의 시대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서 일자리는 늘어나기 보다는 줄어들 것이니 강한 중앙정부의 통제와 법으로 기업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결국 트럼프 2.0의 시대가 올 수도 있음이다. 4년 내내 불안에 떨며 이런 저런 살아갈 궁리를 해야할 것 같다. 지금으로 보면 바이든은 오바마가 한 걸 반복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인생회고록과도 같은 William Shirer의 20세기 3부작을 다 읽은 건 금년의 독서에서 큰 수확이라고 본다. '제3제국의 흥망'이 유일하게 한국에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저자는 유럽특파원으로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들의 한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고 많은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겪은 바, 특히 트럼프의 대두와 4년의 폭정에서 트럼프 2.0과 파시즘의 새로운 대두를 걱정하는 지금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이 외에도 굵직한 인물들에 대한 증언도 흥미로웠으니 비극을 잉태한 20-30년대의 유럽은 그것과는 별개로 무척 exciting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지겹고 숨막히는 중서부에서 태어났지만 좋은 교육과 독서, 그리고 훌륭한 견문을 바탕으로 마지막까지 progressive한 견해로 일관한 그의 삶에서 배울 것이 많다. 


심심할 때 조금씩 읽은 두 권도 꽤 즐거웠는데 아쉬운 건 밴 다인의 전작으로 기획된 책이 두 권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The Quiet Don의 경우 60-70년대의 미국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즐거운 르포였는데 영화 아이리시맨을 보고 책을 읽고나서 넘어온 것이 무척 오래 붙잡고 있었기에 연말이 다 되어갈 무렵 끝낼 수 있었다. 










멋지고 엄청나게 긴 판타지의 첫 권을 읽은 것도 이번 연말에 이룬 성과(?)가 아닌가 싶다. 하나씩 구해놓은 hardcover로 그렇게 읽어갈 것이다. 대략 만 페이지 정도에 1400만자 정도라고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듯. 첫 권이 나온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작으로 꼽히는 서사시.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사람을 잘 쓰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한 금년의 경험에서 볼 때 아마 우리 회사는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더 이상의 확장은 없이 돌아갈 것 같다. 사람에 기대하고 사람에 실망하면서 사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내 생활과 삶에 그리고 업무에 너무 안좋은 영향을 끼친 탓에 여전히 자책하면서 화도 내면서 삭이고 있다. 15년의 방황과 자존감, 그리고 이미지 세우기의 끝에 그 자신의 껍데기만 남은 듯한 녀석의 모습에서 씁쓸함과 연민을 함께 느낀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갈래마다 이때의 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가버렸고 나는 한 살을 더 먹었으며 또다른 한 해의 바퀴를 굴려가야 한다. 산다는 건 즐거운 일도 있고 이렇고 저렇고 하지만 가끔 생각하면 너무도 지난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2020년이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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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2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4 0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해간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자연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건 노화를 늦추거나 조금 더 천천히 변해가는 것, 딱 그 정도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70대가 마라톤을 달리거나 3대 500을 칠 수 있다고 해서 20-30대가 될 수 없고, 요가, 운동, 좋은 식습관, 심지어 보톡스까지 해서 육체나이와 외모를 젊게 가져가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그 나이대의 젊음이지 이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꿈꾸고 살아가고 견딜 수 있는 힘이 그 시간의 흐름, 기승전결이 있는 사이클 덕분이라니. 


최근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두 권을 모두 읽고 나서. 무엇인가 정리하려는 듯한, 의도했든 아니든, 그런 글이 나오는 것 같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세상을 둘러보고 느끼면서 새로운 걸 이야기하는 시기는 옛날에 지나가버렸고, 그 지나간 시점에서 다시 10년이 넘게 흘렀으니까. 여전히 달리고 수영하고 건강하게 규칙적인 글쓰기를 할 것으로 추정되는, 어쩌면 보기 드문 꾸준함으로는 이미 노벨상을 탔어야 할것만 같은 그 또한 그 이전의 모든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peak가 있었고 이젠 노년이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저 건강히 오래 살아서 계속 단편이든, 개작이든, 장편이든 글을 쓰고 책을 내주었으면 한다. 2012년 그의 전작을 하고 그가 사는 삶의 담백함에 빠져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나 또한 꾸준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그의 책을 통해 좀더 클래식과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책을 통해 맺어진 좋은 인연이 아니겠는가. 어쩌다 보니 그의 첫 작품과 가장 최근에 나온 소설집을 한 시기에 보게 되어 더더욱 좋은 비교가 되었다.



동시대의 두 작가를 나란히 놓고 책을 보았다. 두 작가의 유명한 작품도 몇 권 읽었고 영화나 에세이를 통해 이 둘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익히 알고 있었기에. '헤밍웨이'의 작품과 인생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행에서는 글쓴이 자신의 지식과 교양이 뒷받침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런 면에서는 너무도 실망하여 이 기획 전체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더 읽고 사들이는 것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었다. 


어떤 작가나 대상에 대한 글을 쓰려면 최소한 그 작가나 대상에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야 한다. 지식전달 혹은 자계서수준의 책이야 간단한 리서치를 적당히 버무려 나오는 걸 많이 봤고 조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피츠제럴드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최소한 그와 그의 작품을 평소에도 읽어왔어야 한다는 것. 더구나 문학상 수상이력까지 있는 소설가가 이 기획에 참여하고 나서야 피츠제럴드를 읽었다는 것, 그런 사람이 이 기획에 참여했고 하필이면 피츠제럴드를 맡았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몇 군데에서 보이는 shallow함도 더더욱 맘에 들지 않았다. 천주교성당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와 '예배'라는 표현을 버젓이 쓰더니 다른 곳에 가서는 멀쩡하게 다시 성당으로 번역하고, 그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Firestone도서관에 가서는 'firestone이 부싯돌이니 도서관의 책을 부싯돌 삼아서 공부하라는 뜻에서 이름을 그리 지었나보다'라는 괴랄함이라니. 한국도 요즘은 전주의 이름을 따서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미국은 옛날부터 많이 그래왔고 무엇보다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무래도 동양의 문화가 아닌가 싶은데. 문득 의심이 들어 정말이지 5초만에 구글링을 해서 찾은 결과 도서관의 이름은 Harvey S. Firestone Memorial Library였으니 그 유명한 Firestone Tire의 창업주 되시겠고 더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전주였거나 뭔가 기여한 바가 컸던 바, memorial이 들어갔으니 아마 기념도서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쓰는 사람이 그 정도의 조사도 없이 부싯돌 어쩌고를 주절거리면서 그걸 책에 써놓았으니. 당시의 느낌을 회화화 했다면 최소한 주석이라도 달아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 권씩 모으려던 계획이 조금 보류되고 있는데 미술이나 철할 등 내가 모르는 분야의 작가들을 다루는 책이라면 이런 오류가 있어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라서, 그리고 다른 작가애 대해서도 그런 정도의 책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에.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두 권인 듯, 책의 디자인과 폰트가 거의 같다. 책디자인과 폰트를 비롯한 다양한 것들은 시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변해왔기에 가끔 이렇게 완전히 예전의, 지금이라면 좀처럼 볼 수 없는 디자인에서 시각적인 즐거움과 질감을 느끼는 것도 책읽기에서 가끔 얻는 기쁨이다. 영미권하고는 많이 다른 느낌의 두 이야기들은 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뭔가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고정된 일상에서 행복을 찾다가 우연한 걔기로 방황하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비둘기)과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역시 시작부터 균일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내는 모습 (제로 전투기)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연달아 읽게 되었으니 기막힌 운명의 타이밍? 이 두 권 모두 비슷한 2012-2013년 언젠가 사들여 지금까지 보관해오다가 읽었다는 건 이들 두 권이 내가 꾸민 책세상속에서는 뭔가 강력한 운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아직 남은 여섯 권 정도는 지금 읽고 있는 Shirer의 20세기 3부작의 마지막을 끝내면 다시 정리해볼까 한다.


그간 해온 근육운동이 빛을 발하는 듯 어제 산을 6마일 탄 몸이지만 알이 배긴 곳이 없다. 뭐든 꾸준히 하는 건 근사한 것 같다. 다만 이런 저런 것들을 섞어주어야 덜 지겹고 부상도 예방하고 몸의 곳곳을 사용할 수 있다.


70의 내가 여전히 서재에 글을 쓰고 있다면 나도 하루키처럼 과거를 회상하면서 잡다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하다못해 아직 오지 않은 오십대나 육십대조차도 먼 과거의 일이 되어있을테니까. 언제나 내가 가장 젊은 건 오늘이라는 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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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07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전 지금 4권 읽었는데 저자에 따라서 약간씩 퀄리티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특별히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엇는데 피츠제럴드 읽을 때는 님의 글이 도움이 될 거 같네요.

transient-guest 2020-12-08 02:07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이다혜 기자의 ‘코넌 도일‘로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참신한 계획이고 내용도 좋아서 시리즈를 모을 생각을 했는데 이번 피츠제럴드에서 고민하게 됐네요. 책을 못 썼다기 보다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 약간은 무성의함, 무엇보다 저자가 피츠제럴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많이 실망했어요.

다락방 2020-12-07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좋아해서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고 그래서 당연히 신간도 사서 읽고 있는데, 단편 앞에 두 편을 읽고는 이게 뭔가...싶어지고 있어요. 저는 하루키 소설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ㅠㅠ

transient-guest 2020-12-08 02:36   좋아요 0 | URL
저는 하루키에게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어서 그저 그의 작품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작가가 많이 늙었다는 세월의 무상함 내지는 뭔가 뭉클함 같은 감정이었어요. 언젠가 이 사람이 쓴 새로운 글을 읽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콕 찝어서 말하긴 어려운데 읽는 내내 작가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봤어요.ㅎ

다락방 2020-12-08 08:28   좋아요 1 | URL
저도 그건 자연스레 느끼게 되더라고요. 아, 하루키 이제 늙었구나, 하는거요. 어디에서 그렇게 느끼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었어요.

transient-guest 2020-12-08 09:41   좋아요 0 | URL
그쵸? 역시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을만큼 자연스럽게 모든 곳에 베어있었나봐요. 읽는 내내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맘이 아프기도 하고, 세월의 무상함 같은 걸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얄라알라 2020-12-07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가 계속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어요 책 좋아하시는 분들과 이렇게 대화나누는 행복이^^

transient-guest 2020-12-08 02: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계속 이어지겠죠??ㅎ
 

역대급으로 가장 우울했던, 최소한 내 경험의 한도 내에서는 그럴 추수감사절과 연말이 오는 어귀에서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답답함에 어제 서점에도 가봤지만 더 이상 서점 내에서 머무르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늘 가장 길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약 20분 정도로 짧을 수 밖에 없다. 보통 이맘 때 같으면 카드나 선물을 사는 사람들과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주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연말의 설레임을 그 어디보다도 잘 느낄 수 있었을 공간이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거의 literally 회색과 음울한 blue의 색이 서점 내부를 감싼 듯 묵직하고 숨이 막히는 그곳에서는 책 한 권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할 만큼 답답함만이 가득했으니 코로나로 인해 트럼프가 낙선한 것 말고는 정말이지 살면서 겪어본 최악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책을 정리하려고 컴을 켰으나 고작 이 말만 나올 뿐, 메모해둔 글을 찾기도 싫어지는 일요일의 오후. 기대하고 사들여 읽은 책이 그 책이 속한 기획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불러일으킨 것도 기분이 나쁜 일이고 저자선정이 잘못됐다는 생각 외에도 상당 부분은 저자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것도 모두 나를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려면 적어도 문학에 대한 것이라면 최소한 그 누군가에게 늘 관심을 두고 있었던 사람이면서 보다 더 해박한 지식과 부지런한 리서치를 수행할 수준의 사람은 되어야 한다. 


김중혁 작가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면인 바, 그가 고전문학을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별히 읽을 생각이 없으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굳이 이들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여러 번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요즘의 작가들 일군에서 심심히 않게 발견이 되고 있는 현상으로 느낄 만큼 종종 기반지식이 약한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과도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개발새발 써놓고 originality만 줄창 강조한다는 건데, 문제는 이런 작가들에게는 지식의 부재와 함께 게으름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수치를 제시할 만큼 정확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읽는 현대의 한국작가들의 글에서 그런 냄새를 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건 그만큼 글쓰기 자체가 가벼워졌고, 저열한 글쓰기가 양산되는 환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지식전달목적의 글을 쓰는 이가 특정분야에 대해 원래 아는 것이 전무하고 배경지식도 약하며, 철저한 조사 또한 수행하지 않고 대충 글을 쓴다면 그건 좋은 지식전달의 매개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소설을 비롯한 사회인문분야에서 글을 쓰는 이들의 무지와 게으름은 독창성이란 말로 퉁치는 것이 용납되는 걸까? 작가가 아닌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 생각하면 대충 300권, 많이 잡아도 500권 정도면 흔히 말하는 고전에 속하는 대표적인 책 혹은 작가들의 책을 상당한 수준으로 접할 수 있다. 이후 관심과 필요에 따라 특정한 작가나 시대 혹은 장르로 세분화하여 보다 깊고 넓은 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문학의 재미를 늦게 느낀 나는 무척 아쉽게 생각하는 바, 이런 300-500권 정도의 고전은 중고생때 좀 빠르면 국민학생시절부터 읽기 시작해서 아무리 늦어도 대학교시절이면 거의 다 볼 수 있고, 이때의 독서는 머리가 아주 fresh할 때의 힘으로 평생의 기억속에서 남은 생을 살면서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는 좋은 reference이자 지의 자양분이 된다. 


적어도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테크닉을 비롯한 기초공부가 없이 막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피카소나 칸딘스키의 그림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고루한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너무 이상한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 읽었겠지만 보편적인 기초지식이 없을 수준이라면 그 사람이 쓴 소설을 읽을 이유가 없다. 


불만이 가득한 겨울. 이렇게 쓰니 존 스타인벡이 떠오른다. 내 기분과 비슷한 이름의 작품과는 큰 연관성이 없지만 말이다. 


아직도 해가 짱짱한데 갈 곳이 없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연말연시를 넘어 정상화가 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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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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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0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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