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라지면 서재도 사라진다는 취지의 글을 보았다. 그냥 이런 저런 잡담 같이 다른 분의 서재에서 글을 주고 받으면서 책을 읽고 사들이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서재를 만들고 유지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에 나도 동참했는데 어느 맥락에서인지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읽는 즉시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서글픔이 밀려왔다. 생로병사에 대해서야 점점 더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기 때문에 딱히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현재는 없다. 물론 매우 다행스럽게도 큰 병을 앓거나 다른 사고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고 나중엔 바뀔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사람이 살아지는 것으로 인해 서재도 함께 흩어져버린다는 건 막연하게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갑자기 이렇게 많은 책을 사들이고 고생하면서도 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사무실을 멋진 서재공간으로 만들고 즐길 꿈을 꾸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묘하게 오늘도 그 서글픈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요즘도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실 임대아파트처럼 호텔에 장기투숙하면서 사는 건 모르긴 해도 한 두어 세대는 전의 모습일 것 같다. LA에 위치한 리슐리외 호텔이라는 가상의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으로 트릭을 구성했다. 자살로 위장된 살인이 거듭되고 모든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몇 가지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는데 기실 추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들이란 면에서 상당히 훌륭한 엄폐라고 본다. 범인의 정체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늘 눈앞에 있어도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는 이를 훌륭하게 사용했다. 전개는 다소 느린 편인데 확실히 엘러리 퀸을 봐도 그렇고 미국의 추리소설에는 20세기 초 유행했었던 라디오 단막극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반칙을 사용하지 않고 작가가 정정당당하게 걸어온 도전의 훌륭함이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간이 나면 조금씩 읽어가는 것으로 심농의 매그레 경감 시리즈 스물 한 권을 다 읽을 생각이다. 그런 마음으로 잔잔한 드라마 한 편씩을 보는 방식으로 깊은 추리에 대한 고민 없이 이야기의 전개를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다. '센 강의 춤집에서'는 경찰이 주시하던 어떤 사람의 우연한 죽음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심리묘사가 훌륭했다면 '게물랭의 댄서'에서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꼬인 이야기를 따라가야 했다. '댄서'가 경찰이 심어 놓은 세작이었던 것 같다는 기억이 희미하게 남는다.


와칸다처럼 신비롭게 세상에서 감춰져 있는 왕국으로 잠입하게 된 홈즈와 왓슨. 아무리 봐도 홈즈가 감행했을 것이라고 보기엔 컨트롤 할 수 없는 불안요소와 돌발적인 위기요소가 너무 많다. 하지만 고객의 의뢰와 함께 대영제국을 위해, 그리고 홈즈의 형이자 대영제국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실세인 마이크로프트의 부탁과 꼬드김 등의 이유로 사막을 가로질러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다. 추리의 요소보다는 모험소설의 면모가 강한 이번 이야기 또한 Val Andrews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아마존에서는 더 구할 수가 없었는데 우연히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에 위치한 미국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라는 Powells에서 몇 권을 주문할 수 있었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사이트를 남긴다. https://www.powells.com) YouTube에서 보니 엄청나가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독립서점인 것 같다. 서점과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에도 어디엔가 여러 가지 인연이 겹쳐 이렇게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서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갑다. 


일본 근대문학의 유수 작가들의 글에서 계절을 테마로 엮은 책. 서글픔과 쓸쓸함과 함께 신선함, 설레임까지 계절마다 바뀌는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 정경을 묘사한 글을 모았다. 요즘과는 달리 뭔가 문학의 근사함과 낭만이 느껴지는 시대적 특성 때문에 20세기 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같은 시리즈인 '작가의 마감'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갖고 싶고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 늘어나는 건 여전한 일이라서 장바구니를 비울 겨를이 없다.



기묘한 살인사건. 목격자가 있는 듯 없고, 용의자가 있는 듯 하면서도 오리무중 범위를 좁히기 어렵다. 돈이 싹 없어진 걸 보면 분명히 강도상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나 누가 돈을 가져갔는지 왜 죽였는지 알 수가 없는 듯한 시작. 열심히 발로 누비고 탐문하는 경감의 노력을 통해 하나씩 단서를 추적하고 소거해가면서 범위는 좁혀지고 뜻밖의 결말을 보게 된다. 잘 생각해보면 분명히 범인은 너무도 당연히 '그'였을 것이지만 그건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같은 이야기. 그저 너무도 심한 nagging spouse의 인생굴곡 그 이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전 남편, 비전이 없어 보여 자신이 버린 남편이 거부가 되어 나타났고 매일 그 돈을 보면서, 당시엔 더 나아보이던 지금의 남편이 다시 못마땅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매사 타인과 주변의 상황을 탓하면서 인생을 너무 쉽게 사는 듯 불만속에서 살아간다. 과정부터 결말까지 입맛이 쓰다.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혼재하는 듯한 테마는 로저 젤라즈니가 즐겨 쓰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들은 이런 다차원의 교차를 잘 사용한 것으로 기억하니까. 


문득 일생을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기실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아닌, 각각 나름대로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지점에서 만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는 어떤 노인은 내가 미래에 볼 어떤 젊은이의 과거일 수 있고, 나 또한 미래 어떤 이의 과거를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한 권의 장편이라고 보기엔 단막극처럼 짧게 이야기의 중간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잠시 엿본 느낌.















여행과 책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면서 다르게 보면 극단에 서 있는 행위 같다. 발로 누비는 동적인 행위가 여행이라면 정적인 행위의 독서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합쳐져야 마땅한, 아니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하나는 반쪽의 모자란 행위가 되어버리는 그런 이상한 관계로 볼 수 있다. 오죽하면 '독만권서 행만리로'라는 말이 있을까. 도시라는 공간의 텍스트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이 독서, 이를 통해 여행이라는 컨텍스트가 탄생한다는 취지로 이해되는 유시민작가의 이야기. 공부라는 정적인 행위에 생명을 부여하려는 듯 필경 못해도 20년 이상을 떠돌고 있는 nomadic scholar 공원국의 유라시아 기행. 2019년 5월 이후 여행이란 걸 해볼 수 없었던 낭비된 지난 3년의 시간. 나는 뭘 이루겠다고 이렇게 살고 있나.
















괴랄하기 짝이 없는 나머지 다섯 권. 란포와 세이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뜩이나 관심이 넘치는 근대문학의 작가들을 더 알게 되어 많은 책을 주문했고 마리오와 오락기의 이야기에서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렸다. 문구점의 필기구보다는 글씨체가 좋았었던 20대까지가 그리워졌으며 장정일이 읽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에서 몇 권의 책을 더 쟁여놓을 생각을 했다. 과거 힘차고 신선하게 느낀 금정연은 이제 불혹의 남편이자 아비가 되어 피곤함에 찌든 것 같아서 안타깝다. 



개발새발 정리하더라도 일단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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