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는 400편이 넘는 중·단편 소설을 써서 극작가보다는 소설가로서 더 유명하다. 나는 일찍이 그의 단편집 두 권을 읽고 소설 팬이 되었었다. 이번에 읽은 그의 희곡 또한 색다른 맛의 즐거움을 선사하여 희곡 팬도 되어 버렸다.
“세계적으로 널리 공연되는 극작가 체호프의 희곡은 이른바 ‘4대 장막극’이라 불리는 <갈매기>, <바냐 외삼촌>, <세 자매>, <벚나무 동산>으로 국한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공연되고 있을 것이다.”(옮긴이의 말, 771쪽)
앞서 언급한 네 작품 모두 아래의 책에 실려 있다.
안톤 체호프, 「체호프 희곡 전집」
네 작품 중 <갈매기>와 <바냐 외삼촌>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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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 미팅을 하거나 맞선을 본 경험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 하나 있다. 상대가 내 맘에 들면 상대는 나에게 관심이 없고, 상대가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상대는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엇갈리는 현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간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만약 이성을 처음 만날 때마다 서로 좋아하게 된다면, 우리는 다른 이와 연애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처음 만나는 이성과 사랑에 빠져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 또 바람둥이라면 많은 이성과 사귀고 나서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게 된다. 엇갈리는 현상으로 인해 평생의 배우자를 만나기 어려우니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된 절호의 기회가 찾아올 때, 두 남녀는 비로소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지만.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에서도 메드베젠코는 마샤를 사랑하고, 마샤는 트레플료프를 사랑하고, 트레플료프는 니나를 사랑하고, 니나는 트리고린을 사랑한다. 엇갈리기에 사랑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만다.
소설가 트리고린은 남편이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 혼자 사는 아르카지나의 연인이다. 트리고린은 니나와 함께 살다가 니나를 버리고 옛 연인인 아르카지나의 곁으로 돌아온다. 아르카지나는 유명한 여배우로 트레플료프의 어머니다. 말하자면 트레플료프는 니나를 어머니의 연인한테 빼앗긴 셈이다.
다음은 자살을 예감한 듯 트레플료프가 니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대목이다.
트레플료프 : (소총과 죽은 갈매기를 들고 모자를 쓰지 않은 채 들어온다) 당신 혼잔가요?
니나 : 그래요.
이게 뭐예요?
트레플료프 : 오늘 비겁하게 이 갈매기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당신 발치에 놓겠습니다.
니나 : 무슨 일이죠? (갈매기를 들고 들여다본다)
트레플료프 : (사이를 두고) 조간간 나는 이런 식으로 자살할 겁니다.
니나 :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트레플료프 : 그래요. 내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그 이후로 그렇게 됐죠. 나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변했어요. 당신의 눈은 냉랭하고, 내가 있으면 당신은 괴로워합니다.(‘갈매기’, 423~424쪽)
다음은 중견 소설가인 트리고린이 젊은 아가씨인 니나와 말을 주고받는 대목이다.(두 사람 앞에 트레플료프가 죽인 갈매기가 있다.)
니나 : 뭘 적으시나 봐요?
트리고린 : 그래요. 써 넣는 거죠……. 줄거리가 떠올라서요……. (책자를 감추면서) 작은 이야기를 위한 줄거립니다. 한 호숫가 마을에 마치 당신 같은 젊은 아가씨가 어릴 적부터 살고 있어요. 갈매기처럼 호수를 사랑하고, 갈매기처럼 행복하고 자유롭죠. 그런데 우연히 한 사내가 와서 보고는 이유도 없이 그녀를 파멸시킵니다. 마치 이 갈매기처럼 말이죠.(‘갈매기’, 430~431쪽)
트리고린은 니나를 보고 그런 착상이 떠올랐던 것. 신기하게도 트리고린의 말은 현실이 된다. 마치 미래에 대해 예언을 한 듯한, 비극을 암시하는 복선을 깔아 놓은 듯한 이 대사를 체호프는 왜 트리고린이 말하게 했을까 헤아려 본다. 그 이유는 이 희곡의 등장인물들 중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소설가란 직업을 가진 트리고린이기 때문이리라.
놀라운 것은 트리고린이 말한 ‘한 사내’가 바로 트리고린 자신이라는 점이다. 물론 트리고린은 자기의 착상이 현실이 될 줄 몰랐을 테고 더군다나 ‘한 사내’가 본인이 될 줄 몰랐겠지만 말이다. 니나는 트리고린을 사랑하게 되고 그와 동거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만다. 그 뒤 니나는 트리고린에게서 버림을 받아 불행에 빠진다. 만약 트리고린이 나타나자 않았다면 니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트레플료프라와 짝이 되어 불행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트레플료프와 아르카지나는 말다툼을 하고 나서 서로 화해한다.
트레플료프 : (그녀를 끌어안는다) 엄마가 아신다면! 전 모든 걸 잃었어요. 그녀는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이제 글을 쓸 수도 없어요…….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요…….
아르카지나 : 낙심하지마라……. 다 잘될 게다. 그 사람이 떠나면 그 아이도 다시 널 사랑하게 될 게야. (그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렇고말고. 우리 이제 화해한 거다.
트레플료프 : (그녀의 손에 키스한다) 네, 엄마.(‘갈매기’, 441쪽)
트리고린이 자기와 이곳을 떠나고 나면 니나가 트레플료프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어머니가 아들을 위로하는 장면이다.
이와 같이 이야기가 흥미 있게 전개된다. 그리고 등장인물 중에서 작가와 배우가 있기에 문학과 예술에 관련하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가령 이런 것.
도른 : 콘스탄틴 가브릴로비치, 당신 희곡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조금 이상하고,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강력한 인상을 받았어요. 당신은 재능 있는 사람이니, 계속 써야 합니다. (...) 당신은 추상적인 사유의 영역에서 주제를 포착했어요.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은 반드시 어떤 거대한 사상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진지한 것만이 아름다운 법이오.(‘갈매기’, 411~412쪽)
작가 지망생이었던 트레플료프라는 작가가 되고, 배우 지망생이었던 니나는 연극 배우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었을까?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무모하게 가출할 만큼 용기가 있고 사랑에 쉽게 빠지고 현실 감각이 없는 니나. 그녀는 트리고린에게 버림을 받고 배우로 성공하지도 못하며 폐인이 된 듯한 모습이 되어 버린다. 작가가 되었으나 글을 쓸 수 없고 니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트레플료프. 니나는 트레플료프의 사랑 고백을 받아 주지 않고 자신을 버린 트리고린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트레플료프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니나와 트레플료프 같은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려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 작품 속 명대사
작품에는 분명하고 명백한 생각이 들어 있어야 해요.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지 당신은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 그림 같은 길을 명백한 목적도 없이 걸어간다면, 당신은 길을 잃을 것이고, 재능이 당신을 파멸시킬 겁니다.(‘갈매기’, 412쪽)
투르게네프 작품에 이런 대목이 있죠. “이런 밤에 지붕 아래 앉아 있는 사람과 따뜻한 모퉁이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갈매기’, 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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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또 다른 희곡 ‘바냐 외삼촌’에서는 바냐가 지난 25년 동안 세레브랴코프에게 속아 황소처럼 일하며 어리석게 살았다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레브랴코프는 연구 업적이 없이 퇴직한 교수로 지금은 통풍 환자가 되어 있다.
보이니쓰키(바냐) : (...) 아, 난 얼마나 속아왔던가! 난 저 교수를, 저 보잘것없는 통풍 환자를 숭배했고, 그를 위해서 황소처럼 일했어! 나와 소냐는 이 영지에서 마지막 안 방울까지도 짜냈어. 한 푼 두 푼 모아 수천 루블을 만들어 그에게 보내주려고 우리는 마치 구두쇠처럼 식물성 기름과 완두콩, 치즈를 팔면서도 정작 자신은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했어. 난 그와 그의 학문이 자랑스러웠고, 그로 인해 살았고 숨 쉬었어! 그가 쓰고 말한 모든 것이 내겐 천재적인 것으로 보였지……. 맙소사. 그런데 지금은? 그는 은퇴했고, 그래서 지금 그의 인생 결과가 드러났어. 그가 죽고 나면 단 한 페이지의 저작도 남지 않을 거야. 그자는 전혀 유명하지 않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누 거품이야! 그래 난 속았어…… 알아. 어리석게 속은 거라고…….(‘바냐 외삼촌’, 497쪽)
교수와 바냐는 예전에 매제와 처남 사이였다. 그런데 바냐의 여동생이 죽었고 그 여동생이 낳은 딸이 소냐다. 소냐와 바냐는 조카와 외삼촌 사이. 그래서 소냐는 바냐를 ‘바냐 외삼촌’이라고 부른다. 교수는 현재 엘레나 안드레예브나와 살고 있다. 엘레나 안드레예브나는 빼어난 미인으로 소냐의 새어머니인 셈이다. 바냐는 엘레나 안드레예브나를 짝사랑한다.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해 보지만 허사였다.
‘바냐 외삼촌’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두 사람이다. 그 첫째는 교수였던 세레브랴코프의 학문을 위해 25년간 황소처럼 노동하며 희생했던 ‘바냐’다. 그 교수가 위대한 학자가 될 줄 알고 그의 학문에 희망을 걸고 산 바냐의 25년간의 삶은 바냐의 말처럼 어리석게 속은 삶이기만 했을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25년 동안 희망을 갖고 살았으니 희망찬 인생을 살았다고 말이다. 결과만큼 긴 시간의 과정도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둘째는 애인과 달아난 아내의 딸들의 양육을 위해 재산을 준 ‘텔레긴’이다. 그는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버림을 받은 상황 속에서 친자식이 아님에도 양육비를 주었고 그래서 행복을 잃었지만 자부심은 남았다고 말한다. 그의 인생은 의미 있는 인생일까, 헛된 인생일까? 생각하기에 따라서 전자일 수도 후자일 수도 있겠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인생과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을 ‘바냐 외삼촌’이란 희곡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냐처럼 누구에게 인생을 바치는 삶은 후회와 원망이 따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맞벌이부부가 흔치 않았던 과거에는 기혼 여성들이 자기 삶에서 얻지 못한 충족을 자녀의 학업 성적이나 남편의 출세에서 구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남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기보다 본인의 인생에 관심과 에너지를 쏟고 살 때 인간은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 삶의 주체자가 되려면 본인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삶을 비관하고 모르핀이 들어 있는 병을 훔쳐갖고는 자살까지 생각했던 바냐 외삼촌에게 소냐는 다음과 같이 위로한다.
보이니쓰키(바냐) : (소냐에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야, 몹시 괴롭구나!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네가 알아준다면!
소냐 : 어떻게 하겠어요. 살아야죠!
바냐 외삼촌,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긴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휴식이란 걸 모른 채 지금도 늙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그러다가 우리의 시간이 오면 공손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내세에서 말하도록 해요.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슬펐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이 우릴 가엾게 여기실 테고, 저와 외삼촌, 사랑하는 외삼촌은 밝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삶을 보고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지금 우리의 불행을 감동과 미소로 되돌아보면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전 믿어요, 외삼촌. 뜨겁고 열렬하게 믿어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의 두 손에 놓는다. 지친 목소리로) 우린 쉬게 될 거예요!(‘바냐 외삼촌’, 545쪽)
“우린 쉬게 될 거예요!”라는 말이 마치 절규처럼 깊은 울림을 준다. 소냐 역시 자신의 사랑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어 괴로워하는 바냐에게서 동병상련을 느꼈으리라. 소냐의 훌륭한 정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 작품 속 명대사
늙은 까마귀 같은 우리 엄마는 끊임없이 여성 해방에 대해 떠들고 계셔. 한쪽 눈으로는 무덤을 보고 있으면서, 다른 눈으로는 그 잘난 책자에서 새로운 인생의 여명을 찾고 있거든.(‘바냐 외삼촌’, 477쪽)
자기 아내도 아닌데 어째서 당신들은 여자를 무심하게 바라볼 수 없는 건가요? 그 의사가 옳게 말한 것처럼 당신들 모두의 내부에는 파괴의 악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들은 숲도, 새도, 여자도, 누구에 대해서도 동정하지 않아요.(‘바냐 외삼촌’, 487쪽)
세상은 강도나 화재 때문에 파멸하는 게 아니라, 증오, 적대감, 온갖 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파멸한다는 사실을 말이죠…….(‘바냐 외삼촌’, 495쪽)
여자는 오직 다음과 같은 순서로만 남자의 친구가 될 수 있어. 처음에는 아는 사람, 그다음엔 애인, 그러고 난 다음에 친구.(‘바냐 외삼촌’, 498~499쪽)
이런 날씨엔 목을 매기 좋지요…….(‘바냐 외삼촌’, 4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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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외삼촌’에서 엘레나 안드레예브나가 “오늘 날씨가 좋네요……. 덥지도 않고…….”라고 말하자 바냐는 “이런 날씨엔 목을 매기 좋지요…….”라고 응수한다.




인간의 속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봄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