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반대의 마음 작동 1~2’를 쓰고 나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 글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 글감의 주제와 관련된 것들이 자연히 떠오른다.


‘정반대의 마음 작동’이란 글은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에서 하나의 부부싸움을 보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시각이 정반대인 것을 보고 쓰게 된 글이다. 이 글을 보자마자 내가 경험한 것들이 떠올랐다. 그중 타인에게 오해를 받았던 경험을 써 넣었는데, 쓰고 나니 고등학생 때 금붕어가 죽은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 금붕어 얘기까지 쓰면 글이 길어지고 산만할 것 같아 두 개로 나눠 글을 완성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주제로 하여 쓸 수도 있었는데, 그냥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나서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금붕어 이야기’에서 금붕어가 한 명의 친구가 생긴 것에 대해 반길지 적대시할지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은 나의 실수를 넣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문장을 넣었어야 했다.


“상대의 마음 작동이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원망할 게 아니라 미리 상대에 대해 알고자 노력해야 했다. 가령 금붕어의 경우, 그 금붕어가 새 친구가 생기는 것을 좋아할지 싫어할지에 대해 알려는 노력이 내게 없었다. 책을 찾아서라도 금붕어의 특성을 먼저 공부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글을 고치진 않았다. 그냥 다음에 쓸 때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 ‘익숙한 것들을 점검하라’를 쓰고 나서


이 글을 쓸 때 명언을 넣으려고 찾아본 명언 책엔 다음과 같이 딱 네 개의 명언만 있었다. 내가 쓰려는 ‘글의 주제’에 부합하는 명언들만 있었다는 게 신기하였다. 왜 다른 명언은 없을까. 얼마든지 다른 뜻의 명언이 있을 법한데. (여러분도 신기하지 않습니까. 다른 명언이 없다는 것이.)


모든 일은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스위프트)

비관주의는 일단 거기 익숙해지면 낙관주의처럼 편안한 것이다.(아널드 베넷)

아름다움은 곧 애인에게 익숙해져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게 된다.(J. 애디슨)

역경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더 이상 괴롭지도 않다.(클라우디아누스)

- <세계의 명언 2>, 해누리, 369쪽.


3.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의 리뷰를 쓰고 나서


책 제목이 영장류 인간과에 속하는 동물, 즉 인간에 대한 도감이라는 뜻 같다. 별점을 매길 때 네 개의 별표에만 점수를 줬다. 다섯 개의 별표에 모두 점수를 주지 않은 이유는, 나는 재밌게 읽었지만 그래서 이런 책을 또 사 볼 용의가 있지만, 에세이라는 장르에 관심 없는 독자나 인간관찰에 관심 없는 독자에겐 시시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별점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신중을 기했던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해 관찰한 글은 모두 좋아한다. 이 책에 있는 하나의 예를 소개하면 이런 글이 있다. 인간은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슬픔도 모른 채 잔칫집처럼 설치다가 장례식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 주는 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슬픔보다 놀람이 앞서 절절한 눈물을 흘리지도 못한 채 장례식이 끝났다. 문상객들의 밤참은 초밥이 좋을지, 아니면 이틀 연속으로 같은 음식을 내놓기엔 죄송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했던 장어가 어떨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어서 차분히 울 수도 없었다.”(51쪽)


“유족 되시는 분들은 앉아 계세요.”(52쪽)


“그런 야단을 맞으면서도 방석이 모자라네, 재떨이는 준비했나, 하며 분주히 뛰어다녔다. 아버지는 아마도 저 세상으로 편히 가시지 못했을 것이다.”(52쪽)


그러고 나서 한참 지난 뒤에야 아버지의 슬픔을 느낀다. 나는 이런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에 마음이 끌린다.


4.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를 쓰고 나서


한 작가의 전작을 반 이상 읽고 나면 결국 작가가 어떤 메시지 하나를 독자에게 주고 싶어서 인물을 달리하고 사건을 달리하며 작품을 변형해서 썼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다 보니 비슷한 글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주제는 같으나 다른 표현으로 쓴 글들이 많다. 내가 쓴 글들의 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인간의 일부일 뿐.

인간은 어리석다.

인간은 정확히 대답할 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조차 읽을 줄 모른다.

잘못을 저지르고 살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이것들을 하나로 압축해 표현하면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다’가 된다. 내가 알기로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합리하고, 오해의 왕이면서 착각의 왕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인간은 모순덩어리이다.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어서 독해(讀解)가 불가능한 존재이다.

인간이 독해 불가능한 존재임을 잘 알기에 어떻게든 독해 가능한 존재임을 밝혀 보려는 심리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5. <어느 독서광의 노트>라는 페이퍼 제목을 짓고 나서


독서광?(이건 건방지다), 독서애호가?(이건 길다), 독서가?(이건 밋밋하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란 글이 있다. 조지 오웰이 서평을 쓰던 시절에 대해 쓴 글인데(그는 서평을 많이 썼다), 난 그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나도 그 제목과 비슷한 이름을 짓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떠오른 게 ‘독서광’이었다. 그래서 ‘어느 독서광의 노트’라고 정한 것이다. 여기에 책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독서광’이라고 써서 블로그에 올려 놓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주 내가 건방을 떠는구나’ 싶어서였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생각이 달라졌다.


스스로 ‘독서광’이라고 하면 잘난 척하는 것 같아 고치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독서광임을 나타내는 것이 잘난 척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잘난 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독서광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저 책을 열광적으로 좋아할 뿐인데, 왜 독서광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야구광이나 영화광이나 낚시광이나 무엇이 다를까.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어느 독서광의 노트>,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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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디의 다른 얼굴


사람을 잘못 볼 때가 있다. 인품 좋은 사람으로 여겼던 사람이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고, 냉정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사람이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기도 한다. 또 누군가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가 제각기 다르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람의 의외성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가까이 지내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서도 의외성에 놀라게 되는 일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위인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도 의외성이 있을까.


만약 우리가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 중에 그의 훌륭한 점에 반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외성이 숨어 있다면 우리는 그의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테면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마하트마 간디가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을 했다면 말이다. E. M. S. 남부디리파드 저,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이란 책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인도의 대표적 좌파 정치인인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간디의 또 다른 얼굴을 조명한다.

 


“간디는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이자 구심점이었으며 비폭력의 성자로 알려졌지만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라 문제적 인물, 논쟁적 인물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징병해 사지로 내모는 등 또 다른 얼굴을 가졌음을 (이 책은) 폭로한다.”(일요시사, 2011. 9. 5.)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징병해 사지로 내몬 사람, 바가트 싱을 비롯해 여러 혁명가들을 서둘러 처형해 달라고 영국 정부에 요청한 사람, 통념과 달리 정치적 목적에 따라 때로는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방치한 사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인도국민회의당 의장이 된 수바스 찬드라 보세에게 압력을 가해 사퇴시키고 결국 쫓아낸 사람. 이 사람은 충격적이게도 마하트마 간디와 동일 인물이다.”(알라딘, 책소개)


우리는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를 간디의 말을 인용해서 쓴 수필, <무소유>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무소유>에서 간디의 말을 인용한 글을 보자.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한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중략)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법정 저, <무소유>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간디는 ‘자기 소유’를 경계하며 개인적 욕심을 모두 버린 삶을 살았다. 그런 간디의 이면의 삶을 보여 주는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이 책은 그의 의외성을 밝히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그 내용엔 놀라겠지만 누구나 의외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엔 놀랄 일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이면을 발견하는 일은 다음과 같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루소는 그의 교육사상을 밝힌 <에밀>을 썼을 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의 다섯 명의 자식을 부양하기 힘들다며 고아원에 버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의 명작으로 탁월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지만 일확천금을 노렸던 도박꾼이었다.


마르크스는 뛰어난 경제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돈을 번 적이 없었다.


2. B사감의 다른 얼굴


현진건 저, <B사감과 러브 레터>라는 소설이 있다. 그 내용을 옮겨 보면 이러하다.


C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사감이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예수꾼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은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칠 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사감이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소위 ‘러브 레터’였다. 여학교 기숙사라면 으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학교로도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여학생이 많은 탓인지,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사랑 타령이 날아들어 왔다. 그런 편지는 물론 B사감의 손에 떨어진다.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편지를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이처럼 B사감은 학생들에게 오는 러브 레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화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을 만나러 오는 남자라면 아버지일지라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내란 믿지 못할 것, 우리 여성을 잡아먹으려는 마귀인 것, 연애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가 지어낸 소리라고 설법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괴상한 일이 벌어진다. 깊은 밤중에 어디선지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겨운 정담과 간드러진 웃음 소리가 들려오곤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한 여성이 학생들에게 온 러브 레터를 가지고 밤마다 혼자서 자기 방에서 연애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괴상한 일의 장본인은 놀랍게도 바로 B사감이었다.


그토록 근엄하게 보이던 그녀가, 러브 레터라면 질색하던 그녀가 러브 레터를 읽으며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B사감 역시 그런 러브 레터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날카롭게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의외성에 주목하게 한다. 
 



 

 

 

 

3. 당신에게도 의외성이 있다

 

나의 친척 중 한 분이 가정에선 가부장적이고 꽤 엄한 아버지인데, 외출하고 돌아오면 씻고 나서 자신이 신었던 양말을 꼭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 놓고 잠자는 습관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온 날도 그렇다고 한다. 정말 의외이지 않은가. 

잘난 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의외로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 무서움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의외로 겁쟁이일 수 있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의외로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이기주의자일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의외성을 놓치고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서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남이 잘 모르는 의외성이 있을 것이다.  


간디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이런 생각을 했다. ‘오히려 의외성이 없는 사람이 의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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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1-09-1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혈한에게서 우연하게 츤데레적인 면을 발견하는 것과 성인으로 추앙된 사람이 소시적에 정치적 무뢰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차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기대치의 차이랄까요... 간디가 젊은 시절에 색을 밝혔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얼핏 들은 것 같지만요.

얼마전에 읽은 <현장 서유기>에서 인도에서 당나라로 돌아와 권세를 누리던 현장법사가 많은 법전을 가지고 당나라를 찾은 인도 승려를 (아마도 질투심에서?) 박해해 가난 속에 죽도록 방치했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오점이었다고 한 부분을 읽었는데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페크pek0501 2011-09-15 07:47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 드립니다.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나 보군요. ^^^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워낙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한데 묶어 놨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그런 면이 있었어?>라고 놀라게 되는 경우에 있어선 똑같다고 생각되어 의외성으로 묶었어요. 정반대의 두 얼굴이 한 사람에게 공존한다는 게 흥미로워서 이 글을 썼습니다.

간디가 색을 밝혔다?, 퇴계 이황도 그런 얘기가 있는데, 이 글에 넣지 않았어요. 그건 의외성이라기보다 타고나는 것 같아서요. 맞는 말인지도 잘 몰라서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귀찮고 해서요. ㅋㅋ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pkj0624 2011-09-14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잘난척을 하고, 겁이 많기 때문에 용감하려고 하고, 자신이 이기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죠. 우리의 무의식은 자아가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는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1-09-15 07:50   좋아요 0 | URL
방문, 감사 드립니다.

<7광구>라는 영화를 보니까, 한 사람이 죽어서 발견되는데, 그 범인을 잡겠다고 칼(이었나?) 같은 걸 들고 소리치며 설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괴물이 나타나니깐 그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며 도망치더라고요. 아마도 범인 잡겠다고 설치는 동안은 무섭지 않았을 거예요. 말하자면 공포를 쫓아내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죠. 저는 이런 사람의 심리가 재밌어요.

"우리의 무의식은 자아가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는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 이것, 좋은 말씀인 것 같네요. 배웠어요. 기억해 놓겠습니다.

댓글 남기는 것, 쉽지 않은 일인데, 매우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9-1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디가 어린 소녀를 좋아했다는 비화는 꽤 오래전에도 알려진 것 같습니다.이순신은 전투가 끝나고 한숨 돌릴 때면 첩을 불러 성교를 했다고 난중일기에도 썼죠.그런데 본부인을 부르진 않았어요.루소는 자기 회고록에 정말 부끄러운 과거사를 다 고백했고...애들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거기에 썼죠.솔직하긴 한데...

페크pek0501 2011-09-15 20:31   좋아요 0 | URL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의 지식과 정보가 많아 사실 글쓰기가 좀 어렵습니다. 님은 책에서 봤겠지만요...^^^

저는 성욕과 정력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서(선천적으로 타고 나서) 인격과 상관 없는 문제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순신은 한숨 돌릴 때 첩이 그리웠겠죠. 그래서 얼굴이라도 보자고 불렀는데, 밤이 되니 안고 싶었겠지요. 그런 것 아닐까요. 따져 보면 강간, 간통도 아닌데 첩을 부르는 건 그다지 잘못된 것 같지 않아요.

또 루소도 집필로 바빠서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어 고민하다가 고아원에 맡겼다면 큰 문제가 아닌 것도 같고...

다만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위인들의 모습에서 실망이 되긴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인지를 의심하게 만들긴 해요.

그런데 제가 갖는 생각은, 사람은 거기서 거기...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

추신 : 아, 반가웠다는 인사를 빼먹을 뻔 했어요. 요즘 님을 아주 가까운 이웃으로 생각한다는...ㅋ

노이에자이트 2011-09-15 20:52   좋아요 0 | URL
인간은 그러려니 하면서 적당히 체념하면 좋은데 우리나라에선 위인들을 무결점의 신으로 떠받들다 보니 아주 작은 흠집을 이야기하는 것도 못견뎌하죠.

이순신이 전쟁 중 첩과 거시기했다는 이야기에 여자들은 그럴 수가! 하는 반응이 많더군요.특히 본부인은 놔두고 왜 첩만! 하는 반응들...

서로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로 해요!

페크pek0501 2011-09-15 23:24   좋아요 0 | URL
님이 말씀하신 대로 "인간은 그러려니 하면서 적당히 체념하기"가 좋을 것 같아요. 인간이 '신'이길 바라면 안 되는 일이다, 생각하고요.^^^ 그래서 인간인 게야, 하면서 말이죠...

pjy 2011-09-1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보는 눈이 별로 섬세하지 못해서 그 사람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오해와 기대로 실망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래도 책 좀 읽고, 인생공부 좀 하니 예전보다야 0.2% 나아지고 있는듯 스스로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1-09-15 23:2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님의 서재에 몇 번 들른 적이 있답니다.^^^ 이렇게 방문하신 흔적을 남겨 주시니 무척 고맙습니다.

댓글을 보니, 꽤 바른생활의 사람 같군요. 그런 사람, 좋아합니다.ㅋ

저는 가끔씩 바보짓을 하고 살아서, 삶의 지혜가 늘 부족함을 느껴요. 오늘 놀러온 친구에게 그 바보짓을 얘기하면서, 나 왜 그러니?, 라고 말해줬더니 재밌다며 하하하 웃더군요. 같이 웃었어요. 웃고 날려 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저야말로 인생공부가 많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자주 봐요. pjy님...

글샘 2011-09-1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은 항상 이러할 거라고... 믿는 게 어리석은 건지도 모르죠.
사람은 늘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걸 인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또 사람은 말에 매이고 기억에 매이고 글자에 매이는 어리석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이 몹시 덥습니다. 대구는 아마 무지 덥겠죠? ^^
인디언 섬먼지... 건강하게 넘기시길...

페크pek0501 2011-09-16 23:56   좋아요 0 | URL

저, 서울로 이사왔어요. ^^^ 벌써 1년이 넘었는 걸요.

사람은 늘 변할 수 있다는 것, 맞아요. 그런데 그보다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상대에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더 관심이 가요.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인데 자신의 눈엔 안 보인 경우요. 예를 들면 친구도 떨어져 살며 가끔씩 만나야 좋은 관계가 되지 만약 한 집에서 기거하는 관계가 되고 나면 많이 싸우게 될 가능성이 많고 그러면서 그동안 몰랐던 단점이 막 튀어나오기도 할 거예요. 그러다가 상대의 의외성에 놀라게도 되겠죠. 그만큼 우리는 누구에 대해서든 잘 모르고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반대의 두 얼굴이 한 사람에게 공존하는 게 신기해서 이 글 썼어요.

그런데 글샘님은 매우 오랜만에 방문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무척 반갑군요.

글샘님도 잘 지내시길... 시 감상이 하고 싶을 때 님의 서재에 들르고 있습니다.


미단 2011-12-0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외성...정도로 묶을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 결코,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들어왔습니다. 결코를 두번 쓴 데는 그 만한 이유와 절실함이 있다는 걸, 아시리라...생각하고 이정도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그럼...

페크pek0501 2011-12-02 21:08   좋아요 0 | URL
"의외성...정도로 묶을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 결코, 아니라는 말..."- 에 동의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관심 있게 읽어 주신 점, 감사 드립니다.
 


1. 한 가지에 만족하면 행복할까, 불행할까
 




어떤 한 가지에 철저하게 만족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다른 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 146쪽.




  

독서광이든, 낚시광이든, 골프광이든, 무엇을 광적으로 좋아하며 한 가지에 빠져 드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지만 반대로 불행한 사람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 가지의 즐거움에 빠져 사는 사람은 다른 다수의 일에서는 즐거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연애 이외에 다른 일들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애하기 전에 좋아했던 친구들의 모임이나 여행조차 재미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든 연인과 함께 하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를 광적으로 좋아해서 책과 연애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 읽는 일 이외의 일엔 흥미가 없어 무관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귀찮게 느껴지는 일이 많아진다. 누군가의 방문이 있거나 전화가 오거나 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나 할 때, 그런 일들이 성가시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이든 책 읽는 일을 방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의 생활에 충실하려면 한 가지에서만 아닌,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꼭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에 가는 날이면 결혼식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 주는 즐거움, 지인들을 만나는 즐거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등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온 정신이 몰입되어 있으면 그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그 자체도 귀찮을 뿐이다.


책에서 읽었는데, 혹자는 한 달에 삼십 권의 책을 산다고 한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책을 좋아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삶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적당히 좋아하길 바란다.


그리고 생각한다. 독서처럼 한 가지에만 만족하는 삶이 행복할까, 불행할까.


2. 사람이 두 번 할 수 없는 것
 




옛 철학자가 말하길,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뛰어들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럼 내가 말하리라.


‘사람은 결코 같은 풍경을 두 번 볼 수 없느니라.’


-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저, <아미엘의 일기>, 448쪽.




같은 강물에 두 번 뛰어들 수 없는 것은, 강물은 흐르기 때문에 두 번째 뛰어든 강물은 첫 번째 뛰어든 강물과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고여 있는 물이라고 해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왜냐하면 만물은 늘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본 나무와 오늘 본 나무는 같은 나무일지라도 정확히 말하면 같은 나무가 아니다. 어제 본 나무의 나뭇잎의 개수가 1000개였다면, 오늘 본 나무의 나뭇잎의 개수는 바람에 날려 떨어져서 900개인지 모른다. 나뭇잎에 앉은 먼지의 개수도 늘 변한다. 또 멀리서 나무의 겉모습만 봐도 같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조금 전 본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는 나무였는데, 지금 본 나무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나무일 수도 있고, 조금 전 본 나무는 햇볕 속의 나무였는데, 지금 본 나무는 그늘 속에 있는 나무일 수도 있고, 비 맞고 있는 나무일 수도 있다. 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기온이 25도일 때의 나무와 기온이 26도일 때의 나무가 같지 않으며, 습도가 많을 때의 나무와 습도가 적을 때의 나무가 같을 수 없다고.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같은 풍경을 두 번 볼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간은 소중하다는 것. 왜냐하면 한 번 가고 나면 같은 시간은 오지 않으니까. 하루는 소중하다. 왜냐하면 한 번 가고 나면 같은 하루는 오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1분1초가 다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간에.”


3.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경우 

    



언젠가 어느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78세 된 어떤 노파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78년 동안의 내 생애를 돌이켜 볼 때, 자기가 죄를 범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할 때는 이 나이가 되어도 자기를 용서할 수 없군요.”


-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155쪽.




바보짓을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바보짓을 하는 게 제일 싫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자기가 죄를 범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기분이 좋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바보짓을 많이 하고 산다. 그럴 때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왜 그렇게 바보짓을 하고 살까?, 하면서 도대체 그동안 읽은 책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인가, 그동안 지나간 세월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은 만큼, 또 보낸 세월만큼 지혜를 얻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또 세월이 흘러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해도 나의 바보짓은 계속 될 것만 같다.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책을 많이 읽었으나 별로 이득이 없는 것 같아 앞으론 읽지 않겠다는 글이 있었다.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에 공감했다. 나의 경험상으로도 독서는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 데에 별로 소용이 없었다. 또 노인의 지혜란 것도 믿을 게 못됨을 알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경험으로부터 지혜가 생길 것도 같은데, 실제는 오히려 속이 좁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용서의 문제에서는 어떤가. 난 나의 바보짓은 용서할 수 있다. 어리석어서 저지르는 바보짓은 연민의 대상이지 미움의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건 죄를 범하는 경우일 것 같다. 도덕적 잣대로 봤을 때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다. 예를 들면 한 회사의 공금횡령을 했다거나 몸에 해로운 가짜 참기름을 만들어 파는 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손실을 생기게 하는 일이다. 만약 이런 죄를 범하게 되면 뉴스에서 보는 어떤 범죄자에 대해서도 나는 비난할 자격이 없어진다. 어떤 범죄자도 비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 이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까. 그러므로 내가 가장 조심하고 싶은 것은 올바르게 살지 않고 죄를 범하는 것, 그것이다. 내가 잘 살기 위해, 내가 행복하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일을 가장 피하고 싶다.


바보짓을 하는 자신을 사랑할 순 있지만 죄를 범한 자신을 사랑할 순 없지 않은가.



4. 고뇌하는 나의 벗이여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간이 마치 방탕한 아들처럼 본래 악에 물든 세상에 태어나서 불행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끝내는 죽어야 한다며, 그 이유는 삶의 죗값이라고 하며, 우리는 그 점을 인정해야만 살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 말대로라면 세상은 이미 죄의 텃밭이다. 그리고 인간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가련한 존재라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리가 상대방을 부를 때 아무개 씨라고 부르지 말고 그 대신 ‘고뇌하는 나의 벗’이라고 서로 불러 주자.


고뇌하는 그대여! 처음에는 습관이 안 되어서 좀 어색하겠지만 나중에는 서로 참아주고 위로하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덕성을 갖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 156쪽.



결국 우리 삶이란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며 살아봤자 ‘죽음’을 향해 가는 삶에 불과하다.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이 가는 삶이니까. 또 삶은 유쾌한 일은 적고 불쾌하거나 걱정스러운 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유쾌한 일을 되새기기보다 불쾌하거나 걱정스러운 일을 더 많이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뇌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서로를 부를 때 ‘고뇌하는 나의 벗이여’라고 불러 주자는 게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부름으로써 좋은 점은 상대방의 허물이나 악의마저도 연민을 가지고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벗을 향해 불러 보자. “고뇌하는 나의 벗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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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1-09-09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권의 책 다 저도 좋아하는 책이네요. <아미엘의 일기>는 제꺼는 동서문화사 판. 일기같은 걸 써본 적이 없어서 알라딘 초기에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문예출판사)하고 같이 샀는데 두 권 다 아끼는 책입니다. 요근래 <런던통신>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면'이라는 글이 재미있었어요.ㅋ 네 가지 이야기 다 저한테는 많은 울림을 주네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 즉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계속 하고, 어떤 성향이 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해요. 저는 그래서 그점이 재밌습니다. ^^

페크pek0501 2011-09-09 14:02   좋아요 0 | URL
매우 고맙습니다.

즐겨찾기 등록 수가 한 명 줄었기에 제가 새 글을 올리지 않아 화가 나서 그러신 줄 알고 뜨금해서 어제 급하게 써서 올린 것입니다. (저의 착각질이겠지만...) 그러나 앞으로도 부지런을 떨 자신이 없네요. 저의 능력부족. 한 달에 네다섯 편 정도의 글을 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성향의 글을 많이 쓴다든지 어떤 책을 많이 인용한다는지 하는 것은 글쓴이의 특색이 되겠지요. 주로 읽는 책들을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요... 저도 저를 관찰중입니다.^^

초가을비가 오는 멋진 하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oren 2011-09-0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글이네요...

pek님께서 '한 가지'에 빠져 드는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말씀해 주시니, 제 '형편'이 생각나서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네요.ㅎㅎ 저 같은 경우는 '한가지'에 푹~ 빠졌다가 정신을 못차릴 정도가 되면, 거기서 슬금슬금 빠져 나옵니다. 그러다가 금새 또다른 '한가지'에 푹~ 빠지고... 매번 그런 현상의 연속이랍니다. 그래서 제 아내에게 참 바가지를 많이 긁힌답니다. 뭐 한가지에 빠지면 정신을 못차린다고 말입니다.

각설하구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뛰어들지 못한다'는 글을 읽으니 문득 소설 속의 한 대목이 떠올라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데, 저도 아직 이 작품을 못읽어봤답니다.

* * *

"시간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마의 산』中에서

페크pek0501 2011-09-09 17:51   좋아요 0 | URL
방문에 감사 드립니다. 뜻밖이라 '즐거운 깜짝 놀람'입니다.

저도 한 가지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편이라 이런 글을 썼던 거예요. 글이란 자신의 경험세계에 대해서만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너무 좋아해서 한때는 감옥에 들어가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주는 밥 먹고 책만 읽고 지낼 수 있는 감옥이요.ㅋ 오헨리가 감옥에서 대작가가 되어 나왔다는 일화도 있잖아요.

토마스 만, <마의 산>을 저는 읽었어요. 찾아보니, 제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네요. 제가 밑줄을 쳐 놓아 빨리 찾을 수 있었어요.

"시간에는 사실 새겨진 눈금이 없다. 새로운 해나 달이 시작될 때도 천둥 소리나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도 총을 쏜다든지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다." - 일신서적, 269쪽.

시간뿐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사람들이 정한 것일 뿐이죠. '학문은 약속이다'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사람들이 '이렇게 하기로 하자'라고 약속을 해서 학문이 생겼다는 것. 그런 약속으로 시간도 탄생되었겠죠.

오늘 oren님 덕분에 시간에 대해 배웠습니다. 사실, 이 책을 잊고 있었어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빨리 사서 읽으려니 설렙니다. 이제 고백하는데, oren님이 정리하신 도덕감정론을 프린트해서 보았답니다. 그러다가 아예 사야겠군, 한 것이고요. 책 내용이 제가 찾던 책이어서 큰 도움을 받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유명한 책 중 읽지 않은 책이 너무 많아요.

신지 2011-09-10 10:12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한가지'에 푹~ 빠졌다가 정신을 못차릴 정도가 되면, 거기서 슬금슬금 빠져 나옵니다. 그러다가 금새 또다른 '한가지'에 푹~ 빠지고... 매번 그런 현상의 연속이랍니다.

ㅡ>

저도 오렌님, pek님과 똑같아요.^^ 뭐든 한 가지에 생각이 가면 특히 아무 일도 못하는 성격이라 ㅠ 그래서 저도 뜨끔했답니다.ㅋ

(이 글과는 좀 다른 얘기지만) 어쩌면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다르듯이, 자신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는 듯해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보니까, 흔히 보통 비젼과 목표를 명확히 하여 성공하라고들 하는데, 자신의 성향을 제대로 모르면 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이렇게 되고 싶다'라는 가시적인 목표를 정해놓아야 실천의욕이 생기는 목표추구형이 있는 반면, 먼 미래의 목표를 세우기보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자신의 소신과 내적 욕구에 충족감을 느낄 때 실천의욕이 생기는 '심리적만족형'이 있다고 하거든요. 저는 100% 심리적 만족형이라 ㅠ 무슨 일이든 열심히, 노력하는 식은 되지가 않더군요. 제 식으로 할 수밖에 없고, 좋아해야만 만족하고 잘 할수 있는 유형인듯. 그래서인지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싶거나 많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더군요(경험이 중요하다는 것도 일종의 신화가 아닐까 싶은) 제가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만족하는 편이어서요. 시간이 소중하겠지만, (사회에선 특히 그렇죠) 그런데 저는 정말 시간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편이어서.. 역시 저는 일반적, 사회적으로 보면 문제가 좀 있는 유형인 듯 ㅠ

아마도 pek님이 글에서 말하시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인듯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잘 그러지 못해서 크게 동감했습니다. 저를 잠깐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붓다는 삶은 연극과 같은 것이니 자신이 일시적으로 맡은 역할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말라고 했는데,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려워요...

페크pek0501 2011-09-10 10:33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심리적 만족형이군요. 성공을 지향하기보다 행복(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 잘 지적하셨군요. 사실 이게 문제라서 쓴 글입니다. 한 가지에 빠지면 행복하고 좋은데, 다른 것들에 소홀해지는 게 문제라서요.

글이란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데, 저는 이와 반대되는 글, 한 가지에 빠져 살자 그러면 행복하다, 라는 주제로 앞으로 글을 쓸지도 모릅니다.^^^ 아, 정반대의 글을 둘 다 쓰는 방법도 있군요. 제목은 '여러분은 어떠세요'^^

반가웠습니다. 추석 쇠러 오늘 지방에 내려갑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

oren 2011-09-10 12:02   좋아요 0 | URL
pek님과 신지님(오랜만입니다.ㅎㅎ)의 댓글을 보니 두 분 다 '한가지에 빠지면' 저와 비슷해 지는군요.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pek님께서 책을 그렇게(감옥에 가고 싶을 만큼)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고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저도 한 때는 딱 1년이나 2년쯤 절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책을 너무 읽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게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그랬었답니다. '99년쯤 제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숱하게 경제지와 일간지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 역설적으로 저 자신의 '실력 부족'을 절감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월간조선'에 제가 소개되던 때에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이라는 물음에 [한 수레의 책을 싣고 절에 들어가 1,2년쯤 책에 푹 파묻혀 지내고 싶다]라는 대답을 한 기억이 납니다. (월간잡지에는 딱 두번 실려 봤는데, 총각시절 '레이디경향'인가에 '유망 총각'(?) 코너에 실렸다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쇄도하는 전화와 편지와 선물(초코렛 등)공세에 시껍한 적이 한 번 있었답니다. 대중매체의 위력이 참 대단하더라구요. 제가 이 곳에서 별 얘기를 다 합니다. ㅎㅎ)

'한가지'에 빠지는 건 좋은데 특히 '취미생활'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빠지게 되면 이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특히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더군요. 저 같은 경우엔 '일'에 푹 빠져 지냈던 시절도 있었지만, 노는 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진 적이 많아서, 지금도 곧잘 '과거에 저질렀던 죄목들' 때문에 아내에게 꼼짝 못할 때가 많습니다.

결혼 전부터 '산'에 미쳐 돌아 다니다가, 결혼 직후에는 본격적으로 '암벽등반'을 배운답시고 등산학교엘 다녔고, '90년대 중반엔 게임과 인터넷 채팅에도 아주 잠깐 빠져 봤고, 또 ski와 golf에 미쳐 오랫동안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고, 요즘에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답니다.

횡설수설하고 보니 결국 '일'과 '책'에 빠지는 게 제일 좋은 게 아닐까 싶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데' 훨씬 더 잘 빠지는 성격이어서, 책에만 푸욱~~ 빠져 지내기는 앞으로도 별 가망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노는 쪽으로 한가지 더 욕심을 내고 싶은 건 '여행'인데, 여행은 다행히 '혼자' 돌아다니는 것만 아니라면 아내로부터 환영받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건 일에서 좀 더 많이 벗어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그럴려면 더욱더 열심히 일을 해야 될 것 같아서 그게 고민입니다.

페크pek0501 2011-09-13 00:51   좋아요 0 | URL
oren님은 대단한 분이시군요. 영광입니다.^^ 꽤 삶을 적극적으로 사시는 멋진 분 같아서 감탄하게 됩니다. 뭐든지 치열하게 도전하는 것이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그건 아무나 못 하는 것이므로...^^^ 아마도 그런 분이셔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겠지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레이디경향이군요. 옛날엔 한 달에 두 번 발행되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87, 88년쯤) 레이디경향 기자들이 가수 담당, 탤런트 담당, 영화배우 담당 등 각각 한 명씩 맡아서 일을 하던데요...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님의 블로그에 자주 들르게 될 것 같군요. 오렌님께 앞으로 제가 많이 배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그래서 기쁘다는... 그래서 즐겁다는 pek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9-0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늘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겠죠.또 책을 통한 경험이건 내가 직접 한 경험이건 경험이 시야를 넓혀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경험이 사람의 시야를 좁히는 경우가 많습니다.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늘 새롭게 배워야겠죠.

페크pek0501 2011-09-09 17:54   좋아요 0 | URL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 마음에 새겨 둬야 할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어디에 적어 둬야겠어요. 명언같은데요. ^^^

노이에자이트 2011-09-09 18:02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어록 하나 만들어 주세요. 하하하...

페크pek0501 2011-09-09 18:04   좋아요 0 | URL
예 예 예 ... 항상 어록을 의식하시고 댓글을 달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젠가 제 페이퍼에 올릴지도 모르니까요. 까르르...

순오기 2011-09-0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가 많은 것들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도 많겠지요.
좋은 글,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를...

페크pek0501 2011-09-10 00:1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아마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잘 하실 겁니다. 그리고 글을 보고 느낀 건데, 마음 따뜻하고 넉넉하실 것 같아요. 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제 친구 중에도 그렇게 넉넉한 친구가 있어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님의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는데 댓글은 쓰기가 어려워서 가끔만 남기도 돼요. 저는 페이퍼 쓰는 것보다 댓글 쓰기가 더 힘들어요. 댓글도 자꾸 써야 늘겠지요?

추석 잘 보내세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1-09-10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0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0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09-13 00: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대환영입니다. 저의 서재 태그 보시면 아마도 저와의 공통된 관심사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저는 찾았습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추석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내일도 바쁠 거예요. 한가해지면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모방의 천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햄릿>은 중세 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온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오셀로>는 ‘베니스의 무어 인’이라는 이탈리아 작품을 소재로 하여 쓴 것이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역사극에서 모티브를 갖고 쓴 것이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옛 것’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한 작품이 오히려 그 ‘옛 것’을 뛰어넘어 탁월한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가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에서만 ‘모방’이 필요한 것일까.




1.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
 

 



 

최근 출간된 책으로,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이다. 저자는 천재들과 훌륭한 기업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새롭게 발전시켰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책은 혁신과 창조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번뜩 떠오른다는 데 반기를 든다. ‘바로잉(빌려오기)’의 의미처럼, 저자인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이 세상에 독창적인 것은 없다”며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를 제안한다. 또 ‘남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행위’는 지적인 절도 행위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 기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구글 가이즈뿐 아니라 아이작 뉴턴, 조지 루카스 등의 사례를 들면서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한 기존에 있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알라딘, 책소개)


바로잉이란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빌려오기(또는 모방)를 통한 창의성을 강조함으로써 누구든지 학습하면 창조적일 수 있다는 주장하는 책이다. 여기서 저자가 제안한 ‘아이디어 빌리기’ 6단계란 남의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 되기 위해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1) 문제를 정의하라 2) 빌려라 3) 결합하라 4) 숙성시켜라 5) 판단하라 6) 끌어올려라 등을 말하고 있다.




여태까지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창의성이 넘치는 몇몇은 남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거나 표절했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았다. 아이작 뉴턴이 그랬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세계에서는 독창성과 도둑질이 종이 한 장 차이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저, <바로잉>, 35쪽.





새로운 독창성은 기존의 다른 아이디어들을 도둑질해서 태어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다. 이 책 속에서 발견한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창의성의 비밀은 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앨버트 아인슈타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려면 아이디어를 도둑질할 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단순히 모방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을 뛰어넘는 재창조를 함으로써 빼어난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앞서 말한 셰익스피어처럼.



2.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


내가 읽은 유명한 저술에는 유난히 ‘인용문’이 많았다. 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그랬고,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도 그랬다. 이렇게 저술에 인용문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유명한 저술가들조차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저술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이것은 곧 기존의 낡은 저술을 학습해야만 뛰어난 새로운 저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바로잉>의 저자가 ‘새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면, 나는 ‘새 저술은 낡은 저술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다.


‘인용문’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은 의외로 많았다. 그 중에서 다음의 세 권을 뽑아 정리해 보았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저자는 근대인에게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에 연구를 집중하여, 근대인을 속박으로부터 구했던 ‘자유’가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는 한편 고립과 무기력도 동시에 가져왔음을 지적하고, 결국 자유가 주는 부정적 측면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 비록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전체주의의 심리적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자유’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찰할 기회를 갖게 한다. 
 


129쪽 : 개인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자유롭다고 느낀다. 즉, 그는 혼자 떨어져 있으며, 낯설고 적의에 찬 세계와 대립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불쌍한 동물은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가능한 한 빨리 양도해 줄 수 있는 상대방을 찾고자 하는 강한 염원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뛰어난 서술을 인용해 본다.


189쪽 : 히틀러는 오직 평화와 자유만을 바라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합리화의 첫 번째 예는 <나의 투쟁>의 ‘만약 독일 국민이 역사적 발전에서 다른 나라 국민이 향수한 것과 같은 집단적 통일을 가지고 있었다면, 독일제국은 아마도 오늘날 이 지구상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히틀러, 휴즈, 샤피로, 루터, 칼뱅, 그린, 발자크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가장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진리보다는 오히려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방법이다.”라고 밝혔듯이, 사물을 보는 그의 개성적 견해를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정열’로 보고, “사상교육보다는 오히려 감각과 정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 유머감을 중요시하며, 중국인의 한적한 생활을 예찬한다. 그의 사고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어떻게 즐기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150쪽~151쪽 : 노자가 거의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장자는 맹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맹자와 장자는 다음에서 일치하고 있다. 즉, 인간은 무언가 중대한 것을 잃고 있으며, 철학의 임무는 그 잃은 것, 여기서는 맹자의 이른바 ‘적자지심’(赤子之心, 죄악에 물들지 아니한 깨끗한 마음)을 발견하여 그것을 되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뛰어난 현인이란 그 적자지심을 잃지 않는 자다”라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문명의 기교적 생활이 인간의 나면서부터의 생생한 마음에 주는 영향을 산림의 남벌(濫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52쪽 : 장조(張潮)의 말처럼, “정이 있는 사람은 늘 이성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성을 사랑하는 자가 늘 정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정은 인간세계의 밑바닥을 버티고 있는 것이지만 재(才)는 그 지붕을 채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맹자, 장자, 노자, 장조, 도연명, 김성탄, 월트 휘트먼, 소로우, 플라톤, 퍼거슨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세속적인 성공만을 위해 바쁘게 사는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소로우는 실제로 문명을 등지고 월든 호숫가에서 원시적인 삼림 생활을 했는데, 그 생활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203쪽~204쪽 : 다음 시는 어떤 방문객이 명함 대신 노란 호두나무 잎에 적어 놓고 간 스펜서의 시이다. 이것을 내 오두막의 표어로 자랑스럽게 내걸 수도 있겠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오두막을 가득 채웠으나

도락이 원래 없는 곳이니 도락을 찾지 않는다.

휴식이 그들의 만찬이며 모든 것이 뜻대로이다.

가장 고귀한 정신이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359쪽 : 저술가 길핀은 영국의 숲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숲을 무단출입하거나, 개인의 주택이나 울타리가 숲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옛 삼림법에서는 중대한 불법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행위는 새와 짐승을 놀라게 하고 삼림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불법 삼림 침해라는 죄명으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



(이 책은 스펜서, 길핀, 공자, 맹자, 사아디, 이블린, 카토, 초서, 커비와 스펜스, 오비디우스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3. 결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학문에서든, 예술에서든, 기업에서든 기존의 것을 단순하게 모방만 하면 '표절'이 되지만 모방의 모델이 된 그것들을 결합하고 재배열하고 숙성시켜 새로움을 낳는 재창조를 할 때 ‘창조’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모방’에 관한 명언을 옮겨 둔다.


“모든 것에 관련되는 세 가지 기술은 이용하고, 만들고, 모방하는 것이다.”(플라톤)


“모방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창조를 위해 필수적인 예비 작업이다.”(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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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3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올린 글을 포함해서, 마이리뷰 17편, 마이페이퍼 82편을 올린 것이니 그동안 총 99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에 한 편만 더 올리면 100편이 됩니다. 제가 저를 자랑스러워해도 되나요? 물론 다른 유능한 블로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로선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글을 올리고 나면 쑥스럽고 자신없고 그렇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기억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대충 이런 문장인 듯)이라는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자랑스럽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부끄러운 일기장 같은 것을 용기 있게 공개하는 일이므로... 그것도 자신 없어 하면서... 앞으로 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그런데, 왜 쓰느냐구요?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

그럼 다음에 100번째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200편, 300편의 글이 쌓이길 희망하면서...

stella.K 2011-08-31 13:05   좋아요 0 | URL
오, 축하합니다.
사실 이날까지 블로그질 하면서 왜 쑥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도 중요한 건 성실하게, 진실하게가 더 중요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정말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죠?
앞으로 계속 좋은 글 써 주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1-08-31 1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은 글을 꽤 많이 쓰시던데, 직장생활하시면서도(글 보니깐)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직장 다닐 때 휴일이면 무조건 쉬어야 했는데... 베개가 푹 들어갈 정도로 잠을 자곤 했는데... (잠시 배게인지, 베게인지, 헷갈렸음ㅋ)

stella.K 2011-08-31 19:56   좋아요 0 | URL
헉, 저 직장 안 다니는데요...ㅠ
그러니까 이만큼 쓸 수도 있는 거죠.
안 그랬다면 이렇게 쓰기 어려울 걸요?
단지 봄부터 조그만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이게 그만 무기한 연기가 되서 놀고 있습니다.
혹시 일손이 필요하시지 않나요? 그러면 연락주세요.ㅋㅋ

페크pek0501 2011-09-01 00:4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쓴 이 글 때문임- “어제는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는데” - 이걸 읽고 퇴근하는 것으로 보니 직장 다니시는군, 했어요. 아, 나의 실수!‘퇴근’이라는 말에 그만...

일손이요? ㅋ 저는 논술선생질을 10년간 해서(작년까지요) 요즘처럼 노는 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지 몰라요. 경제적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렇게 블로거질이나 하면서 살고 싶은 걸요. 그런데 내년부턴(아마도) 일을 갖게 될 것 같아요. 놀려니깐 친정엄마, 시어머님 눈치가 보여요. 왜 돈 벌 수 있는데, 안 버느냐고 하시는 것만 같아서. 다행히 학생들 독서글쓰기 강의를 주겠다는 곳이 있어요.^^^

신지 2011-09-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공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그저 박수만 치고 있습;; ^^ 그런데 pek님도 자신 없으시다니 저는 좀 용기가 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피한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ㅡ 저는 글은 고사하고 댓글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ㅋ
이건 (바로잉이라는 책과는) 좀 다른 얘긴데, 저는 책 중에서 '인용문'이 많은 책을 특히 선호하는 편이어서 이 글이 반갑습니다. (반면 가장 싫은 책은 여백이 많고 글씨가 큰 책). 특히 사회과학 쪽에서는 국내 저자들의 문장력이 대개는 일반인 블러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한 가지 불만입니다. 두번째 불만은 저는 저자들이 좀 자신이 아는 것만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말을 함부로 전하는' 책들은 싫어하는 편입니다. 인용을 하지 않고 저자가 남의 말을 전하는 책은 대부분 왜곡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 사람들의 책은 마치 논술교재 같습니다. 마치 자신이 그 사람/철학자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이 말합니다. ^^
뭐랄까 다양한 인용문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책을 사는 데 있어 가장 뿌듯함을 주는 목적이랄까요. 인용문은 대체로 핵심적이고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또 인용문이 많다는 것은 저자가 독서가이거나 전공자일 확률이 높아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독서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명언을 모은 책이나 잠언 책은 곧바로 반품하는데, 좋은 말이나 문장도 어떤 글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만 공감이 되더군요. 너무 당연한 얘기만 한 것 같은데, 가령 저는 강준만의 책도 그런 면이 오히려 좋습니다만. 전에 보니까 바로 그점(인용문이 많다.) 때문에 싫다는 분도 많이 계시더군요.

어떤 사람이 인용한 문장은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왜 저 말을 인용했을까? 저 문장이 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좋은 걸까?
그리고 인용한 문장이 (나도) 좋을 때, 또 글에 적절한 인용일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글에서 글쓴이가 인용하는 문장은 글쓴이를 나타내주는 표현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이번엔 어떤 책일지, 어떤 인용문이 있을지, pek님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그점도 매번 흥미롭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다락방님도 그런 페이퍼를 많이 쓰십니다.) 취향이 그러므로 꼭 아는 분이어서가 아니라, 저는 pek님 글같은 책이 나오면 아무말 없이 사는 편입니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페크pek0501 2011-09-01 00:51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을 쓰시다니... 꾸벅 감사드리고 싶네요. ^^^

제 책을 사고 싶으시다고요? 아, 대박입니다. 제가 댓글 받아본 중에 최고의 찬사예요. 힘을 주시는 군요. 만약 책이 나오게 되면 제가 선물로 한 권 보내드려야 할 것 같군요. 대박의 댓글이었으니까요.^^

자신 없음에 대하여 - 이것 정말입니다. 제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글 중 아직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게 많은데 이‘자신 없음’때문입니다. 수준 미달이라고 스스로 느껴져요. 그렇다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다 괜찮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는 인용문이 많은 책을 좋아한다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이상하게 인용문이 많더라구요. 구입할 땐 인용문을 보고 구입하진 않았는데. 오히려 인용이 많아 읽다가 놀라게 되는 경우죠. 명저에 특히 인용문이 많은 것 같아요.

인용 많이 하려면 그 주제에 대해 필자가 이미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통찰력이 없으면 인용이 불가능해요. 같은 문맥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거든요. (저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인용을 하고 있지만요.)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이 인용을 많이 하면서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죠. 명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인용을 많이 하면 하류로 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인용을 하든 안 하든 글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겠죠.

저도 강준만 저자의 책 좋아해요. 제게 필요한 책이 무언지 알려 주거든요.

아, 누가 더 길게 썼나요? ^^^

루쉰P 2011-09-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리뷰를 통해 제 서재 글쓰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 방황을 하며 지내다가 이렇게 모처럼 들어와 가슴 깊이 박히는 리뷰를 보내요. ㅋㅋ
게다가 100편에 육박하는 리뷰까지 대단하심, 전 아직 24편 ㅋㅋ! 암튼 대단하셔요. 근데 자신이 없으시다니 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둔황'을 쓴 이노우에 야스시가 한 말이 기억나네요. 그의 딸도 시인인데 좋은 시를 쓰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고 하자, 하루에 100편 씩 써라! 한 달에 몇 편 쓰고 거기서 대작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 멍청한 짓이다 라고 했죠 ^^
또한 루쉰 선생은 자기를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천재 따위는 없다. 난 타인이 커피 마실 시간에 쓴 것 뿐이다 라고 하셨죠. 정말 커피를 안 마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오로지 노력이라고 말씀하신 뜻이라 봅니다.
근데 저보다 더 뛰어나신데 자신감이 없으시면 전 어떻해요. T.T

페크pek0501 2011-09-01 17:4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히려 제가 한 수 배웠는걸요. 루쉰님의 '분노하라'의 리뷰를 보니깐 책의 내용과 자신의 생활을 잘 매치시켜 쓰셔서, 나도 이렇게 써야지, 했는걸요. 그 리뷰, 좋았습니다. 조지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중 '서점의 추억'이란 글을 연상시켜요.

책 리뷰가 필요한 이유는 하루에 백 권 넘게 쏟아지는 신간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읽어내겠습니까. 리뷰를 쓰는 사람도, 리뷰를 읽는 사람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요즘 리뷰들을 묶어 낸 책은 대부분 기본 이상은 팔리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거지요.루쉰님의 리뷰를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노력!!!!!!!!!!!!, 정말 중요하죠. 문제는 집중력인 것 같아요. 요즘 기업인들의 자녀들이 경제계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아버지를 닮아서도 아니고, 그만큼 본인이 집중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늘 글쓰기와 관련한 생각을 하고 신문을 봐도 방송을 봐도 책을 봐도 글쓰기에 관련해 생각해야 돼요. 그런데 글쓰기를 좋아하면 저절로 집중력이 생기고 그 집중력이 모든 것에서 글감을 얻어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결론은 '집중력을 가진 노력'인 것 같아요. 요즘 든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남들이 커피를 마실 때 자신은 글을 쓰고 있는 그 집중력!

또 뵙기를... 갑자기 나타나셔서 더 반가웠다는...것.

노이에자이트 2011-09-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자기 글인 것처럼 시치미 떼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키는지 잘 모르더군요.외국에선 어린 시절부터 표절이 큰 범죄임을 가르친다는데...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이 맞다면 출처를 제대로 밝혀야겠죠.이런 개인블로그에서도.

페크pek0501 2011-09-01 18: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표절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도덕적 양심을 위해서도 인용의 출처를 꼭 밝혀야지요. 블로그도 자기 맘대로 운영할 수 있는 개인적(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글이 공개된다는 점에서 공적 공간인 만큼 사회적 예의를 지키는 글쓰기를 해야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칙하는 스포츠맨과 같죠. 글쓰기든 스포츠든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에 앞서 우선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반가웠어요. 노이에자이트님.^^^

노이에자이트 2011-09-02 16:49   좋아요 0 | URL
궁하면 개인블로그라는 것을 강조하여 요리조리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한심해요.남에게 공개하는 글이라면 책임을 져야하는데 말이죠.

페크pek0501 2011-09-03 14:1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님의 제2의 파브르곤충기를 읽고 오는 길입니다. 무엇인가를 관찰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에요. 저는 꿀병을 향해 한 줄로 줄 서서 기어오는 개미들의 행진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질서정연하답니다. 아마 꿀병의 겉에 꿀이 묻어 있었던 모양.

빵조각을 들고 가는 개미들의 협동정신에는 감탄을 했어요.

앞으로도 동물의 세계를 많이 보여 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11-09-0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재미있을텐데...

저도 이야기 거리를 열심히 골라보겠습니다.
 

1.  좋은 시

오늘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다음의 시가 마음을 끌어 훔쳐 왔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 눈앞에 없는 사람 ㅣ 심보선 지음

요즘 이 시집이 많이 팔리고 있어요. 그만큼 좋은 시가 많은 모양입니다. 이 시집의 리뷰를 쓰신 블로거님의 글에서 가져왔는데, 그 블로거님이 이해해 주시겠지요. 제가 양심은 있어서 댓글은 남기고 왔으니까요.

(여러분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오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신부들은 아마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겠지요.

(당신은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저는 졸업한 학교마다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이 시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2. 좋은 영화 

늦여름입니다. 어젯밤에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밤12시가 넘었습니다. 늦여름의 시원한 밤바람이 얼마나 좋았던지 길에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았습니다.(누가 봤다면 돌았다고 했을 것임) 그렇게 늦은 시간에 길을 걷는다는 게 즐겁기도 했어요. 다른 날 같았으면 벌써 잠이 든 시간입니다. 저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영화, 참 재밌습니다.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그럴 때 성공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얘기를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서 볼 만합니다. 청소년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권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유쾌하도록 하하하 웃으며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제가 본 것 중에서 <7광구>보다 훨씬 재밌고 <써니>보다 조금 더 재밌고 <캐리비안의 해적>만큼 재밌습니다. 

<7광구>는 스릴이 지나쳐 지루하지 않고 집중력은 갖게 하나 관객으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너무 받게 하여 또 보고 싶지 않은 영화.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써니>는 단순한 시나리오지만 연출이 뛰어나 기분좋게, 신나게 감상하게 하는 영화. 마치 신나는 음악 감상을 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좀 작위적인 결말이 흠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펼쳐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볼 수 있는 영화. 특히 인어아가씨가 출현하는 신비로운 장면은 압권이다. 또 봐도 좋을 듯.  

<세 얼간이>는 의미 있게 교훈적이고, 눈물 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웃게 만드는 영화. 또 봐도 좋을 듯.

..............................

댓글로 쓰기 시작하다가 글이 길어져 그냥 페이퍼로 올립니다.

제겐 짧게 쓰는 기술은 없는 듯합니다. 쓰다 보면 자꾸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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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뭐가 길다고 그러십니까?
저만 할까요.ㅎ
영화 많이 보시네요.
전 귀찮아 개봉영화 언감생심이고 지나간 영화 IP TV로 봅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1-08-30 10:22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손님, 환영합니다.

이 글이 댓글로는 길고 페이퍼로는 짧지요? 댓글로 썼더니 너무 길어져서 옮겼어요. 저의 집에서 극장 간판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데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보기가 쉬워요. 멀다면 자주 못 봤을 거예요.

스텔라님은 영화리뷰를 길게 쓰는 게 아니라 실속 있게 영양가 있게 쓰시는 거죠.
저도 시나리오에 관심 많아요. 시적인 대사도 좋지만 사유 깊은 대사는 외우고 싶어지죠. 사실은 영화리뷰 써 보려고 영화 관련 서적을 한꺼번에 5권이나 샀었는데, 지금까지 영화리뷰를 한 편도 못 썼다는 것.ㅋ 저는 칼럼이나 쓰고 스텔라님의 영화리뷰 감상이나 해야겠어요.

순오기 2011-08-2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저녁상을 물리고 편안한 휴식을 즐기는 밤입니다.^^
시인은 정말 대단해요, 저런 표현을 잡아내다니...
오늘 독서회원이 '세 얼간이'재밌다고 추천하기에 금욜 심야로 볼까해요.

페크pek0501 2011-08-30 10:24   좋아요 0 | URL
고향손님 같은 반가운 손님이 오셨네요. 제게 용기를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처음 저와 비슷한 연령이신 걸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순오기님의 무궁한 발전을 늘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그저께 극장에서 영화 보다가 갑자기 순오기님 생각이 났어요. 방문해야겠다고 하면서...

2011-08-29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1-08-2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ㅡ>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주인공이 안 다치면 화나죠ㅋㅋ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칼로 찌르거나 고문 장면 같은 거 나오면 못보고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안 됐거나 아픈 사람이 나오는 '다큐'는 ㅡ 예를 들어 인간시대 ㅡ 같은 걸 도무지 못보겠더군요. 너무 실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들 잘 보고 감동을 받으면, 저는 이해가 잘 안 됐었는데, 저걸 어떻게 견디며 보는 걸까 싶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감정이입하는 부분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반면 영화로는 웬만큼 긴박하고 잔혹해도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걸 보면 아무리 현실감이 있어도 영화는 영화로 느껴지나 봐요.

페크pek0501 2011-08-30 10:3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아픈 환자 나오는 프로는 채널을 돌리게 돼요. 저는 친구도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전 그런 친구에 대해 질투 안 해요.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7광구 같은 영화는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보는 내내 정신적으로 고단했어요. 처음으로 생각한 건데, 딴 생각 못하게 사람을 강하게 집중시키는 영화가 꼭 좋은 영화인가, 가끔은 옛 추억을 더듬으며 볼 수 있는 영화도 좋은 게 아닌가, 생각 들었어요. 써니처럼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교시절을 떠올리게 되죠. 아련히 추억에 젖게 해요.

신지 2011-08-31 01:43   좋아요 0 | URL
저는 pek님의 다른 글에서 이 말에 굉장히 공감이 되더군요. ㅡ "꿈을 향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 내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기의 꿈을 웃으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하다. "

저도 경쟁심이 많은 사람은 간혹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시기심 질투심은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pek님의 글들을 보면 노력한다기보다 무언가 그것을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그점이 좋아 보였어요. 영화 본 건 적어 놓는데 지금 보니까 마지막으로 극장 간 게 작년 12월에 '부당거래'네요. 올해는 한 번도 극장에 못 가봤다니, 초딩때 이후 처음인듯 ㅠ

실은 (글도 반갑지만) pek님 이런 가벼운 페이퍼는 처음이어서 무척 반가웠어요. 꼭 칼럼이나 단상이 아니어도 이번처럼 가볍게라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08-31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