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디의 다른 얼굴
사람을 잘못 볼 때가 있다. 인품 좋은 사람으로 여겼던 사람이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고, 냉정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사람이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기도 한다. 또 누군가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가 제각기 다르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람의 의외성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가까이 지내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서도 의외성에 놀라게 되는 일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위인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도 의외성이 있을까.
만약 우리가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 중에 그의 훌륭한 점에 반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외성이 숨어 있다면 우리는 그의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테면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마하트마 간디가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을 했다면 말이다. E. M. S. 남부디리파드 저,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이란 책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인도의 대표적 좌파 정치인인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간디의 또 다른 얼굴을 조명한다.
“간디는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이자 구심점이었으며 비폭력의 성자로 알려졌지만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라 문제적 인물, 논쟁적 인물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징병해 사지로 내모는 등 또 다른 얼굴을 가졌음을 (이 책은) 폭로한다.”(일요시사, 2011. 9. 5.)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징병해 사지로 내몬 사람, 바가트 싱을 비롯해 여러 혁명가들을 서둘러 처형해 달라고 영국 정부에 요청한 사람, 통념과 달리 정치적 목적에 따라 때로는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방치한 사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인도국민회의당 의장이 된 수바스 찬드라 보세에게 압력을 가해 사퇴시키고 결국 쫓아낸 사람. 이 사람은 충격적이게도 마하트마 간디와 동일 인물이다.”(알라딘, 책소개)
우리는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를 간디의 말을 인용해서 쓴 수필, <무소유>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무소유>에서 간디의 말을 인용한 글을 보자.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한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중략)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법정 저, <무소유>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간디는 ‘자기 소유’를 경계하며 개인적 욕심을 모두 버린 삶을 살았다. 그런 간디의 이면의 삶을 보여 주는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이 책은 그의 의외성을 밝히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그 내용엔 놀라겠지만 누구나 의외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엔 놀랄 일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이면을 발견하는 일은 다음과 같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루소는 그의 교육사상을 밝힌 <에밀>을 썼을 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의 다섯 명의 자식을 부양하기 힘들다며 고아원에 버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의 명작으로 탁월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지만 일확천금을 노렸던 도박꾼이었다.
마르크스는 뛰어난 경제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돈을 번 적이 없었다.
2. B사감의 다른 얼굴
현진건 저, <B사감과 러브 레터>라는 소설이 있다. 그 내용을 옮겨 보면 이러하다.
C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사감이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예수꾼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은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칠 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사감이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소위 ‘러브 레터’였다. 여학교 기숙사라면 으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학교로도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여학생이 많은 탓인지,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사랑 타령이 날아들어 왔다. 그런 편지는 물론 B사감의 손에 떨어진다.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편지를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이처럼 B사감은 학생들에게 오는 러브 레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화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을 만나러 오는 남자라면 아버지일지라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내란 믿지 못할 것, 우리 여성을 잡아먹으려는 마귀인 것, 연애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가 지어낸 소리라고 설법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괴상한 일이 벌어진다. 깊은 밤중에 어디선지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겨운 정담과 간드러진 웃음 소리가 들려오곤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한 여성이 학생들에게 온 러브 레터를 가지고 밤마다 혼자서 자기 방에서 연애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괴상한 일의 장본인은 놀랍게도 바로 B사감이었다.
그토록 근엄하게 보이던 그녀가, 러브 레터라면 질색하던 그녀가 러브 레터를 읽으며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B사감 역시 그런 러브 레터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날카롭게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의외성에 주목하게 한다.
3. 당신에게도 의외성이 있다
나의 친척 중 한 분이 가정에선 가부장적이고 꽤 엄한 아버지인데, 외출하고 돌아오면 씻고 나서 자신이 신었던 양말을 꼭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 놓고 잠자는 습관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온 날도 그렇다고 한다. 정말 의외이지 않은가.
잘난 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의외로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 무서움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의외로 겁쟁이일 수 있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의외로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이기주의자일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의외성을 놓치고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서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남이 잘 모르는 의외성이 있을 것이다.
간디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이런 생각을 했다. ‘오히려 의외성이 없는 사람이 의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