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겼다고 해서 가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매장이 컸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자주 가 보게 될 것 같다.

책 구경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새 책으로 구입하고, 중고 책을 애용하는 건 우리 식구들일 것 같다.

중고 서점이 생겼다니까 딸과 남편이 무척 반가워하는 걸로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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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때 초상권 침해를 운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사람이 없을 때 빨리 찍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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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19-05-26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수점 꽤 넓은데요. 전 좁긴해도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볼수 있어서 합정점을 애정해요 ^^

페크pek0501 2019-05-26 22:00   좋아요 1 | URL
예. 제 예상보다 넓더라고요. 사진은 더 넓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지하철 역 지하에 있기 때문에 지하철 이용자들 눈에 잘 띌 것 같습니다.

애정하는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 요즘은 서점마다 편히 책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습니다.

댓글, 감사히 받았습니다. 내일부터 한 주 즐겁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9-05-27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수역의 알라딘 서점도 근사하네요. 사진으로 보는데도 책과 다양한 상품이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얼마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구경하고 왔어요. 사진을 조금 더 찍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이 페이퍼 보면서 많이 듭니다.
사진 잘 봤습니다.
페크님,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19-05-29 09:42   좋아요 1 | URL
예. 근사하더라고요. 사진을 많이 찍어야 그중 맘에 드는 걸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같은 장면을 각도를 달리해서 많이 찍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벤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올려 봤습니다.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고... ㅋ

요즘 더위가 주춤해서 괜찮은데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걱정이 되네요.
영양 풍부한 음식을 드시고 더위 잘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9-05-3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새 서점의 이벤트가 있다니,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까지 5월, 그리고 내일부터는 6월이라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이제는 진짜 더워지는 날들이 더 많아지겠네요.
며칠 전 비가 온 다음부터 조금 시원해져서 좋은데, 더워질 생각을 하면 벌써 마음이 여름입니다.
6월에는 더 좋은 일들 많은 한 달 되시면 좋겠습니다.
페크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6-02 12:22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아무래도 이 여름에도 역시 책 속으로 들어가 더위를 잊으며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책은 많이 사 두었으니 걱정 없네요.ㅋ

서니데이 님에게도 좋은 일 가득한 6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
감사합니다.


icaru 2019-06-19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 가까운 곳에 사시나 봅니다 ^^ 근데 저는 아직도 안 가봤어용 ㅠㅠ;;

페크pek0501 2019-06-21 22:46   좋아요 0 | URL
아, 예. 집에서 몇 정거장만 가면 되니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알라딘 중고서점이 여러 군데에 있는데 저도 처음 가 봤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제목 : 글을 왜 쓰는가

 

 
지금의 이 시대는 작가만 글을 쓰는 시대가 아니다.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마다 글 쓰는 이유가 각각 다를 것이므로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중 두 가지만을 뽑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인가, 재미있어서인가. 글을 왜 쓰는가.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는 목적 중 하나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책을 통해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글 쓰는 사람은 남에게 읽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여기엔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이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 또는 지적 능력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렇게 썼다. “의젓한 인간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답 –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최인호 작가는 오래전 한 일간지(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사뮈엘) 베케트니 이런 작가들이 인터뷰를 안 하는지 알겠어. 인터뷰라는 건 자기 미화야. 100% 자기 미화. 난 옛날부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동시에 싫었어. 나온 기사를 보면, 진짜 내 얘기가 아니야. 남에게 보여지는 내 얘기였어.”


 
여기서 ‘자기 미화’란 ‘자기 자랑’인 셈이다. 신문 인터뷰뿐만 아니라 TV 출연에서도 ‘자기 자랑’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며 자신의 집, 부부 금실, 음식 솜씨 등을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한결같이 집은 멋지게 꾸며져 있고, 부부 금실은 좋으며, 음식 솜씨는 최고임을 보여 준다. 결국 ‘자기 자랑’이다. 의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가 TV에 출연해 하는 일은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강점을 알리는 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어느 의사는 유명 인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정치가가 출연하면 그가 출마할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여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작가가 출연하면 그가 쓴 책의 판매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주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주부들이 모이는 친구 모임엔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이 단골 화젯거리가 된다.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에 이런 글이 있다. “평균적인 유부녀는 다른 유부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사는 듯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그들의 남편보다 부유하고 자기 자녀들이 그들의 자녀들보다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고자 애를 쓴다. 부유한 유부녀라면 집안 관리와 인테리어에 있어 이웃들보다 나은 취향을 과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TV 출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통 주부들이나 모두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어떤 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지 글 쓰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다시 말해 ‘글을 왜 쓰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서'라고 볼 수만은 없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자신을 자랑할 방법은 글쓰기말고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글쓰기를 악기 연주와 비교할 수 있다. 누구나 피아노나 기타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결국 그 악기에 대한 흥미를 가진 자만이 악기를 다룰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도 글 쓰는 재미를 아는 자만이 글을 쓸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글쓰기 그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져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만 글을 쓴다면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일기의 독자는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도 일기를 쓰는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자체가 좋아서 쓰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볼까 봐 꼭꼭 숨겨 둔다. 이럴 때 일기는 나만의 비밀스런 세계 속에서 작은 행복을 갖게 한다. 매일 쓰는 건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씩 꾸준히 써 온 게 삼십 년 이상이 되었다.


 
글쓰기엔 분명히 문장과 문단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적합한 낱말의 선택, 그것들의 조합, 직유나 은유로 문장을 묘사, 그것들의 배치, 문단 구성 등을 하는 행위는 마치 퍼즐놀이를 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노트에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로 글을 쓸 때 자판을 두드리는 재미가 있다.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재밌는 놀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큰 동기를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로 ‘미학적 열정’으로 인한 즐거움을 들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확실히 글쓰기에는 강한 매력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왜 연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연인들은 ‘만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라고 말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 글을 쓴다고 할 수 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겐 이 세상에서 글쓰기만큼 유혹적인 일이 없다. 만약 더 유혹적인 게 있다면 글 쓸 시간에 그것을 할 것이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들은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도 지금 이 순간 행복 속에 있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4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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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책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

 

 

 

 

 

 

 

 

 

 

 

 

 

 

 

 

 

 

 

 

 

 

이수역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겼다고 해서 가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매장이 컸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우니 자주 놀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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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가다가 빨간 장미꽃이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으로 남겼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나다니!

 

감탄의 순간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기뻤다.

 

5월이 가고 있다.

 

장미꽃도 자취를 감춘 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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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장미꽃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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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지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남들 말고 내 눈에 만족할 만한 글을 써 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게 안 돼요.”

 

 

그때 난, 건방 떨고 있네,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말이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공감할 수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글을 써 오다 보니 글 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글을 보는 안목이 높아졌나 보다. 나도, 남들 말고 내 눈에 만족할 만한 글을 써 보는 게 소원이 되었다. 이젠 내가 건방 떨게 된 것이다.(그러니까 남에 대해 흉을 보면 안 된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

 

 

칼럼이라고 쓴 내 글들에서 결점이 보인다. 내용은 좋은데 재미가 없거나, 재미는 있는데 사유와 성찰이 빠져 있거나, 좋은 내용과 재미를 갖추었다 싶으면 글이 길고 구성이 엉망이고, 다 괜찮다 싶으면 밑줄을 그을 만한 좋은 문장이 없다.

 

 

그러니 내 눈에 ‘이건 완벽한 글이야.’라고 생각되는 칼럼을 써 보고 싶지 않겠는가. 

 

 

내가 완벽한 칼럼이야, 라고 생각한 글을 퍼 왔다. 다음 글이다.

 

 

....................
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 <84> 푸른 눈과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갖고 싶은 소녀가 있다. 소녀는 영화에 나오는 백인 여자들의 눈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백인 인형의 눈을 닮고 싶다.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을 것 같고 폭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비현실적이지만 허황한 생각만은 아니다.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었다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인간답게 살았을 테니까.

 

 

흑인 소녀의 이름은 피콜라. 노벨 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에 나오는 인물이다. 소녀가 꿈을 이루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자신이 푸른 눈을 갖게 됐다고 믿는다. 결국 미친 것이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라서 아득한 과거의 일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피부색이 차별의 이유가 되는 미국 사회니까.

 

 

어디 미국뿐이랴. 차별은 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 우리에게도 있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를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코끼리의 나라 네팔에서 온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피부가 까무잡잡한 소년. 소년은 다른 한국인들처럼 피부색이 옅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보호색을 띤 나방처럼 한국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왕따’가 되거나 아이들이 쏘는 BB탄 장난감 총의 표적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아침마다 표백제를 풀어 세수를 하고 저녁이면 거울을 보며 얼굴이 얼마나 하얘졌는지 확인한다.

 

 

미쳐버릴 정도로 푸른 눈을 갖고 싶어 하거나 피부색이 옅어지기를 바라며 표백제로 세수를 하는 일이 현실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스토리 뒤에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차별과 상처의 그림자들이 아른거린다. 그 그림자들을 조금씩이라도 걷어내려는 노력, 바로 이것이 공동체의 윤리적 역량이다.

 

 

문학평론가 · 전북대 교수
....................

 

 


원문은 이것이다.
http://news.donga.com/3/all/20190416/95085130/1

 

 

 


동아일보(2019-04-17)의 오피니언 지면에 84번째 연재된 왕은철 님의 짧은 칼럼이다. 4.8매의 글이니 이백 자 원고지 다섯 장이 안 되는 글이다.

 

 

두 개의 소설을 가지고 딱 네 문단의 글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용 면에서 깊은 울림이 있고 형식 면에서 글이 깔끔하고 완벽하다는 느낌을 준다. 나도 흉내 내어 써 보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이런 글은 고수만이 쓸 수 있는 글인 것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글이기에 수요일이 되면 신문을 펼칠 때마다 이번엔 어떤 글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는 왕은철 님의 광팬이 되었다. 연재한 글들을 묶어 책으로 출간하면 좋겠다. 당연히 구입할 것이고 책이 닳도록 읽을 것이다. 

 

 

쉽게 쓴 것 같고 쉽게 읽히는데 막상 써 보려고 하면 그렇게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는 것. 그것이 고수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번역가이기도 한 왕은철 님의 책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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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에는 잠자기 싫다. 잠자는 시간이 아깝고 읽고 있는 책을 덮어야 한다는 게 싫다. 아침에는 일어나기 싫다. 잠을 더 자고 싶다고 느낀다. 왜 나는 어긋나길 좋아해서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운가.

 

 

 

 

 

2.
김형석 저, <백년을 살아보니>에 따르면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한다. 저자처럼 백년쯤 살아야 그런 결론을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 백년을 살지 않아도 알 것 같다고 느낀다. 난 50대이니 아직 60대가 되지 않아 정확히 모르지만 확실한 건 40대로 돌아가는 건 싫고 지금 50대가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40대는 너무 바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바빴고 돈 버는 일에 전념하느라 바빴고 살림하느라 바빴다. 세 가지의 일을 병행하면서 나는 육아의 노예, 돈벌이의 노예, 살림의 노예였다.(이 표현이 심한가. ㅋ)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밥을 해서 둘째 아이를 먹여 학교에 보내야 했다. 이제 아이 둘은 성인이 되어 내가 챙겨 주지 않아도 되고 남편은 원래 밥과 국만 있으면 스스로 챙겨 먹고 출근하니 내가 늦잠을 자도 될 만큼 한결 여유로워졌다. 

 

 

새벽밥을 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이 좋다. 돈벌이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이 좋다. 살림을 하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 지금이 좋다. 이제 아이들을 챙겨 줘야 하는 일이 많지 않고 내 시간이 많아졌다. 친정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다.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몇 년 뒤에는 딸이 결혼을 하게 되어 손주를 돌보는 일을 내가 맡게 될 수 있으니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하고 이 자유를 즐겨야겠다.

 

 

현재 자유를 즐기고 있다. 국문학과 교수님의 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있다.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남으로부터 배우는 입장이 되고 나니 마음이 참 편하다. 수업 준비를 할 필요가 없고 가기 싫으면 결석해도 되니 그야말로 ‘내 맘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동네 가까운 곳에서 발레를 2년쯤 배웠다. 저녁 때 배우러 다니느라 불편한 점이 있었다. 이제 시간이 여유로워서 내가 배우고 싶었던 현대 무용을 지하철을 타고 배우러 다닌다. 낮 시간에 현대 무용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리 되었다. 발레도 재밌지만 현대 무용은 더 재밌다. 멋진 동작을 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 무용 시간이 행복하다. 그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인생은 알 수 없으니 내가 또 돈벌이를 하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를 즐기고 싶다. 때로는 고단해 하면서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내가 자유를 맘껏 누리며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문학 강의와 현대 무용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3.
....................
선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서.
....................

 

 

 

 

 

4.
....................
껍질째 먹는 사과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데도
사과 한입 깨물 때
의심과 불안이 먼저 씹힌다

 

주로 가까이서 그랬다
보이지도 않는 무엇이 묻었다는 건지
명랑한 말에도 자꾸 껍질이 생기고
솔직한 표정에도 독을 발라 읽곤 했다

 

그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전례가 그렇다는 거
사과가 생길 때부터 독이 함께 있었다는 얘기

 

이거 비밀인데,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목에 탁 걸리는
이런 말의 껍질도 있지만

 

중심이 밀고 나와 껍질이 되었다면
껍질이 사과를 완성한 셈인데

 

껍질에 묻어 있는 의심
이미 우리가 먹어온 달콤한 불안
알고 보면 의심도 안심의 한 방편이었을까

 

-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서.
....................

 


이렇게 좋은 시를 혼자만 아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올린다.

 

 

 

 

 

 

 

 

 

 

 

 

 

 

 

 

 

 

 

 

 

 

 

 

 

 

 

 

 

 

어제 찍은 사진 두 장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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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4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5-1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채화 같아요 글과 사진이...^^

페크pek0501 2019-05-15 22:26   좋아요 0 | URL
수채화 좋지요.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만족입니다. 수채화 같은 분위기 좋아합니다. 굿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2019-05-14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5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5-15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잠> 박준 시인 이번 시집에서 제가 제일 좋아라 한 시입니다. 그리고 첫 시 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05-15 22:36   좋아요 0 | URL
syo 님은 시도 많이 아시는군요. 요즘 잘 나가는 시인인데 시를 참 잘 쓰더라고요.
저도 선잠을 읽자마자 반해 버렸어요. 시란 언어의 유희이기도 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의미 또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일인 것 같더군요.
저는 시를 쓸 줄 모르지만 맘에 드는 시를 보면 시를 쓰고 싶어져요. 그래서 박준 시집을 읽고 나서 시 강의를 인터넷에서 찾고 그랬답니다. 결국 적당한 걸 못 찾았지만요.
앞으로 시를 사랑할꼬예요. 반가웠습니당~~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