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글을 왜 쓰는가
지금의 이 시대는 작가만 글을 쓰는 시대가 아니다.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마다 글 쓰는 이유가 각각 다를 것이므로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중 두 가지만을 뽑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인가, 재미있어서인가. 글을 왜 쓰는가.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는 목적 중 하나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책을 통해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글 쓰는 사람은 남에게 읽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여기엔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이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 또는 지적 능력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렇게 썼다. “의젓한 인간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답 –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최인호 작가는 오래전 한 일간지(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사뮈엘) 베케트니 이런 작가들이 인터뷰를 안 하는지 알겠어. 인터뷰라는 건 자기 미화야. 100% 자기 미화. 난 옛날부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동시에 싫었어. 나온 기사를 보면, 진짜 내 얘기가 아니야. 남에게 보여지는 내 얘기였어.”
여기서 ‘자기 미화’란 ‘자기 자랑’인 셈이다. 신문 인터뷰뿐만 아니라 TV 출연에서도 ‘자기 자랑’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며 자신의 집, 부부 금실, 음식 솜씨 등을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한결같이 집은 멋지게 꾸며져 있고, 부부 금실은 좋으며, 음식 솜씨는 최고임을 보여 준다. 결국 ‘자기 자랑’이다. 의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가 TV에 출연해 하는 일은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강점을 알리는 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어느 의사는 유명 인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정치가가 출연하면 그가 출마할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여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작가가 출연하면 그가 쓴 책의 판매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주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주부들이 모이는 친구 모임엔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이 단골 화젯거리가 된다.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에 이런 글이 있다. “평균적인 유부녀는 다른 유부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사는 듯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그들의 남편보다 부유하고 자기 자녀들이 그들의 자녀들보다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고자 애를 쓴다. 부유한 유부녀라면 집안 관리와 인테리어에 있어 이웃들보다 나은 취향을 과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TV 출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통 주부들이나 모두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어떤 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지 글 쓰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다시 말해 ‘글을 왜 쓰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서'라고 볼 수만은 없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자신을 자랑할 방법은 글쓰기말고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글쓰기를 악기 연주와 비교할 수 있다. 누구나 피아노나 기타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결국 그 악기에 대한 흥미를 가진 자만이 악기를 다룰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도 글 쓰는 재미를 아는 자만이 글을 쓸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글쓰기 그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져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만 글을 쓴다면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일기의 독자는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도 일기를 쓰는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자체가 좋아서 쓰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볼까 봐 꼭꼭 숨겨 둔다. 이럴 때 일기는 나만의 비밀스런 세계 속에서 작은 행복을 갖게 한다. 매일 쓰는 건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씩 꾸준히 써 온 게 삼십 년 이상이 되었다.
글쓰기엔 분명히 문장과 문단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적합한 낱말의 선택, 그것들의 조합, 직유나 은유로 문장을 묘사, 그것들의 배치, 문단 구성 등을 하는 행위는 마치 퍼즐놀이를 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노트에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로 글을 쓸 때 자판을 두드리는 재미가 있다.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재밌는 놀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큰 동기를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로 ‘미학적 열정’으로 인한 즐거움을 들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확실히 글쓰기에는 강한 매력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왜 연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연인들은 ‘만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라고 말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 글을 쓴다고 할 수 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겐 이 세상에서 글쓰기만큼 유혹적인 일이 없다. 만약 더 유혹적인 게 있다면 글 쓸 시간에 그것을 할 것이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들은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도 지금 이 순간 행복 속에 있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4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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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책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
이수역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겼다고 해서 가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매장이 컸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우니 자주 놀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