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나이는 가을

 

 

가을이구나.

 

 

계절만 가을이 아니라 내 나이도 가을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이 봄,
청년 시절은 여름,
중년 시절은 가을,
노년 시절은 겨울.

 

 

내 맘대로 나눠 봤다.

 

 

계절과 내 나이의 다른 점은, 계절은 가고 나서 또 돌아오는데 내 나이는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가을은 내년에 또 오지만 내 나이는 내년엔 다른 나이가 되고 만다. 그래서 언젠가 내 나이는 겨울이 되겠지.

 

 

내 나이는 가을.

 

 

여름이 지난 걸 아쉬워해야 하나 겨울이 아직 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나.

 

 

 

 

 

 

2. 내게 용기를 주는 말

 

 

오래전에 어느 강의를 통해서 들었다. 소설은 50세가 넘어서 써야 한다고. 그 이유는 50세가 넘어야 인생이 뭔지 알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이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 나도 뭔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는다.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은 지금 시작하는 게 제일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정신이 젊어야 한다는 의견엔 동의한다. 그래서 나이 많은 작가들이 일부러 젊은이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고 하지 않던가.

 

 

젊은 정신을, 젊은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도 젊은이들의 글을 많이 읽을 생각. 

 

 

 

 

 

 

3. 그가 행복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죠?

 

 

그가 행복한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가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면 됩니다.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직업도, 명예도, 돈도, 권력도 아니고 취미인 것 같아요. 혼자서 연구하며 바둑을 두든, 골프를 치든, 낚시를 하든, 글을 쓰든, 책을 읽든 무엇이든 할 일이 있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못 견뎌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할 짓거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 뭐든 하기 나름이다

 

 

어릴 때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 

 

 

“너 커서 뭐 되고 싶으냐?”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낮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지만 욕먹는 이도 있고,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존경받는 이도 있다. 뭐든 하기 나름이다.

 

 

 

  
 


5. 1만 권을 읽었다는 사람

 

 

3년 간 1만 권을 읽었다는, 어떤 책의 저자가 있다. 이것 거짓말 같다. 3년 간 1만 권을 읽으려면 하루에 10권씩은 읽어야 하는 건데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책만 읽으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화장실 가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줄곧 읽은 날엔 하루에 한 권은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권은 읽지 못했다. 개인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걸 감안해서 최대한으로 잡더라도 하루에 세 권 정도까지만 읽을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상은 안 되는 일이라고 본다. 그것도 장기적 연속은 불가능하다. 명절도 있고 손님으로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도 있고 누구 만나는 약속도 있을 텐데... 또 몸이 아프거나 쉬고 싶을 때도 있지 않겠나. 그러므로 하루에 10권씩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

 

 

 

 

 

 

6. ‘돈 부자’보다 더 좋은 것

 

 

우리 집 거실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어떤 방문자가 말했다.

 

 

“책 부자시군요.”

 

 

내 대답.

 

 

“예, 이렇게 보기만 해도 흐뭇하죠.”

 

 

‘돈 부자’보다 ‘책 부자’가 되는 게 나는 더 좋다. 책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책에 대한 열정이 식는다면 설령 내가 돈 부자가 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내가 ‘돈 부자’보다 ‘책 부자’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7. 표절

 

 

신문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 중 하나가 표절에 대한 기사다.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사람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표절하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쓴 문장이 누가 쓴 문장과 비슷해서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우연의 일치라는 게 있으니까. 또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어느 책에서 읽은 문장을 내 글에서 비슷하게 써 놓고 내가 만들어 낸 문장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 이 경우, 어디까지나 실수이지 표절이 아니다.

 

 

내가 표절을 하지 않는 이유는 치  사  해  서  다. 차라리 글을 못 쓴다는 말을 듣는 게 낫지 치사한 짓은 못한다.

 

 

(내가 쓴 댓글을 표절하는 일은 많다. 뭐 어떤가? 내가 쓴 댓글인데...)

 

 

 

 

 

 

8.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

 

 

좋은 문장이란 남들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고, 나쁜 문장이란 남들이 읽고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읽게 되는 문장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유명한 어느 작가는 소설을 쓰고 나서 (가방끈 짧은) 가정부에게 보여 줘서 그가 어렵다고 하면 고쳐 썼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매번 검사를 받으며 소설을 썼단다. 이 일화가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지 않는가?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스탕달이나 발자크만큼 유명한 외국 작가인데 이름을 까먹었다. 메모를 해 둘 걸. 메모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결심했다. ‘기억해 두고 싶은 건 반드시 메모를 해놓을 것.’)

 

 

 

 

 

 

9. 죽이는 문장

 

 

내가 올해 구입한 책들의 목록을 보니 소설보다 에세이가 많다. 에세이보단 소설이 더 재밌을 텐데 나는 왜 에세이를 선호할까? 그건 바로 죽이는 문장을 만나는 즐거움이 에세이에 있기 때문이지. 나도 그런 문장을 흉내 내고 싶기 때문이지.

 

 

예를 들면 이런 글들.

 

 

....................
옛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가슴에 큰 손수건을 달았다. 콧물을 닦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에 비해 영화에 나오는 신사들의 양복 앞주머니에는 아주 살짝 손수건이 보인다. 그처럼 주제가 드러나 보이는 방식도 글쓰기의 수준에 따라 다르다.(184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

 

 

만약 독자가 소설을 읽고 뭘 말하려고 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초보자의 작품이고, 소설을 읽고 잘 몰라서 ‘도대체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게 만든다면 고수의 작품이라는 것. 전자보다 후자가 더 예술적이니까. 그리고 전자보다 후자가 독자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시도 마찬가지. 영화도 마찬가지.

 

 

....................
글쓰기는 젖은 걸레를 짜듯 쥐어짜는 것이다. 아래서부터 위로 밀어 올리며 치약을 짜듯, 혹은 손아귀의 힘을 다해 약재를 담은 삼베를 비틀어 짜듯, 글쓰기는 대상의 의미를 남김없이 끌어내야 한다. 요컨대 글쓰기가 짜고 나서도 물이 흥건한 행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185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

 

 

만약 소설이나 영화에서 폭력의 세계를 보여 주고 싶다면 그 세계의 밑바닥까지 보여 주라는 것. 인간의 항문까지 보여 줄 각오로 하라는 것. 그래야 완성도 높은 소설이나 영화가 되겠지.

 

 

....................
어떤 바닷게는 따개비가 몸속에 들어와 알을 낳으면 제 알인 줄 알고 키우기 때문에 따개비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처럼 글쓰기는 글 쓰는 사람의 몸을 빌려 ‘인생’이 하는 것인데,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것으로 안다.(185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

 

 

글쓴이는 자신이 글을 쓴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이 글을 쓴다는 것.

 

 

왜냐하면 현재의 ‘나’는 과거의 삶이 만든 것이고 현재의 삶은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기 때문일 듯.

 

 

<고백의 형식들>을 읽다가 스친 생각.

 

 

‘간단하게 설명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네. 바로 이런 게 문학의 맛이지. 문학이란 짧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길게 문학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지. 결국 글쓰기란 말의 우회적 표현이고 말장난이고 말의 지적 유희인 거지. 그것을 즐기는 거지. 글을 쓰는 사람도 글을 읽는 사람도.’

 

 

다음의 글을 읽고 이랬다. ‘캬, 문장 죽이네.’

 

 

....................
성 베르나르는 말했다. “사랑 없는 배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우쭐해질 것이다. 그리고 배움 없는 사랑이란? 길을 잃을 것이다.”(249쪽)

 

- 올더스 헉슬리, <영원의 철학>에서.  
....................

 

 

 

 

 

 

 

 

 

 

 

 

 

 

 

 

 

 

 

 

 

 

 

10. 자기 삶에 감사하려 들면

 

 

자기 삶에 불평하려 들면 백 가지가 넘을 것 같고, 또 감사하려 들면 백 가지가 넘을 것 같다. 이왕이면 감사하는 쪽으로 삶을 봐야겠지?

 

 

내가 감사하는 것들.

 

 

1)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난 것. - 팔찌와 반지와 목걸이를 끼는 즐거움을 누리는 여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 (나는 보석보다 14K나 18K를 좋아한다.)
2) 키가 작지 않은 것. - 키에 열등감을 가지지 않은 것에 감사.
3) 얼굴이 검지 않은 것. -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
4) 결혼한 것 - 가족이 있는 것에 감사.
5) 독서를 좋아하는 것 - 독서로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에 감사.

 

 

등등, 백 가지 넘게 열거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읽어 줄 것을 기대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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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11-1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2번은 정말 희망적인 말이어요.
저도 곧 5학년이 되지만 이쯤되니까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용기가 나더군요. 물론 여전히 못 쓰지만...(긁적긁적~)

혼자 잘 지내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너무 혼자 잘 지내는 걸
좋아해서 오히려 같이 있으면 불편하단 사람도 있어요.

요즘엔 슬로우 리딩이 대세라잖아요.
저도 무조건 많이 읽는 거 보다 잘근잘근 씹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니 같이요.^^

페크pek0501 2014-11-15 11:37   좋아요 0 | URL
2번... 연륜이 묻어나는 소설의 맛이 있어요. 점점 그런 소설이 좋더라고요.

잘근잘근 씹어 먹기 위해 같은 책을 여러 번 나눠 인용하는 글을 올리고 있어요.
제가 인용한 문장은 까먹지 않게 되더라고요.
인용한 문장에 대한 내 느낌이나 생각을 쓰기 때문에 더 잘 기억되는 것 같아요.

우리 오래 씹을 수 있는 책을 보자고요. ^^


2014-11-17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9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까딱 잘못하면 속마음을 들키고 마는 글쓰기 
 

다음의 문구를 보고 나도 글을 쓸 땐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다면 조심해야지. 까딱 잘못하면-’(116쪽)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

 

 

글을 쓰고 나서 ‘아차, 실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을 쓸 땐 잘난 척하는 내용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읽어 보고 잘난 척하는 내용임을 깨닫게 되어서다.

 

 

인간의 특징 중 내가 알아낸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하길 좋아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말하면서 자신의 어떤 점을 자랑하길 좋아한다는 점이다. 아마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이런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특히 자신에 대해 글을 쓸 때엔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안다. 글이 완성되면 꼭 다시 읽어 보면서 수정 작업을 하는데, 이때 내가 잘난 척한 데는 없나, 하고 찾는 걸 잊지 않는다. 까딱 잘못하면 속마음을 들키고 마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2. 한심한 드라마가 주는 교훈

 

 

한심한 내용의 드라마가 있다. 그런 드라마를 뭐하러 보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교훈을 얻을 수 있죠. 예를 들면 모진 시어머니를 보면서, 못된 시누이를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또 자신의 욕망만을 향해서 가는 사람을 보면 스스로 불행의 길로 들어선 게 보이죠. 불륜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그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죠.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드라마만 유익한 건 아니랍니다.”

 

 

나처럼 생각하는 작가가 있네.

 

 

....................
형편없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운다. <소행성의 광부들>같은 (또는 <인형의 계곡 valley of the Dolls>이나 <다락방의 꽃들 flowers in the Attic>이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소설 한 권은 유수한 대학의 문예 창작과에서 한 학기를 공부하는 것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설령 기라성 같은 대가들이 초빙 강사로 나오더라도 마찬가지다.(177~178쪽)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

 

 

 

 

 

3. 글의 흐름에 맡기기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안다. 글쓴이의 의도대로만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글쓴이가 가고자 하는 길로만 가면서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글 스스로 가려는 길이 있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길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글이 가고자 하는 대로 놔둬라. 다만 엉뚱한 길로 들어서려는 것만 제지하라.’

 

 

이것에 대해 어느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네.

 

 

....................
처음에는 내가 고삐를 당겨 외양간의 소를 끌어내지만, 소를 앞세우고 밭으로 갈 때 내가 할 일은 소가 딴 길로 가려 할 때마다 방향을 잡아 주는 것뿐이다. 그처럼 처음에는 나의 의도 혹은 착상에서 글을 시작하지만, 이내 글이 가는 대로 내맡기고, 다만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을 막아 줄 뿐이다.(168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

 

 

글쓴이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글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

 

 

소설로 말하면 이렇게 되리라.

 

 

‘작가가 개입하지 말고 각 인물들이 스스로 말을 하게 하라.’

 

 

어떤 말을?

 

 

‘자기의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말을 하게 하라.’

 

 

다른 작가의 다른 표현을 보자.

 

 

....................
그러나 다시 말하겠다. ‘주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256쪽)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 규칙에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같은 우화 소설뿐이다(나는 <동물 농장>의 경우에도 스토리의 아이디어가 먼저 떠올랐던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혹시 내세에 조지 오웰을 만난다면 꼭 물어봐야겠다).(256~257쪽)

 

언제나 스토리가 우선이다.(286쪽)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

 

 

주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 글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 왜냐하면 스토리가 중요하니까.

 

 

 

 

 

4. 글을 분류해서 저축하기

 

 

“글을 잘 쓰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지세요. 행복에 대해서, 불행에 대해서, 건강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 희망에 대해서, 실망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등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창밖의 풍경에 대해 묘사하는 것도 좋고 자신의 기분에 대해 묘사하는 것도 좋아요. 어쨌든 글을 써서 내용을 분류하여 각각 폴더 안에 넣어 두는 겁니다. 예를 들면 행복에 대해서 쓴 글은 ‘행복’이란 폴더 안에 넣어 두고, 불행에 대해서 쓴 글은 ‘불행’이란 폴더 안에 넣어 두는 거죠. 그런 글들이 모이면 나중에 글을 쓸 때 수월합니다. 어떤 글을 쓸 때 그 폴더 안에 관련된 글이 있으면 몇 문장씩 가져오면 되니까요. 말하자면 필요할 때를 위해 저축을 해 놓는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쓰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5. 나무들의 표정

 

 

어떤 날은 아파트 단지에서, 어떤 날은 길거리에서, 어떤 날은 동네 산에서 붉은빛 누런빛으로 알록달록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나무들의 푸르름만 좋아했던 내가 이제 단풍 구경을 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무들마다 표정이 달랐다.


 
자태를 뽐내는 듯한 표정,
즐겁다고 외치는 듯한 표정,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
누구와 슬프게 이별한 듯한 표정,
누구를 쓸쓸히 기다리는 듯한 표정.

 

 

그것들을 보면서 표정의 풍부함에 감탄했다.

 

 

<외면일기>를 보니 이런 표정도 있구나.

 

 

....................
그러나 정원은 엄청난 슬픔이 휩쓸고 지나간 얼굴처럼 험상궂은 표정이다.(245쪽)

 

그는 깊은 우울증 속으로 침몰해버린 표정이다.(279쪽)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에서.

....................

 

 

 

 

 

6. 무엇에 홀리겠는가?

 

 

우리에겐 바쁜 일이 왜 필요할까?

 

 

한가해지면 잡념이 생겨서 근심이 많아지니까.

 

 

....................
캐나다에서는 여우와 스라소니를 덫으로 유인할 때 나뭇가지에 새의 깃털 한다발을 잘 보이게 묶어 매달아서 덫 쪽으로 주의를 돌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짐승은 그 물건에 홀린 나머지 정신을 못 차리고 그만 제가 발을 어디에 딛는지 주의하지 않는 것이다.(243쪽)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에서.
....................

 

 

우리에게도 무엇에 홀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근심이 있을 때 무엇에 홀리겠는가?”

 

 

“책이나 글에 홀리겠다. 책을 읽어 책 속으로 들어가거나 글을 써서 글 속으로 들어가서 내 발이 딛고 있는 현실의 땅을 잊겠다. 자연히 근심 또한 잊게 될 테니까.”

 

 

 

 

 

7. 더 좋은 것은 무엇?

 

 

커피 맛보다 더 좋은 것은 커피 향,


샤워할 때보다 더 좋은 것은 샤워한 뒤에 마시는 차가운 물 한 잔,


돈 버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은 월급이 들어온 걸 확인하는 일,


독서보다 더 좋은 것은 책,


글쓰기보다 더 좋은 것은 내 글에 대한 호평.

 

 

 

 

 

8. 쓸데없는 생각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봤다.


 
느끼한 고기를 맛있게 먹고 나서 나중에 알맞게 익은 김치와 밥을 맛있게 먹는 게 좋은가, 아니면 알맞게 익은 김치와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 나중에 느끼한 고기를 맛있게 먹는 게 좋은가?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예전에 남편의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김치와 밥을 먼저 먹고 그것이 싫증이 날 때쯤 고기를 먹게 하는 대접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참 맛있게 먹었다.

 

 

 

 

 

9. 삶이 지루하다는 것의 의미

 

 

삶이 지루하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불행한 일일까?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삶이 지루할 만큼 마음이 평화로운 시간이 쭉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밤에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할 만큼 걱정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평화로운 시간을 갖기 어렵다. 가난해서 쉴 틈 없이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 밥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은 따분한 시간을 가져 보고 싶을 것이다.

 

 

삶이 지루한 분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10. 해석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과거의 나쁨이 현재의 나쁨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좋음이 미래의 좋음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변화하면 그것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내가 이삼십 대엔 머리숱이 많은 게 참 싫었다. 곱슬곱슬하게 파마를 하면 머리숱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꼭 두 번 자르게 된다. 머리숱이 많아 머리가 커지는 게 싫어서 머리카락을 꾹꾹 누르곤 했다. 속상했다. 한 번도 내가 맘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못해 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딸들은 머리숱이 많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랐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숱이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 머리숱이 적어져서 고민이라는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머리숱이 많은 게 행운이란 생각마저 든다. 과거의 단점이 현재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는 얘기다.

 

 

머리숱뿐이겠는가. 모든 일이 그러하다. 현재의 나쁨이 미래엔 어떻게 해석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인가요?)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이기를 바라겠습니다.)

 

 

 

 

 

 

 

........................................................
<이 글과 관련한 책들>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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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1-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속마음 들키기 ; 저는 속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글을 씁니다. 대신 속내를 앏은 천으로 가리고 실마리만 살짝 보여줍니다. 저도 자랑질을에 대해 비판받는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알라딘 서재는 생각보다 너그럽고, 남을 많이 생각하면 자신을 위한 글쓰기가 되지 않으니까요.

2. 한심한 드라마 ; 저의 가치관에 善惡皆吾師가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책을 읽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할 시간도 모자라는 판에 한심한 드라마에까지 시간을 쓰기에는 효율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3. 흐름 ;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 사람들은 머리에 의해 행동하지 않고 온몸을 생각하죠. 장자의 포정처럼요.

7~10. 누군가는 보편성을 즐기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다양성을 즐깁니다. 저는 비록 전자에 해당되지만, 후자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4-11-07 14:46   좋아요 0 | URL
1.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지만 글에서 나타나는 게 분명히 있어서 가끔 두려움을 느낍니다. (제 모자람과 제 인격이 드러날 것 같아서...)

2. 한심한 드라마 : 제 시간에 맞춰 보는 일은 없고 주로 친정에서 보거나 아니면 딸아이가 학원에서 늦게 오는 날에 재방송을 본답니다. 늦은 밤엔 제 몸 컨디션이 떨어져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할 수 없어서 이땐 소파에 누워 티브이 보는 게 딱 입니다요... (한때 저는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을 정도로 드라마에 관심이 있었답니다...)

3. 자전거를 아주 오랜만에 탄 적이 있는데 어떻게 타는 건지 까먹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제 몸은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알더군요.

7~10. 보편성보단 다양성에 가치를 두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다양성을 무시할 때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되기 불가능해지죠.

꼼꼼하게 쓰신 댓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마립간 2014-11-07 15:37   좋아요 0 | URL
2. 한심한 드라마 ; pek0501 님의 글에서 `한심한`이란 수식어를 그대로 따왔지만, TV 드라마를 보는 주부를 한심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각자의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필요를 충족할 수 있다면 `한심한`은 적절한 수식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10 ; 다양성의 인정은 보편성의 긍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6925962
꼭 맞는 글은 아니지만.

페크pek0501 2014-11-08 16:19   좋아요 0 | URL
하하~~

2.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각자의 필요성에 따라 보는 것, 동의합니다.
한심한 드라마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막장 드라마를 제가 안 보는 이유는 막장이라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예요. (현실에서도 막장 드라마가 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현실 반영의 임무를 위해 그런 것도 드라마에 담아야 되겠지요.) 문제는 재미예요. 막장 드라마도 잘 쓰면 얼마든지 재밌을 수 있단 생각이에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는데 요즘 이런 드라마가 없어요.

-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 글 쓸 때마다 이게 어려운 문제지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하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남자들이 홈 드라마를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부간의 갈등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부부 간의 갈등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권태에 빠진 주부들이나 지나치게 교육열이 높은 주부들의 삶에 대한 관찰, 바람직한 부모는 어떤 모습인지 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거든요.
특히 개인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드라마는 소설 이상이죠.

그런 점에서 질 좋은 드라마가 탄생하길 바라게 됩니다.

stella.K 2014-11-07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이 저런 말을 했다는 말이옵니까?
예전에 읽었는데 통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무슨 연장통에 관한 이야기한 기억은 있는데...
그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혹평한 줄은 몰랐습니다.
전 책은 안 읽어 봤지만 영화는 봤거든요. 나름 좋았는데...
그래도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신의 창작에 대해
다 말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걸 <거장처럼 써라>에서 알았습니다.
글은 조금 조금씩 그 의도를 드러내야 한다고 해서 일부러 얘기를 안 했거나
모든 작가들이 그것을 알고 있는데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둘중의 하난 것 같아요. 아님 둘 다 일 수도 있구요.ㅋ

페크pek0501 2014-11-07 14: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는데, 어 이런 내용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 많은 거예요. 노트 정리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니 책을 읽고는 반드시 정리해 놓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이곳 서재가 제겐 정리 노트인 셈이에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저는 책으로 읽었었는데 밑줄 치고 싶은 데가 없더군요. 졸작인 줄 알아봤죠. ㅋ

아마 창작에 대해 책을 쓴다면 한 작가가 열 권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할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거장처럼 써라>는 읽지 못했어요. 어떤 내용인지는 압니다. 리뷰를 많이 읽었죠.

좋은 가을 보내고 계십니까? ^^

세실 2014-11-0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보다 더 좋은 것은 책. 특히 공감 됩니다~~~
어쩜 그래서 책을 습관처럼 사는 것인지도.....

저도 어릴땐 숱 많아 고민했는데 지금은 행복합니다. 단점이 강점이 되는 순간이 있더라구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나비가 날개짓할때.....` 그 부분은 좋았는걸요. ㅎ
책보다 영화가 더 좋긴 했어요^^

페크pek0501 2014-11-08 16:21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을 사는 건 습관이 되었어요.

매디슨~~ , 영화가 재밌겠군요. 소설보단 영화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감성적인 면에선 점수를 주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사색적, 철학적인 데가 없는 게 흠.

이 가을 잘 보내시고 있겠지요?
 

 

 

1.
2014년 10월 29일

 

서재에 단상을 써 왔는데 이제 백 번째로 쓸 차례가 되었다. 그동안 99편의 단상을 썼다니, 그렇게 많이 썼다니 놀랍다. 처음 단상을 쓴 것이 2009년 12월 2일이었으니 만 5년이 되어 간다. 5년 동안 꾸준히 글을 써 왔다는 것, 내가 나를 칭찬하고 싶다.

 

나, 참 성실하네. 지구력 있네. 그런데 나에게 없는 것은 투지. (사전에 따르면) 투지란 ‘싸우고자 하는 굳센 마음’이다. 내겐 무엇과 싸워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 굳센 마음 같은 것도 없다. 그냥 글쓰기를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2.
2014년 10월 0일

 

글을 잘 쓰려면 우선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분노가 있다는 건 그만큼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을, 세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가 끓어오를 만큼 세상에 대해 쓸 게 많아야 하는 게 ‘작가의 기본자세’라는 것. 이것은 박완선 작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어느 저서에서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게 만든 게 그 전쟁이었다는 것이겠다. 만약 전쟁이 나지 않아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한을 품지 않은 사람은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한’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의 깊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한때 나는 글을 잘 쓰려면 결혼도 해 보고 이혼도 해 보고 실직도 당해 봐야 하는 건지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런 걸 경험한 사람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 불행과 고통 속에서 얼마나 생각이 깊고 얼마나 생각이 많겠는가. 그래서 마음이 아픈 경험이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은 글을 잘 쓰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여겼다.

 

지금은? 지금은 아픈 경험 없이도 깊은 사유로 글을 잘 쓴 책이 있다는 걸 알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3.
2014년 10월 00일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동갑하고만 친구일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나이가 중요할까? 나보다 열 살 아래도, 나보다 열 살 위도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나이에서 보면 마흔 살만 넘으면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십 대는 인생을 알기 시작하는 나이 대인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젊은 이십 대의 사람과는 친구를 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젊은 친구는 젊은 친구대로 좋은 것이다.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젊은이들의 글을 보면서 그들의 젊은 정신을 흡수하는 건 얼마나 좋은가.  

 

시간은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관대해지게 만드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친구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선 관대해지지 않는다. 내게 호의적인 사람만 친구로 지내고 싶다. 요즘 편한 것만 찾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도 편한 만남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인 듯. 이건 건강하고도 관련이 있는 듯. 체력이 점점 약해지니깐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싫어지는 듯.

 

 

 

 

 

 

4.
2014년 10월 00일

 

나보다 나이가 적은 알라디너를 알고 지낼 수 있는 건 알라딘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알라딘이 좋다.

 

만약 알라딘이 책 이야기만 하는 공간이라면 내가 알라딘을 덜 좋아할 뻔했다. 다양한 정보를 담은 노 님의 글,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구 님의 글. 이런 글들이 없고 책 이야기만 있다면 알라딘은 덜 매력적이다.

 

나 역시 책 이야기만 하고 싶진 않다. 물론 책 이야기가 재밌긴 하지만 가끔 딴 얘기를 하고 싶다.

 

 

 

 

 

 

5.
2014년 10월 00일

 

결국 인생에서 부부애만이 남는다고 본다. 나중에 부모는 다 돌아가시게 되고, 나중에 자식들은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다 분가하게 될 것이고.

 

지인 중 한 분이 성격 차이로 남편과 이혼하려 했는데 남편이 이상 증세가 보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이혼을 접고 말았다. 큰 병 걸릴지도 모를 남편을 버릴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어떻게 자기 혼자 편히 살 수 있느냐는 거다. 지인의 남편이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현재 그가 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그게 ‘부부’라고 본다. 버리고 싶을 만큼 열정 없고 버리고 싶을 만큼 밉다가도 병에 걸려 누워 있다고 하면 달려가게 만드는 것. 그게 ‘부부’라고 본다. 그 끈끈한 정이 부부애이다. 연애 시작할 때 느끼는 뜨거운 사랑보다 더 신뢰할 만한 사랑, 그 이름은 부부애이다.

 

 

 

 

 

 

6.
2014년 10월 29일
 
가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었던가? 난 왜 그걸 이제야 알았지? 가을을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왜 가을이 좋은지 알 것 같다. 요즘 길에서 본 가을 나무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한다.

 

바다보다 산이 더 좋다는 사람을 보면 뭔가 수준이 있어 보였는데,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산의 매력을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러므로 내가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사람의 수준에 못 미친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 난 이제야 그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바다보다 산이 좋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까. 나무들 때문이다.

 

나무들의 그 풍부한 표정을 어찌 바다에 비하랴. 여러 고운 빛깔로 물든 가을 나무들 하나하나가 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다 한 편의 시처럼 읽혀졌다. 그 나무들을 내 눈으로 사진을 찍듯 유심히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늦여름만큼이나 멋진 건 가을이었다. 

 

 

 

 

 

 

 

 

 

 

 

 

 

 

 

...................................................
단상 백 번째라서 특별한 글을 쓰고 싶었으나(그래서 며칠 동안 고민했으나)...

 
맘대로 되지 않아(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은 법이라)...

 
그냥 요렇게 올립니다...


다음엔 단상(101)이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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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0-2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인생에서 부부애만이 남는다고 본다. ; 바라건데, `안해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뜨는` 나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페크pek0501 2014-10-31 12:32   좋아요 0 | URL
하하~~ 저랑 같은 생각이십니다. 저도 옆지기보다 제가 먼저 세상을 뜨길 바라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이기주의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

stella.K 2014-10-29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100번째 단상!!!
분노는 저의 은사님이 하신 말씀이기도 하죠.
언젠가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의 DJ가 오프닝 멘트로, 미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추리작가들한테 설문조사를 했대요. 왜 추리 작가가 됐냐고.
다 비슷비슷한 대답을 했는데 그 중 2명의 작가가 세상을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해주기 위해 자신은 작가가 됐다고 하더랍니다.
저는 요즘 글을 쓰는데 있어서 상대가 확실해야 하는 것 같고,
그 상대에게 그가 결코 모를 또 다른 이면을 알려주기 위해
글을 써야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봐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보는 것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살 때가 많잖아요.
결국 작가는 진실을 위해 펜을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저 보다 연배가 높은 지인이 계셔 좋은 것 같습니다.
누구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4-10-31 12:33   좋아요 0 | URL
축하, 감사하게 접수합니다.
저도 저보다 젊은 어떤 분이 계셔서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구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ㅋㅋ

세실 2014-10-3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대한 분노가 없는 저는 그래서 글쓰기를 못하는구나.
아무래도 다양한 경험이 도움은 되겠지요. 치열하게 살았던가하는.....
분노가 있으면 대신 화병은 생기겠죠?

저에게도 띠동갑 어린 후배가 있답니다. 저보다 책도 많이 읽었고, 여행도 많이 다녀서 배울점이 참 많아요. 박웅현은 딸도 멘토라고 하더라구요^^

옆지기는 나이들수록 애틋해집니다. 연민의 정이랄까? 그러면 잘 산다고 하네요.

어제 담양 소쇄원 다녀왔어요. 가을이 한창입니다. 봄의 소쇄원보다 지금의 소쇄원이 훨씬 아름다워요^^ 출장을 여행처럼 다녀왔어요.

페크pek0501 2014-10-31 12:39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러니 우린 세상에 대한 분노가 없다는 것에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자고요. 화병 생기니까요.

저는 저보다 두 살 많은 친구가 네 명이나 됩니다. 저는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간 반면 그들은 재수를 했거든요. 저보다 몇 살 적은 친구들보 셋은 됩니다. 그런데 전혀 동생 같지 않아요. 오히려 저보다 노숙해서 언니 같아요. 헤헤~~

부부 사이에 연민의 정이 생기는 건 아이들의 어머니, 아이들의 아버지라서 그런 것 같아요. 같이 늙어가면서 생기는 것도 있고요...

출장을 여행처럼... 참 좋습니다.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이런 날은 무엇을 해야 잘 보냈다는 소문이 날지...
 

 

 

1.
날씨가 변했다. 갑자기 추워졌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겠지. 공기의 뜨거움이 차가움으로 변했다는 것은.

 

 

곧 연말이 오고 해가 바뀌고 나는 나이 한 살 더 먹겠지. 시간과 나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에 초연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가장 싸우기 어려운 상대는 시간.

 

 

시간 앞에선 무력하다. 앞으로 점점 더 무력해짐을 느낄 것이다.

 

 

 

 

 

 

2.
가끔 과거의 시간을 더듬으며 아이들이 어릴 때를 생각하곤 한다. 언젠가 찍은 사진 속의 두 딸을 보니 조그만 게 귀엽다. 저런 때가 있었구나.

 

 

몸만 조그만 게 아니라 생각도 조그마하던 그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큰애는 어릴 때 아빠하고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되지?”라고 묻는 아이에게 “내가 먼저 아빠랑 결혼했는데?”라고 했더니 잠자코 있었다. 그때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혼은 형제끼리 하는 걸로 알았던 것. 아버지가 어머니의 오빠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오빠가 없는 애는 나중에 커서 누구랑 결혼하느냐, 하는 게 내 고민이었다. 어떤 친구는 오빠가 둘, 여동생이 둘이라서 짝이 맞았는데, 어떤 친구는 오빠 한 명에 여동생이 셋이어서 오빠의 수가 모자라 의문이 났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혼자서 궁리했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3.
작은애는 이제 나보다 키가 더 큰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눈엔 어린애 같다. 얼굴이 작아서인지 아직도 귀여운 초등학생의 얼굴 같다. 유모차를 탔던 어릴 때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작은애가 중학교 일 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

나(엄마) : 아침에 너처럼 불고기를 먹고 학교에 가는 애가 어딨니? 엄마를 잘 만난 거지. 친구들이 알면 부러워하겠다.

 

작은애 : 불고기 갖고 뭘 그래. 내 친구 중엔 정말 부러운 애가 있어.

 

나(엄마) : 걔는 뭘 먹고 오는데?

 

(나는 불고기보다 더 좋은 것, 이를 테면 갈비찜 같은 걸 먹고 학교 오는 친구가 있는 줄 알았다.)

 

작은애 : 아침에 라면 먹고 와. 걔를 애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

 

 

끼룩~~.

 

 

잠시 잊었다. 아이가 중학생이라는 것을. 어른의 잣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중학생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불고기보다 더 좋은 건 라면. 그러니 라면을 먹는 건 환상적인 아침 식사가 되겠다. 

 

 

내가 졌다. ㅋ

 

 

....................
(…) 세상은 무한한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그것을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

 

토머스 트러헌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28쪽.      
....................

 

 

현재의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없는 건 ‘(시간적으로) 지금, (공간적으로) 여기에’ 우리가 있기 때문일 듯. 만약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갖게 될 듯. 그래서 지나간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4.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을까? 모든 인간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실제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한다.

 

 

....................
모든 인간의 최종 목표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이 실제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3쪽.
....................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타인에게서도 알 수 있고 나에게서도 알 수 있다. 상대의 어떤 말에서, 상대의 어떤 행동에서 놀라곤 한다. 상대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나의 어떤 말에서, 나의 어떤 행동에서 놀라곤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5.
이런 친구가 있었다. 자기 블로그에 누군가가 악성 댓글을 썼는데, 그 악성 댓글을 쓴 사람이 자기 친구 누구 같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낱말이 그 댓글에 있었기 때문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꼭 그가 쓴 댓글처럼 여겨지더란다. 그의 댓글인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의심이 생겼다면 친구 관계는 끝장이 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관계를 유지하는 게 과연 좋을까 생각했다. 

 

 

....................
나를 비난하는 자는 실로 나의 좋은 벗이다.
비방을 당할 때, 나는 미움도 좋음도 간직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는 태어난 적 없는 곳에서 나온
사랑과 겸손의 힘이 자란다.

 

영가 현각 <증도가>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55쪽.      
....................
 

 

친구란 소중한 존재이니 스트레스를 받아도 친구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하겠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시간도 부족한데 굳이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시간을 할애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런데 조금만 수틀리면 인간관계를 끊어 버리는 태도도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겠다.  

 
  
‘밟으시오. 나를 밟으시오. 나는 밟힐수록 더 잘 자라는 잡초가 되리라.’ 하는 정신을 갖는다면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도 포용할 수 있으려나. 

 

 

 

 

 

 

6.
사랑에 대한 말.

 

 

....................
사랑은 확실하다. 거기에는 오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오류는 사랑의 부족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윌리엄 로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50~151쪽.
....................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오류가 생기는 게 사랑의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결혼을 반대해서 자식을 불행에 빠지게 만드는 부모가 있다. 이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식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부모라고 해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에는 지혜로운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랑도 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사랑 앞에선 오히려 판단이 흐려지고 어리석어지는 게 인간이다, 라고.

 

 

중요한 건 사랑과 지혜의 적절한 조화가 아닐까. 지혜를 놓치지 않아야 좋은 사랑이 될 것 같다.

 

 

....................
성 베르나르는 말했다. “사랑 없는 배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우쭐해질 것이다. 그리고 배움 없는 사랑이란? 길을 잃을 것이다.”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49쪽.
....................

 

 

 

 

 

 

7.
나는 자신만만하지 않다. 이것 다행인가?

 

 

출근할 땐 차가 막히는 일이 없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런데 월요일에 출근하는 곳과 화요일에 출근하는 곳이 서로 정반대의 방향이라서 헷갈린다. 만약 월요일에, 화요일에 출근하는 방향으로 탔다간 큰일이다. ‘나, 제대로 탄 것 맞나?’ 나는 수첩을 들춰 보고 확인하곤 한다. 워낙 바보 같은 짓을 잘해서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다.

 

 

친구들을 만나면 느끼는 건데, 사람들 참 똑똑하다. 아는 게 어떻게 그리 많은가? 내가 모르는 걸 친구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만나면서 많이 배운다. 난 그들에 비해 정보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판단력도 부족한 것 같다.

 

 

....................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현재 깨어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이해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왕자이든 목동이든 간에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만만해한다.

 

<장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77쪽.
....................

 

 

스스로에 대해 자신만만해 하지 않으니 나는 아주 어리석은 건 아니네.

 

 

 

 

 

 

8.
누군가와 삼십 분만 얘기 나누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그에 대한 완전한 그림이 그려지진 않겠지만 스케치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하다. 얘기하면서 알게 되는 ‘그가 무엇을 보는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것이므로.

 

 

....................
신이 어떻게 보이는가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있다.

 

플라톤주의자 존 스미스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50쪽.      
....................

 

 

종교에 대한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종교에 대한 시각만 그렇겠는가. ‘행복에 대한 시각’, ‘직업에 대한 시각’ 등 무엇을 보는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알라디너들의 글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보는 시각이 글에서 다 드러나므로.

 

 

무엇을 보는 시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 페크

 

 

 

 

 

 

9.

종교마다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여러 가지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현명한 사람은 다양한 경전의 본질을 수용하고 모든 종교에서 좋은 점만을 본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334쪽.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남의 종교를 무시하고 자기의 종교만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알고 남의 종교에서 좋은 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
자기 종파의 영광을 높일 목적으로 자신의 종파에 전적으로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종파만을 공경하고 다른 종파를 비방하는 사람은 사실상 그런 행위로 인해 자신의 종파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그러므로 화합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경건함의 법칙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훌륭하다.

 

아소카의 칙령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334~335쪽.        
....................

 

 

 

 

 

 

10.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그런데 멀다 보니 자주 가 보게 되질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절을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절을 찾아 몇 군데 가 보았다. 내 눈이 까다로운 것인지, 문제는 가는 절마다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며칠 전, 드디어 맘에 드는 절을 찾았다. 푸른 나무들과 단풍이 든 나무들이 있는 숲속에 절이 있었다. 그 절을 보며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읽은 듯 감탄했다. 내가 찾으려는 절이 바로 이런 절이야,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절다운 면모를 갖춘 절이어서 좋았다. 나무가 많고 산책로가 있어서 좋았다. 운치가 있어 보여 좋았다. 한적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 좋았다. 앞으로 자주 가서 몸의 건강을 위해 산책로를 걷고, 마음의 건강을 위해 마음을 닦아야겠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그렇다고 내가 종교심이 강한 사람이라든지 열심히 절하며 기도하는 사람인 건 아니다.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좋아서 절을 찾을 뿐이다. 밖에서 벤치에 앉아 절을 바라보다가 오기만 해도 좋다. 욕심을 버리고 근심을 덜 수 있는 곳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절에서 오면서 다음의 글을 생각했다.

 

 

....................
배 한 척이 강을 지나가고 있는데 사람이 없는 빈 배가 와서 충돌하려 한다고 가정해보라. 아무리 성마른 사람이라도 버럭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에 누군가 타고 있다면, 다가오지 말하고 소리칠 것이다. 만일 소리쳐도 듣지 못하고 여러 번 고함을 지르게 만든다면 결국 욕설을 퍼붓게 될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에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화를 내게 된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경우 그 배가 비어있었지만, 두 번째 경우에는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채로 삶을 살아간다면 누가 그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겠는가?

 

<장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190쪽.
....................

 

 

비어있는 채로 삶을 살아간다면 누가 그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겠는가?

 

 

내가 비어 있는 채로 삶을 살아가기를 감히 바랄 순 없다. 하지만 절에 다니면 최소한 욕심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11.
어떤 책을 괜히 읽었다고 후회한 적이 있다. 오래전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제2의 성>이란 책이다. 두 권으로 되어 있고 두 권을 합해 천 쪽이 넘는 분량이니 그때 읽느라 많은 시간을 들였겠다. 그런데 내가 그 책에서 배운 것이라곤 다음과 같은 결론뿐이다.

 

 

....................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다.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하다.

 

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문제이듯이,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제2의 성>에서.
....................

 

 

그나마 이것도 정리해 놓은 노트가 있어서 알았고, 이것 이외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천 쪽 이상의 글을 읽었는데도 말이다. 헛수고를 했단 생각이 들어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냥 요약해 놓은 책을 보는 게 현명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두꺼운 책을 읽느라 소비한 시간이 아깝다는 얘기다.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양가 있는 다른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얘기다. (이 책이 훌륭한 저작이라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요즘도 나는 바보처럼 영양가가 없을지도 모를 책을 들여다본다. 왜냐하면 이것저것 많은 책을 읽어 봐야 영양가 있는 책 하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내 머릿속의 저장고 어딘가에 그 내용이 보관되어 있을 거라는 것을 이젠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을 고를 때 현명하기보단 차라리 어리석은 게 나을 수 있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적은 시간을 들여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을 찾자는 자세는 좋은 자세가 아니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기대가 컸는데 실망하게 되는 책이 있고, 시시할 줄 알았는데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책이 있다. 그러니 읽기 전에 책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책 열 권을 읽고 단 한 권만이 좋을 수 있다. 책 한 권에서 단 한 문장만이 좋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원래 독서란 모래알에서 보석을 찾는 일이지 보석에서 모래알을 걸러 내는 일이 아니므로.

 

 

(<영원의 철학>이란 책도 모래알에서 보석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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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3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10-2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고기보다 라면이 더 좋은거군요. 중학생 눈에는....ㅎㅎ
스트레스 받는 친구라면 안 만나는편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호전되더라구요.
친구도 세월에 따라 미운정 고운정이 드는 듯합니다.
전 카톨릭을 사랑하지만, 불교도 좋아합니다. 혜민스님 짱~~~~ ㅋㅋ

페크pek0501 2014-10-23 14:03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짱~~~~~~

아, 그래요.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이해하지 못할 인간이란 없단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친구로 지내는 것도 좋을 듯요.
그런데 제가 요즘 편한 것만 찾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도 편한 만남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거 젊지 않다는 증거죠?)

나도 세실 님처럼 너그러워져야 할 텐데... ^^

 

 

 

1. 사고 싶은 책 세 권

 

 

신문은 매일 흥밋거리를 선사하지만 특히 토요일의 신문은 신간을 안내하는 지면이 있어 더욱 그렇다. 신문을 보고 이달에 사고 싶은 책이 세 권 생겼다. 사실 사고 싶은 책이 어디 세 권뿐이겠는가. 더 많았지만 ‘구입 욕망’을 절제하는 힘을 발휘하여 세 권으로 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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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형식들> : 이성복 산문집. 1976년에서 2014년 사이에 씌어진 산문 21편을 담고 있다. () 이 책의 여러 산문들이 품고 있는 사유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물음들은 냉정한 자기 성찰과 세상 모든 ‘입이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고백들로 그를 이끈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 : 마음산책에서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세 번째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약 2년간 「씨네21」에 발표했던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연재글 19편과, 2011년 웹진 '민연'에 발표했던 글 2편, 2013년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발표했던 글 1편을 묶어 27편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일리치가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모색하던 격변의 사상 전환기에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그의 저서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는 저서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세기의 사상가가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이 어둠 속에 별처럼 빛난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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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저, <고백의 형식들> : 시를 잘 쓰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산문집을 본다면 팬이 될 것 같다. 나와 친한 글쟁이 친구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는 저자이기에 꼭 한 번은 산문집을 사 보려고 했는데 마침 신간이 나와 이번에 구입하기로 했다.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저자를 존경하게 될 것 같네.

 

 

 

 

 

 

 

 

 

 

 

 

신형철 저,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이미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팬이 되어 버려 주목하고 있는 저자인데 이번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네.

 

 

 

 

 

 

 

 

 

 

 

 

 

이반 일리치 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학교 없는 사회>를 쓴 저자의 또 다른 저작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각성을 촉구할지 기대되네.

 

 

 

 

 

 

 

 

책 책 책! 책에 대한 내 열정은 끝이 나지 않는구나. 

 

 

 

 

 

 


 
2. 행복의 조건은 열정

 

 

행복의 조건 중 하나는 ‘열정’이 아닐까. 무엇에 대해서든 열정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정을 애착이라고 해도 좋겠다. 자신의 마음을 끌리게 하고 애정을 갖게 하고 열중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무엇이란 낚시일 수 있고 바둑일 수 있고 야구일 수 있고 등산일 수 있고 책일 수도 있다.

 

 

내 삶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정신을 가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책에 대한 열정을 가졌다는 점이다. 만약 내 삶에서 책을 뺀다면 내 행복의 반 이상이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책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한 건 1992년 가을이었다. 그러니까 22년 전부터 책에 미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하면 1992년은 내 삶에서 참 뜻깊은 해이다. 결혼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던 내가 삶의 변화를 찾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해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해에 나는 두 개의 일을 찾았다. 모 잡지사에서 ‘자유기고가’라는 자리를 얻어 일하게 되었고, 모 기관에서 운영하는 소설반에 등록하여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글 써서 돈 버는 일이 생긴 것도 좋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가 직접 강의하는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 게 더 좋아서 설렘과 흥분을 느꼈다. 집에서 애 키우면서 갇혀 지내다가 친정에 애를 맡기고 소설 강의를 들으러 갈 땐 마치 내 몸에 날개라도 달린 듯 신이 났다.

 

 

소설 강의를 들으러 다니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이 생겼고 그 열정이 책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아마 내 생애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때가 그때(1992년~1993년)가 되리라. 한 달에 열 권 정도 읽으며 지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많이 읽진 못하리라. 모 잡지사에 한 달에 한 번만 인터뷰 기사를 써서 보내면 되었고, 일주일에 두 번만 소설 강의를 들으러 가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책을 읽은 적도 있다. 그때 책을 읽고 나서 줄거리와 인상 깊은 구절을 빼곡히 적어 놓은 노트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 노트는 책에 대한 그때의 내 열정을 증명한다. 

 

 

아, 책에 대한 그때의 내 열정을 증명해 주는 게 또 있다. 그때 소설 강의를 함께 듣던 사람이 나를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말해 주었는데, 그 세 단어 중 하나가 ‘열정’이었던 것. 나를 ‘열정, 순수, 명료’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열정은 물론 책에 대한 열정을 말함이다. 남에게도 내가 꽤 열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그런데 내가 순수하고 명료했나? 이건 무엇을 말함인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순수’는 맘에 들지 않는다. 나이 값을 못한다는 것 같아서. ‘명료’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단순하다는 것 같아서. ‘열정’은 맘에 든다. ㅋ)

 

 

1992년에 만약 내가 남자와 연애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까지 열정을 갖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과의 연애는 2~3년이면 뜨거움이 식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람과의 연애가 아니라 책과의 연애였기에 지금까지 22년 동안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쭉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그 열정의 지속을 말해 준다.

 

 

 

 

 

 

 

 

3.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

 

 

매달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사고 싶은 책이 있는 한,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울 때가 있다.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대사.

 

 

....................
“아, 참 기억나요……?” 그녀가 덧붙였다. “……자동차 운전에 관해서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 말이에요.”
“그럼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지요? ()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위대한 개츠비>, 249쪽.
....................

 

 

 

 

 

 

 

 

 

 

 

 

 

 

 

 

 

 

 

 

 

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이다. - 페크

 

 

지금 가을이니 머지않아 겨울이 오겠다. 겨울이 되면 걱정되는 게 있다. 얼음이 언 길이 미끄러워서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넘어지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우리 시어머니가 지난겨울에 그런 사고가 나서 두 달 넘게 입원하신 적이 있다.) 만약 그 사고로 골반의 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게 되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가 없게 되어 내가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어쩔 것인가? 그래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 한 방이면 모든 행복은 끝이 나는 것.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

 


그래서 나는 책을 구입할 생각으로 행복한 지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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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0-0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2년이 pek님에게 변곡점이 되었군요. 저도 잠시 기억을 되살려보았습니다. 난 1992년에 무얼 했더라...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네요.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하던.
22년동안 지속된 열정이라면 그건 앞으로도 계속 갈 거라 봐도 되는거겠지요.
<고백의 형식들>이라는 제목이 좋아요. 우리가 여기 와서 끄적거리는 모든 글도 사실 일종의 고백이 아닐까 싶고요. 그러니까 이것도 고백의 한 형식이 아닐까.
오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4-10-09 17:58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꾸벅~~

가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가을이 1992년 가을이에요. 지금의 나를 만든 가을이었죠. 독서 노트와 소설 강의 시간에 쓸 노트를 사러 다녔죠. 신세계에 입문하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전업주부가 새 세계에 대한 달콤함을 맛보던 시간이었어요.만약 그 변곡점이 없었다면 지금쯤 따분하게 살고 있을지 몰라요.

22년 동안 그래 왔으니 앞으로 22년 동안도 책과 함께 살 수 있으리라 믿어요.
책에 대한 열정이 식는 날이 온다면 그땐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그런 날이 오진 않으리라 생각해요.
쓰고 보니 진짜 저의 고백이네요.ㅋㅋ 쓰면서 정리가 됐어요.

세실 2014-10-1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발생할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기 - 세실. ㅎㅎ
읽고 싶은 책이 있는한 저도 행복합니다.
`열정, 순수, 명료` 좋은걸요^^ 님이 더 좋아집니다.

오늘 우리도서관 인문학서평쓰기 모임을 했는데요. 토론도서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였어요.
엄마들 반응이 매우 뜨거웠답니다. 감동+행복!! 제가 추천한 책이었거든요^^
이럴때 막 보람을 느끼고 열정이 생겨요^^

페크pek0501 2014-10-11 15:31   좋아요 0 | URL
책은 도끼다, 저도 그거 재밌게 읽었습니다. 문학이 뭔지 복습한 느낌이랄까요.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고요. 뭔가 배울 수 있는 책은 늘 흥미로워요.

보람과 열정이 늘 님과 함께하시길...

아름다운 가을 보내시고 계신가요?

노이에자이트 2014-10-10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이란 그 밑바탕이 의외로 약해서 무너지기 쉬움을 불행이 닥치면서 알게 된다고 하는데...정말 그래요.특히 안정된 수입이 갑자기 끊기면 가정 불화가 생기는 경우가 많죠.가정의 화목함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죠.

페크pek0501 2014-10-11 15:34   좋아요 0 | URL
행복이란 게 그런가 봐요. 영원한 행복이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무서워지죠.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안정된 수입이 끊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이렇게 후진 글에도 댓글을 쓰러 달려 오신 두 분이 있어서
오늘 행복합니다.
저의 후진 글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