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라한 인간일 뿐
커트 보니것 저, <나라 없는 사람>을 다 읽은 줄 알았더니 뒷부분 20쪽쯤이 남아 있었다. 얼른 읽고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어야 되겠다 싶어 그 뒷부분을 읽었다. 이런 글에 밑줄을 그었다.

 

 

“솔, 나는 소설가이고 내 친구들 중에는 훌륭한 소설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나와 그들이 아주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까요?”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예술가엔 두 종류가 있는데 이건 결코 뛰어남의 차이가 아니야. 하지만 한 부류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작품의 역사에 대응하고, 다른 부류는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한다네.”(131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것.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이력에 우월감을 갖고 자기가 제일인 양 우쭐대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는 인생 앞에선 그저 어리석은 실수나 하며 사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한 번쯤 비굴한 적이 있고, 한 번쯤 거짓말로 남을 속인 적이 있고, 한 번쯤 악의에 찬 행동으로 남에게 고통을 준 적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군가가 알까 봐 두려워하는 일, 싹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것. 그런 인간일 뿐이라는 것. 아무리 예술가로선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하면 초라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예술가로서 작품의 역사가 화려하다고 우쭐대지 말고 초라한 인간일 뿐임을 알 것.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알 것.’ 


 
어느 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는 사람도 마찬가지.
 

 

 

 

 

 


2. 위대함이란 한계를 극복하는 것
“솔, 당신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나요?”
육 초가 흔른 후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건 없다네.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에 맞춰진다네.”(131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재능으로 예술가가 되는 게 아니라는 뜻 같네. 설령 재능을 타고났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한계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뜻 같네. 그러므로 위대한 예술가에게 우리는 “당신은 재능을 타고났군요.”라고 말할 게 아니라 “당신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군요.”라고 말해야 할 것 같네. 단지 재능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라면 우리가 우러러볼 이유가 없긴 하겠다.

 

 

 

 

 

 

 

 

 

 

 

 

 

 

 

 

 

 

 

 

 

 

 

3.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행위에 대하여
다 읽은 책은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습관이 있다. 저자 이름, 책 제목, 간략한 내용, 읽은 날짜(월로 표시함.) 등을 쓰는 것이다. 최근에 읽기를 끝낸 책 다섯 권을 이 노트에 써넣으면서 뿌듯했다. 다섯 권이 추가되는 기쁨을 누린 것. 다섯 권을 한꺼번에 읽은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읽기 시작해서 반 이상 읽은 책들로 어떤 책은 끝부분 몇 십 쪽을 읽지 못했고 어떤 책은 백 쪽가량을 읽지 못했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끝까지 다 읽고 노트에 쓴 것이다.

 

 

이렇게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행위의 형식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없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건 이 ‘독서 목록 노트’ 덕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꾸준히 독서하며 살 수 있는 건 이 ‘독서 목록 노트’ 덕분이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좌우할 때가 많다. 형식이 중요한 이유다. 

 

 

 

 

 

 

 

4. 나의 엉터리 기억력
앞으로 내 기억력을 믿지 않기로 하겠다. 커피 주전자가 뜨거운 걸 알고, 내 정신 좀 봐 커피를 안 마셨구나 생각하며 커피를 한 잔 탔는데 마시려고 보니 아까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 게 기억났다. 이미 커피를 탔으니 그냥 마셔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반 잔만 마시고 반 잔을 버렸다. 그래서 오늘 한 잔 반을 마신 게 되었다. 내 엉터리 기억력 때문이었다.

 

 

며칠 전, 어느 님의 서재에서 ‘위험한 독서’라는 단편 소설에 대한 글을 읽고 나도 그 단편을 읽었다고 댓글을 쓰고 나서 생각했다. ‘혹시 내가 그걸 읽지도 않고 읽었다고 착각한 건 아닌가?’ 그래서 확인 들어갔다. 이 소설은 ‘2006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있었고 내가 읽은 게 확실했다. 밑줄이 많이 쳐져 있고 뭔가를 써 놓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뭐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아 책을 잡은 김에 한 번 더 읽었다. 내 엉터리 기억력 때문이었다.

 

 

 

 

 

 

 

5. 화장한 얼굴만 보여 줬다고 생각해 왔는데 착각이었어 
‘위험한 독서’라는 단편 소설에는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서치료사’라는 직업이 나온다. ‘독서치료사’인 화자는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하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게 하는 사람이다.(세상에 맙소사. 이런 직업을 궁금해 했는데 내가 읽은 소설 속에 나온 적이 있었다니...)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한 것.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누구에겐 ‘유일한 긍지’가 될 수 있는 거구나.
고통은 심리 치료의 시작이고 쾌감은 심리 치료의 끝이구나.
동일시는 자기 연민을 낳고 소외는 자기 부정을 불러오는구나.
독서하면서 자신을 읽어야 하는 거구나.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 독서를 통해 당신이 발견해야 하는 것은 교묘하게 감추어진 저자의 개인사나 메시지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다.(김경욱 저, ‘위험한 독서’에서.)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준다면 나는 당신이 품고 있는 지옥의 밑그림을 그려줄 수도 있다.(김경욱 저, ‘위험한 독서’에서.)

 

 

그래서였구나. 내가 책을 갖고 다닐 때 책 표지를 누군가가 볼까 봐 조심했던 게 그래서였구나. 지하철에서 사람 많을 땐 책을 펼쳐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게 그래서였구나.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알게 될 어떤 것들에 대한 단서를 책이 제공하게 될까 봐 싫어서였구나.

 

 

그런데 알라딘 서재에서는 어떤가?

 

 

어머나, 이 서재에선 내가 읽은 책의 목록을 다 공개했으니 페크는 민낯을 공개한 셈이구나. 화장한 얼굴만 보여 줬다고 여겨 왔는데 착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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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0-0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언니 그 정도는 아니어요. 오히려 이 분은 어떤 책에 관심이 있나
그런 것을 통해 나의 관심의 폭을 넓힐려고 하는 뭐 그런 의도가 더 클 것 같은데요?
물론 그 이유도 있긴 하죠. 리뷰를 통해 자기 얘기를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선 민낯보단 이 사람이 얼마나 글을 진솔하게 쓰고 있는가
그런 걸 더 크게 볼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와, 근데 언니는 책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으셨네요.
저는 그저 김경욱이란 소설가를 뒤늦게 발견하고 좋아라 하는 정도였는데...
저도 예전에 상담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어요.
그땐 독서 치료사란 직업은 있기도 전인데 알았더라면 지금쯤 독서 치료사가
되어 있을까요? 요즘엔 북 소물리에란 것도 있던데 그냥 상징적이로
붙인 이름인지 아니면 진짜 있는 직업인지 모르겠어요.
암튼 책만 읽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도 있다니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5-10-05 10:15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소설 속의 얘기일 뿐인 걸 저는 그렇게 읽은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ㅋㅋㅋ
실제로 독서 치료에서는 읽은 목록이 중요할 거라고 봐요. 상대의 관심사를 알게 되는 여러 변수 중 하나니까요.
강신주 저자도, 서재를 함부로 보여주지 말라고 했대요. 서재엔 영혼이 담겨 있대요.(세실 님의 댓글에서 알았음.)
아무래도 부동산 재테크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과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사람이 같은 부류일 순 없을 것 같죠?

소설에선 편지 형식을 빌려 쓰든 직접 말을 하든 사실이 아닌 엉터리 정보를 흘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독자가 이의를 제기할 만한 것은 쓰지 않을 만큼 작가들은 영악하거든요. 그런 것 다 계산한다는 뜻이에요.

상담학 공부, 그거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공부까지만 좋고 일대일로 상담을 맡는 건 피로할 것 같아요. 얼마나 진이 빠지겠어요. 독서 치료 수업 정도라면 좋을 듯해요.

첫 댓글에 감사드려요. 스텔라 님 덕분에 무플 면했어요.
우리 좋은 가을 보내자고요..
(혹시 제가 님의 댓글을 오독한 부분이 있더라도 용서해 주시길..ㅋㅋ)

세실 2015-10-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 없는 사람>에서는 항상 6초를 기다려주나요? ㅎㅎ
독서목록노트 전 매년 다이어리에 적어요. 1년 100권을 목표로 하지만 50권 읽기도 바쁘네요.
그럼에도 계속 100권이 새해 목표^^
강신주도 자신의 서재는 함부로 보여주지 말라고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던데 굳이 그렇게까지? 전 지극히 평범해서 그냥 보여주고 살래요~~~~~

페크pek0501 2015-10-07 15:46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저도 6초 후에 대답하렵니다.
˝세실 님은 말씀도 재밌게 하십니다.˝라고.

뭐, 알라디너들은 다 서재를 공개하는 셈이죠. 쌤쌤인거죠.
그런데 사실 읽었으면서도 서재에 공개하지 않은 책이 많네요. 쓸거리를 못 찾은 경우죠. 앞으로 그런 책도 좋은 구절을 찾아서 올려야겠어요. 위의 이상문학상 작품집만 해도 그런 책에 해당하네요. 늘 최근에 읽은 책 중심으로 글을 쓰다 보니...

100권이 목표입니까? 저는 그보다 훨씬 적은 수가 목표랍니다.
그 수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그 독서 목록 노트를 1992년부터 써 왔다는 사실이에요. 사는 날까지 몇 권이나 읽고 죽는지 궁금합니다. 이 노트가 말해 주겠죠.
이 노트가 존재하는 한,
저의 책 읽기는 계속될 전망이옵니다. ^^
 

 


1.
내 서재의 ‘즐겨찾기등록’ 수가 202명이 되었다. 이 숫자에 황송하다.

 

 

그런데 저 숫자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하신 분들이 있으리라. 세 배 이상을 기록하신 분들도 있으리라.

 

 

늘 그런 것이다.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위에 나는 사람이 있는 게 인생인 것이렷다.

 

 

그러나 나, 202명에 대해 과분하게 생각한다. 올챙이 때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자신이 용케 모면한 불행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늘 떠올리고 있어야 할 일이다.(79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2.
내가 오래전에 모 문화센터에 소설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 그 문화센터가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를 가장 많이 배출시킨 곳이라고 공공연히 광고하는 걸 봤다.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마치 기계로 좋은 소설 작품을 제품처럼 찍어낼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글쓰기에도 분명히 어떤 기술이 필요한 건 맞지만 무슨 제품 생산하는 듯한 시스템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틀렸다고 본다. 그런 사람은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쯤은 좋은 글을 쓸지 모르나,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좋은 글이란 그렇게 해서 탄생할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기술로만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의 관찰력, 통찰력, 지혜, 안목, 훌륭한 마음 등을 통틀어서 ‘고도로 발달한 정신’이라고 부른다면, 그런 정신의 세계 없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기술만 가지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글이 있다.

 

 

문장을 멋지게 쓰면 ‘글재주’를 인정받을 수 있다. ‘글재주’가 있으면 ‘써야 해서 쓰는 글’을 어느 정도 잘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글재주’만으로 공감을 일으키거나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258~259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방법만 배운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재주가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시사평론과 칼럼, 논술문과 생활 글은 더 그렇다. 은유와 상징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로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260~261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3.
권력은 어느 세계에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신경숙 표절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문학 세계에서도 권력의 힘이 막강해서 작가들이 인맥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작가는 글만 잘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맥 따위엔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자기의 길을 가고자 묵묵히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문단과의 교류도, 인터뷰도 사양하고 게다가 저명한 문학상까지 거부했던 에밀 시오랑 같은 수필가(철학자이기도 함.)가 있다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헤르만 헤세가 쓴 글 중에 기억해 두고 싶은 글이 있다.

 

 

작가란 직업은 조용히 눈을 뜨고 기다리면서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 일은 땀과 불면의 밤을 요구할지라도 귀중한 것이며, 더 이상 ‘일’이 아닌 것이다.(95쪽)
- 헤르만 헤세, <헤세의 문장론>에서.

 

 

긴 시간 동안 글을 열심히 쓰다 보면 어느새 좋은 작품이 탄생하여 명성을 얻게 되는 게 작가라는 직업이다. 명성은 작가의 고독한 노력 뒤에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 인맥 관리나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4.
올해 만난 책 중에서 좋은 책 다섯 권을 뽑는다면 그중 하나로 에밀 시오랑의 책을 뽑겠다.

 

 

작가는 자기만이 아는 진실을 말하고 싶어 책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에 따르면, 에밀 시오랑은 이런 진실을 말하고 있네. 

 

 

자살에 관한 진실.

 

 

내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살한다면, 그렇다,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온 인류가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이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133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죽음도 주체적이어야 한다. 나 때문에 죽을 수는 있어도 타인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는 것.

 

 

기대에 관한 진실.

 

 

태어남이 하나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마치 항복한 다음 날처럼 투항한 자의 홀가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246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기대할 게 없으면 실망도 불행도 없다. 실망도 불행도 따지고 보면 ‘기대’라는 놈 때문에 생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태어남을 하나의 파멸로 보고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삶은 견딜 만한 것이 되리라.

 

 

희망에 관한 진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도 모르는 새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 의식하지 못하는 희망은 그가 내던져 버린 혹은 고갈시킨 다른 모든 명백한 희망을 보상해 주고 있다.(78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희망 없이 살겠다는 것도 알고 보면 ‘희망’일 테니까,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다.

 

 

성공에 관한 진실.

 

 

모든 성공은 치욕스러운 것이다. 그 치욕에서 우리는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242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직장에서 승진했다는 것은 과장해서 말하면, 경쟁자를 짓밟았다는 걸 의미한다. 경쟁자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걸 의미한다. 성공이란 이렇게 영광스럽기보다 치사하고 치욕스러운 것이다. 성공의 자리는 누군가를 밟아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5.
남의 얘기에 공감해 주는 일은 왜 중요할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심하게 다툼을 한 부부가 랍비를 찾아왔다. 자기네 부부 중에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려 달라는 것이다. 랍비는 먼저 남편을 불러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겠군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랍비는 남편의 말에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들어 주었다.

 

 

잠시 후, 랍비는 아내를 불러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맞습니다.”

 

 

이렇게 랍비는 아내의 말에도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들어 주었다.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랍비는 아무 결론도 내려 주지 않고 부부를 돌려보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랍비에게 물었다.

 

 

“랍비 님, 서로의 주장이 다른데 왜 랍비 님께서는 두 사람의 말이 다 옳다고 맞장구쳐 주었습니까?”

 

 

그러자 랍비가 웃으며 말했다.

 

 

“부부가 싸울 때에는 누가 옳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돼요. 부부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달아오른 감정을 식히는 것이랍니다. 제가 서로의 말이 옳다고 들어 주기만 하면 두 사람은 화가 식게 되지요. 제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그렇게 화해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랍니다.”

 

 

공감의 힘은 위대하구나.

 

 

 

 

 


6.
육아에 전념하던 옛날에 쓴 일기를 보니 깜짝 놀랄 만한 글이 있었다.

 

 

‘일을 갖고 글을 쓰면서 늙어 갈 것.’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의 내 생활이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란 말이지?

 

 

일기 쓰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런 거지. 시간이 많은 흐른 뒤에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 것.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게 일기장이라는 것. 그래서 내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은 이가 있다면 그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자기 자신이 자기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 수 있다는 것.

 

 

 

 


7.
어느 님이 댓글로 쓰셨다. 죽으면 ‘자기가 쓴 글’이 쓰레기가 되고 만다고.

 

 

그렇겠다. 그러니까 죽은 뒤에 ‘자기가 쓴 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는 거다.

 

 

내가 죽은 뒤에 내 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글, 내 개인용 넷북에 저장해 놓은 글, 유에스비에 저장해 놓은 글, 노트에 볼펜으로 쓴 글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가족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내 글은 모두 불태워 줘.”

 

 

(하하~~. 이렇게 쓰고 보니 웃음이 나오네. 설마 출판사에서 나온 누군가가 내 미발표 원고를 묶어서 책으로 내자고 할까 봐서?)

 

 

(하하~~. 그게 아니고요. 아파트 공동 ‘폐품 쓰레기통’에서 내가 쓴 일기장이 굴러다니다가 누군가의 눈에 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싫잖아요. 싫은 정도가 아니라 끔찍하잖아요.)

 

 

그러니까 종이 일기장은 불태우고, 컴퓨터에서 내 글 전부 삭제하고, 내 유에스비도 부숴 버려야 한다고 유언을 해 놓아야 하는 거다. 이 알라딘 서재는 폐쇄하라고 해야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무섭네. 그리고 슬퍼지네. 하지만 그런 날이 오긴 올 것이니 대비가 필요하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으니...

 

 

 

 


8.
오십 대의 직장 동료가 내게 말했다.

 

 

“요즘 책을 안 읽으니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덧붙인다.

 

 

“나이 드니까 순발력이 없어지고 판단이 느려져요.”

 

 

아, 그거였구나. 내가 독서를 하며 살아도 바보 같은 짓을 자꾸 한다고 느꼈는데 그게 나이 탓이었구나.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내가 푼수 병에 걸린 거였구나.

 

 

내가 요즘 푼수 짓을 해서 죽겠다고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나이 때문이라는 것. 이삼십 대에 잘 돌아가던 두뇌가 이젠 잘 안 돌아가는 이유가 나이 때문이라는 것.  

 

 

내가 예전에도 어떤 글에 쓰지 않았던가. 독서를 해도 왜 똑똑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답을 동료가 가르쳐 주네. 나이가 들면 머리가 나빠지나 봐.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남겼지. 

 

 

노인이 젊은이보다 못하지 않고 노자老子가 부처보다 못하지 않으며, 파랑이 빨강보다 못하지 않다. 노인이 젊은이처럼 굴려고 할 때만이 보잘것없어진다.(130쪽)
- 헤르만 헤세, <헤세의 문장론>에서.

 

 

나이 듦은 그것대로 장점이 있다는 말로 읽혀지네.  

 

 

 

 


9.
어느 님이 서재에 새 글을 올려놓고 가림막용으로 올린 글이라고 해서 웃음이 나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이 창피해서 그걸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새 글을 올렸다는 말이다.

 

 

나랑 똑같잖아. 하하~~. 나도 그렇다. ‘저 글이 창피하니 빨리 새 글을 올려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서재에 들어와 (가장 최근에 올린) 내 글을 보면 마치 나의 발가벗은 몸을 공중에 높이 매달아 놓은 걸 보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이런 걸 극복해야 할 텐데. 뻔뻔해져야 할 텐데. 뻔뻔해지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내 글을 읽은 분들 중 한 분이 내게 말한다.

 

 

“이봐, 뭐 이런 걸 글이라고 올려? 여기가 개인 낙서장인 줄 알아?˝

 

 

내가 답한다.

 

 

“예, 여기는 개인 낙서장이에요. 제게는...”

 

 

물론, 가상해 본 물음과 답이다. 이 서재를 나의 낙서장으로 알고 앞으로 뻔뻔하게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10.
이 글의 마지막은 에밀 시오랑의 글로 장식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내 자신을 견딥니다.(53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나도 견디고 있다.

 

 

여러분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는 각자 생각해 보는 걸로... 

 

 

 

 

 

.............................................
(위 10번의 인용문에서 ‘내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써야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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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6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5-08-16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거하신 모든 부분에 공감을 표시합니다! 고로 추천 10개 쾅!^^

페크pek0501 2015-08-16 13:50   좋아요 0 | URL
공감하신다니 안심이 됩니다.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어디쯤에 위치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추천 10개 잘 받았습니다...^^

순오기 2015-08-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요~~페크님!^^
공감으로 끄덕끄덕~ 인사 남겨요!♥

페크pek0501 2015-08-16 13:52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뵈네요, 순오기 님.
끄덕끄덕 해 주셔서 좋습니다.
저는 글을 올린 지가 오래되었네, 그러면서 땜질용으로 글을 올리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5-08-1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9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금창고 2015-08-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책 얼마전에 읽었어요
읽고 글잘쓰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5-08-19 14: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어떤 책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유시민 저자의 책이라면...
맞아요. 이 책을 읽고 나면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져요.
그런 걸 느끼기 위해서 이런 류의 책을 찾아 읽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반가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세실 2015-08-16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아 둡니다.
`일을 갖고 글을 쓰면서 늙어갈 것` 굿 입니다~~~ 저도^^

페크pek0501 2015-08-19 14:30   좋아요 0 | URL
아, 세실 님.
제가 읽은 책은 모조리 님이 읽으시고
저는 님이 읽으신 책을 읽지 않고...
이러면 제가 밀리잖아욧... 호호~~
그냥 밀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승부욕 없는 여자랍니다.
뒤따라가겠습니다.
월요일이 아닌 수요일이라 좋지 않습니까?

좋은 하루 되세염. ^^
 

 

1. 작가의 표절 논란

 

 

지난 6월 16일 이응준 작가는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 작가의 글(소설)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기고했다. 요즘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표절 논란’이 시작된 이유이다.

 

 

다음의 글이 그 문제의 글이다.

 

 

A.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에서.

 

 

B.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에서.

 

 

A와 B의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2015년 06월 16일에 게시됨.)에서 가져온 글이다. (‘우국’과 ‘전설’은 단편 소설이다. 이 글 말고도 표절 의혹이 일고 있는 작품이 몇 더 있다.)

 

 

다음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에서 가져온 글이다. (A와 C는 각각 번역자가 다르다.)

 

 

C.
두 사람 모두 실로 젊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라 이들의 사랑 행위는 매우 격렬하였는데, 이것은 밤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에서 돌아온 중위는 먼지투성이 군복을 벗다가 그 틈도 참지 못해, 집에 돌아온 그 자리에서 새댁의 가는 허리를 꺾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꼬도 곧잘 이에 응하였다. 첫날밤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될까말까 할 때, 레이꼬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끼오, 황요찬 옮김, ‘우국’에서.

 


A와 B의 글을 비교해 보면 문장은 물론이고 문장의 순서까지 같아서 누가 봐도 표절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표절한 게 맞다고 본다.) 표절이 맞다면 그 무엇이 신경숙 작가로 하여금 표절하게 만들었을까?

 

 

그에게 묻고 싶다.

 

 

1) 위의 문장이 작가로서 해서는 안 될 표절을 하고 싶을 만큼 탁월한 문장인가?
2) 이 부분이 그 소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인가?
3)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여러 문학상을 휩쓴 작가로서 이 정도의 문장을 자기 식으로 쓸 능력이 당신에겐 없었는가?
4) 이 세상에 얼마나 눈이 많은데 표절이 발각되지 않을 줄 알았는가?
5) 끝까지 유지되는 비밀이 있다고 믿었는가?
6)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 적이 한 번도 없는가?
7) 표절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는가?
8) ‘금각사’ 외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인가?
9)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 왜 이응준 작가를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지 않는가?
10) 이제 표절했음을 인정하고 반성 · 사과해서 그동안 안고 살았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

 

 

신 작가의 표절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작가들이 침묵했음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침묵하는 것은 자기 입장이 곤란해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아서, 막강한 문단 권력 때문에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런 문단을 향해, 그런 사회를 향해 어렵게 용기를 내어 혼자서 십자가를 진 이응준 작가가 앞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원하는 뜻으로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신경숙 작가도 정직한 태도로 용서를 빌고 이 시련을 잘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2. 글을 잘 쓰려면 어떤 삶인가가 중요

 

 

신경숙 작가는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 작품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일까?

 

 

성형 수술에도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표절에도 중독이 되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닐까? 성형 수술을 한 번 하고 나서 얼굴이 예뻐졌다고 느끼면 한 번 더 성형 수술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듯이, 한 번 표절해서 글이 나아졌다고 느끼면 한 번 더 표절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경우를 말함이다.

 

 

작가든 아니든 누구든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표절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글을 도둑질하듯 가져와서 제 것인 양 글을 쓰는 비양심적인 삶에서는 좋은 글을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격 없는 필자가 인격 있는 글을 쓸 수 없지 않겠는가? 옳지 않은 삶을 살면서 옳은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없지 않겠는가?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260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그렇다면 좋은 삶을 살면서 어떤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되는가?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기만 하면 최소한 못나지 않은 글은 쓸 수 있다. 여기에 나름의 개성을 입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면 훌륭한 글이 된다.(175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쉽게 쓰되 필자의 개성을 입혀라.’

 

 

말로는 쉬우나 이렇게 쓰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3. 글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이다

 

 

글감 선택으로 고민할 때가 있다. 무엇에 대해서 쓸까? 하고.

 

 

재료 선택은 잘했는데 완성된 음식으로선 실패한 느낌이 드는 음식이 있다. 재료 선택은 잘하지 못했는데 선택을 잘하지 못한 것 치고 완성된 음식으로선 괜찮은 음식이 있다. 이 둘의 차이.

 

 

글감 선택은 잘했는데 완결된 글로선 실패한 느낌이 드는 글이 있다. 글감 선택은 잘하지 못했는데 선택을 잘하지 못한 것 치고 완결된 글로선 괜찮은 글이 있다. 이 둘의 차이.

 

 

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러러볼 것은 시시한 글감을 가지고 잘 요리한 듯한 느낌의 글일 듯. 즉 무엇에 대하여 쓰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일 듯.

 

 

좋은 글감을 찾는 데에만 주력하다 보면 소재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기억해 둘만 하다.

 

 

 

 

 

 

 

4. 무슨 글이든 만들어 내는 재능이 필요하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린 지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면 대략 세 가지 경우일 가능성이 많다.

 

 

첫째, 다른 일에 열중하느라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
둘째, 열중하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경우.
셋째,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지만 슬럼프에 빠져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

 

 

어떤 경우가 되었든 ‘역시 난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다만 글쟁이가 되고 싶은 것이겠지.)

 

 

요즘 내가 글을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글을 자주 써서 올리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느낀 것 하나.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 요즘 새롭게 느낀 것이다.

 

 

글쟁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것.

 

 

무슨 글이든 만들어 내는 재능. 이게 꼭 필요한 것 같고, 사실 이 재능이 글쟁이에게는 제일 필요한 것 같다. 그러므로 글쟁이가 되고 싶다면 하루에 한 문단씩이라도 꼭 쓸 것.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글을 쓰고 있다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잘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글쟁이’란 말이 좋은 뜻을 담고 있지 않으나 나는 이 말을 좋아해서 즐겨 쓴다. 글쟁이의 뜻 :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글이 써지지 않더라도, 억지로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른 일이 있으니. 바로 독서이다. 난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지만 타고난 독서인인 것 같다.

 

 

(독서인(讀書人)의 뜻 : 책 읽기를 좋아하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독서인이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독서인이다. 여기서 나는 전자의 뜻으로 썼다. 

 

 

독서인으로서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인데 지금 읽어도 재밌다. 홍세화 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이다.

 

 

 

 

 

 


5. 글쓰기는 수학과 관련이 있을까?

 

 

글쓰기는 수학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글쓰기를 잘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할까? 수학을 잘하지 못해도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홍세화 저자의 글을 보자.

 

 

토론은 주로 글쓰기에 필요한 논리력, 추리력, 분석력, 정확성의 추구 등이 수학교육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길러진다는 주장과, 수학적인 차가운 논리가 오히려 창조적 감성이나 미적 상상력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 사이에 벌어진다. 반론자들은 하나의 좋은 예로 괴테를 내세운다. 독일의 으뜸가는 시인인 괴테가 수학에는 아주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토론에는 한 가지 흥미있는 재치응답이 있다. 반론자가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수학과 글쓰기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라치면, 상대방이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192~193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

 

 

하하~~. 재밌네.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반론을 편 사람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네.

내 생각엔, 글을 쓸 때에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수학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쓸 때엔.

 

 

글을 쓰면서 글쓰기는 수학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6.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건 마음가짐

 

 

세상을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프랑스엔 ‘비아제’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내가 죽고 나면 내 집을 줄 테니 내가 죽을 때까지 내게 매달 생활비로 얼마씩 달라는 것’이 되겠다. 121살까지 생존하여 세계에서 나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잔 칼맹’이라는 할머니의 사연이 웃게 만든다.

 

 

121살까지 살았던 그녀.

 

 

그녀가 80여 세일 때 그녀보다 (당연히) 훨씬 젊은 공증인이 그녀와 비아제 계약을 맺었다. 할머니에게 매달 꼬박꼬박 연금을 지급했던 그 남자가 먼저 사망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155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그 남자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할머니가 당연히 먼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 할머니보다 먼저 죽었다는 얘기다.

 

 

잔 칼맹 부인은 그 비아제 계약에 관해 코멘트를 요청받고, “사람이 살다 보면 손해볼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세계 최고령이 될 사람과 비아제 계약을 맺었으니 그 남자는 말 그대로 재수없는 사람이었다.(155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저자의 말대로 그 남자는 정말 재수 없는 사람이었을까? 할머니보다 먼저 죽어서 집을 차지하는 행운을 얻지 못했으니 불행한 사람일까? 아니면, 사는 동안 노후 대책에 대한 걱정 없이 편히 살았으니, 또는 집을 팔아서 멋진 자동차를 살 생각으로 희망에 부풀어 살았으니 행복한 사람일까?

 

 

만약 그가 “왜 이렇게 할머니가 빨리 죽지 않는 거야?”라고 불평하며 살았다면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겠고, “할머니가 언제 죽든 상관없어. 난 노후 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니 참 다행이야.”라고 만족하며 살았다면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겠다.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

 

 

마음가짐.

 

 

그가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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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6-20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절자에게 묻는 10가지 질문은 정말 꼼짝을 못하게 만드는군요.
신 신작가뿐 아니라 적지않은 작가들이 표절을 하는 거 보면
탐나는 건 내것으로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과 같은 건가 봅니다.
예전에 시나리오 배울 때 강사님이 늘 그런 말씀하셨죠.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구.
글에는 감성과 논리가 함께 있으면 좋은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아, 글쓰기는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요.ㅠ

페크pek0501 2015-06-21 15:02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첫 댓글에 감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 혹시 아시는지요?
표절 건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 누구나 어느 한쪽으론 나사가 풀려 있다는 거예요. 모든 면에서 훌륭하긴 힘들다는 거죠. 세종대왕도 잔인한 구석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도 인간미 없는 독한 구석이 있었죠. 그게 인간이라고 봅니다. 신경숙 작가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글쓰기, 어려운 것에 동의함. 오죽하면 10일만에 글을 올렸겠습니까? 캭캭~~

qualia 2015-06-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 작가(?)한테 이곳 알라딘은 비판 무풍지대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선 유시민 작가도 ‘벼라별’ 비난을 다 얻어먹더군요.
인간성 측면에서요.
과연 유시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수 혹은 수구 쪽에서의 비난과 음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 혹은 민주 진영 쪽에서 나오는 극렬한 비난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고종석 작가도 유시민 비난의 선봉에 있을 겁니다.
글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시민과 고종석 두 분이
서로 적대관계라는 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고종석 작가가 약간 더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합니다만...

페크pek0501 2015-06-21 15: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어 보면 정말 인간성이 의심되는 것 있어요. 나쁜 글의 예를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뽑아 왔거든요. 그것도 실명을 거론하면서요. 그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얼마나 불쾌하겠어요.
좋은 인품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저자가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셈이죠. 누군가에게 모욕을 주는 책을 쓰다니...

이곳 알라딘에선 주로 책 이야기이니까 유시민 저자의 좋은 글을 발췌, 소개할 뿐이지 그렇다고 팬이 많다고 볼 순 없을 것 같아요. 님의 말씀처럼 그래도 이곳이 책 이야기하는 곳이라 비판 무풍지대일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책보다 더 좋은 게 <청춘의 독서>였어요. 독후감을 잘 썼어요. 무슨 정치인이 이렇게 글을 잘 쓰나, 하고 감탄했죠. 이젠 아예 글쟁이로 발 벗고 나섰다고 하네요. 잘 쓴 글에 대해선 우러러봅니다. 글만요...

댓글, 감사합니다.

cyrus 2015-06-2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글 한 편씩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작가들 중에는 다작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을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작가 체호프는 무명 시절부터 잡지에 글을 투고할 정도로 젊은 나이에도 제법 글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평가가 젊은 체호프의 다작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글 쓰는 재능은 있으나 필요 이상 다작을 하는 바람에 읽을 만한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투입에 비해 산출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죠. 이 일을 계기로 체호프는 글을 쓰되, 좀 신중하게 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그의 실력은 인정받았고 단편소설의 대가에 오르게 되었어요. 체호프는 몇 백 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남겼는데, 여기서 우리가 읽는 단편소설은 고작 수 십 편에 불과합니다. 체호프 말고도 다작에 능숙했던 다른 작가들도 그래요. 독자는 작가가 남긴 모든 작품들을 무조건 좋다고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오랫동안 읽혀지고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는 반면에, 나머지 작품들은 독자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대표작에 비하면 인정을 못 받습니다. 한 사람이 매일 글을 써서 그 수가 100편 이상 되어도 100편 이상의 글이 모두 잘 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페크pek0501 2015-06-21 15:10   좋아요 0 | URL
하하~~ 시루스 님이 저에게 위안을 주려는 댓글입니까? 위안은 일단~ 감사하게 접수합니당~~.
그러나 어쩌나요. ㅋ 님의 댓글에선 이미 제가 주장하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걸요. 체호프가 단편 소설의 대가가 된 것은 그렇게 다작을 하면서 보내던 세월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다작을 하던 시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체호프는 없었을 거라고 봐요.

님의 말씀이 맞아요. 다작을 해도 수작이 되는 건 몇 편에 불과해요. 그러나 몇 편의 수작을 건지기 위해선 다작을 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제가 위의 글에서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잘 쓰는 사람이다, 라고 한 것은 알라딘 서재를 둘러보니 정말 그랬기 때문이에요. 자주 글을 올리고 방문자 수가 많은 알라디너의 글을 보니 잘 쓰는 게 맞더라고요. (님도 포함됩니다.) 아마 통계를 내도 그럴 것 같아요. 글을 백 편 쓴 사람과 천 편 쓴 사람의 역량을 비교하면 제 생각이 맞을 듯해요.
저는 오히려 님의 댓글을 보니 체호프처럼 다작을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으음~~ 다짐해야징...다작 다작!!)

시루스 님은 이 댓글로 하루에 한 문단 쓰기를 실천하셨습니다. 이 댓글도 좋은 글이에요. 페이퍼로 쓰셔야 할 글 같은데요...ㅋㅋ

cyrus 2015-06-22 20:52   좋아요 0 | URL
페크님의 답글을 읽은 뒤에 제가 쓴 댓글을 읽어 보니 제가 생각 정리를 안 하고 막 썼네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5-06-23 10:50   좋아요 0 | URL
ㅋㅋ 무슨 말씀을요...
시루스 님의 댓글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글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신중하게 써라. 여러 글을 쓸 생각 말고 하나의 글에 집중해서 깊게 파라. 이런 말이죠. 좋은 말씀입니다.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누구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의견 차이라고 보겠습니다.

독서로 말하면, 님은 정독이 좋다고 하고 있고 저는 다독이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 권을 읽기보다 한 권을 잡고 제대로 깊게 읽어라. - 이것 중요하죠.
(저도 요즘 다독보단 정독을 하고 싶어요. 다독보다 정독으로 얻는 게 훨씬 많은 것 같거든요.)

오늘 아침 신문 펼치니 신경숙 작가 인터뷰 기사 실렸네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자주 뵙기를 ...


AgalmA 2015-06-2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관련해서 글을 썼습니다.
pek0501님에 대한 반론이라기 보다 언급된 작가들의 표현에 대한 몇 가지 의문사항입니다.

http://blog.aladin.co.kr/durepos/7606618

페크pek0501 2015-06-21 15: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글에 관심 가져 주셔서 우선 감사하단 말씀드립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1. 괴테가 수학 과목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저는 이해했어요. 맞습니까? 학창 시절에 수학 성적이 나빴던 괴테가 글은 잘 썼다, 는 것이죠.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수학 성적’과 ‘수학적 사고’의 차이에요. 이 둘은 같은 의미가 아니죠. 홍세화 저자는 괴테의 수학 성적을 언급한 것 같고 글쓰기에 필요한 것은 수학으로 길러지는 수학적 사고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괴테는 학창시절에 수학을 못했어도 나이 들어서는 수학적 사고가 발달할 수 있겠죠. 삶에서 길러지는 것도 있으니까요. 또는 독서를 통해서 길러지기도 하겠죠. 정확히 말하면 괴테는 수학 과목은 잘하지 못했지만 훗날 나이 들어서는(책을 쓸 때는) 수학적 사고가 발달해 있었다, 고 볼 수 있죠. (학교를 다닌 적인 없는 할머니가 돈 계산을 잘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괴테가 수학을 못했어도 글은 잘 썼다고 말할 거예요. 글쓰기에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니 수학 과목을 열심히 해 두는 게 좋다, 라고도 말할 거예요.

2 .저는 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입으로만 부르지 말고 온몸으로 불러 봐. 그러면 훨씬 잘 불러져.” 제가 표절한 걸까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 있다. 토끼가 깡충깡충 뛰었다. 이런 것도 이미 우리 뇌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말들입니다. 어쩔 수 없지요. ‘온몸으로’는 김수영 시인 전에 누군가가 먼저 썼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요.
유시민 저자가 문장 배열까지 똑같다고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는 님의 말씀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3. 홍세화 저자는 괴테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해야 한다? : 님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괴테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쓸 땐 생각나지 않았으니 저의 실수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는 많은 정보 중 어떤 것은 그냥 삭제합니다. 주제에 벗어나거나 주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면 ‘썼어야 했어.’라고 아쉬워하게 될 때가 있죠.

4. 제가 위에 쓴 페이퍼의 제목이 ‘단상’이에요.
(단상의 뜻 :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제가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라는 것이죠. 요렇게 저는 빠져 나갑니다. 하하~~
이것저것 따져야한다면 결함 없는 글이나 책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우리는 말도 자유롭게 하지 못할 거예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가 맞으니까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오류가 많다고 합니다.

5. 님의 글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전문성이 느껴지는 유익한 글입니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오늘 공기가 맑네요. 좋은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5-06-2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쓰기가 수학과 유사하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글쓰기에는 체계화시키는 능력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능력, 앞뒤 매락을 끌어가서 마무리짓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고, 머리에 아무리 좋은 착상이 있다는 것과 적절하게 표현해낸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느끼면서 어릴 때 좌절감을 느끼곤 했었거든요. (제가 글쟁이가 되고팠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

그러나 그 이전에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묻어난다는 말씀이 더 와닿아요.
언니의 글을 늘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삶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으셔서 좋아요. ^^

페크pek0501 2015-06-21 15:19   좋아요 0 | URL
마고 님의 말씀 모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지막 멘트는 최고의 찬사네요. 늘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잊을 뻔한 한마디! 반가웠습니당...
 

 


1.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것처럼 그렇게 남에게도 관대하다면 모든 다툼의 반 이상이 해소되지 않을까?

 

 

 

 

 

 

 

 

 

 

 

 

 

 

 

 

 

 

<담론>의 저자는 자신이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일 때에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그곳에선 화장실을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다. 문틀과 문짝이 이가 맞지 않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꽝 하고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밤중에는 소리가 더 크다. 그런데 밤마다 꽝 소리를 내는 젊은 녀석이 있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욕먹으면서도 밤마다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그에게 찬찬히 타이르며,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놓지 말고 천천히 나와야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가 “그걸 누가 몰라요? 다 사정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요.”라고 말하더란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야간 절도 전문으로 주로 후생주택단지를 주 무대로 삼고 있었는데, 들키면 일단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에서 지붕으로 달아난다. 지붕을 여러 채 건너뛰어 쫓아오는 사람을 확실하게 따돌린 다음에 땅으로 뛰어내린다. 그런데 뛰어내리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그 자리에서 잡힌 것이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지금까지도 앉았다 일어나면 다리에 마비가 오고 통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마비된 다리를 끌고 나오다 보면 늘 변소 문을 놓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정을 이야기하지 그러냐’고 했더니 그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라는 대답.

 

 

...............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개 먹물들은 자기의 사정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변명까지 합니다. 못 배운 사람들은 변명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짧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냥 단념하고 욕먹으면서 살 각오를 합니다. 나는 그의 그러한 태도가 바로 춘풍추상이라는 고고한 선비들의 윤리의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정은 잘 알지 못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세심한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 그렇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고 자기에게는 춘풍처럼 관대합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이란 금언은 바로 이와 같은 자기중심적 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변소 문 꽝 닫는 사람의 경우도 그 행위만으로 단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불가피한 사연이 있으리란 춘풍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325~326쪽)
- 신영복, <담론>에서.
...............

 

 

이런 글 참 좋다. 그런데 과연 남을 대할 때 춘풍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입니다.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반대로 합니다. 자기한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까다로운 잣대로 평가합니다.(324쪽)
- 신영복, <담론>에서.
...............

 

 

기억해 두고 싶은 글이네. 소설을 한 권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서너 개 얻는다면, 에세이를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삼사십 개 얻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소설보다 에세이를 주로 읽는 이유다.

 

 

...............
반대로 자기는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생각을 단념해야 합니다. (...) 구구절절 자기 사정 늘어놓는 사람치고 썩 좋은 사람 별로 없습니다. 자기변명 없이 욕먹으면서도 침묵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326쪽)
- 신영복, <담론>에서.
...............

 

 

여기서 반론 하나 제기하고 싶다. “반대로 자기는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생각을 단념해야 합니다.”라는 구절에 대해서다. 나는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오해가 없기 때문이다.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여기는 건 금물이다. ‘침묵은 금이다.’로 보지 않고 ‘침묵은 오해를 낳는다.’로 본다. 설명하지 않아서 상대가 모를 땐 설명하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다음 한 줄의 문장으로 알아봤다. 이 책의 저자는 유머가 있는, 낙천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그리고 이 한 줄의 문장으로 저자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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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소문난 골초다. 담배를 피우다 죽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49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 최소한 건강염려증엔 걸리지 않겠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가 건강에 관한 한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다. 나는 무슨 병인지 알아보기 위해 검사하러 병원에 갈 때마다 간이 콩알만 해지는 사람이라서. 건강염려증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이라서.

 

 

건강 문제에 대해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사람은 그 한 가지 면에서만 보면 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 같다.

 

 

그런데 혹시 저자는 건강에 관한 한 겁쟁이여서 두려움을 떨치려고 괜히 한 번 이런 글을 써 본 것은 아니겠지?

 

 

 

 

 

 

3.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 인생은 무엇이냐고?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이런 것을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사는 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겠지.

 

 

...............
소아과 의사인 아들에게 인생이 무엇이냐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자 닥터 보니것은 늙어빠진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요.”(69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

 

 

 

 

 

 

 

 

 

 

 

 

 

 

 

 

 

 

 

 

 

 

4.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기 : 얼마 전 TV를 통해 실내 동물원에서 아이들이 토끼와 거북이와 새를 만지며 노는 장면을 봤다. 아이들이 동물을 안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이런 체험학습이 교육 효과가 크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보다 동물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걱정했다. 우리도 누군가가 건드리면 싫을 때가 있는데 동물들이라고 해서 사람이 만지는 게 늘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다. 동물들도 졸릴 때가 있겠고 쉬고 싶을 때가 있겠고 짜증이 날 때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동물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불시에 인간에게 놀잇감이 되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런 글이 떠올랐다.
 


...............
전번에 가족들과 충주호에 갔을 때, 딸아이가 벌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자꾸 쫓아냈다. 나는 농담 삼아 “이곳은 벌의 땅인데 네가 왜 벌한테 그러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처럼 우리는 월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월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우리가 사는 땅이 조금은 더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208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5.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다른 것 : 어느 날 당신에게 만 원이란 돈이 생긴다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만 원에 대해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겠다.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만 원이 어디예요? 우리 애 참고서 한 권 살 수 있는 돈인데.”라고. 그는 학부형이었던 것이다. 피자를 즐겨 먹는 사람은 “만 원이면 피자 한 판의 돈이네.”라고 말할 수 있겠고, 사우나를 즐겨 하는 사람은 “만 원이면 사우나를 가서 음료를 마시면 딱 될 돈이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알라디너라면 “만 원이면 책 한 권 값의 돈이네.”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만원의 가치를 달리 매기는 것은 만 원을 보는 이의 위치(또는 처지)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있는 컵을 그림으로 그리려고 하면 내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컵 모양을 다르게 그리게 된다. 내가 컵의 왼쪽에 있느냐 오른쪽에 있느냐에 따라 컵의 모양이 달라지고, 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느냐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느냐에 따라 컵의 모양이 달라진다.

 

 

다음의 글을 읽고 생각해 봤다.

 

 

...............
같은 언덕을 두고 보는 위치에 따라 ‘오르막’이라 하거나 ‘내리막’이라 하듯이 그것이라는 ‘비밀’ 또한 드러난 차원에서는 ‘있는’ 것이 되고, 숨겨진 차원에서는 ‘없는’ 것이 된다.(195~196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

 

 

비밀이 드러나면 비밀이 있는 것이 되고, 비밀이 숨겨지면 비밀이 없는 것이 된다. 그 반대로 말해도 되지 않을까? 비밀이 드러나면 (이미 비밀이 아니므로) 비밀이 없는 것이 되고, 비밀이 숨겨지면 비밀이 있는 것이 된다.

 

 

 

 

 

 

 

 

 

 

 

 

 

 

 

 

 

 

 

 

 

 

 

6.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이유 : 초록빛 나뭇잎들이 내 눈에만 예뻐 보이나 했는데, 며칠 전에 놀러 온 친구가 요즘 나뭇잎이 예뻐서 한참 들여다봤다고 말한 걸로 보아 우리 나이엔 그런 게 느껴지는 모양인가 보다 했다.

 

 

나뭇잎이 예뻐 보이다니... 

 

 

젊었던 이삼십 대엔 몰랐다가 나이 들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아마도 두뇌가 한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삼십 대엔 아름답게 여겨지는 게 많았다가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가 아닐까? 이삼십 대엔 멋있어 보이는 이성이 눈에 들어오고, 멋있어 보이는 옷이 눈에 들어오고, 멋있어 보이는 자동차가 눈에 들어오고 그랬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들에 시들해지니까 두뇌가 한가해져서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맞는 얘기인가?

 

 

(우리 애들만 봐도 알겠다. 자연 따위엔 안중에 없고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으니.)

 

 

 

 

 

 

 

7.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자 :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물음에 내가 답한다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자’라고 답하겠다. 부유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졌고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외모가 준수하기까지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욕심은 끝이 없는 길에 들어서게 만들어서 만족을 모르게 하기 때문.

 

 

...............
내가 전적으로 찬탄할 수 있는 사람은 치욕을 겪었던, 행복한 사람뿐이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경멸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길어 올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158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

 

 

치욕을 극복하고 행복해진 사람은 행복을 거머쥔 사람임에 틀림없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 행복을 거머쥔 사람이 아니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 행복한 사람이란 무엇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다.

 

 

 

 

 

 

 

8. 뭔가 보여 주기 : 나는 대학에서보다 대학원에서보다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에서 문학 강의를 들으며 배운 게 훨씬 많다. 강의를 들으며 다니는 게 재밌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강의를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소설 강의에서 인상 깊게 들은 말이 있다. 뭔가 보여 주기 위해 소설을 써야 한다는 것. 뭔가 보여 줄 게 없으면 소설 쓰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이주일 코미디언이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말과 겹치면서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렇게 고쳐 쓸 수 있다. ‘글을 쓰려면 뭔가 보여 줘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글을 쓸 때면 마음이 저절로 무거워질 때가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일부러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싱겁게 써도 괜찮다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창피해 하지 말고 뻔뻔하게 쓰자며 다짐하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에밀 시오랑도 말하지 않았던가.

 

 

...............
만일 책을 쓴다면, 감히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만 써야 할 것이다.(42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

 

 

<변신>의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충격을 주지 않는 책이라면 어떤 독자에겐 시간 낭비가 될 수 있겠다.

 

 

 

 

 

 

 

 

 

 

 

 

 

 

 

 

 

 

 

 

 

9. 뭔가 보여 주는 글이란 : 그렇다면 뭔가 보여 주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 같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

 

 

이런 글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것과 다르게 해석한 글.
독자의 고정관념을 깨게 해 주는 글.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려 주는 글.
무엇보다도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 글.

 

 

그 예가 될 만한 글을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골라 봤다.

 

 

...............
재소자들의 문신은 대개 서툴고 조악합니다. 이런 문신이나마 넣는 이유가 벌레들의 문양과 다름이 없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호락호락하게 보이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감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바깥에서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들의 문신은 자기가 험상궂고 성질 사나운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위악’僞惡입니다. ‘위선’僞善과는 정반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266쪽)
- 신영복, <담론>에서.
...............

 

 

...............
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시위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붉은 머리띠, 문신입니다. 단결과 전의戰意를 과시하는 약자들의 위악적 표현입니다.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입니다. 검은 법의法衣의 엄숙성과 정숙성이 압도합니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대조적입니다.(268쪽)
- 신영복, <담론>에서.
...............

 

 

...............
어느 감방이든 감방마다 ‘싸가지 없는 사람’이 반드시 한 명씩 있습니다. (...) 드디어 그 친구가 출소하고 나면 참으로 행복한 밤을 맞이합니다. 앓던 이 빠진 듯 시원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행복한 날도 며칠뿐, 어느새 그런 사람이 또 생겨납니다. 다시 우리는 그 친구의 만기 날짜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나가면 또 생기고, 나가면 또 생기고...... 여러 사람을 보내고 난 다음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힘든 상황이 그런 표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당사자인 그에게 그만한 결함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가 처한 혹독한 상황이 그런 공공의 적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여러 사람을 보내고 나서 뒤늦게 깨달았던 것입니다.(300~301쪽)
- 신영복, <담론>에서.
...............

 

 

 

 

 

 

 

10. 하지만 가치 없는 글은 없다 : 이곳 ‘알라딘’을 좋아한다.

 

 

이곳 ‘알라딘’을 좋아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말하면 이러하다.

 

 

첫째, 여러 님들의 글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둘째, 책 이야기가 있어 좋다.
셋째, 여러 님들의 글에서 배울 게 많아 좋다. (뭔가 보여 주는 글이 아니더라도.)

 

 

꼭 뭔가 보여 주는 글만 써야 할까? 뭔가 보여 주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안 될 땐 글을 쓰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글은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시하다고 할 만한 글을 내가 썼다면 그 글도 가치가 있다.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가질 이가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으니까.

 

 

내가 알라딘의 여러 서재를 돌아다니며 느낀 것을 열거해 봤다.

 

 

“A 님의 글은 공감을 줘서 좋다.”
“B 님의 글은 위안을 줘서 좋다.”
“C 님의 글은 어떤 자극을 줘서 좋다.”
“D 님의 글은 정보와 지식을 줘서 좋다.”
“ㅌ 님의 글은 생각할 거리를 줘서 좋다.”
“F 님의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해서 좋다.”
“G 님의 글은 재미가 있어 좋다.”
“H 님의 글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들어서 좋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

 

 

이 세상 모든 글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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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0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06-10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사정도 일일이 헤아려 준다면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고 보여질텐데..... 근데요, 잘 설명하기도 잘 헤아려주기도 힘드네요.
그게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하는 행동이라서 그런가 봐요. 아마도 그래서 때론 입을 다무는게 아닐까 싶고, 그러다보면 불통과 오해와 갈등이 따라오게 되네요. ^^

원래, 벌이 살던 곳.... 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헤아림이 있네요, 저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15-06-11 14:1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잘 설명하기도 잘 헤아려 주기도 어려운 일이에요.
같은 말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니 그것도 문제예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 공감인 것 같아요.

저도 자기 생각에 갇혀 있지 않고 타인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로그인 2015-06-11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읽었습니다. 페크님. 제 자신에게 두고 두고 읽어주고 싶은 글들이 많아서,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15-06-11 14:12   좋아요 0 | URL
그게 바로 책이 주는 위안이죠. 제가 쓴 인용문이 좋아서 그런 것 발견하는 재미로
책을 읽는 것 같아요.

좋은 책엔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 있기 마련이라 역시 책밖에 없구나, 그런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세실 2015-06-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론은 독서클럽 토론도서라 책상에 있는데 빨리 읽고 싶어 집니다.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 그렇구나....그럴수도 있군요. 갑자기 먹먹해집니다.

구구절절 자기 사정 늘어놓는다는 의미는.....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얘기로도 들려요.
관계에서 일방적인 한사람의 넋두리로 대화를 끌어간다면 쉽게 지치거든요. 전 그런면에서는 참을성이 부족해용.

알라딘에서.....영혼없는 `읽고 싶어요, 읽었어요`만 가득한 서재만 아니라면 참 좋은 동네죠. 헤~~


페크pek0501 2015-06-12 14:35   좋아요 0 | URL
세실 님, 잘 지내나요? 메르스 공포가 그쪽은 어느 정도인가요?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으면 생존력이 약해진다고 하니 이번 여름은 더워도
싫어하지 말아야겠어요.

<담론>의 단점은 두껍다는 거요. 흐흐흐~~~ 하지만 두껍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많이 뿌듯하다는 게 장점이죠. 무릇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기죽었지만 저를 기죽게 만드는 책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예전에 저자의 다른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나서 여러 번 들춰 봤는데
이 책도 그렇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어요.

운동하고 점심 먹고 나니 이 시간이... 시간에 바퀴가 달렸나 봐요. 청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어요. 아, 할일 많아서 싫어라. ㅋ

2015-06-12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2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06-1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G 할래요! 글구 1771번째 좋아요 감사드립니다.사실 제가 신영복님의 담론에 대해 욱하는 감정이 있어요. 제 책의 포인트는 천단위인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신영복님의 책은 십만을 훌쩍 넘더라고요. 그게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질투도 났답니다. 그래서 ˝난 안사!˝ 이랬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사야겠다 싶네요. 저를 돌아보게 하는 말도 많고....근데 두껍다고요. 흠흠. 다시 생각해봐야겠군요^^ 님 글에서 동물들 얘기가,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 또 마음에 와닿네요. 님의 글은 A부터 H까지 다 있는 듯!

2015-06-12 2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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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6-13 17:32   좋아요 0 | URL
가장 좋은 G를 선택하시다니... ㅋㅋ 제 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에겐 천칠백대의 좋아요는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제가 이렇게 정보에 느립니다.
하루에 2만 명도 들어오는 블로그를 가지고 계시다니... 이 알라딘 서재에 비할 바가 아니군요.

신영복 님에 대해선 질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수감 생활을 20년이나 하신 분이라서요. <담론>은 철학적, 사유적 글이 많아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마태우스 님이라면 아마 금방 읽으실 거예요. 참고로, 427쪽임. ㅋ

2015-06-13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친구 신청’에 대해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며칠 뒤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해 줬다.

 

 

..........
안녕하세요.
알라딘 고객센터 ○○○입니다.

 

1. 기존의 즐겨찾는 서재에 친구 신청하셔도 즐겨찾기 리스트에서 삭제되지 않습니다. 즐겨찾는 서재에서는 친구 신청한 서재를 그룹핑 관리할 수 있습니다.

 

2. 즐겨찾는 서재 등록이 친구 신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좀 더 상호적으로 소셜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친구 신청으로 변경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친구신청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내가 신청한 것을 북플 알림이나 서재 팔로워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서로 친구 신청하여 친구가 되면 친구 공개글을 확인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친구는 서로 친구 신청한 사람을 뜻하며, 팔로잉은 내가 친구 신청한 사람(내가 즐겨찾는 서재와 동일)이며, 팔로워는 나에게 친구 신청한 사람(나를 즐겨찾는 서재와 동일)을 뜻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 해드릴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알라디너 대부분이 알고 있을 듯합니다만, 저 때문에 잠시 헷갈렸던 분들을 위해 그대로 옮겼습니다.)

 

 

 

 

 


*
내가 기계치이다 보니 새로운 시스템을 활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아예 새 시스템에 접근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일찍 배운 것은 직업상 필요해서였고, 스마트폰만 해도 내 친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늦게 구입했을 정도다. 새 기기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였다.

 

 

‘친구 신청’ 시스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생긴 지 꽤 되었고 ‘친구 신청’을 한 분들이 늘어나는데도 보고만 있었지 나도 ‘친구 신청’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나도 몇 분들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그런데 내가 ‘친구 신청’을 한 분들 중 한 분이 내게 비밀 댓글로 묻는 것이다. 왜 자기를 즐겨찾기에서 빼고 다시 넣었냐고.

 

 

이런 물음에 대해 답할 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가 기계치가 아니라면) : “저, 그런 적이 없는데요? '친구 신청'을 했을 뿐이고 ‘친구 신청’으로 즐찾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님의 착오이신 것 같아요.”

 

 

내가 기계치라면 : “모르겠어요. '친구 신청'을 했을 뿐인데 왜 ‘즐찾’에서 빠졌는지를요. 제가 알아보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나는 물론 후자로 답했다. 기계치니까.

 

 

알고 있었다. ‘친구 신청’을 해도 ‘즐겨찾기’ 리스트에서 삭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 왜 나는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이 없는 대답을 했을까?

 

 

기계치였기 때문이다.

 

 

100 곱하기 100은 10000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수학에 자신이 없는 초등학생은 100 곱하기 100은 1000이다, 라고 누군가가 말하면 자기의 앎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 ‘그런가?’하고 갸우뚱거리게 된다. 내가 그런 경우다. 기계치라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던 것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 ‘그런가?’하고 갸우뚱거린 것이다.

 

 

기계치로 산다는 건 불편한 일이다.

 

 

 

 

 


**
오래전, 직장에서 복사기를 처음 사용하게 되던 날이었다. 복사기 앞에 서자 주눅이 들었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사용 방법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가 아니라,

 

 

‘복사기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였다.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 봐도 복사기는 작동되지 않았다.

 

 

그때 구세주 한 사람이 나타났다.

 

 

“복사하시려고요? 제가 해 드릴까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리하여 그가 복사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보았다가 기억해 두기로 했다.

 

 

복사기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1) 전원 버튼을 누른다.
2) 복사할 종이를 올려놓을 땐 글씨가 천장을 향하게 올려놓는다.
3) 복사할 수량을 설정해 놓는다.(25부를 복사하려면 숫자 2와 5를 누른다.)
4) 시작 버튼을 누른다.

 

 

알고 나면 무척 쉽다. 하지만 나는 불빛이 깜빡이고 있어서 복사기가 켜져 있는 걸로 착각하고 전원을 켜지 않은 채 복사할 수량을 누르는 것부터 했으니 문제였다. ‘왜 안 되는 거야? 아이 창피해.’ 이랬다.

 

 

이런 게 기계치의 설움이다.

 

 

앞으로도 기계치의 설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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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6-0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계치가 불편하다기 보다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 주눅드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저도 지난 겨울 동생이 인터넷폰을 선물해 줬는데
아직도 안 쓰고 있어요. 기계 하나 바꾸면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가 있잖아요.
그게 귀찮고 새로 익혀야 하는 기능도 있고 재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쩌나
이런저런 이유가 많죠.

전 아직도 옛날 휴대폰 쓰고 있어요. 스마트폰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 사용할 이유가
없더라구요. 몇년 전 조경란 작가가 자신은 옛날 휴대폰 그대로 쓴다고 해서
어찌나 동질감이 느껴지던지. 자신은 앞으로도 스마트폰 사용 안하게 될 거라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어요. 글 쓰는 사람은 그렇게 어딘가 모르게
허술한데가 더 매력적이어요. 그죠?ㅋㅋ

페크pek0501 2015-06-07 11:47   좋아요 0 | URL
깜놀입니다. 님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들 중엔 많죠. 조정래 작가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원고지에 글 쓰는 작가로
유명하죠. 외국의 유명한 작가가 한 말이 있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컴퓨터부터 없애라. 인터넷으로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죠.

그런데 스마트폰이 유용할 때가 있어요. 바빠서 신문을 다 보지 못하고 출근할 때 가면서 폰으로 뉴스를 볼 수 있다는 거죠. 님이 올린 새 글도 제가 볼 수 있죠.
작은 화면 보느라 눈 피로해서 자제하는 편이긴 합니다만...ㅋ

2015-06-08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0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5-06-0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치(얼굴치-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에다가 사람관계치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에서 살아가기에는 기계치가 훨씬 쉽습니다.

stella.K 2015-06-08 12:35   좋아요 0 | URL
헉, 얼굴치요...? 사람을 잘 못 알아 보는 뭐 그런 건가 보죠?
그런 게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근데 오히려 마립간님이 좋지 않나요? 사람관계치라 하시니 말입니다.
여자들은 지나치게 인간관계에 민감해서 말이죠.ㅠ

페크pek0501 2015-06-10 11:39   좋아요 0 | URL
아, 얼굴치, 그 표현 좋군요. 제가 얼굴치예요. 우린 동지네요.
3월 새학기가 되면 불편하답니다.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서 말이죠. 구분을 잘 못해요.
정말 얼굴치예요. 남은 나를 알아보는데 저는 상대를 못 알아봐서 오해를 받는 일도 생기죠. 같은 얼굴치라서 반갑습니다.

사람관계치, 이것도 요즘 제가 좀 있어요. 점점 나이 들수록 사람관계에 서툴러져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가 꺼려진답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편해요.
동지를 만나서 반가웠다는....

페크pek0501 2015-06-10 11:40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은 얼굴치가 아닌가 보군요. 좋겠습니다. 얼굴치이면 사회생활에선 손해죠.
어떤 때엔 상대의 얼굴을 기억해 놓으려고 빤히 쳐다본 적도 있어요.

cyrus 2015-06-0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복사기 옆에 복사하는 방법이 친절하게 붙여 있는데도 내가 사용하면 복사기가 고장날 것 같은 벌써 불길한 마음이 들어요. 이래서 기계 만지는 것이 두려워지고 기계치가 되는 것 같아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5-06-10 11:43   좋아요 0 | URL
하하~~ 님도 기계치인가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글은 기계치 아닌 줄 알았어요.
우리 큰애는 어떤 기계든 척보면 아는 애인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기네는 기계 세대라서 잘 알고 엄마 세대는 기계 세대가 아니라서 기계치래요.
컴퓨터와 휴대전화와 함께 성장한 아이들과
뒤늦게 나이 들어 그런 것들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차이라는 거죠.
나를 위로하는 말로 한 것이지만 일리 있는 말인 것 같아요.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