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고 싶은 책 세 권
신문은 매일 흥밋거리를 선사하지만 특히 토요일의 신문은 신간을 안내하는 지면이 있어 더욱 그렇다. 신문을 보고 이달에 사고 싶은 책이 세 권 생겼다. 사실 사고 싶은 책이 어디 세 권뿐이겠는가. 더 많았지만 ‘구입 욕망’을 절제하는 힘을 발휘하여 세 권으로 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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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형식들> : 이성복 산문집. 1976년에서 2014년 사이에 씌어진 산문 21편을 담고 있다. (…) 이 책의 여러 산문들이 품고 있는 사유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물음들은 냉정한 자기 성찰과 세상 모든 ‘입이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다양한 형식의 고백들로 그를 이끈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 : 마음산책에서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세 번째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약 2년간 「씨네21」에 발표했던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연재글 19편과, 2011년 웹진 '민연'에 발표했던 글 2편, 2013년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발표했던 글 1편을 묶어 27편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일리치가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정적으로 모색하던 격변의 사상 전환기에 쓴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그의 저서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분명히 제시하는 저서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세기의 사상가가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이 어둠 속에 별처럼 빛난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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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저, <고백의 형식들> : 시를 잘 쓰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산문집을 본다면 팬이 될 것 같다. 나와 친한 글쟁이 친구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는 저자이기에 꼭 한 번은 산문집을 사 보려고 했는데 마침 신간이 나와 이번에 구입하기로 했다.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저자를 존경하게 될 것 같네.
신형철 저,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이미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팬이 되어 버려 주목하고 있는 저자인데 이번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네.
이반 일리치 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학교 없는 사회>를 쓴 저자의 또 다른 저작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각성을 촉구할지 기대되네.
책 책 책! 책에 대한 내 열정은 끝이 나지 않는구나.
2. 행복의 조건은 열정
행복의 조건 중 하나는 ‘열정’이 아닐까. 무엇에 대해서든 열정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정을 애착이라고 해도 좋겠다. 자신의 마음을 끌리게 하고 애정을 갖게 하고 열중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무엇이란 낚시일 수 있고 바둑일 수 있고 야구일 수 있고 등산일 수 있고 책일 수도 있다.
내 삶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정신을 가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책에 대한 열정을 가졌다는 점이다. 만약 내 삶에서 책을 뺀다면 내 행복의 반 이상이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책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한 건 1992년 가을이었다. 그러니까 22년 전부터 책에 미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하면 1992년은 내 삶에서 참 뜻깊은 해이다. 결혼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던 내가 삶의 변화를 찾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해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해에 나는 두 개의 일을 찾았다. 모 잡지사에서 ‘자유기고가’라는 자리를 얻어 일하게 되었고, 모 기관에서 운영하는 소설반에 등록하여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글 써서 돈 버는 일이 생긴 것도 좋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가 직접 강의하는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 게 더 좋아서 설렘과 흥분을 느꼈다. 집에서 애 키우면서 갇혀 지내다가 친정에 애를 맡기고 소설 강의를 들으러 갈 땐 마치 내 몸에 날개라도 달린 듯 신이 났다.
소설 강의를 들으러 다니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이 생겼고 그 열정이 책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아마 내 생애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때가 그때(1992년~1993년)가 되리라. 한 달에 열 권 정도 읽으며 지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많이 읽진 못하리라. 모 잡지사에 한 달에 한 번만 인터뷰 기사를 써서 보내면 되었고, 일주일에 두 번만 소설 강의를 들으러 가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책을 읽은 적도 있다. 그때 책을 읽고 나서 줄거리와 인상 깊은 구절을 빼곡히 적어 놓은 노트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 노트는 책에 대한 그때의 내 열정을 증명한다.
아, 책에 대한 그때의 내 열정을 증명해 주는 게 또 있다. 그때 소설 강의를 함께 듣던 사람이 나를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말해 주었는데, 그 세 단어 중 하나가 ‘열정’이었던 것. 나를 ‘열정, 순수, 명료’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열정은 물론 책에 대한 열정을 말함이다. 남에게도 내가 꽤 열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그런데 내가 순수하고 명료했나? 이건 무엇을 말함인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순수’는 맘에 들지 않는다. 나이 값을 못한다는 것 같아서. ‘명료’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단순하다는 것 같아서. ‘열정’은 맘에 든다. ㅋ)
1992년에 만약 내가 남자와 연애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까지 열정을 갖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과의 연애는 2~3년이면 뜨거움이 식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람과의 연애가 아니라 책과의 연애였기에 지금까지 22년 동안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쭉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그 열정의 지속을 말해 준다.
3.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
매달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사고 싶은 책이 있는 한,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울 때가 있다.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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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기억나요……?” 그녀가 덧붙였다. “……자동차 운전에 관해서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 말이에요.”
“그럼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지요? (…)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위대한 개츠비>,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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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이다. - 페크
지금 가을이니 머지않아 겨울이 오겠다. 겨울이 되면 걱정되는 게 있다. 얼음이 언 길이 미끄러워서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넘어지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우리 시어머니가 지난겨울에 그런 사고가 나서 두 달 넘게 입원하신 적이 있다.) 만약 그 사고로 골반의 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게 되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가 없게 되어 내가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어쩔 것인가? 그래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 한 방이면 모든 행복은 끝이 나는 것.
행복은 불행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법.
그래서 나는 책을 구입할 생각으로 행복한 지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