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나이는 가을

 

 

가을이구나.

 

 

계절만 가을이 아니라 내 나이도 가을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이 봄,
청년 시절은 여름,
중년 시절은 가을,
노년 시절은 겨울.

 

 

내 맘대로 나눠 봤다.

 

 

계절과 내 나이의 다른 점은, 계절은 가고 나서 또 돌아오는데 내 나이는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가을은 내년에 또 오지만 내 나이는 내년엔 다른 나이가 되고 만다. 그래서 언젠가 내 나이는 겨울이 되겠지.

 

 

내 나이는 가을.

 

 

여름이 지난 걸 아쉬워해야 하나 겨울이 아직 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나.

 

 

 

 

 

 

2. 내게 용기를 주는 말

 

 

오래전에 어느 강의를 통해서 들었다. 소설은 50세가 넘어서 써야 한다고. 그 이유는 50세가 넘어야 인생이 뭔지 알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이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 나도 뭔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는다.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은 지금 시작하는 게 제일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정신이 젊어야 한다는 의견엔 동의한다. 그래서 나이 많은 작가들이 일부러 젊은이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고 하지 않던가.

 

 

젊은 정신을, 젊은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도 젊은이들의 글을 많이 읽을 생각. 

 

 

 

 

 

 

3. 그가 행복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죠?

 

 

그가 행복한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가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면 됩니다.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직업도, 명예도, 돈도, 권력도 아니고 취미인 것 같아요. 혼자서 연구하며 바둑을 두든, 골프를 치든, 낚시를 하든, 글을 쓰든, 책을 읽든 무엇이든 할 일이 있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못 견뎌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할 짓거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 뭐든 하기 나름이다

 

 

어릴 때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 

 

 

“너 커서 뭐 되고 싶으냐?”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낮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지만 욕먹는 이도 있고,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존경받는 이도 있다. 뭐든 하기 나름이다.

 

 

 

  
 


5. 1만 권을 읽었다는 사람

 

 

3년 간 1만 권을 읽었다는, 어떤 책의 저자가 있다. 이것 거짓말 같다. 3년 간 1만 권을 읽으려면 하루에 10권씩은 읽어야 하는 건데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책만 읽으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화장실 가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줄곧 읽은 날엔 하루에 한 권은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권은 읽지 못했다. 개인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걸 감안해서 최대한으로 잡더라도 하루에 세 권 정도까지만 읽을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상은 안 되는 일이라고 본다. 그것도 장기적 연속은 불가능하다. 명절도 있고 손님으로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도 있고 누구 만나는 약속도 있을 텐데... 또 몸이 아프거나 쉬고 싶을 때도 있지 않겠나. 그러므로 하루에 10권씩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

 

 

 

 

 

 

6. ‘돈 부자’보다 더 좋은 것

 

 

우리 집 거실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어떤 방문자가 말했다.

 

 

“책 부자시군요.”

 

 

내 대답.

 

 

“예, 이렇게 보기만 해도 흐뭇하죠.”

 

 

‘돈 부자’보다 ‘책 부자’가 되는 게 나는 더 좋다. 책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책에 대한 열정이 식는다면 설령 내가 돈 부자가 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내가 ‘돈 부자’보다 ‘책 부자’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7. 표절

 

 

신문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 중 하나가 표절에 대한 기사다.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사람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표절하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쓴 문장이 누가 쓴 문장과 비슷해서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우연의 일치라는 게 있으니까. 또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어느 책에서 읽은 문장을 내 글에서 비슷하게 써 놓고 내가 만들어 낸 문장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 이 경우, 어디까지나 실수이지 표절이 아니다.

 

 

내가 표절을 하지 않는 이유는 치  사  해  서  다. 차라리 글을 못 쓴다는 말을 듣는 게 낫지 치사한 짓은 못한다.

 

 

(내가 쓴 댓글을 표절하는 일은 많다. 뭐 어떤가? 내가 쓴 댓글인데...)

 

 

 

 

 

 

8.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

 

 

좋은 문장이란 남들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고, 나쁜 문장이란 남들이 읽고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읽게 되는 문장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유명한 어느 작가는 소설을 쓰고 나서 (가방끈 짧은) 가정부에게 보여 줘서 그가 어렵다고 하면 고쳐 썼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매번 검사를 받으며 소설을 썼단다. 이 일화가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지 않는가?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스탕달이나 발자크만큼 유명한 외국 작가인데 이름을 까먹었다. 메모를 해 둘 걸. 메모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결심했다. ‘기억해 두고 싶은 건 반드시 메모를 해놓을 것.’)

 

 

 

 

 

 

9. 죽이는 문장

 

 

내가 올해 구입한 책들의 목록을 보니 소설보다 에세이가 많다. 에세이보단 소설이 더 재밌을 텐데 나는 왜 에세이를 선호할까? 그건 바로 죽이는 문장을 만나는 즐거움이 에세이에 있기 때문이지. 나도 그런 문장을 흉내 내고 싶기 때문이지.

 

 

예를 들면 이런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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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가슴에 큰 손수건을 달았다. 콧물을 닦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에 비해 영화에 나오는 신사들의 양복 앞주머니에는 아주 살짝 손수건이 보인다. 그처럼 주제가 드러나 보이는 방식도 글쓰기의 수준에 따라 다르다.(184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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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독자가 소설을 읽고 뭘 말하려고 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초보자의 작품이고, 소설을 읽고 잘 몰라서 ‘도대체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게 만든다면 고수의 작품이라는 것. 전자보다 후자가 더 예술적이니까. 그리고 전자보다 후자가 독자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시도 마찬가지. 영화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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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젖은 걸레를 짜듯 쥐어짜는 것이다. 아래서부터 위로 밀어 올리며 치약을 짜듯, 혹은 손아귀의 힘을 다해 약재를 담은 삼베를 비틀어 짜듯, 글쓰기는 대상의 의미를 남김없이 끌어내야 한다. 요컨대 글쓰기가 짜고 나서도 물이 흥건한 행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185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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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소설이나 영화에서 폭력의 세계를 보여 주고 싶다면 그 세계의 밑바닥까지 보여 주라는 것. 인간의 항문까지 보여 줄 각오로 하라는 것. 그래야 완성도 높은 소설이나 영화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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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닷게는 따개비가 몸속에 들어와 알을 낳으면 제 알인 줄 알고 키우기 때문에 따개비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처럼 글쓰기는 글 쓰는 사람의 몸을 빌려 ‘인생’이 하는 것인데,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것으로 안다.(185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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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자신이 글을 쓴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이 글을 쓴다는 것.

 

 

왜냐하면 현재의 ‘나’는 과거의 삶이 만든 것이고 현재의 삶은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기 때문일 듯.

 

 

<고백의 형식들>을 읽다가 스친 생각.

 

 

‘간단하게 설명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네. 바로 이런 게 문학의 맛이지. 문학이란 짧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길게 문학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지. 결국 글쓰기란 말의 우회적 표현이고 말장난이고 말의 지적 유희인 거지. 그것을 즐기는 거지. 글을 쓰는 사람도 글을 읽는 사람도.’

 

 

다음의 글을 읽고 이랬다. ‘캬, 문장 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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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는 말했다. “사랑 없는 배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우쭐해질 것이다. 그리고 배움 없는 사랑이란? 길을 잃을 것이다.”(249쪽)

 

- 올더스 헉슬리, <영원의 철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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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기 삶에 감사하려 들면

 

 

자기 삶에 불평하려 들면 백 가지가 넘을 것 같고, 또 감사하려 들면 백 가지가 넘을 것 같다. 이왕이면 감사하는 쪽으로 삶을 봐야겠지?

 

 

내가 감사하는 것들.

 

 

1)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난 것. - 팔찌와 반지와 목걸이를 끼는 즐거움을 누리는 여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 (나는 보석보다 14K나 18K를 좋아한다.)
2) 키가 작지 않은 것. - 키에 열등감을 가지지 않은 것에 감사.
3) 얼굴이 검지 않은 것. -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
4) 결혼한 것 - 가족이 있는 것에 감사.
5) 독서를 좋아하는 것 - 독서로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에 감사.

 

 

등등, 백 가지 넘게 열거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읽어 줄 것을 기대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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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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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11-1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2번은 정말 희망적인 말이어요.
저도 곧 5학년이 되지만 이쯤되니까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용기가 나더군요. 물론 여전히 못 쓰지만...(긁적긁적~)

혼자 잘 지내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너무 혼자 잘 지내는 걸
좋아해서 오히려 같이 있으면 불편하단 사람도 있어요.

요즘엔 슬로우 리딩이 대세라잖아요.
저도 무조건 많이 읽는 거 보다 잘근잘근 씹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니 같이요.^^

페크pek0501 2014-11-15 11:37   좋아요 0 | URL
2번... 연륜이 묻어나는 소설의 맛이 있어요. 점점 그런 소설이 좋더라고요.

잘근잘근 씹어 먹기 위해 같은 책을 여러 번 나눠 인용하는 글을 올리고 있어요.
제가 인용한 문장은 까먹지 않게 되더라고요.
인용한 문장에 대한 내 느낌이나 생각을 쓰기 때문에 더 잘 기억되는 것 같아요.

우리 오래 씹을 수 있는 책을 보자고요. ^^


2014-11-17 0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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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9 1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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