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까딱 잘못하면 속마음을 들키고 마는 글쓰기
다음의 문구를 보고 나도 글을 쓸 땐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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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심해야지. 까딱 잘못하면-’(116쪽)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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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나서 ‘아차, 실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을 쓸 땐 잘난 척하는 내용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읽어 보고 잘난 척하는 내용임을 깨닫게 되어서다.
인간의 특징 중 내가 알아낸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하길 좋아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말하면서 자신의 어떤 점을 자랑하길 좋아한다는 점이다. 아마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이런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특히 자신에 대해 글을 쓸 때엔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안다. 글이 완성되면 꼭 다시 읽어 보면서 수정 작업을 하는데, 이때 내가 잘난 척한 데는 없나, 하고 찾는 걸 잊지 않는다. 까딱 잘못하면 속마음을 들키고 마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2. 한심한 드라마가 주는 교훈
한심한 내용의 드라마가 있다. 그런 드라마를 뭐하러 보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교훈을 얻을 수 있죠. 예를 들면 모진 시어머니를 보면서, 못된 시누이를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또 자신의 욕망만을 향해서 가는 사람을 보면 스스로 불행의 길로 들어선 게 보이죠. 불륜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그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죠.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드라마만 유익한 건 아니랍니다.”
나처럼 생각하는 작가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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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운다. <소행성의 광부들>같은 (또는 <인형의 계곡 valley of the Dolls>이나 <다락방의 꽃들 flowers in the Attic>이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소설 한 권은 유수한 대학의 문예 창작과에서 한 학기를 공부하는 것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설령 기라성 같은 대가들이 초빙 강사로 나오더라도 마찬가지다.(177~178쪽)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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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의 흐름에 맡기기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안다. 글쓴이의 의도대로만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글쓴이가 가고자 하는 길로만 가면서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글 스스로 가려는 길이 있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길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글이 가고자 하는 대로 놔둬라. 다만 엉뚱한 길로 들어서려는 것만 제지하라.’
이것에 대해 어느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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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내가 고삐를 당겨 외양간의 소를 끌어내지만, 소를 앞세우고 밭으로 갈 때 내가 할 일은 소가 딴 길로 가려 할 때마다 방향을 잡아 주는 것뿐이다. 그처럼 처음에는 나의 의도 혹은 착상에서 글을 시작하지만, 이내 글이 가는 대로 내맡기고, 다만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것을 막아 줄 뿐이다.(168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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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글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
소설로 말하면 이렇게 되리라.
‘작가가 개입하지 말고 각 인물들이 스스로 말을 하게 하라.’
어떤 말을?
‘자기의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말을 하게 하라.’
다른 작가의 다른 표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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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말하겠다. ‘주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256쪽)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 규칙에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같은 우화 소설뿐이다(나는 <동물 농장>의 경우에도 스토리의 아이디어가 먼저 떠올랐던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혹시 내세에 조지 오웰을 만난다면 꼭 물어봐야겠다).(256~257쪽)
언제나 스토리가 우선이다.(286쪽)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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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 글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 왜냐하면 스토리가 중요하니까.
4. 글을 분류해서 저축하기
“글을 잘 쓰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지세요. 행복에 대해서, 불행에 대해서, 건강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 희망에 대해서, 실망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등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창밖의 풍경에 대해 묘사하는 것도 좋고 자신의 기분에 대해 묘사하는 것도 좋아요. 어쨌든 글을 써서 내용을 분류하여 각각 폴더 안에 넣어 두는 겁니다. 예를 들면 행복에 대해서 쓴 글은 ‘행복’이란 폴더 안에 넣어 두고, 불행에 대해서 쓴 글은 ‘불행’이란 폴더 안에 넣어 두는 거죠. 그런 글들이 모이면 나중에 글을 쓸 때 수월합니다. 어떤 글을 쓸 때 그 폴더 안에 관련된 글이 있으면 몇 문장씩 가져오면 되니까요. 말하자면 필요할 때를 위해 저축을 해 놓는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쓰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5. 나무들의 표정
어떤 날은 아파트 단지에서, 어떤 날은 길거리에서, 어떤 날은 동네 산에서 붉은빛 누런빛으로 알록달록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나무들의 푸르름만 좋아했던 내가 이제 단풍 구경을 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무들마다 표정이 달랐다.
자태를 뽐내는 듯한 표정,
즐겁다고 외치는 듯한 표정,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
누구와 슬프게 이별한 듯한 표정,
누구를 쓸쓸히 기다리는 듯한 표정.
그것들을 보면서 표정의 풍부함에 감탄했다.
<외면일기>를 보니 이런 표정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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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원은 엄청난 슬픔이 휩쓸고 지나간 얼굴처럼 험상궂은 표정이다.(245쪽)
그는 깊은 우울증 속으로 침몰해버린 표정이다.(279쪽)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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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무엇에 홀리겠는가?
우리에겐 바쁜 일이 왜 필요할까?
한가해지면 잡념이 생겨서 근심이 많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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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는 여우와 스라소니를 덫으로 유인할 때 나뭇가지에 새의 깃털 한다발을 잘 보이게 묶어 매달아서 덫 쪽으로 주의를 돌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짐승은 그 물건에 홀린 나머지 정신을 못 차리고 그만 제가 발을 어디에 딛는지 주의하지 않는 것이다.(243쪽)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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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무엇에 홀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근심이 있을 때 무엇에 홀리겠는가?”
“책이나 글에 홀리겠다. 책을 읽어 책 속으로 들어가거나 글을 써서 글 속으로 들어가서 내 발이 딛고 있는 현실의 땅을 잊겠다. 자연히 근심 또한 잊게 될 테니까.”
7. 더 좋은 것은 무엇?
커피 맛보다 더 좋은 것은 커피 향,
샤워할 때보다 더 좋은 것은 샤워한 뒤에 마시는 차가운 물 한 잔,
돈 버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은 월급이 들어온 걸 확인하는 일,
독서보다 더 좋은 것은 책,
글쓰기보다 더 좋은 것은 내 글에 대한 호평.
8. 쓸데없는 생각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봤다.
느끼한 고기를 맛있게 먹고 나서 나중에 알맞게 익은 김치와 밥을 맛있게 먹는 게 좋은가, 아니면 알맞게 익은 김치와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 나중에 느끼한 고기를 맛있게 먹는 게 좋은가?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예전에 남편의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김치와 밥을 먼저 먹고 그것이 싫증이 날 때쯤 고기를 먹게 하는 대접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참 맛있게 먹었다.
9. 삶이 지루하다는 것의 의미
삶이 지루하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불행한 일일까?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삶이 지루할 만큼 마음이 평화로운 시간이 쭉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밤에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할 만큼 걱정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평화로운 시간을 갖기 어렵다. 가난해서 쉴 틈 없이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 밥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은 따분한 시간을 가져 보고 싶을 것이다.
삶이 지루한 분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10. 해석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과거의 나쁨이 현재의 나쁨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좋음이 미래의 좋음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변화하면 그것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내가 이삼십 대엔 머리숱이 많은 게 참 싫었다. 곱슬곱슬하게 파마를 하면 머리숱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꼭 두 번 자르게 된다. 머리숱이 많아 머리가 커지는 게 싫어서 머리카락을 꾹꾹 누르곤 했다. 속상했다. 한 번도 내가 맘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못해 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딸들은 머리숱이 많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랐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숱이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 머리숱이 적어져서 고민이라는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머리숱이 많은 게 행운이란 생각마저 든다. 과거의 단점이 현재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는 얘기다.
머리숱뿐이겠는가. 모든 일이 그러하다. 현재의 나쁨이 미래엔 어떻게 해석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인가요?)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이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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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들>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