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스티븐 킹이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는다고 했더라?’ 나와 비교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찾아봤다.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책장이 있는 거실과 책이 쌓여 있는 안방을 오가면서 찾으니 안방 침대 옆에 수십 권의 책이 쌓여 있는 곳의 맨 아래에 있었다. 책 176쪽에 보니까 일 년에 70~80권쯤 읽는데, 주로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읽으니 그가 주로 소설만 읽는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그런 대작가가 겨우 소설만 읽다니. 그 정도의 작가라면 철학, 사회학, 심리학, 윤리학, 종교,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해야 되는 것 아닌가.

 

 

‘주로 소설만 읽는다.’

 

 

이 말은 소설만 읽으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소설엔 심오한 통찰이 들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은 심오한 통찰력이 있어서 다른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이 소설만 읽어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알기론,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나는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인데도 대개 일 년에 책을 70~80권쯤 읽는다. 주로 소설이다. 그러나 공부를 위해 읽는 게 아니라 독서가 좋아서 읽는 것이다. 나는 밤마다 내 파란 의자에 기대앉아 책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것도 소설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스티븐 킹 저, <유혹하는 글쓰기>, 176쪽.

 

 

 

글을 잘 쓰려면 우선 책을 읽는 것을 무지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겠다.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읽었다.

 

 

 

 

 

 

 

 

 

 

 

 

 

 

 

 

 

 

 

 

 

 

2.

책을 읽을 때 연필로 인상적인 문장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내 느낌이나 생각을 적어 놓기도 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무릇 사랑이란 이별의 순간이 올 때까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12쪽.

 

 

 

내 느낌이나 생각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알았다. 내가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을. 이상한 일이다. 살아 계셨을 땐 보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만날 수 없는 지금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리운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이별의 순간이 올 때까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가 보다.

 

 

 

 

죄책감이란 초대하지 않아도 밤중에 찾아와 사람들을 깨우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47쪽.

 

 

 

내 느낌이나 생각 : 죄책감을 갖고 산다면 행복은 가질 수 없다. 죄책감과 행복은 양립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니 죄를 짓고 살지 말 것.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는 말이 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때리는 사람이 되기보단 차라리 맞는 사람이 될 것.

 

 

 

 

 

 

 

 

 

 

 

 

 

 

 

 

 

 

3.

누군가가 책을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 주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위의 1번처럼) 스티븐 킹의 책을 찾아봤듯이 이미 읽은 책을 다시 보길 좋아하는데, 누군가가 빌려 가서 그 책이 집에 없을 경우 마음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신경질이 나기 때문이다. 책을 빌려 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빨리 되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위의 2번처럼) 내 책들 중엔 내 느낌이나 생각을 적어 놓은 게 많아서 누군가가 읽을까 봐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가 내 비밀스런 일기를 보는 것 같아 싫은 것이다. 나의 유치한 생각을 들킬 수 있으니까.

 

 

책을 빌려 주지 않는 게 미안하긴 하다. 그래서 아예 새 책을 사서 선물한 적이 몇 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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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10-0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공감,
2. 완전 공감,
3. 으아아아아 어쩜 좋아요. 완전 공감 백만스물아홉열이예요!!! 특히,「책을 빌려 간 사람들의 공통점을 빨리 되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요. 저에게 책을 빌려 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분명히 빌려달라고 해놓고는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예요. ㅋㅋ

페크pek0501 2013-10-07 12:43   좋아요 0 | URL
아, 공감 많이 하시는군요. 님은 스케일이 크세요. 백만스물아홉열... ㅋㅋ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을 빌려 주기 싫어하는 점이 아닐까 해요.
메리포핀스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3-10-0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스티븐 킹이 그런 말을 했던가요? 저 그책 읽었는데...즐기면서 하는 사람 못 당한다잖아요.
뭐든 즐기며 하면 좋겠죠. 전 몇 년째 소설 한 번 써 보겠다고 하곤 여태 못 쓰고 있어요.ㅠ 그런데 소설만 읽고 소설을 그렇게 잘 쓰는 사람이 되다니 배가 좀 아프군요.ㅎ
2. 그게 참 그렇더라구요. 저도 오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헤어지고나니 그립고, 보고 싶고,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래요. 그렇다고 다시 살아 돌아오면 사랑하게 될까? 거기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마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진 않겠더라구요. 또 그런 일은 없을 거니꺼 그런 상상은 필요없겠죠. 사람은 이별의 순간이 와야 사실은 미워했던 게 아니라 좋아했는데 그걸 잘못 이해하고 있었구나 생각해요.ㅠ
<예언자>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3. 전 중요하게 갖고 있을 책이 아니면 그냥 줘요. 지금도 할 수만 있으면 주고 싶은데 귀찮아서 못 줘요.ㅠ

페크pek0501 2013-10-07 12:46   좋아요 0 | URL
1. 글 잘 쓰는 사람한테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어 보니, 뭐 별로 안 읽어요, 그러면서 글을 잘 써서 얄미웠던 기억이 있어요. ㅋ

2.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만나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어서 또 자주 봐서, 보고 싶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젠 만날 수가 없으니 그리워집니다.

3. 님은 욕심이 없는 것 같군요. 저는 다른 건 안 그런데 책 욕심은 좀 있나 봐요.ㅋㅋ


수이 2013-10-0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릴 지브란, 좋아요.

페크pek0501 2013-10-07 12:47   좋아요 0 | URL
앤 님, 저도 좋아요.
괜히 명성이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유명한 작품은 왜 유명한지 알아보는 즐거움이 고전을 읽게 만들어요.
궁금해서 말이죠.


마립간 2013-10-0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알라디너 책을 강간하듯이 읽는다는 표현을 했을 때, 저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아마 페이지를 접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는 것을 텐데.

책에 관해 강박적인 결벽증이 있는 저는 책을 빌려 주는 것도 잘 못 합니다. 마치 아이를 맡겨 놓은 느낌, 어디가서 무시당하는(읽히지 않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학대(라면 냄비 받침) 당하는 것은 아닌지.

책을 빌려 주기는 하는데, 확실히 독서와 책을 좋아하고 빌려 주었을 때, 책에게 무시와 학대를 하지 않을 사람에게만 빌려줍니다.

페크pek0501 2013-10-08 13:56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
책을 강간하다... 처음 들어보는데요, 아마 깊이 읽는다는 걸 뜻하나 보죠?
학대(라면 냄비 받침)라는 표현은 참 재밌는데요. 님도 유머가 있으시네요. ㅋㅋ
님은 책을 자식처럼 여기시는군요. 그리고 상대를 선별해서 책을 빌려 주시는군요.
결론은 님도 책을 무척 아낀다, 가 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2013-10-08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9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10-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은 소설쓰기에 타고난 천재 같아요. 비교 불가함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ㅋㅋ
나도 책을 빌려주기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도서관으로 전환하니 무한대출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페크pek0501 2013-10-08 13:58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도서관은 잘 되고 있겠죠?
저는 일을 벌이는 걸 싫어해서 님 같은 분을 보면 존경스럽답니다.
뭐랄까, 그릇이 커 보인다고나 할까요.
높은 위치에 있게 되면 작은 것에 마음을 비워야 큰 것을 얻게 된다, 하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순오기 님이 방문하시면 옛 고향 친구가 찾아오듯 반갑답니다. 제가 처음 서재를 꾸리던 초보 시절에 알게 되어 그런가 봐요.^^)

세실 2013-10-0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번 읽고 난 책은 대부분 두번 안 읽게 되더라구요. 사랑하는 몇권을 제외하고는 아낌없이 줍니다. 물론 가끔은 아쉬울때가 있어요^^

페크pek0501 2013-10-08 14:00   좋아요 0 | URL
세실 님은 제 안목으로 볼 때, 쿨한 성격이실 것 같아요.
성격 좋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으시죠?
저는 좀 까칠한 면이 있답니다. 단, 남들이 잘 몰라요.
외동딸 치고 성격이 좋단 말을 들어요. 그런데 저는 알죠. 킥킥~~

프레이야 2013-10-0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그어진 책을 보면 그사람의 마음, 정확히 말하면 욕망과 결핍을 대체로 눈치챌 수 있죠. 긍정적으로요. 같은 이유로 읽은 책은 빌려주기가 꺼려지는걸까요, 전^^ 근데 타인의 밑줄 그어진 책은 괜찮으니 무슨 심리일까요?ㅎㅎ 페크님 참 좋은 계절 이제 마음이 어떠신지요? ^^

페크pek0501 2013-10-08 14:0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욕망과 결핍을 알 수 있군요.
저는 저의 유치한 생각을 알게 될까 봐 빌려 주기 싫어요.수준 낮음이 탄로 나는 게 싫거든요.ㅋㅋ

제 마음요?
으음... 아버지 생각이 자꾸 나고 그러면 쓸쓸해지고... 그러다가 부모상을 당하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인데 싶어, 그러고도 태연하게 사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그래요.
그래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엔 집중할 수 있어서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아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답니다. 빨리 많은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어요.

서울은 지금 비가 와요. 촉촉한 날입니다. 먼지 일으키며 청소나 해야겠어요. 호호~~
고맙습니다.

yamoo 2013-10-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아, 킹이 소설만 읽는 군요. 전 첨알았습니다!
2. 공감!
3. 완전 공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은지가 언제인지....읽을 때 줄을 좍좍 그었던 기억만 나고, 책의 내용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없네요. 인용해 주신 부분을 보니, 생각이 나는 것도 같고...
칼릴 지브란 인용글에 덧붙이신 페크님의 글이 더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13-10-08 14:06   좋아요 0 | URL
예, 야무 님, 저도 그가 소설만 주로 읽는다고 해서 놀랐죠.
알랭 드 보통처럼 철학책을 많이 읽을 줄 알았죠.
공감하시는군요.

“칼릴 지브란 인용글에 덧붙이신 페크님의 글이 더 좋습니다^^”
- 요런 댓글을 읽으면 저의 행복지수는 높아집니다용.
비오는 날입니다. 멋진 하루 보내세요.^^

oren 2013-10-1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이 소설만 주로 읽는다는 얘기가 흥미롭군요. 그러나 제 생각엔 그도 아마 매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고 난 뒤에 '지금은' 주로 소설 위주로 책을 읽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의 얘기를 듣고 보니 [네이버 지식인의 소재]에 소개된 기 소르망의 얘기도 떠오르네요.(기 소르망 역시 젊어서 이미 다른 수많은 책들을 섭렵한 이후에 '지금은 주로 소설을 읽는다'는 얘기이지 싶어요.)

* * *

소설은 내 영감의 원천

제가 주로 읽는 책은 소설이에요. 제가 철학, 정치, 경제 등을 다루는 비소설 장르 작가이다 보니 다소 이상할 수 있는데요. 저는 비소설 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하고, 소설에서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소설은 저의 영감의 주요 원천인 셈이죠. 어떤 나라의 소설이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미국 소설을 좋아하고 미국 소설을 많이 읽긴 했지만, 그게 소설이기만 하다면 그리고 현실에 근거한 것이면 어떤 것에도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저는 비소설 보다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들과 문화 그리고 문명에 대해 더 많이 배웁니다.

페크pek0501 2013-10-10 11:23   좋아요 0 | URL
오렌 님이 방문하셨군요.
아, 님의 말씀이 맞을 것 같아요.ㅋㅋ
그렇다면, 스티븐 킹이 이렇게 "예전엔 이러이러한 책을 읽었는데, 요즘은 주로 소설을 읽는다."라고 정확하게 써야 될 것 같군요.
사실 글 잘 쓰는 작가들은 무슨 책을 읽는지가 저도 그렇고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듯해요.

소설은 영감의 원천, 이라는 구절을 새기게 되네요.
요즘은 다른 책을 읽느라 소설과 친하지 않는데, 저도 소설을 많이 읽어야겠어요.

독야청청 2013-10-1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우연히 보았지만 적극 공감! 저도 여간해서 책 빌려주지 않는답니다...

페크pek0501 2013-10-13 13:10   좋아요 0 | URL
새 손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책을 빌려 주기 싫은 건 아마 책을 좋아하는 분들의 공통점일 듯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3-10-2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릴러 작가 중에 딘 쿤츠도 글쓰기에 관한 책을 냈죠.제목도 멋집니다.<베스트셀러 쓰는 법>.내용도 재밌습니다.

페크pek0501 2013-10-22 17:57   좋아요 0 | URL
아, 그 책 재밌겠는데요...
베스트셀러 쓰는 법이란 독자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법, 일 것 같아요.
관심이 갑니다. 검색해 보겠습니다. ㅋ

몸이 골골... 감기 기운이 있어요.
환절기이니 감기 조심하세요.

오랜만의 방문에 반갑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3-10-23 18:03   좋아요 0 | URL
저는 건강합니다.페크 님도 푹 쉬면 나아질 겁니다.

페크pek0501 2013-10-24 10:29   좋아요 0 | URL
감기 골골... 하다가 나았어요.
그런데 입가에 뭐가 났네요. 역쉬~~ 몸 컨디션이 별로인 가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