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후처의 학대에 못 이겨 그 괴로움을 잊으려고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노인은 남의 집에 얹혀사는 아들 포크로프스키를 사랑했다. 아들을 일주일에 두 번씩 꼭꼭 찾아왔으며, 아들의 얘기 외에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포크로프스키는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청년이었다. 책을 좋아했으나 공부를 계속하기에는 몸이 약했다. 결국 그는 숨을 거두고 만다. 


장례식은 안나 표도로브나가 맡아서 치렀다. 몹시 초라하고 값싼 관을 사고, 짐마차도 불러왔다. 장례식 비용에 충당한다며 안나 표도로브나는 그의 책과 물건을 모두 가져갔다. 노인은 그녀에게 달려들어 시끄럽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 책들을 빼앗아 가지고 주머니에 가득 쑤셔넣고 모자 속에까지 넣고는 사흘 동안이나 가지고 다녔다.(81쪽)


아들의 손때가 묻은 책들이므로 이제 유품이 된 그것들은 노인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 되었으리라. 


드디어 관에 뚜껑이 덮이고 못을 꽝꽝 박은 다음 짐마차에 실었다. 마차는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81쪽)


다음 글을 읽으면 아들의 관을 실은 마차를 쫓아가는 노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노인은 그 뒤를 쫓아가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는 몹시 떨렸고 가끔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주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머리는 비를 맞아 흠뻑 젖어 있었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살을 에는 듯한 진눈깨비가 사정없이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것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 마차 주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낡아빠진 프록 코트 자락은 날개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주머니에서는 책들이 비죽이 나오고, 손에는 무슨 책인지 커다란 책을 한 권 부둥켜안고 있었다. 길 가는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이 가련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책들은 노인의 주머니에서 진흙탕 위로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불러 책이 떨어졌다고 가르쳐 주었다. 노인은 그것을 집어들고는 다시 마차 뒤를 쫓아갔다. 길모퉁이에서 어떤 거지 노파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함께 관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81~82쪽)


「가난한 사람들」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같이 슬픈 광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기억에 남아 옮겨 적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하서 출판사의 책인데 절판된 모양이다. 

오래전에 구매했다.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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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1-20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지금은 없어진 삼중당 문고로 읽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책 중 하나랍니다.
인용해주신 부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머리 속에 그려지네요.

페크pek0501 2025-01-21 10:38   좋아요 0 | URL
아, 나인 님은 읽으셨군요. 저는 오래전에 사 놨는데 앞부분만 밑줄이 처져 있는 걸로 보아 완독을 못한 것 같아요. 책이 두껍지 않아 금방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식을 잃은 사람처럼 가엾게 느껴지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어요. 이런 명작을 이제야 읽고 있네요. 좋은하루보내세요.^^

coolcat329 2025-01-21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참 강렬했어요. 뒤에 나오는 단추 에피소드! 아 ㅠㅠ

페크pek0501 2025-01-24 15:21   좋아요 1 | URL
강렬한 소설이지요. 단추 에피소드까지는 제가 읽지 못했나 봅니다. 어제 읽은 부분은 고골의 ‘외투‘를 읽고 나서 그 평을 쓴 마카르의 편지, 인데 슬픈 얘기지만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요. 외투에 대해 그렇게 엉뚱하게 읽을 수도 있다니 참 재밌는 소설입니다. 저도 외투를 서너 번 읽은 것 같은데 읽을 적마다 해석이 달라져서 참 헷갈리는 소설로 기억합니다. 아, 멋져요!!

coolcat329 2025-01-24 15:2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 부분도 진짜 웃겨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5-01-24 15:54   좋아요 1 | URL
고골의 ‘외투‘에 대해 평을 쓴, 마카르의 편지 중에서 일부 소개할게요. 혼자 보기 아까워요. :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일까요? 이것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이걸 읽는 사람 중에서 나 같은 가난뱅이에게 외투를 사 주겠다고 나서는 친구가 생길까요, 장화를 새로 맞추어 주는 친구가 나타날까요? 천만에, 독자는 이것을 다 읽고 나면 다시 그 다음을 요구할 뿐입니다.(중략) 하기는 작자가 끝에 가서는 생각을 달리 먹고 관대하게 취급했더군요.(중략) 훌륭한 시민이었다. 자기 동료들로부터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중략)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을 좋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바렌카, 나는 이 작품이 매우 못마땅하다는 것을 정식으로 밝혀 두는 바입니다.
- 저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용^^

감은빛 2025-01-23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난한 사람이라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처럼 정말 눈 앞에 그 모습이 그려지는 묘사네요.

자식의 죽음이라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겠지요.
그것이 어떤 것일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살면서 절대 겪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자식을 먼저 잃는 일이겠지요.

이 글을 읽으면 자꾸 아까운 목숨들을 잃은 대형 참사들이 떠오르네요.
세월호도, 이태원도, 이번 비행기 참사도 너무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요.
가장 안타까운 사고였던 씨랜드 참사도 떠오르구요.
세상에 그 어린 아가들이 불 속에 갇혀서......

에휴, 괜히 기분이 더 쳐지네요.
책 소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1-24 15:16   좋아요 0 | URL
요즘은 물가가 오르고 해서 거의 다 가난한 것 같습니다.
슬픔이 배어 있는 듯한 소설이지요. 쉽게 쓴 듯하지만 묘사가 뛰어납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게 자식의 죽음일 것 같아요.
대형 참사 소식을 접하면 그 유족이 그 아픔을 어찌 견디고 살지 헤아리게 됩니다.
좋은 소설이 너무 많아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다 읽고 싶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2025-01-25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1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6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6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