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작 : 최진영, 홈 스위트 홈(13~38쪽)



몇 년 전부터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지 않았다. 내가 소설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해마다 나온 작품집이 나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상 수상작인 ‘홈 스위트 홈’을 읽고 나서는 흡족했다.(함께 실린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수상작이 수작이라 흡족했다.) 이 정도라면 책을 구매해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매년 구매해 읽는다. 다 읽었다며 이 책을 내게 주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홈 스위트 홈’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진’이라는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40대 여자인 ‘나’는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수술과 항암 치료 종료 후 두 번이나 재발된다. 의사는 3차 재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나’는 시골의 폐가를 고쳐서 살겠다며 집을 수리하기 위해 공사를 한다. 암의 3차 재발 가능성이 있는데도 병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삶을 계획한 것이다. 공사는 무사히 끝난다. 이삿짐을 옮길 일만 남았다.



‘홈 스위트 홈’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을 뽑아 옮겨 놓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쓸 거야.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두라는 뜻이야. 내 몸에 어떤 튜브도 넣지 말고 나를 살리겠다고 나의 가슴을 짓누르지도 말란 뜻이야.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34쪽)  


⇨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이런 멋진 말을 생각해 내다니....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34~35쪽)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쓸 것이고,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것이라는 말에서 죽음을 대하는 화자의 자약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멋지다. 



공사를 도우며 집 안 곳곳에서 여러 물건을 주웠다. 플라스틱 헤어핀, 문구사 앞 뽑기 기계에서 뽑았을 듯한 통통 튀는 고무공, 닳은 지우개, 몽당연필, 발목에 앵두 자수가 있는 양말 한 짝, 노란 슬리퍼 한 짝, 스누피가 그려진 볼펜, 빨간색 레고 블록, 유리구슬, 티스푼, 손뜨개 인형, 열쇠고리, 베이지색 단추……. 그런 것을 발견하면 흙을 털어 내고 물로 깨끗이 씻어 작은 바구니에 모아 두었다. 누군가 그것을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까. 실례지만 혹시 이곳에서 손잡이에 꽃 모양 장식이 있는 티스푼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늘색 고무공을 찾지 못했습니까. 오래전 이곳에 살 때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네잎클로버 모양의 열쇠고리인데요, 제가 지금에야 그것을 찾는 이유는 …….(36~37쪽)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그들이 찾는 것을 기적처럼 꺼내어 건네주는 상상은 천국 같았다.(37쪽)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37쪽)


⇨ 한 편의 시 같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니까. 미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38쪽)


⇨ 인간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이 기억한 대로 살게 되었으니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미래를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예상이 적중했던 경험.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했던 경험.



아름다운 단편을 읽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나는 말기 암 환자의 사색을 전개한 것으로 읽었다. 이 소설이 나의 흥미를 끈 이유는 병과 죽음에 대해 의연한 자세를 갖는 사람을, 어떠한 난관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내가 우러러보기 때문이리라. 마치 죽음을 앞둔 이들이라면 이런 마음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을 제시한 소설 같았다. 이미 일어난 과거 일에 얽매이기보다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화자의 모습이 바람직해 보인다. 행복하게 살다 보면 병이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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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6-03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상문학상 매니아시군요!
저는 언제 봤는지 모르겠습니다.ㅠ
최윤의 회색 눈사람인가? 잘 기억도 안 나네요.
그거 이후로 읽은 기억이 없네요. ㅎㅎ
올핸 최진영이 탓군요. 보통 가을에 발표하지 않나요? 아닌가...
울나라 작가들 서사가 약한 편인데 근래엔 서사가 좋은 작가들이
좀 나오는 것 같긴하더라구요.
근데 문학은 잘 모르겠더군요.
막 욕하다가도 막상 세월이 흐른 후 다시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 왜 욕 했지? 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그건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성실함이 있으면 달리 생각해 보게되는 것 같아요.
반명 단명하는 작가는 그대로 욕 먹고 장렬히 사라지는 거죠
문학계도 알고 보면 살벌해요. 그죠? ㅋㅋ

페크pek0501 2023-06-04 13:30   좋아요 1 | URL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거의 갖고 있어요. 노년에 심심치 않겠어요.ㅋ 저도 최윤의 회색 눈사람,을 읽었네요.
이 책을 보니 23년 2월에 출간됐어요. 무슨 논란이 휩싸여 한 해 수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제 기억을 믿을 순 없지만...ㅋ
시간적 거리를 두고 읽고 나면 예전과 다른 느낌이 날 때가 있죠.
문학계가 인간적이진 않지요. 사실은 가장 인간적이어야 하는 영역인데 말이죠.ㅋㅋ^^

페넬로페 2023-06-03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집 꼭 챙겨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보기 시작했어요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페크pek0501 2023-06-04 13:3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예전엔 꼭 챙겨 봐야 하는 책으로 알았죠. 요즘은 젊은작가상 작품집이 괜찮은 것 같아요.
몇 년전 것을 읽었는데 다 괜찮았어요. 꼭 사 보게 되는 좋은 작품집이 나오면 좋겠어요.^^

서니데이 2023-06-04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은 오래전에도 표지 디자인이 비슷했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보는데도 낯설지 않네요.
처음 보는 작가의 글을 수상작으로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전에 읽었던 것과 비슷한 책들을 더 많이 사게 되는 것 같아서요.
페크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6-04 13:35   좋아요 1 | URL
중간에 표지가 바뀌어서 영 어색했던 적이 있어요. 몇 년 동안 표지가 얇아진 걸로 보아 비용 절감을 위해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요. 몇 년전부터 다시 예전 표지를 사용하는데 이게 더 나아요.
수상작으로 작가를 알게 되면 좋지요.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휴일, 편안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모나리자 2023-06-04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자가 말하는 ‘나의 천국‘이나 그밖의 내용들이 정말 단아하고 맑은 느낌이 나는군요.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면 암이라는 병이 찾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이렇게 담담한 마음으로 좋은 걸 떠올리며 살다보면 병이 다 물러갈 것 같아요.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06-06 15:51   좋아요 1 | URL
‘홈 스위트 홈‘을 읽어 보면 저자가 아름다운 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쓸 수 없는 글이라고 느껴집니다.
글은 곧 그 사람인 것 같아요.
모나리자 님도 날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05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얼마나 아끼시는지는, 책이 보존상태를 보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요, 페크님^^
2017년도 책도 그렇고 어쩌면 이렇게 모서리까지 깨끘하게...
저는 이번주 받은 책도 벌써 모서리가^^;;;

페크pek0501 2023-06-06 15:56   좋아요 0 | URL
하하~~ 남편이 젊었을 때 문학청년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문학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지만 독서광이랍니다.
작품집을 처음엔 제가 모으기 시작했는데 최근 몇 년간은 남편이 사오더라고요.
표지만 깨끗한 것일지 몰라요. 일단 제 손에 책이 들어오면 밑줄과 낙서가 많아져서 중고로 팔 수도 없답니다.
아마 얄라 님은 책을 가지고 다녀서 보존 상태가 그럴 것 같군요.ㅋ 좋은 날 보내세요.^^


희선 2023-06-05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이 두번이나 생기다니... 암을 빨리 찾으면 고치기는 해도 빨리 못 찾는 것도 있고 어떤 건 말기에 알기도 하네요 그럴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겠습니다 소설에 나온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려고 하는군요 그렇게 살다 병이 다 나으면 좋겠네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희선

페크pek0501 2023-06-06 15:59   좋아요 1 | URL
말기에 암을 발견하는 게 가장 불행한 것이겠죠. 병이 생기면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미 병이 생겼다는 사실보다 앞으로의 삶에 주목하는 화자를 우러러보게 됩니다.
저자가 쓴 글을 보니 낮에는 글을 쓰고 저녁엔 산책을 한대요. 이상적인 하루 같습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

댄스는 맨홀 2023-06-09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기대의 끈을 놓고 말았습니다.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만나면 반가워요. ㅎㅎ

페크pek0501 2023-06-11 12:45   좋아요 0 | URL
저도요. 그런데 다른 작품을 읽어 봤는데 괜찮은 작품이 많아 앞으로 작품집을 읽으려고 합니다.
좋은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23-06-09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수상작이 최진영 작가의 소설이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정말 예전에는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매년 사서 읽었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안 읽게 되어버렸네요.
요즘은 올해의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매년 읽어요.

제가 속한 지역의 의료사협에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해 알려주고 작성하는 시간을 만들더라구요.
계속 바빠서 참여는 못 했는데, 언젠가는 꼭 시간을 내서 해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23-06-11 12:47   좋아요 0 | URL
예.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 저는 좋았답니다. 공감도 가고요.
저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대신 읽곤 했어요.
저도 사전연명~ 작성에 대해 지인으로부터 듣고 꼭 해 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06-10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1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