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6일에 찍은 사진. 수채화 같은 풍경.




예전에 친구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이때 내 대답은 “이혼해야지.”였다. 내가 젊어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그랬던 것 같다.


며칠 전 지인과 통화 중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혼에 대한 말이 나왔다. 지인이 무능한 남편 때문에 이혼한 친구가 있다고 해 그 얘기를 듣다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능하면 다른 배우자가 돈을 벌면 되는 거 아니야? 나 같으면 이혼하지 않고 그냥 철없는 아들 하나 데리고 산다고 생각하고 살겠어.”라고.


내가 이렇게 말했던 이유는 부부가 살다 보면 배우자에게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그렇다. 남편은 아직도 돈을 벌고 있지만 그것만 고마운 게 아니다. 친정어머니가 응급실에 가야 할 일이 생길 때라든지 입원해 있을 때라든지 나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제일 먼저 남편을 찾게 되고 남편이 도와준다. 성인이 된 애들이 있지만 자식보다 남편이 내 옆에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 그리고 고맙다. 배우자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은 나로선 상상할 수가 없다. 미혼자들은 혼자 사는 게 습관이 되어 괜찮겠지만 나처럼 부부가 함께 살던 이들은 홀로 사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지인 중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가 있었는데 그의 남편이 휴직을 신청하고 몇 달간 아내를 간병했었다고 한다. 지인은 간병인을 쓰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 남편이 하게 됐다고 말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아무래도 낯선이가 간병하는 것보다 배우자가 간병하는 게 환자로서 편하지 않겠는가. 만약 내가 아파 입원하게 될 경우 나를 간병할 사람은 남편일 것이고, 남편이 환자가 된다면 내가 간병할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다니곤 하셨다. 두 분 다 지병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병원에 가야 했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아버지가 함께 가 주셨고, 아버지가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어머니가 함께 가 주셨다. 어머니는 그때가 좋았다고 지금도 말하신다. 남들이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답게 병원에 다니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남편이 퇴직을 하고 나면 쓸모없는 사람으로 대하는 아내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아내들 중 자신이 아파 눕게 되면 배우자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사람은 아파 봐야 마음이 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면 의지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이때 의지할 수 있는 배우자가 옆에 있다면 외롭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배우자는 젊었을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늙어서도 필요하다. 우리 부모님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2013년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후로 남편이 많이 애써 줬다. 남편이 없었다면 그때 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훗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남편이 애써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젠 내가 젊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일 게다. 배우자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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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1-27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2-11-27 14:37   좋아요 0 | URL
라로 님도 젊지만은 않은 나이에 온 건가요? 벌써 아시다니...ㅋ

scott 2022-11-27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어머님 곁 지켜드리시면서 이리 좋은글을 ^^

페크pek0501 2022-11-27 14:41   좋아요 1 | URL
사실은 어머니가 아프면서 남편의 존재 소중함을 깨달은 거지요. 혼자서는 많은 일을 하기가 힘들어요.
청소 담당인 남편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도 한답니다. 두 집 살림 하느라 제가 고단한지라...
좋은 글이라 하시니 황송합니다. 이렇게 훈훈한 글은 처음 쓰는 듯합니다. 주로 배우자 흉을 보는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만큼 제 마음이 약해진 증거이겠습니다.^^

2022-11-27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7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2-11-27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인에서 동지로 -

그리고 그간에 쌓인 신뢰
가 빛을 발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2-11-27 17:41   좋아요 0 | URL
동지? 크후후~~~ㅋㅋ 맞는 것 같습니다. 전우애와 연민으로 살게 되는 날들이 올 것 같네요.
앞으로 애들이 다 결혼하고 나면 더 그럴 것 같아요. 결국 둘만 남게 될 테니까 의지하지 않을 수 없지요..^^

2022-11-27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8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8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9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7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8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2-11-28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페크님.
저 북플이 알려준 2012년 오늘 쓴 글을 다시 보다가 페크님께서 댓글 마지막에 ˝첫 댓글이예요.˝ 라고 남기신 걸보고 페크님 서재로 놀러왔어요.

저는 벌써 한참전에 이혼을 해버려 이젠 배우자가 없지만, 일상에서 이런저런 이들이 닥칠 때마다 내 편이 되어주고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든든하다고 여겨요. 그래도 인생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페크pek0501 2022-11-28 10:10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그럼 감은빛 님과 제가 2012년에 댓글을 주고받던 사이였네요. 오래된 사이네요. 하하~~
싱글들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 있더라고요. 갑자기 혼자가 될 때만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메우게 되는 것들이 있겠죠. 제 주위에도 생각해 보니 네 분이나 싱글로 사네요. 다 바쁘게 잘 살아요. 주부들은 한 번씩 싱글이 돼 보고 싶은 맘이 있답니다.
저도 이혼하지 말고 억지로 참고 살아라, 하는 주의는 아니에요.
이번에 연예인 선우은숙 님의 재혼 소식을 보니 때늦은 새 출발도 괜찮겠구나 싶었어요. 삶은 다양해요. 정답이 없음이에요. 언제나 감은빛 님의 글을 응원하겠습니다!!!

coolcat329 2022-11-28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존재...

페크pek0501 2022-11-28 10:13   좋아요 1 | URL
저는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어요. 가까이 있으니 고마운 존재라는 걸 잘 모르고 살다가...
이번에 어머니가 병원에 가실 일이 많이생기자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존재만으로도 고맙~.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레이스 2022-11-28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두 마음입니다. ^^

페크pek0501 2022-11-28 11:03   좋아요 2 | URL
너무 솔직하십니다. 막 웃겨요.~~~

희선 2022-12-01 0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일이 있을 텐데, 페크 님 곁에는 남편분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군요 자식이 자랐다 해도 남편만큼 의지하기 어렵기도 하겠습니다 함께 한 시간이 있어서 그렇게 서로한테 의지하겠네요 페크 님 그런 사이 오래오래 이어가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2-12-02 10:02   좋아요 0 | URL
배우자든 형제든 친구든 사는 데 울타리가 되어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젊었을 땐 생각하지 못한 점이에요.
자식은 아직까지 제가 보호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제가 더 늙으면 나중엔 자식도 울타리가 되어 주겠지요.
함께한 시간이란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yamoo 2022-12-05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페크님은 그러시군요! 배우자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은 나로선 상상할 수가 없다...는 표현을 보니 결혼을 꼭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뭐, 대부분이 그렇겠지요.

재밌는 글 잘 봤어요~~

페크pek0501 2022-12-06 12:38   좋아요 0 | URL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배우자의 흉을 보기도 하는데 막상 그 배우자가 아파 입원이라도 하고 나면
누구나 마음이 아려 올 겁니다. 부부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