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홈페이지에서 ‘지면 보기’를 클릭하면 종이 신문을 볼 수 있다.)




뜻밖의 결말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있다. 오 헨리가 쓴 '마녀의 빵'이라는 소설이다. 마사 양은 미혼 여성이고 마흔 살이다.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그녀는 중년 남자인 단골손님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 손님은 낡은 옷을 입었지만 말쑥해 보였고 예절이 깍듯했다. 그는 늘 저렴하게 파는, 오래 묵어 딱딱한 빵 두 덩어리를 샀다. 언젠가 마사 양은 그의 손가락에 적갈색 얼룩이 묻은 걸 보고 그가 무척 가난한 화가라고 믿었다. 그녀는 그를 시험하기 위해 빵집에 일부러 그림을 갖다 놓았는데, 그 그림을 본 그가 데생이 잘된 편이 아니라고 말하는 걸 보고 그가 화가인 게 확실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그 손님이 평소처럼 묵은 빵을 달라고 했다. 마사 양의 머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딱딱하게 굳은 빵 두 덩어리 안에 손님 몰래 버터를 듬뿍 넣어 손님에게 주었다. 그에 대한 호감의 표시였다. 그날 그 손님과 낯선 남자가 빵집에 왔다. 그 손님은 그녀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쓰기도 하고 "당신이 날 망쳐 놨어" 하고 소리도 질렀다. 마사 양은 낯선 남자에게서 그 손님이 성난 이유를 듣게 되었다. 그는 화가가 아니라 제도사이고 공모전 수상이 걸려 있는, 새 시청 설계 도면을 그리느라 석 달 동안 열심히 작업했다고 한다. 제도사들은 연필로 도면을 그리고 잉크 작업을 끝내고 나면 굳은 빵 부스러기를 문질러서 연필 선을 지워 버린단다. 그런데 그녀가 빵에 살짝 넣은 버터 때문에 그의 설계 도면이 쓸모없어졌다고 한다. 마사 양의 부정확한 추측이 결과적으로 그를 그토록 화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도 소설 속 마사 양처럼 제멋대로 추측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보겠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게 오면 자기를 소홀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알고 보니 늦을 만한 이유가 있어서 늦었던 것. 연인이 하품을 하면 자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지루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알고 보니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하품을 했던 것.



무섭게 생긴 괴물이 그려진 영화 포스터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낮에 볼 때와 밤에 볼 때에 그 느낌이 각각 다르리라. 또 같은 사물이라도 내 마음이 평온할 때와 불안할 때에 그 느낌이 각각 다르리라. 이렇게 시간이나 마음의 상태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 그 느낌에 바탕을 둔 추측을 믿어서야 되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싫어하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 우호적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잘못한 게 있으면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잘못한 게 있으면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못마땅히 여긴다. 즉 호불호의 감정에 따라 대상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 상대의 본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주관적으로 해석할 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주관적 해석에 바탕을 둔 추측을 믿어서야 되겠는가.



대체로 본인의 추측이 틀릴 수 있다고 여기기보다 맞다고 여기기 쉽다. 오판 가능성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추측이 강한 확신으로 변하기도 한다. 한 점의 의심 없이 추측이 고정 관념으로 자리잡아 극단적 편견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누구나 잘못된 추측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머릿속에서 추측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추측한 내용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여 누군가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면 그것은 악행이 된다. 추측으로 쓴 악성 댓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자존심을 크게 다치게 하는 추측성 말 또한 당사자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병이 생기면 죽겠지'라는 속담이 있다. 병이라고 다 죽는 것은 아닌데 덮어놓고 병이 생기면 죽겠거니 하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추측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누구든 자신의 추측이 빗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이를 떠올려 보면 추측은 터무니없는 상상이었으니, 추측은 추측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므로 '모든 추측을 경계하라'라는 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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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2090101000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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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후기>...................................

글을 쓰는 게 무척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칼럼입니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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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9-02 1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이번 칼럼 내용 참 좋네요^^ 글쓰는건 언제나 어려운 듯합니다. 좀 더 잘 쓰고 싶으나 그러기에는 제 그릇이 너무 작다는 것만 절감하게 되는;;; 좀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정작 그렇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초고와 퇴고까지의 시간들을 생각해봅니다. 열심히 쓰신 기사 클릭하고 왔어요.

페크pek0501 2022-09-02 12:04   좋아요 2 | URL
참 좋다고 하시니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엔 글이 잘 안 써져서 기권하고 싶었거든요. 초고가 형편없었는데(이때 제 능력 부족과 공부가 많이 필요한 상태임을 절감했었죠.) 그나마 퇴고를 많이 하니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제 차례가 돌아왔는데 글이 안 써져서 무서웠어요. 그래도 끈기를 가지고 붙잡고 있으니 완결은 되더군요.ㅋㅋ

얄라알라 2022-09-03 15:01   좋아요 2 | URL
저도 거리의화가님의 말씀에 숟가락(?), 아니 엄지 척을 보태 봅니다. 제목만 보고 호기심이 이미 확 올라오는데, 여기서 오우 헨리 단편집 에피소드를 다시 만나게 될지 상상 못했어요

생활수필의 명장이신 만큼, 이런 저런 이야기를 꿰어내시는 능력이 정말 탁월!

속단을 경계하라. 추측 금물.. 기억에 확 새겨두어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2-09-04 12:25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 님의 생활수필의 명장, 이란 표현에 웃었습니다. 감사하지만 과분한 말씀이세요.
늘 글을 쓰면서 ‘이번 글은 망했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수작이 목표가 아니라 내 글의 평균값 정도로는 써야 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속단, 이란 낱말도 이 글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속단은 금물, 이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scott 2022-09-02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울에서도 경인 일보 구독 할 수 있겠죠 (。♥‿♥。)

페크pek0501 2022-09-02 12:08   좋아요 2 | URL
모르겠어요. 제가 서울에 살다 보니 이 신문을 구할 수가 없네요. 신문사에서 부쳐 주지도 않고.
아마 광고 수익이 중요할 뿐, 구독자 수에 연연해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인터넷으로 보는 이들이 많은지라...
스콧 님의 관심, 말씀만 들어도 감사하옵니다.(。♥‿♥。)

프레이야 2022-09-02 11: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 이야기 기억납니다. 추측으로 오류를 범하고 자신도 괴롭히는 일이 허다하죠. 경계해야 되는 것 동감이에요. 다시한번 저도 그러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추측 말고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듯요. 허나 묻기에도 뭣한 것도 있지요.
촉촉한 하루 기분 좋게 시작하세요~^^

페크pek0501 2022-09-02 12:11   좋아요 4 | URL
제가 서재에 올린 적이 있는 소설 줄거리죠. 그렇게 정리해 두니 쓸 데가 있네요.
우리 머릿속을 들여다 보면 온갖 추측이 난무할 거예요. 저도 추측은 추측일 뿐이라는 걸 다시 새깁니다.
가을 저녁을 즐기시길요...^^

햇살과함께 2022-09-02 1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야기가 너무 슬프네요.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가 되는 건 아니니. 내 의도의 선함만 믿으면 안될 일입니다...

페크pek0501 2022-09-02 14:05   좋아요 2 | URL
슬프기도 하고 상대 손님이 안 됐기도 하고 그래요. 공모전에서 수상할지 모르는데 그걸 망쳤으니까요.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슬픈 일이네요.^^

2022-09-02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2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9-02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컬럼밑에도 좋아요 누르는 버튼 있음 좋겠어요 ㅎㅎ 페크님 저도 이 이야기 기억납니다. 모르게 돕는것도 어렵고, 타인을 판단하는 건 더 어려운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저도 이렇게 단정하고 깔끔한 글 쓰고 싶어요 ㅠㅠ

페크pek0501 2022-09-02 14:13   좋아요 3 | URL
저는 경인일보에 좋아요 버튼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해요.ㅋㅋ 그것에 신경 안 써도 되는 게 얼마나 좋은지... 그저 워낙 유명한 필자들이 많다 보니 제 글이 조회 수가 꼴찌인 것만은 면하자는 목표가 있을 뿐이에요.

단정하고 깔끔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내용의 질 즉 수준인 것 같습니다. 높은 수준으로 글을 쓰는 건 죽을 때가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매번 돈을 잃고도 마음을 끊지 못하고 도박에 빠져 사는 사람처럼 제가 짝사랑하며 글쓰기에 빠져 사는 것 같아요.^^

파이버 2022-09-02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들여 쓰신 만큼 늘 마음에 새겨야 할 좋은 교훈이네요. 추측하기보다 대화를 한번 더 해봤다면 어땠을지 아쉽습니다.

페크님 금요일 저녁 잘 쉬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2-09-03 10:22   좋아요 2 | URL
우리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아마 많은 추측이 들어 있을 것이고 그것들의 반 또는 반 이상은 틀렸을 거라고 봅니다.
저 역시 추측으로 오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어요.
오늘 토요일이네요.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2-09-03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건 그래요. 병원에 진찰만 받으러 가도 큰병원 가라고 그러면 어쩌지?
뭐만 불편해도 암 아닌가 그러잖아요.
호감이 가는 사람은 무조건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은 못된 사람이고.
그 편견부터 깨야하는데…
오 헨리의 단편선 읽어본다고 생각만하고 여태 못 읽고 있네요.ㅜ

페크pek0501 2022-09-04 12:33   좋아요 2 | URL
제가 그래요.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뭔가 큰 병이 발견되는 거 아닌가. 하며 겁먹지요.
그래서 되도록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려고 해요. 긴 휴식이 병 나지 않게 해 줄 것 같아서요. 어제도 밤 11시에 자서 오늘 9시에 일어났어요.ㅋㅋ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저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나에게 섭섭하게 하는 사람은 덜 좋은 사람, 으로 여겨집니다. 그 사람의 본모습엔 관심을 두지 않아요.ㅋ
꼭 오 헨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명작의 대가로 알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의 단편집은 읽을 만한 것 같아요.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명쾌하거든요. 저는 국내 소설가들이 쓴 단편을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명쾌하지 않아서요. 예를 들면 이상문학상 작품집 같은 거요.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가 커피를 한 잔 반을 마시게 하네요. 굿 데이~~

stella.K 2022-09-04 19:06   좋아요 2 | URL
ㅎㅎ 잘 주무시네요.
나이들면 잠도 준다고 하던데. 저는 요근래 2, 3년 사이에
바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대신 낮잠을 자요.
잠이 보약이라 잖아요. 전 수면 부족 같은 건 절대로 용납 못합니다.ㅋ

페크pek0501 2022-09-04 19:36   좋아요 2 | URL
저희 집은 출근하는 사람이 셋이에요. 쓸데없이 부지런한 남편이 5시 반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현관문 소리가 나죠. 갔다와서 아침 먹느라 냉장고 문 열고 닫는 소리, 그다음 아이들이 일어나 샤워하고 머리 말리느라 드라이 소리 등... 요때 저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누워 있다가 잠들어요. 오디오북이 있어 소음을 차단할 수 있고 수면제 역할을 해 줘요. 많이 잔다기보다 많이 누워 있어요. 히히~~

서니데이 2022-09-03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풍 힌남노가 가까워지고 있어서인지, 바람이 차가운 주말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2-09-04 12:35   좋아요 2 | URL
어제는 태풍이 온다니 안 덥겠지 하고 나가 걷다가 땀이 났어요. 덥더라고요. 시장에 들어 갈치를 사서 조려 먹었어요. 값이 저렴해졌더라고요. 꼭 나가면 뭔가 살 게 있어요. 그 핑계로라도 나가려고 한꺼번에 많이 사지 않아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2022-09-05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09-06 0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은 좋은 일이다 생각하고 한 일이 상대한테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할 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이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모르는 사람한테는 묻기도 좀 어렵겠네요 그때는 그냥 그 사람이 바라는 것만 들어주면 될 듯합니다 오 헨리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도 서로가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를 생각하고 산 선물이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2-09-06 11:21   좋아요 2 | URL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로 곤란할 때가 있지요.
상대가 행복한 놀람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일 듯해요. 서프라이즈 선물을 해 주고 싶었나 봐요.
의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은 삶의 요령을 배울 필요를 느끼게 하네요.
좋은 가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