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엄마가 쓰러지신 후, 엄마는 혼자서 거의 거동을 못하게 되셨다. 오전, 오후에 번갈아 요양보호사님이 집에 오시고(너무나 고마운 분들이다), 여지껏 엄마와 함께 산 결혼하지 않은 언니가 엄마를 전담해서 케어하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나머지 우리 형제들은 돌아가며 엄마에게 내려간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연로하고 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최소한 두 명의 건장한 어른과 돈이 필요하다. 잠시 엄마가 병원에 계셨을 때, 하루 종일 엄마를 돌보는 간병사가 있어야 했고, 병원은 계속해서 과잉진료라고 느껴질 정도로 무언가를 많이 했다. 코로나로 면회가 잘 되지 않아 사실 병원 안에서 엄마에게 무엇을 하며, 엄마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병원에서 억지로 퇴원시켜 ㅡ의사는 퇴원시켜 줄 수 없다고 했지만ㅡ집으로 돌어온 엄마는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씩은 회복하고 있다.
그나마 엄마가 지금은 집에서 케어받을 수 있어 다행이지만, 만약 여기에서 더 많이 나빠진다면 계속 집에 계실 수 있을 지 걱정이다.
그래서 올해 설 연휴는 엄마와 보내기로 했다. 하는 일을 당기고, 미루고해서 1주일의 기간을 확보했고, 그 기간동안 내가 내려가 언니를 돕기로 했다. 시댁에도 연로한 시어머니가 계시지만 친정보다는 모이는 사람이 많아 나는 그냥 친정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실 시어머니보다는 형님에게 미안하다. 설 전날 제사음식 준비를 해야하는데, 내가 가지 못하니 그만큼 형님의 일이 많아질 것이라 죄송스럽다. 전화로 통보만 했을뿐인데도 형님은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해주셔서 고마웠다.
엄마를 케어해야하지만 나에게 독서가 빠질수가 없어 두 권의 책을 창겼다. ‘뱅하민 라바투트‘(처음 들어보는 작가이다)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와 ‘강남순‘의 <질문 빈곤 사회>이다. 아직 내용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쩐지 두 책의 제목이 통하는 느낌이다.
쌓여있는 책더미를 보며 어느 책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거의 사계절에 걸쳐 읽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때문에 선택했다. 의식의 흐름과 상징, 은유로 된 프루스트의 문장이 너무 좋았지만 그 뜻의 의미를 찾는데 조금 지치기도 했기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멈출 때>가 논픽션소설이라 잃.시.찾과 반대되는 느낌일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나의 과학적인 지식으로 이 책 역시 읽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기대된다. 첫 페이지부터
디히드로코데인, 페르비틴, 메스맘페타민이라는 단어가 나와 계속 그 뜻을 검색해야하는데도 흥미롭다.
<질문 빈곤 사회>는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완전히 두 진영으로만 나눠진 거 같아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선택했다. 얼마 전 아버지 제사때 모인 우리 형제들은 역시나 이태원참사에 대한 의견이 나뉘어졌다. 나와 남편은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했고, 진상규명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강남 우파인 나의 큰언니는 이태원에서 길 가다가 죽은 사람들에 대해 누가 책임져야하냐고 반문했다. 세월호가 박근혜 정부에게 했던 것처럼, 이태원이 5년내내 윤석열의 발목을 잡는게 아닌가하고 걱정까지 했다. 누가, 무엇이 무조건 옳거나 틀리지는 아닐것이다. 다만 원인을 따지지 않고 서로에 대한 질문을 차단한 채, 자기가 지지하는 것만 옳다고 우기는 건 잘못된 것이다. 서로 질문하고, 얘기를 들어보고, 비판을 감수해야만 이 사회가 정상으로 가는 것인데도 그런 열린 마음이 없어 안타깝다.
이 두 책을 읽고 독서의 묘미와 훌륭한 인식과 각성에 대한 후기를 얼른 써야겠다.
고속버스 안에서 오랜만에 북플로 글을 써 본다.
그리고 미리 인사 드립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