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12월은 매섭게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눈도 많이 내렸다. 복도식 아파트 11층에 사는 나는 땅보다는 하늘을 먼저 보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기쁨을 더없이 누린다, 그렇지만 현관문을 열 때마다 더위와 추위에 바로 노출되는 일상을 만나야만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과 순식간에 몸을 떨게 만드는 차가운 바람은 매번 나를 움츠리게 한다.
눈이 내려 쌓이고 그것이 얼어붙어 더 춥게 느껴진 날에, 주문한 책을 배송 받았다. 내가 참여하는 독서동아리는 1년간 돌아가며 리더를 맡는데, 올해 리더를 맡은 나에게 회원들이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공짜로 책 한 권을 받는다는 기쁨에 재빨리 읽고 싶은 책을 주문했고, 다음날에 책이 도착할 예정이라는 것과 책이 문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책을 들여놓으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기에 칼바람이 있었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파트 복도는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고, 군데군데 얼어있었는데, 바로 읽지도 않을 책을 덥석 주문한 내가 한심스러웠고 택배 기사님에게 미안해서였다.
매번 이런저런 책을 읽었고, 그것에 대한 감동을 받았다면서 주저리주저리 읊어대지만 정작 나는 인간이 덜되었다. 생각하지 않고 살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반성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서도 나의 행동은 이렇게 결정적일 때 뒤틀린다. 얼마나 더 읽고, 내 몸 속에 체화시키고, 복습해야만 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될는지....
올해 나의 독서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신곡’,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압둘라자크 구르나‘, ’율리시스‘, ’에밀 졸라‘정도이다. 단테, 프루스트, 조이스를 읽는 것이 벅차고 힘들어서 다양한 독서를 하지 못했다. 한 달에 두 권씩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느라 심신이 피폐해졌지만 그만큼의 보람과 감동이 있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군이 ’신곡‘을 감명 깊게 읽었다기에 반가워 살짝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 책들은 꼭 재독할 것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와 ‘에밀 졸라’의 소설은 힘들게 사막을 걷는 중간에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었다. 내가 평범하기에 역사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일반인의 얘기에 관심이 많다. 두 작가는 그런 나에게 많은 질문과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찾게 해주었다.
작가 김연수는 열정, 동기, 핍진성, 플롯과 캐릭터, 생고생, 문장과 시점들의 얘기를 하며 ‘소설가의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소설가의 반열에 올라 선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라 소설가 지망생들은 이 책에서 하는 방법을 실천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에서 결국 김연수는 소설가가 되려면 ‘닥치고 앉아서 글을 써라’는 결론을 낸다. 그 간단한 말을 그럴듯한 전문 용어를 가져와 낭만적으로, 유머러스하고 비장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소설가의 일’에서 김연수는 소설 쓰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어떤 종류든지 뭔가를 하려면 묵묵히 성실하게 해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인 나도 ‘소설가의 일’처럼 열심히 ‘독자의 일’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1932년 『북회귀선』을 쓰면서 헨리 밀러가 창안한 11계명 중 몇 가지를 가져와 2023년 독서에 대한 계획과 다짐을 해본다.
1. 한 번에 하나씩 일해서 끝까지 쓰라.---한 번에 한 책만 읽는다.
3. 안달복달하지 마라.---다른 서재친구들이 책을 많이 읽어도 안달복달 하지 않는다.
4.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계획에 따라서 작업하라.---기분에 좌우되어 유투브에 들어가지 않는다.
6. 새 비료를 뿌리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땅을 다져라.---벽돌책을 땅을 다지듯 매일 조금씩 읽는다.
10. 쓰고 싶은 책들을 잊어라. 지금 쓰고 있는 책만을 생각하라.---읽고 싶은 책들을 잊어라. 지금 읽고 있는 책만을 읽는다.
11. 언제나 제일 먼저 할 일은 글을 쓰는 일---언제나 제일 먼저 할 일은 책을 읽는 일.
김연수 작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조금 읽다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꾹 참고 다 읽었다. ‘신곡’도, ‘율리시스’도.....
[독자에게 과거란 어떤 책을 읽지 않은 상태를 뜻하고, 미래란 어떤 책을 읽은 상태를 뜻하겠지. 그렇다면 독자에게 현재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