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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ㅣ 위픽
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아 작가에 대해 잘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도 있고, 읽더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의 제목에 ‘찰스 부코스키’라는, 살아있는 작가의 이름이 들어 있어 흥미로웠다.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은 책이다. 박지영 작가에게 ‘찰스 부코스키’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왜 제목에 그의 이름을 넣었는지 궁금했다. 사실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를 읽다보면 ‘찰스 부코스키’보다 ‘타자기’가 더 중요한 단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왜 하필 찰스 부코스키였을까?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은 만 40세와 만 66세에 해당하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이다. 이 소설은 두 번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으로 시작된다. ‘건강’과 ‘60여 년의 생’이라는 단어에서 이 단편 전체가 노년에 대해 서술된 것 인줄 알았다. 몸의 쇠락, 가난과 소외, 외로움에 대한 노년의 삶을 이해하지만 지겨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첫 부분에서부터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 나와 생각할 것이 많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를 거기에 대입시키고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재미있기도 했다.
소설 속 두 번의 생애전환기에는 ‘다음 생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자율적으로 선택 가능(p.13)'하다. ’생애 전환 시행령‘이 국민 법안으로 채택된 후, 첫 번째 생애전환기(만 40세)에는 이대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전환 할 것인가의 가부를 결정한다. 이때 바로 전환된 생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평균수명 120세를 기준으로 보통 두 번째 생애전환기(만 66세)에 전환을 많이 한다. 그때 자신이 최종 선택한 형태의 삶으로 전환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늙어간다는 건 어느새 재앙이 되었다. 병을 달고 사는 세월이 길어지고, 그 기간만큼 다른 사람의 도움과 의료비용을 필요로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늙음을 관리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부담해야 할 세금도 매년 증가한다. 개인적으로도 늙음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삶에 대한 의미를 없애버린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나머지 삶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전환해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좋은 이유에도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사회적 비용과 전환을 원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배분, 그것에 대한 관리 등, 어쨌든 이 제도도 국가의 관리 하에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내가 전환하고 싶은 것으로 무조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전환하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의지도 사회적 비용 때문에 비판받을 수 있다.
60년의 삶을 그저 그렇게, 평생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달고 산 승혜는 두 번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다. 첫 번째 생애전환기에 이미 전환하겠다고 정해 놓았다. 미리 다른 종으로의 전환을 선택해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어 보다 여유 있게 살아왔다. 노인이 되어 가난하게 홀로 아프게 살기 싫어 별 고민 없이 전환을 선택했다. 전환을 결정하면 3지망까지 희망하는 생을 적어야 한다. 승혜가 1지망으로 적은 것은 맥반석이었다. 맥반석 정도는 쉽게 될 줄 알고, 2,3 지망은 적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난 이런 경우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생각했다. 나 역시 당연히 전환을 받아들일 것 같다. 복잡하고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내가 희망하는 1지망의 생은 벚나무가 되는 것이다. 높이 자라는 나무가 되는 것도 좋고,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도 멋지다. 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땅에 모여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진 벚나무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가을에 곱게 물든 잎은 낙엽이 되어 거리를 풍성하고도 운치 있게 만든다. 2지망은 소설이 쓰여지는 ‘종이’다. 3지망은 천천히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승혜는 맥반석으로의 전환을 거부당한다. 어, 그러면 나도 벚나무로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준 게 별로 없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늘을 만들어주며 예쁜 낙엽이 되는 벚나무로 전환되는 것이 거부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인간에서 다른 것으로의 전환도 어려운 결정인데 원하는 것이 바로 채택되지 않는 것 또한 힘들 것이다. 생태계의 균형과 소요될 자원이나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지구인의 삶은 언제, 어디서든 만만치 않다. 결국 승혜는 ‘타자기’로의 생을 부여받는다. 똑같은 무생물이지만 자연 상태의 무생물로의 전환은 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타자기가 된 승혜는 ‘기억예치소’라는 곳에 있다가 여름이 지난 바닷가에서 해변의 타자기가 되어 생을 마감한다. 이 과정에서 아름다운 얘기가 너무나 많다.
작가의 말에서 박지영 작가는 ‘너는 늙어서 뭐가 될래?’라고 묻는다면 해변의 타자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 아버지의 말의 잃어버림, 자신의 노화를 겪으며 ‘불안과 소멸의 방식을 농담의 형태로 고민(97)'해 보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처럼 좋은 소설로 승화된 것 같다. 상상된 재미있는 소재로 인간의 존엄과 늙음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마냥 무겁게 느껴지는 늙음을 이 책이 잠시나마 경쾌하게 해주었다. 기능을 잃어가는 육신보다 쓸쓸하지만 해변의 모래를 뒤집어 쓴 타자기로 남는 것이 더 견디기에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을 먹다 남편과 딸아이에게 이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며, 당신들은 무엇으로 생애 전환을 하고 싶은가 물었다. 남편은 ’독수리‘라고 했고, 딸아이는 ’큰 고래‘라고 했다. 그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며 독수리와 고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인간으로의 전환을 말하지 않는 것에 다소 안도했지만 그래도 내 가족의 열정과 그에 따른 피로가 느껴져 마음속으로 웃었다. 나의 벚나무와 함께.
’찰스 부코스키‘는 타자기를 사랑했던 여러 작가 중 한 명이다.
[온점. 마침표.
그것이 인간 여자 고승혜가 해변의 타자기의 생을 거쳐 전환된 마지막 생의 모습이었다. 마침내 승혜는 고요히 단단하고 가장 강한 작은 돌, 하나의 마침표로 남았다. -p,92]
고요히 단단하고 강한 온점. 마침표.
전환하지 못할 내 삶도 그렇게 온점을 찍으며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