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부터 오늘 오전까지 짱구엄마와 짱구, 도토리가 제주에 머물다가 돌아갔다.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서 오후에 집에 전화하니 와이프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엄마의 카톡으로 수시로 장난질을 해대는 도토리와 통화하니 "엄마가 형아랑 할 얘기가 있다고 저는 방에 들어가 있으래요.."
"아 그래서 도토리는 방에 짱박혀 있구나?"
"방에 짱박혀 있지는 않구요 초콜릿을 먹고 있어요, 근데 엄마가 화 많이 났어요 "라는
도토리의 대답이 돌아온다..
툭하면 엄마와 언쟁을 일삼는 중딩1학년 짱구라 공부해라 싫다 정도의 언쟁인가 보다 했는데, 방금 카톡을 통해서 "잘 아는 만화가 없어요?"라는 메시지가 들어온다..
뭔 소리인가 싶어 전화해 보았더니 짱구엄마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묻어 있다.
짱구의 기말고사 성적이 나왔는데 그야말로 바닥을 기는 충격적인 점수가 나온 모양이다.
성적이 이따위 밖에 안되냐고 짱구를 질책하니, 나는 만화가가 될 거라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지극히 중딩스런 대답이 나오고 본인의 꿈인 만화가가 되도록 엄마와 아빠가 지원해 준게 무어가 있냐는 항변이 돌아온 것이 짱구엄마한테는 더욱 충격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잘 아는 만화가 있으면 소개해 달래는데, 내가 만화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하다못해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도 아니며, 인맥이 광폭이어서 친구 중에 만화가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우선은 기억나는 만화가들을 더듬더듬 읊어주었다.
<조선왕조실록>의 박시백 작가,
<십자군이야기>의 김태권 작가,
<일쌍다반사> 등등의 강풀 작가,
<식객>등등의 허영만 작가 등 내가 갖고 있는 만화의 작가들을 알려주었다.
거기다 첨언하여 하남에 애니매이션 고등학교가 있다던데 거기도 한번 데리고 가서
학생들 붙잡고 궁금한거 물어보라는 영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은 이야기도 덧붙여주었다.
그런데 업계 뿐만 아니라 만화에 그다지 조예가 없는 나같은 사람들이 알 정도의
저명한 작가분들이 신입 만화가도 아니고 단순히 만화에 관심이 있을 뿐인 중딩 꼬맹이를 만나주실란지는 솔직히 나같아도 만나는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이 되어 실현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짱구엄마는 짱구의 만화 실력이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별 볼일이 없어 전문 작가한테
"얘 너는 만화가로는 소질이 없단다...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취지의 답을 구하는 듯하고,짱구녀석은 "그래 열심히 하면 되겠다"라는 답을 얻어 아예 공부를 제끼고 그 길고 나아가고 싶어하는 듯하다..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게다..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취미일때처럼 재미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예술 계통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선천적인 재능이 모자른 경우에는 그야말로 본인에게는 많은 어려움을 줄 수 있기에 더욱 걱정과 우려가 된다..
어차피 민법상 성년이 되는 때에 집에서 짱구와 도토리를 쫓아내 버릴 계획이긴 했지만, 짱구가 자신의 진로를 맞게 설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
이걸 어찌해야쓰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