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카트린 퀴세 지음,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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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 Vie de David Hockney

카트린 퀴세 지음 |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

 



‘우리는 삶의 열정적인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은 프랑스 작가가 현존한 화가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무엇보다 뚜렷한 특징은 작가가 모든 사건을 사실적인 기록에 의존하되, 구체적인 대화나 인물의 생각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재능을 일찍부터 보여준 화가. 동시에 성소수자로서 삶을 살았던 호크니의 다이내믹한 삶을 흡입력 있게 담아냈다. 이 점이 작가 카트린 퀴세의 연구와 글쓰기 스타일에 주목하게 한다. 오죽하면 이 책을 읽어본 호크니가 퀴세에게 이 책의 나는 나와 똑같아라는 답장을 해주었을까 싶다. 이 책을 쓰기 전까지 한 번도 호크니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작가는 작가의 삶 속으로 온전히 파고들어 화가를 재구성했다.


외국 위인들에 대한 평전과 국내 위인들에 대한 평전이 보여주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작가와 대상과의 거리감이 아닐까 한다. 우선 국내 인물에 대한 평전은 대체로 성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그려지는 것 같다. 도덕적으로 흠결하나 없어 보이는 완벽한 인물로서, 고난을 겪지만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내는 인간상으로서 말이다. 읽다 보면 찬양일색인 작업들이 많아 금세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이 책을 비롯하여 여러 외국 위인들의 평전은 대상의 성적정체성을 비롯하여, 내밀한 사생활, 좌충우돌하며 문제를 일으켰던 일 등 사회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지탄받을 만한 행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생활 정보를 일일이 노출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솔직하게 묘사된 인물을 만나고 싶은 독자의 욕심이랄까. 이런 솔직함은 평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을 구성할 때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문화적 차이, 혹은 정서의 차이므로 모든 독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찬양으로 일관하는 인물 평전에서 벗어나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반영된 작업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은 호크니의 삶을 꽤나 솔직하게 반영한 작업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이었다면 호크니 혹은 화가의 가족들이 소송을 걸고 출판을 막았을 것 같다. 인물에 대해 신뢰와 균형감을 보여주는 평전은 작가가 대상이 되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은, 나약한 인간이기도 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럼에도결점을 끌어안고 살아갔던 인물을 과감 없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인물이 자신의 결함을 발판삼아 이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업적을 이루어냈을 때 독자는 대상에 대해 더욱 공감하고 감동하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자신에게 거짓이 없이 살고자 했던 호크니의 삶을 작가 역시 과감 없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다른 특징은 화가의 삶을 다루면서도 책에 그림 한 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작가의 의도로 보였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대학생 시절부터 평생 유명세를 탄 화가이기도 하고, 그의 많은 그림들이 이미 대중에게 익숙하기 때문이었을까. 호크니의 그림에 익숙한 독자들은 작가의 설명만으로도 기억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가 해당 그림을 작업했던 배경에 주목하게 한다. 그의 작품을 모르는 독자도 그림으로 산만해지지 않고 화가의 삶으로 줄곧 독자를 끌어들인다. 어느 쪽이든 저자는 그림 한 점 없는 이 책에서 화가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수 년 전에 호크니의 전시도 관람했기에, 그의 작품이 수록된 책을 참고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참고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그림은 마르코 리빙스턴(Marco Livingstone)이 지은 David Hockney라는 책에 거의 다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퀴세는 이 책을 쓸 때 참고하기도 했다.


호크니의 전시회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책에서 호크니의 작업을 언급한 부분 중 호크니가 사진을 이용한 작업이 흥미로웠다. 지인이 놓고 간 대량의 폴라로이드 필름을 보고 호크니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곧바로 떠올렸다. 소실점이 한 개 혹은 두 개만 나오는 고정적이고 전통적인 회화의 시점에서 탈피하여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 경우 호크니는 사진 한 장, 그리고 다음 한 장을 찍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 혹은 움직임을 자신의 작업에 추가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화가의 폴라로이드 작업이 회화와 사진의 차이를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진이 순간을 포착하고 정지하는 작업이라면, 회화는 시간의 흐름이 작업에 축적된다. 호크니는 카트린 퀴세의 표현대로 사진을 이용하여 일반적인 사진의 용도를 전복시켰다. 동시에 촬영자의 시선이 이동된 상태에서 여러 장을 찍어, 소실점이 한 개 혹은 두 개가 등장하는 일반적인 회화의 문법도 탈피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퀴세는 호크니의 사진 작업을 사진 그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호크니가 화가의 입장에서 사진을 활용했지만, 이 작업이 나올만한 씨앗은 이미 호크니가 평생 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캘리포니아의 수영장에서 지인이 다이빙을 한 직후의 장면을 그린 <더 큰 첨벙>이라는 그림을 보자. 노란 색의 다이빙대를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면 파란 수영장 표면에 입수 후 물이 어지럽게 튄 장면과 만난다. 퀴세는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데이비드는 가는 붓을 들고 이 주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물이 튀는 모습을 나타내는 미세한 선들을 완성했다. 이 초 동안 일어난 일을 이 주 동안 그린 것이다.”(60) 이 대목은 시간이 정지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과 시간성이 반영되는 회화의 차이점과 특징을 어느 이론보다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이 책은 독자의 시선을 붙들고 단숨에 읽도록 한다. 작가는 호크니의 삶에서 파악한 삶의 본질을 명민하게 관통한다. 화가의 그림과 창작뿐만 아니라 사랑, 그리고 수많은 지인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 호크니의 삶에 독자가 더욱 다가가게 해준다. 스스로에게 거짓 없이 살고자 했던 화가. 호크니는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라고 말한다.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말고, 세상에 감탄하며, 금지하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말이다. 화가 호크니는 우리가 회화와 사진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아가 인간 호크니는 삶과 예술을 어떻게 즐겼는지 보여주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호크니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삶을 보다 열정적으로 탐험하라고 주문한다. 


 

 


 


[1] "데이비드는 가는 붓을 들고 이 주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물이 튀는 모습을 나타내는 미세한 선들을 완성했다. 이 초 동안 일어난 일을 이 주 동안 그린 것이다." (60)

[2] "마흔다섯 살에도 삶은 여전히 당신에게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 즐겁게 지내려는 마음을 잃지 않고 도전하면 된다. 즐거움과 두려움의 비명을 용기 내여 지르고, 디즈니랜드를 사랑한다고 씩씩하게 말하고, 눈치 보지 않고 솜사탕을 먹고, 순간의 욕망을 따르고, 완성한 결과를 부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놀고, 어른이라서 스스로 금지했던 일을 하라.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 (134)


[3] "30개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조합한 작품은 한순간만 고정하는 단 한 장의 사진과 달리 관객의 공간과 시간을 따라 한 장 한 장 지나가게 만든다. 따라서 이것은 사진이라기보다 ‘사진 그림’이었다. (...) 그는 시간과 움직임을 집어넣어 사진의 용도를 전복시켰다." (137)


[4]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나는 탐험합니다." (155)

: 피카소의 말

[5] "처음부터 그는 삼차원의 세상 앞에서 그가 느낀 감탄을 이차원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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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1-02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년도에 ‘데이비드 호크니‘전에 다녀왔는데 그림을 보자마자 뭔가 특이하고 산뜻해 넘 마음을 뺏겨 열심히 관람한 기억이 나요. 한국 전시회인데 그림의 갯수가 많은 것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그 그림들이 팔리는 액수에 또 한번 기함했어요. 어떤 작품은 왜그리 비싼가에 대헤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호크니의 작품은 이해가 가더라고요^^

초란공 2021-11-03 00:14   좋아요 1 | URL
저도 아내따라 관람했지요. ^^; 도대체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한 사람이 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게다가 아이패드까지 쓰시는 분이라 ㅋㅋ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 좋은여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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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 [좋은여름]

 



우연한 인연에서 재발견하는 나눔의 가치

 


나는 자타공인 집돌이. 물론 일단 집을 나와 어딘가에 가게 되면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탐방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사하기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그저 한 곳에서 평생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도시에서, 그것도 집을 마련하느라 빚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 장소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평소에는 잘 읽지 않았던 에세이 몇 편을 읽다보니 무엇보다 사람들(저자들)이 살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집돌이의 대리만족인 것일까. 특히 저자가 자신의 글에서 소개하는 우연한 만남이 시간을 함께하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무뚝뚝한 내가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내 생애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법한 이야기들. 저자가 만난 인연과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이 신기하다.


에세이스트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또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하정 작가의 에세이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는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인연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 이야기다. 여행에서 덴마크인 쥴리와 대화하게 되면서 서로를 친근하게 여기게 되고, 그 여성이 저자를 초대하면서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었다. 저자는 쥴리의 집에 가서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이어서 그는 어머니이자 평생 금속세공을 했던 디자이너 아네뜨를 저자에게 소개한다. 우연한 만남과 스몰 토크로 시작된 순간은 타인이 나누어주는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소개하는 덴마크 가족의 집에서 먼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특징은 오랜 기억이 집안 곳곳에 묻어 있다는 점이다. 몇 대 조상부터 써오던 가구, 책상과 책꽂이, 식기류 등이 집 안에 가득하고, 물건 하나하나에는 추억이 있었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내가 덴마크에 가서 살게 되면 아무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특히나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는 그런 소품들,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쉽사리 정리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가족이 내게 말도 없이 그런 물건을 내다 버린다면 내겐 범죄행위나 다름없는 셈이다.


또 물건에 스며든 가족의 추억과 이야기는 가족의 의식으로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 아네뜨 할머니의 아버지 어위(Aage)는 꽤 유명한 디자이너였다. 어위의 직업적인 정체성보다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어디를 가든 딸에게 엽서를 써보냈다는 점이다. 가까운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고 나서도 어위는 그날의 감상을 엽서에 써서 딸에게 보냈다. 해외여행을 가서는 물론이다. 이렇게 평생 모인 아버지의 엽서는 아네뜨 할머니가 평생 간직해온 소중한 보물이었다. 가족의 작고 사소한 의식,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을 담은 메시지가 시간과 함께 가족 공동의 기억이 되고 유산이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해볼 때, 가족 내에서 이러한 무형의 의식이 소중한 유산이 되는 일. 우리가 주식과 부동산 얘기가 끝나면 공허해지는 것은 소중한 것을 나누는 일이 언젠가부터 우리 삶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타인의 에세이에서 내가 관심 있게 주목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 사회가 헬조선이 된 것은 어쩌면 가정에서부터 구성원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특별한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가족끼리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가정 밖에서 타인에게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디선가 읽은 폴 발레리의 선문답 같이 낯선 문장이 친근하게 보인다.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내게는 이 문장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망치 같은 문장으로 다가온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타인을 만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인연이 이 책에 있다. 집돌이인 내게는 아마도 남은 인생에서 만들기 힘든 인연의 이야기다. 우연한 인연이 이어져 놀라운 이야기를 소유하게 된 저자는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일 테다.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많은 사람은 삶에서 허기지지 않을 것 같고, 메마르고 힘겨운 인생에서 다시 일어날 기운을, 언제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배우는 것들이다. 이처럼 삶에서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이들이 부럽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관계하는 이들과 소중한 것을 만들어나가고 이걸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1] "여기에서 나는 어릴 때 가지지 못한 장난감을 가지고 안전하게 놀고 있다. 같은 놀이를 좋아하고, 서로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133)

[2]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 사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181)

[3]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감사하는 바입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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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아틀리에 - 장욱진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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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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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아틀리에 - 장욱진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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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아틀리에

: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을 사랑한다.”(33) 장욱진 화백의 그림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읽고 남는 인상을 떠올리자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문장을 꼽겠다.


책을 펼치고 읽을 때 화백이 그림을 곁들여서 창작론, 인생론, 예술관을 조곤조곤 전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진정으로 그림과 술을 사랑한 화가였다. 그가 보여주었던 사랑은 범인(凡人)의 정의로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화백의 그림 사랑과 술사랑은 괴벽에 가까운, 혹은 자기를 혹사하는 행위 내지는 집착의 행위가 아닐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제와 균형이 선이라는 태도에 익숙한 이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그림 사랑, 술사랑은 지나침 혹은 과잉의 한계 너머의 무모함에 가까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방식이야말로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본성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59)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46)


 

장욱진 화백의 담담하고 명료한 믿음의 고백을 읽다보면 그가 말하는 사랑의 강도와 깊이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가 자신의 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겠다. 문명이 개개인에게 둘러친 관습 혹은 규범의 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 같은 문구일 테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환경, 만들어지고 관리 받은모범생 같은 이들이 양산되는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장욱진 화백과 같은 분들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인물의 유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린 낙서처럼 보이는 화백의 그림을 보다가 스위스 태생의 독일 화가 폴 클레(Paul Klee)의 드로잉하고도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동굴 벽화에 담겨있는 시원의 삶을 보여주는 듯 군더더기 없는 묘사 때문이었다. 일종의 상징 기호처럼 보일 정도로 간결한 선들만으로 표현한 사람과 산, 해와 달 등이 어우러진 배경을 보고서 말이다. 혹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뼈대만 남아 있는 조각상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문명이 인간에게 덧칠한 모든 흔적을 제거해버리려는 듯 본질만 남은 선, 간신히 인간임을 알아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만 남은 모습들에서 묘한 연대 의식 같은 것들을 느꼈다고 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그럼에도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는 인물의 표정이 보이고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인물 그림에선 의지와 인격, 그리고 역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고요와 고독속에서만 그림을 그려야 했다. 경기도 덕소, 수안보, 신갈 등 현재는 관광지 내지는 도시 개발로 번잡해진 장소가 되었지만, 그가 작업하던 시기에는 외지고 한적한 곳이었다. 작업장 주변이 개발되어 그림 작업에 집중하기 힘들어지게 되면 그는 미련 없이 떠나 새로운 곳을 물색했다. 역설적으로 작가의 아틀리에 장소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무엇보다 화백이 그림을 그릴 때면 아무것도 방해하는 것 없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후에라야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한 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47)


 

저자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였을까. 무엇보다 이 행위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전제하는 일이었을 테다. 그는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드러내며 나를 발산한다’(181)라고 자신의 그림그리기를 정리했다. 예술에 대한 나의 부족한 감수성과 이해력으로 주목한 작가의 예술관은 다음에 인용한 문장에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이 표현에는 알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뜻이 담겨 있다. 작가의 생각은 무엇보다 현대 미술의 접근 방식을 말하고 있는 듯하며, 그 본질로 자기와의 대면을 언급한다. 결국 예술가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기존의 질서 파괴 행위는 미술 대학교 졸업 전시회에 가보면 고민의 결과물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백의 표현대로 공유되는 전달 수단으로서의 언어를 자기화한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4년에 걸친 미술대학 시절에 자기만의 언어를 획득하는 일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자기만의 언어 뿐 아니라 동시에 공동한 언어를 잊지 않고 반영되려면 나와 마주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향하여 사회와 공동체, 타인에 대한 주도면밀하고 집요한 관찰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가들이 사회 문제와 사람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감지하고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바로 자신만의 언어를 소통의 언어, 공동의 언어로 코딩하는 작업을 몸소 해야 하니까 말이다. ‘언어는 소통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약속이자 기호가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리 저자처럼 홀로 고립되어 작업을 한다고 해도, 예술가가 타자와 사회에 무관심하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기본적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테다. 여기에 예술행위의 기본적인 정치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므로 장욱진 화백이 언급한 자아의 발견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을 바라보라는 주문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타인을 통해서도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아닐까. 결국 예술가의 작업이란 자기에 대한 사랑’, 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알곡 없는 쭉정이에 불과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이 한 가지 과정만 해도 상당한 수련이 필요할 듯하다. 알 듯 모를 듯한 장욱진 화백의 예술관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읽었다.


한 가지 더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사연은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의 만남과 인연이었다. 마해송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 홍난파 등과 교제하고 1924년에 방정환 선생 등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한 분이었다. 장욱진 화백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노인 한 분의 외모가 심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선글라스에 지팡이를 짚고 잠바를 입은 모습을 보던 화백이 마해송 선생에게 가서 통성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인연은 가족으로 이어지고, 마해송 선생의 동화집 작업에 화백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선생의 아들인 마종기 선생은 시인으로도 활동했던 것 같다. 훗날 마종기 선생이 본인의 시집을 낼 때, 장욱진 화백에게 부탁하여 표지 그림을 얻어냈다고 한다.


타인의 간섭에 거부감을 느끼고 이웃하고도 통성명을 하지 않는 요즘 도시 생활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서로 알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옅어지고 관계에 대한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기에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키며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일은 요즘 현실에서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해진다면 타인의 실수와 처지에 공감하기가 더 쉬워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저자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에세이보다는 우연한 인연이 등장하고, 그 관계의 발전이 있는 그런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장욱진 화백의 산문에는 화가 본인의 그림과 예술관, 내면세계가 담겨있지만 여기에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이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더해져 다채로웠다.


저자의 연보를 보다가 특이한 이력에 눈길이 간다. 그는 1944년 겨울, 29세의 나이에 일제의 비행장 만드는 징용에 끌려갔던 경험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곧바로 일본 관동군 해군본부 경리요원으로 배속된 후 9개월 만에 해방을 맞아 돌아올 수 있었다. 저자는 1918년생이므로 출생 후 30세까지 나라 없는 식민지 상태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셈이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토록 생을 사랑할 수 있었고, 예술에서 자신의 언어,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연보를 통해 청년 장욱진의 시절을 상상만 해볼 뿐이다. 이렇듯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는 삶을 온 몸으로 사랑했던 한 예술가의 담담한 고백이다.




 


 

[1] "검은 것과 흰 것, 그게 제일 힘든 거예요. 색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중에서 흰 건, 이 빛에서 가장 단순하다는 게 아주 교묘한 거거든. (...) 우린 은연중에 흰 것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건 행복한 거예요. 내 환쟁이 바탕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25)

[2] "아기자기하게 닳고 닳은 조약돌에서 읽을 수 있는 세월의 엄청난 흔적과 자연의 기나긴 역사. 그 자연의 줄기찬 흐름 속에서 잠깐, 아주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인생의 덧없음. 이런 것들은 나에게 무한(無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인생은 덧없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生)을 사랑한다." (33)

[3] "강가에 앉아서 물과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상은 어느새 막걸리를 사랑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46)

[4]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한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 (47)

[5]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6] "분만될 시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일, 이것만이 예술가의 삶" (146)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


[7]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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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21 08: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파울 클레 그림과 자코메티의 뼈대를 떠올리는 데에 공감되어요. 열화당 개정판이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담담한 예술가의 삶처럼 담담한 리뷰와 인용문도 참 좋습니다. 취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책 담아가요 ^^

초란공 2021-10-21 12:1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폴 클레라고 쓰면서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파울 클레‘ 때문이었네요 ㅋㅋ^^;;;

scott 2021-10-22 00: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욱진 화백 그림 좋아 합니다
한국의 토속적 질감과 구도!

열화당 요즘 예술 서적 개정판 내면서
가격을 야금, 야금 ㅎㅎㅎ

초란공 2021-11-08 18:51   좋아요 0 | URL
ㅋㅋ 그래도 열화당은 예술 분야 위주로 출간하다보니
다른 출판사보다 여러 가지로 더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벤트성 리커버나 기념판 작업은 열*책들이 두각을 보이는듯 합니다. ㅋㅋ ^^;;
도스토옙스키 기념판을 지르지 못하여 아쉬워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고요 ㅋㅋ


scott 2021-11-05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추카합니다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초란공 2021-11-05 22:48   좋아요 4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요새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서재글 이메일의 주인공 분들이 댓들을 달아주시니 제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몇 년 간 방문자가 거의 없었거든요 ㅋ ^^;; 즐거운 주말, 가을 보내시길요!

mini74 2021-11-05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1-05 22:37   좋아요 3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알라딘 핵인싸분들이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으쓱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6: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1-11-05 22:32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11-06 19: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방문했던 용인에 있는 장욱진 고택은 한옥과 양옥으로 되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란공님의 글을 통해 서로 다른 양식의 두 건물이 조화롭게 하나의 집이 되었던 것처럼 화가 자신이 내면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1-06 22:44   좋아요 3 | URL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장욱진 선생 고택을 이미 가보셨군요.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선생의 문구도 기억나네요.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요~!

초딩 2021-11-07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ㅜㅜ 요즘 제가 갑자기 바빠져서 왕래가 좀 뜸했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초란공 2021-11-07 11: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바쁘셔도 건강 잘 챙기시길요!

이하라 2021-11-07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란공 2021-11-07 11:3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thkang1001 2021-11-07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초란공 2021-11-08 18:53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격려말씀도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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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Suga Atsuko) 지음 |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문학이 되어버린, 한 인물의 삶이 담긴 에세이

 


스가 아쓰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 건 올해였다. 우연한 기회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이면서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여 로마 문화의 황금기를 가져온 인물. 동시에 강경파 로마 세력으로부터 유약한 황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이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소설이었다. 이 놀라운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나중으로 미루어 둔다.


스가 아쓰코가 등장하는 대목은 그녀가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에 심취했으며, 그녀의 문학적 발자취를 찾아 가기를 꿈꾸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르스나르의 신발이란 책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렇게 1929년에 출생한 여성은 독립적인 직업인으로서 문학도를 소망했다. 그리고 정말 배를 타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너가 공부하면서 조합 형식의 서점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까지 하며 10여 년을 지내고 귀국한 이력의 인물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수많은 이탈리아의 지성인과 교류했고,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책과 서점을 중심으로 확장되어간 인연들의 이야기들이 그녀가 쓴 여러 편의 에세이에 묘사된 중심적인 화제다.


특히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이탈리에서도 유명한 밀라노의 짙은 안개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저자 본인이 직접 겪은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남편의 이른 죽음을 중심으로 가족같이 지내던 수많은 인연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적이고 절제된 형식으로 들려준다. 아쓰코는 남편의 죽음 이후 몇 년을 더 지내다가 13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이후 비교문학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하고, 많은 이탈리아 문학을 일본에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녀의 에세이가 지닌 특징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문학 연구자로서 여러 문학적 논평을 포함한 지적인 면모와 그녀가 만나게 된 인연들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내게는 그런 면에서 저자의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이 에세이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일을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 썼던 글이기에 균형감이 더 돋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이외에는 가진 것 없는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서로를 걱정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며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가진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해주었다.


본문 중에는 저자가 문학도로서, 좋아하는 일에 그토록 좋아서 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본인이 좋아하는 문학 번역작업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79)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다. 하지만 그녀는 생계를 위해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는데, 그 가운데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 교육을 받으면 곧바로 결혼을 하곤 했던 시절에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과 길을 찾아 용감하게 나아간 인물이기도 했다.


나라면 평생 문학을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범에 휘둘리고 나를 잃어버리기가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문학에서 시작해서 문학으로 끝나는, 문학의 삶 자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그녀의 삶은 곧 문학이 된 셈이다. 이번에 읽은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저자가 남긴 에세이 작품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저자의 나머지 에세이들도 모두 읽을 생각을 하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한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나폴리는) 일면에 자꾸 화를 내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도시와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선 전체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살피다보면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73)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79)

"책장을 메운 오래전 사건을 오늘 나의 일상과 끊임없이 겹쳐보며 번역을 해나갔다." (119)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아니타 로가 번역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고 이 독일 작가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독일 북부 뷔베크에 사는 거상 가족의 이야기가 아마도 토마스 만 특유의 (즉 내가 읽을 수 없는 원문의) 단단하고 중층적인 문체를 살린 근사한 이탈리아어로 펼쳐졌다." (195)

"오뉴월, 아름다운 초여름이었다. 전철이 점점 산에 가까워지자 조토의 그림이 떠오르는, 주황빛으로 메마른 언덕에 핀 금작화가 보였다. (...)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나뭇가지가 휠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하얗고 커다란 아카시아 꽃송이를 지나쳤다. 연초록 이파리 사이로 아른거리는 하얀 꽃이 달리는 전차에 닿을 듯했고, 달콤한 향기가 열린 차창으로 들어와 열차 안을 가득 채웠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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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10-20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송태욱 선생님 번역도 훌륭했고 스가 아쓰코 인생 이야기도 넘 좋았어요. :)

초란공 2021-10-20 13:10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 송태욱 샘 작업은 묻지마 구입하기로!

그레이스 2021-10-20 13:14   좋아요 1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