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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카트린 퀴세 지음,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년 8월
평점 :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
: Vie de David Hockney
카트린 퀴세 지음 | 권지현 옮김 | [미행] | (2021)
‘우리는 삶의 열정적인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은 프랑스 작가가 현존한 화가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무엇보다 뚜렷한 특징은 작가가 모든 사건을 사실적인 기록에 의존하되, 구체적인 대화나 인물의 생각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재능을 일찍부터 보여준 화가. 동시에 성소수자로서 삶을 살았던 호크니의 다이내믹한 삶을 흡입력 있게 담아냈다. 이 점이 작가 카트린 퀴세의 연구와 글쓰기 스타일에 주목하게 한다. 오죽하면 이 책을 읽어본 호크니가 퀴세에게 “이 책의 나는 나와 똑같아”라는 답장을 해주었을까 싶다. 이 책을 쓰기 전까지 한 번도 호크니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작가는 작가의 삶 속으로 온전히 파고들어 화가를 재구성했다.
외국 위인들에 대한 평전과 국내 위인들에 대한 평전이 보여주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작가와 대상과의 거리감이 아닐까 한다. 우선 국내 인물에 대한 평전은 대체로 ‘성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그려지는 것 같다. 도덕적으로 흠결하나 없어 보이는 완벽한 인물로서, 고난을 겪지만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내는 인간상으로서 말이다. 읽다 보면 찬양일색인 작업들이 많아 금세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이 책을 비롯하여 여러 외국 위인들의 평전은 대상의 성적정체성을 비롯하여, 내밀한 사생활, 좌충우돌하며 문제를 일으켰던 일 등 사회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지탄받을 만한 행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생활 정보를 일일이 노출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솔직하게 묘사된 인물을 만나고 싶은 독자의 욕심이랄까. 이런 솔직함은 평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을 구성할 때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문화적 차이, 혹은 정서의 차이므로 모든 독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찬양으로 일관하는 인물 평전에서 벗어나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반영된 작업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은 호크니의 삶을 꽤나 솔직하게 반영한 작업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이었다면 호크니 혹은 화가의 가족들이 소송을 걸고 출판을 막았을 것 같다. 인물에 대해 신뢰와 균형감을 보여주는 평전은 작가가 대상이 되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은, 나약한 인간이기도 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럼에도’ 결점을 끌어안고 살아갔던 인물을 과감 없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인물이 자신의 결함을 발판삼아 이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업적을 이루어냈을 때 독자는 대상에 대해 더욱 공감하고 감동하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자신에게 거짓이 없이 살고자 했던 호크니의 삶을 작가 역시 과감 없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다른 특징은 화가의 삶을 다루면서도 책에 그림 한 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작가의 의도로 보였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대학생 시절부터 평생 유명세를 탄 화가이기도 하고, 그의 많은 그림들이 이미 대중에게 익숙하기 때문이었을까. 호크니의 그림에 익숙한 독자들은 작가의 설명만으로도 기억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가 해당 그림을 작업했던 배경에 주목하게 한다. 그의 작품을 모르는 독자도 그림으로 산만해지지 않고 화가의 삶으로 줄곧 독자를 끌어들인다. 어느 쪽이든 저자는 그림 한 점 없는 이 책에서 화가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수 년 전에 호크니의 전시도 관람했기에, 그의 작품이 수록된 책을 참고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참고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그림은 마르코 리빙스턴(Marco Livingstone)이 지은 《David Hockney》라는 책에 거의 다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퀴세는 이 책을 쓸 때 참고하기도 했다.
호크니의 전시회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책에서 호크니의 작업을 언급한 부분 중 호크니가 사진을 이용한 작업이 흥미로웠다. 지인이 놓고 간 대량의 폴라로이드 필름을 보고 호크니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곧바로 떠올렸다. 소실점이 한 개 혹은 두 개만 나오는 고정적이고 전통적인 회화의 시점에서 탈피하여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 경우 호크니는 사진 한 장, 그리고 다음 한 장을 찍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 혹은 움직임을 자신의 작업에 추가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화가의 폴라로이드 작업이 회화와 사진의 차이를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진이 순간을 포착하고 정지하는 작업이라면, 회화는 시간의 흐름이 작업에 축적된다. 호크니는 카트린 퀴세의 표현대로 사진을 이용하여 일반적인 ‘사진의 용도’를 전복시켰다. 동시에 촬영자의 시선이 이동된 상태에서 여러 장을 찍어, 소실점이 한 개 혹은 두 개가 등장하는 일반적인 회화의 문법도 탈피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퀴세는 호크니의 사진 작업을 ‘사진 그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호크니가 화가의 입장에서 사진을 활용했지만, 이 작업이 나올만한 씨앗은 이미 호크니가 평생 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캘리포니아의 수영장에서 지인이 다이빙을 한 직후의 장면을 그린 <더 큰 첨벙>이라는 그림을 보자. 노란 색의 다이빙대를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면 파란 수영장 표면에 입수 후 물이 어지럽게 튄 장면과 만난다. 퀴세는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데이비드는 가는 붓을 들고 이 주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물이 튀는 모습을 나타내는 미세한 선들을 완성했다. 이 초 동안 일어난 일을 이 주 동안 그린 것이다.”(60) 이 대목은 시간이 정지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과 시간성이 반영되는 회화의 차이점과 특징을 어느 이론보다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이 책은 독자의 시선을 붙들고 단숨에 읽도록 한다. 작가는 호크니의 삶에서 파악한 삶의 본질을 명민하게 관통한다. 화가의 그림과 창작뿐만 아니라 사랑, 그리고 수많은 지인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 호크니의 삶에 독자가 더욱 다가가게 해준다. 스스로에게 거짓 없이 살고자 했던 화가. 호크니는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라고 말한다.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말고, 세상에 감탄하며, 금지하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말이다. 화가 호크니는 우리가 회화와 사진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아가 인간 호크니는 삶과 예술을 어떻게 즐겼는지 보여주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호크니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삶을 보다 열정적으로 탐험하라고 주문한다.
[1] "데이비드는 가는 붓을 들고 이 주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물이 튀는 모습을 나타내는 미세한 선들을 완성했다. 이 초 동안 일어난 일을 이 주 동안 그린 것이다." (60)
[2] "마흔다섯 살에도 삶은 여전히 당신에게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 즐겁게 지내려는 마음을 잃지 않고 도전하면 된다. 즐거움과 두려움의 비명을 용기 내여 지르고, 디즈니랜드를 사랑한다고 씩씩하게 말하고, 눈치 보지 않고 솜사탕을 먹고, 순간의 욕망을 따르고, 완성한 결과를 부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놀고, 어른이라서 스스로 금지했던 일을 하라.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연결을 끊지 마라." (134)
[3] "30개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조합한 작품은 한순간만 고정하는 단 한 장의 사진과 달리 관객의 공간과 시간을 따라 한 장 한 장 지나가게 만든다. 따라서 이것은 사진이라기보다 ‘사진 그림’이었다. (...) 그는 시간과 움직임을 집어넣어 사진의 용도를 전복시켰다." (137)
[4]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나는 탐험합니다." (155)
: 피카소의 말
[5] "처음부터 그는 삼차원의 세상 앞에서 그가 느낀 감탄을 이차원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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