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토피아 -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성차별과 섹스 파티를 폭로하다
에밀리 창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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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미투와 페미니스트 운동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때로는 부작용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꾸준히 성차별 문화에 맞서 싸우고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유교사상이 뿌리깊에 자리잡고 있어 성차별에 대한 부분이 유독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명실상부 인류 역사상 최대 부를 창출하는 곳인 실리콘밸리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세계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는 누구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현대판 유토피아이지만 여성에게만은 예외였다. 여성들에게 실리콘밸리는 《브로토피아》다. 브로토피아는 브로 문화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로 브로 문화란 테크놀로지 산업과 실리콘밸리는 특징짓는 펴현으로 남성 우월주의와 남성 중심 문화를 가리킨다. 즉, 남성들이 직접 만든 규칙으로 완전히 지배하는 세상인 것이다. 이곳 실리콘밸리는 성차별과 성추행이 만연하고 온통에 몸을 담근 채 투자 회의를 하며 섹스 파티에서 인맥을 쌓는다고 한다. 와이즈베리 《브로토피아》에서는 실리콘밸리에 숨겨진 성폭력과 성차별, 섹스 파티를 날카롭게 폭로하고 있다.

 

미국 사회 곳곳에서 오랫동안 속으로 곪고 곪던 것이 마침내 터진 것이다. 명백한 성차별과 성추행은 물론이고 성폭행까지 포함해 여성을 노리갯감으로 삼기 위해 자신의 힘을 남용하는 남성들에 대한 충격적인 증거가 속속 드러났다. 이른바 갑을 관계를 악용하는 권력형 서범죄다. 그리고 여성은 자신의 피해를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왔다. (본문 30p)

 

이 책은 총 9장으로 나뉜다. CHAPTER 1 너드부터 브로까지:기술은 어떻게 여성들을 배척했을까?, CHAPTER 2 페이팔 마피아와 능력주의 신화, CHAPTER 3 구글:좋은 의도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 CHAPTER 4 티핑포인트:여성 엔지니어들이 목소리를 낸다. CHAPTER 5 슈퍼 영웅과 수퍼 멍청이: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두 얼굴, CHAPTER 6 섹스 앤 더 실리콘밸리:남성은 쾌락을, 여성은 돈을 좇다, CHAPTER 7 복지 혜택이 다가 아니다:기술 산업이 가정을 어떻게 파괴할까?, CHAPTER 8 트롤천국에서 탈출하다:여성들의 인터넷 구출작전, CHAPTER 9 실리콘밸리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 등으로 나뉘어 저자는 여성은 어떻게 IT라는 경기장 바깥으로 밀려나 구경꾼 신세가 되었으며,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방법은 없는지 등 몇몇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고 있다.

 

롤리스에게 법률 조언을 구하는 여성 중 상당수는 결국에는 소송 카드를 접는다. 더욱이 형사소송을 제기하면 승리가 확실시되는데도 소송을 포기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예를 들어 덤불 속에서 남성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위의 피해자는 법적 행동을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수치스러움과 직장에서 겪을 후폭풍에 대한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본문 228p)

 

실리콘밸리의 많은 유명 인사들 사이에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이성과의 접촉이 없는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모태솔로였다. 유부남 벤처 투자자는 10대 시절 내내 컴퓨터게임만 했고 스마라 살 대에 첫 데이트를 했을 쩡도로 연애에는 숙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은 자신도 놀랄 정도다. 믿을 수 어있고 모험심이 강할 뿐 아니라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자신들의 모든 욕구를 추구할 수 있을 만큼 부와 자원이 풍부한 테크-가이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금욕과 성적 열망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이제 그는 환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중략) 즉 청소년기에 성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 뒤늦게 이런 욕구를 채우고자 부문별하게 성에 탐닉하는 것이다. (본문 347,348p)

 

기술 산업은 세상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동시에 여성들이 수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 절대 소수인 세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업에서 결정권을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라는 건 기술 산업의 당당한 고객인 여성의 니즈와 욕구가 충분히 충복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에 저자는 기술 산업이 변하지 않는다면,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지배함에 따라 그런 문제는 점점 심화될 것이기에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변화를 촉진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이 책에서 불평등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철저히 파헤치고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성차별에 대응해서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들에게 그 용기가 헛된 희망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블룸버그 TV의 진행자이자 기자인 에밀리 창이 이 책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충격적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토피아적인 이상향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실리콘밸리가 성차별의 온상이 되었는지, 어째서 브로 문화가 수십 년간이나 지속되는 와중에도 기업들이 ‘악마가 되지 말자(Don’t be evil!)’, ‘세상을 연결하자 (Connect the world!)’는 구호를 외치며 도덕적 우월감을 주장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해서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폭로한다. (책 표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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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메이커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임종기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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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의 소설 《아이스크림 메이커》는 '슈피겔'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오랫동안 사랑 받은 작품으로 오랜 문학적 숙성 끝에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장 원숙한 문학성을 갖춘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책이라고 합니다. 책이 출간된 당시 유럽의 다양한 유력 언론들은 이 작품이 얼마나 유머러스하고 감동적이며 이색적인지 앞다투어 보도했을 정도라고 하네요.'시와 아이스크림이 그리는 강렬한 삶의 연금술' '군침 돌게 하는,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책'이라 소개하는 《아이스크림 메이커》는   예쁜 책 제목에 달콤함이 느껴지는 삽화까지 눈길을 끄는 책입니다. 처음 접하게 되는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그 기대감도 업!이 됩니다.

 

카도레 골짜기의 모든 아이스크림 장수들은 매년 봄이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가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고, 겨울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오지요. 이들은 대대손손 아이스크림 제조 가업을 잇고 있지요. 이탈리아 최북단 골짜기 마을인 베나스 디 카도레에 이 책의 주인공인 조반니가 태어납니다. 최초의 아이스크림을 만든 사람은 조반니의 할아버지인 주세페 틸라미니로 조반니와 동생 루카 역시 아이스크림 장수가 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조반니는 세계 시 축제의 디렉터이자 시가 곧 인생이라 여기는 인물 리처드 하이만을 만나게 되면서 조반니 역시 시를 사랑하게 되지요. 가족 모두 장남인 조반니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이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조반니는 가문의 전통과 절연하겠다고 선언하고 문학계를 발을 들이게 되지요. 이후 조반니는 세계 시 축제의 디렉터가 되어 국경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루카는 가업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데 열중하게 하지요.

 

조반니와 루카는 어릴 적부터 소피아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조반니는 시를 선택하면서 첫눈에 반한 소피아를 포기해야 했고, 조반니와 달리 소피아만을 바라본 루카는 결국 소피아와 결혼하게 디지요. 루카는 가업을 외면한 형을 배신자로 여기며 거리를 두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던 루카는 가업을 잇기 위해 조반니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반니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이렇게 이 책은 시를 사랑하는 조반니의 시선으로 삶, 전통,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이 소설의 소재들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가업을 잇지 않는 아들, 그리고 그 가업을 이어받은 또 다른 아들, 그리고 삼각 관계, 아버지임을 내세울 수 없는 비밀. 어쩌면 욕하면서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 이야기같아 보이지만 그 중심에 '시'가 있어서인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초반부에 페이지를 넘기기가 다소 힘겨웠던 것과 달리 페이지를 넘길수록 시와 아이스크림의 조화는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고 있어요. 이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의 세계와 시의 세계가 교차허며 흥미진진한 내러티브가 펼쳐지는 가운데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특히 이 소설에는 실재하는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이 대거 등장한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등장하는 시들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책 뒷표지 中)

 

(이미지출처: '아이스크림 메이커'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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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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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불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에쿠니 가오리는《등 뒤의 기억》《기억 깨물기》《우는 어른》《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저물 듯 저물지 않는》등으로 내게는 꽤나 익숙한 작가이다. 지금까지 느꼈던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굉장히 섬세하고 잔잔하며 담담했으며 때로는 난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자꾸 끌리는 매려적인 작품들이었기에 신작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신작 《개와 하모니카》는 단편 소설집으로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될 듯하다. 파란색 표지가 참 예쁜 책이다. 표지 속 캐리어 그림들이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여행, 개, 하모니카? 어떤 내용일지 사뭇 기대가 되는 책이다.

 

기대감에 책을 펼쳤고 역시 에쿠니 가오리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담담하면서도 쓸쓸하고 난해한 에쿠니 가오리만의 느낌이 책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같이 있지만 혼자 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가족, 연인이 있고 없음을 떠나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한다. 이 소설은 이 문구를 이야기로 풀어낸 느낌이다. 제38회 기와바타 야스나리 수상작이자 표제작인 [개와 하모니카]에서 여행에서 돌아오는 아내와 딸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남편의 쓸쓸한 모습은 고독이라는 단어를 대변한다. 이 단편은 공항이 배경이다. 시끌벅적한 장소이지만 저자는 쓸쓸하게 담담하게 공항에 있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보여주면서 마치 고독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계속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약사이자 5년 넘게 애인이었던 여자를 아득하고 그립게 떠올리며, 헤어져준 것에 고마움까지 느끼면서 후미히코는 아내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본문 57p)

 

이 외에도 이 책에서는 5년을 사귄 애인 후루사와 리에와 헤어진 후미히코가 아내와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 후 심경을 그린 [침실], 애인인 이타루를 먹고 싶다는 시나, 그리고 그런 시나를 위해 접이식 주머니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얇은 피부를 벗겨내 먹여주는 이타루, 짧조름한 바다맛이 살짝 나는 피부를 입을 벌려 받아먹고는 자신의 몸의 일부를 이타루로 느끼는 시나,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늦여름 해 질 녘], 결혼한지 5년이 되어가지만 남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아내 교코와의 피크닉에 관한 이야기 [피크닉]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정말 놀라우리만치 담담하고 쓸쓸한 이야기다. 서로 다른 소재의 이야기, 조금은 놀랄만한 소재의 이야기에도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냈다. 표지삽화가 주는 느낌과는 달리 이야기는 해가 거의 지는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의 느낌을 준다. 쓸쓸함, 담담함, 고독함 등이 이야기 전반에 걸쳐진다. 그런데 이 고독이 처절한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고독을 보여주고 있기에 편안함도 함께 느껴진다. 확실히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가끔은 난해함에 그 페이지를 다시 읽어봐야 할 때도 있고, 지극히 담담함에 한 페이지 넘어가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만이 보여주는 매력이 분명이 있다. 그것이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다시 찾게 하는 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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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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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또렷하게 각인되었던 작가 존 그린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전작에서 작가는 암에 걸린 헤이즐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16살 소녀 에이자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20세기폭스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니 제2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탄생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작가 존 그린이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에이자 홈즈라는 소녀를 통해 들려주는 고백이라는 점에서 작가에서 큰 의미가 될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정신 질환의 고통, 젊음이 주는 부담감,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결함투성인 불안감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하는 강렬한 소설 -셀프 어웨어니스

 

가끔씩 이미 상처가 감염되었을까 걱정되어 균을 빼내야 했는데, 유일한 방법은 상처 부위를 다시 벌려 어떻게든 피를 짜내는 것이다. 일단 굳은살을 째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중부정을 사용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두 번 부정해야만 하는 상황, 부정을 부정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곤경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엄지손톱이 가운뎃손가락 손톱 밑을 파고드는 느낌을 어서 빨리 느끼고 싶었고, 저항해 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있기에 테이블 밑에서 가운뎃손가락에 붙은 반창고를 떼어내고 엄지손톱을 굳은 살 속에 푹 박았다. 살이 툭 찢어질 때까지. (본문 14p)

 

자신이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세균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16살 소년 에이자.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 일이 정해지고 다른 사람이 짜 놓은 계획표에 따라서 사는 것 같은 학교 생활에서 데이지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여섯 살 때부터 친구인 데이지는 불안과 강박을 겪고 있는 에이자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도 남는 친구다. 그런 데이지가 CEO인 러셀 피킷의 행방을 제보하는 시민에게 10만 달러의 현상금이 지급된다는 뉴스 소식에 솔깃해 한다. 이 남자의 아들 러셀 피킷 데이비스와 에이자가 지금은 연락을 끊긴 상태지만 5,6학년 여름방학 때 함께 슬픔 캠프를 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에이자는 데이지의 부탁에 못이겨 러셀 피킷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데이비스를 찾아나선다. 

 

데이비스와 나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고, 왜냐하면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서로 마주보는 것보다 더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주보는 것은 누구하고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본문 17p)

 

그렇게 오랜만에 에이자는 데이비스와 재회하게 되고 두 사람은 아빠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연인이 된다. 에이자도 대학 문제를 고민하고 남자친구와 사랑을 키워 나가는 등의 사춘기의 통과 의례를 겪어 나가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불안과 강박을 지닌 에이자에게는 이런 일들이 너무도 버겁다. 결국 에이자는 세균에 감염되었을거라는 공포에 손 세정제를 마시기에 이른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이처럼 불안과 강박으로 고통받는 에이자가 겪는 우정과 사랑 이야기이다. 데이비스의 아빠를 찾는 모험을 큰 줄기로 하여 십대 소녀의 심리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서 인지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하다. 에이자가 겪는 불안과 강박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에이자처럼 끊임없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불안 속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결함투성인 불안감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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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 저주받은 갤러리 기기괴괴
오성대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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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으레 공포물이 인기를 끌게 마련이지요. 학창시절엔 오늘처럼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이면 선생님께서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곤 했지요. 별 것도 아닌 스토리지만 꺄아악~ 괴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TV드라마《전설의 고향》은 늦은 밤에도 이불을 뒤집어 써가면서 보곤했고, 《링》영화를 보고 며칠을 무서워하면서도 그 다음에 또다시 공포물을 찾아보곤 합니다. 무섭지만 짜릿한 느낌이 여름의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 때문인가 봅니다. 헌데 요즘은 귀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심보다는 살인마로 인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작품들이 더 많아서 오래전에 느꼈던 오싹한 공포를 느끼긴 어려워진거 같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헌데 오늘 비가 더해져서 그런지 오랜만에 짜릿한 공포를 느낀 책을 만나게 되었네요. 바로 네이버에서 연재되는 오성대 작가의 옴니버스 미스테러 스릴러 웹툰이 종이책으로 출간된 《기기괴괴》입니다. 오성대 작가는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를 매주 연재해 나가고 있는데 연재했던 에피소드 중 [성형수]는 중국에서 영화화될 예정이고, [아내의 기억]은  TV 프로그램 <기묘한 이야기>에 각색되었다고 하네요. 총 126화의 에피소드를 담은 《기기괴괴》는 총 5권으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저는 [저주받는 갤러리]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상상력이 더해져서 그런지 오싹한 기분이 듭니다.

 

 

 

예전에는 참 많은 괴담들이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늘 전교2등만 하는 친구의 죽음, 움직이는 동상, 늘 공포를 자극하는 과학실 등의 이야기가 있고 분신사바와 같은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습니다. 이 책에는 총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 [저주받은 갤러리]는 학교 괴담에 관한 이야기에요. 죽이고 싶은 상대의 사진을 머리 밑에 베고 자면 그 사진이 꿈 속에서 사진 액자로 나타나고 그걸 저주받은 갤러리에 걸어 놓고 나오면 되는거죠. 갤러리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분노와 증오, 그 이상의 살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일진의 괴롭힘을 당하던 재윤이와 중원이. 재윤이는 중원이에게 괴담을 듣게 됩니다. 괴롭힘이 심해지자 재윤이는 실패해도 밑질 것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괴담처럼 사진을 베고 잠이 듭니다. 그리고 괴담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요. 하지만 단순히 괴담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으로 무서운 건 아닙니다. 결말로 치닫을수록 오싹해지는 이야기지요.

 

 

 

[괴모수]는 아주 짧은 이야기로 스토리는 그닥 공포스럽지 않았지만 삽화가 무섭네요.

[당첨번호]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공무원 시험도 실패, 로또 당첨도 번번히 실패하던 한 남자가 여자친구의 몸에 하루에 하나씩 로또번호를 새기겠다는 꿈을 꿉니다. 별 해괴한 꿈이라 생각했지만 여자친구의 몸에서 번호를 발견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네요. 번호를 다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살의]는 실종된 김동현을 찾기 위해 형사가 반친구들에게 인상착의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김동현은 시체로 발견되고 반 아이들이 죽어나가게 됩니다.

[불면증]은 잠들지 못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비 때문이었을까? 읽으면서 굉장히 오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닌 사람인 듯 싶네요. 작가는 인간의 본성이 가진 무서움을 공포라는 장르로 잘 표현하고 있는 듯 싶어요. 그래서 더 무서웠던 거겠죠?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는 무서운 사건들, 이 공포물과 다를 바 없으니 말입니다. 다 읽은 후에도 꼽씹어지는 이야기였어요. 그 점이 더 무섭게 하네요. 오랜만에 오싹해지는 공포를 만나게 되었네요. 다른 편에서는 어떤 오싹한 공포를 보여줄지 궁금해집니다. 이 여름에 읽어보면 정말 좋을 듯 합니다. 강추!

 

(이미지출처: '기기괴괴_저주받은 갤러리' 본문,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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