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추기경
평화방송 엮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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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이기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책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고자 함은, 추기경으로서가 아닌 김수환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 「그 사람 추기경」에서 시작되었으며 열일곱 명의 인터뷰이들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을 만나게 해준다.

 

이 책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안에 남은 추기경의 모습을 되살린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기억되고 존재한다. 그리고 기억되는 한, 그는 살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안에 온전히 살아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이십 대 청년의 모습으로, 어떤 이에게는 마흔 초반의 패기 넘치는 사제의 모습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너그러운 할아버지 모습으로 생생히 살아 있었다. (본문 12p)

 

 

이 책에는 그 사람, 추기경을 기억하는 열일곱 명의 인터뷰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김 추기경의 유머 감각 외에는 모두가 닮아 있는 강우일 주교,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김 추기경의 곁을 지킨 박신언 몬시뇰, 서울교구장으로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허가한 수도원에서 오랜 세월 지도신부로 지내온 송광섭 신부, 민주화 활동에 관련된 국내외 소식들을 전하고 추기경의 뜻을 밖으로 전달하는 창구였던 '민주화의 비밀병기' 깅정남, 스스로를 김 추기경의 '법률 참모'였다고 말하는 김형태 변호사, "김 추기경은 정말 예수님 같은 분이었다"고 말하는 두봉 주교, 김 추기경 옆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들을 돕다가 라파엘 클리닉(이주 노동자 무료 진료소)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고찬근 신부, 조카 김병기와 조카며느리 문정혁, 우리 교회의 '살아 있는 전설'인 윤공희 대주교, 김 추기경의 사십 대 초반의 젊고 팔팔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준 1964년 당시 「카톨릭시보」사의 '올드미스' 기자였던 이단원, 추기경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김수환 추기경의 주치의였던 김영균 박사, 김 추기경을 모시고 등산도 다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며 격의 없이 지낸 후배 사제인 김상진 신부, 빈민 운동자 제정구 씨의 부인이며 예수회 정일우 신부의 친구인 신명자 이사장, 김수환 추기경의 유일한 서품 동기인 정하권 몬시뇰, 김 추기경이 한국에서 가장 작은 마산교구의 주교에서 서울대교장으로 임명받았을 때 첫 번째 비서 신부였던 장 익 주교, 그리고 이해인 수녀다.

 

 

김수환 추기경은 갔지만 이들 안에서 추기경의 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어른 증손주들의 재롱에 환한 미소를 아끼지 않던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병으로 인한 고통에 힘들어했지만 하느님께 의지하며 다시 일어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는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역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손 닿을 거리의 추억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임종 순간의 모습으로 , 또 누군가에게는 사십 대 초반의 다듬지 않은 머리에, 어깨 위로는 허옇게 비듬이 떨어져 있는 추기경의 젊고 팔팔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 어떤 규정이나 격식에 별로 구애받지 않으시고 굉장히 자유롭게 사신 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규정에 맡기기보다는 예수님과 복음에 맡겼기 때문에, 더 큰 구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셨기 때문에, 자잘한 것들에 일일이 얽매이지 않으셔도 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듭니다. (본문 42p)

 

저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기경님 그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이 어둠의 시대에 모든 억울한 사람들이 찾아가 말하고 싶은 분, 유일하게 소통이 되는 그런 분이셨죠. 우리에게 큰 벽이 되어주었던 분이시지요. 이제 우리한테 그런 분이 없다는, 그 상실감이 너무 큽니다. (본문 98p)

 

추기경님 본인이 안구까지 내놓으셨는데 마지막까지 다 내놓으신 거죠. 안구 기증을 얘기하신 것도 생각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내 몸 중에 유용하게 쓰일 부분이 눈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또 눈이라는 것은 빛이잖아요. 우리가 눈을 통해서 모든 걸 보게 되는 것 아닙니까. (중략) 항상 그런 걸 생각하시는 거죠. 내가 뭘 내놓을까.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더 내놓을 것 없나. 그걸 아마 평생 동안 생각하면서 사신 것 같아요. (본문 229p)

 

 

이 책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울 책이되겠지만, 종교를 떠나 모든 이들에게도 뜻깊은 책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을 통해 기억되는 그 사람, 추기경의 모습은 더없이 따뜻하고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분이었다. 또한 추기경으로서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의 모습은 위로와 위안을 주고 있다. 추기경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만나본 김수환 추기경, 비록 종교인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의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

 

이 책은 추기경의 살모가 신앙을, 그 안과 밖을 한 번에 다 만나게 해줍니다. 추기경님 역시 우리와 똑같은 고뇌를 안고 사셨다는 사실에 우리도 추기경님을 닮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바보 추기경'을 내 안에 담고 살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_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이미지출처: '그 사람 추기경'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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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와 라라의 아이스크림 - 숲 속의 꼬마 파티시에 루루와 라라 시리즈
안비루 야스코 글.그림, 정문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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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주니어 <루루와 라라>시리즈는 최고의 파티시에가 되고 싶은 두 소녀가 숲 속에 작은 과자 가게를 열고 숲의 동물들과 요정들에게 다양한 과자를 만들어 주는 이야기랍니다. 이 시리즈는 두 가지의 즐거움을 담아내고 있답니다. 하나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재미, 그리고 또 하나는 레시피가 담겨져 있어 루루와 라라가 만든 간식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지요. <루루와 라라의 화려한 쿠키><루루와 라라의 초콜릿 데이>를 통해 쿠키와 초콜릿을 만들어 보았다면 이번에는 <<루루와 라라의 아이스크림>>을 통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만들기에 도전해볼 수 있답니다. 추워서 두꺼운 옷을 입고 따뜻한 차를 찾던 추운 겨울이 어느 새 지나고 봄이 찾아왔어요. 벚꽃 축제관련 뉴스가 등장하고 옷도 한층 가벼워졌지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시원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찾게 될 듯 싶어요. 그날을 위해 아이스크림 만들기에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무더운 여름날, 루루와 라라는 양손으로 묵직한 밀가루 포대와 커다란 우유병, 계란을 잔뜩 담은 바구니를 안고서 힘들게 가게로 향하고 있었어요. 그때 단골손님인 너구리 라쿤이 도와주어 둘은 과자 재료들을 무사히 가게까지 옮길 수 있었어요. 루루와 라라는 고마운 마음에 코코아랑 아몬드 쿠키를 대접하려고 했지만 라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도와준 건 자신의 '감사의 인사'라고 생각해달라고 말하네요.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는 라라에게 라쿤은 편지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꼬깃꼬깃 구겨진 편지에는 '저에게 하시려던 감사의 인사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해 주세요. 방법은 쉽습니다. 누군가를 돕거나, 기분 좋게 하면 된답니다'라고 적혀있었지요. 이 편지는 얼마 전 감기에 들었을 때 돌봐준 다람쥐가 준 편지였어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루루와 라라 역시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하기로 했지요. 라라는 과자로 감사 인사를 전하자고 했지만, 루루는 더운 날 케이크랑 쿠키를 받고 좋아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했어요. 시무룩한 이들에게 슈가 아주머니가 찾아왔고 이들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숲 속 동물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함께 감사의 릴레이 편지를 건넸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개의 아이스크림은 감사의 릴레이 편지를 제일 먼저 시작한 슈가 아주머니에게 건넸지요.

 

 

슈가 아주머니가 숲 너머 작은 마을에 빵을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쳐 울고 있는 아기 너구리를 도와주자 나중에 아주머니의 가게로 가서 인사하겠다는 아기 너구리에게 아주머니가 건넨 편지가 결국 슈가 아주머니에게 되돌아 온 것입니다. 아주머니가 베푼 친절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숲 속 전체로 퍼졌고 아주머니도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루루와 라라의 아이스크림>>에는 아이스림처럼 달콤하고 시원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계란 노른자, 설탕, 우유, 생크림, 바닐라 에센스를 재료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고, 거기에 코코아와 초콜릿을 섞은 초콜릿 아이스크림, 딸기 잼으로 만든 딸기 소스를 섞어 만든 딸기 아이스크림도 만들어볼 수 있으며, 다양한 장식으로 파르페, 스쿠프로 뜨기, 아이스 케이크 등을 만들어볼 수 있는 맛있는 이야기가 담긴 <<루루와 라라의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으리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거 같네요. 감동과 달콤한 맛이 함께 하는 <루루와 라라> 시리즈, 앞으로도 정말 기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미지출처: '루루와 라라의 아이스크림'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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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의 특별한 하루 - 감사 누리과정 유아 인성동화 14
김미나 글.그림, 최혜영 감수 / 소담주니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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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주인공들이 여행 중에 '감사하다'라는 구호를 외치곤 합니다. 그 '감사하다'라는 구호가 '파이팅'보다 더 활기차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헌데 그 의아함의 이유를 소담주니어 <유아 인성동화> 시리즈 14번째 이야기 <<은비의 특별한 하루>>를 통해서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란,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소중함'과 '가치'를 아는 것이에요.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하고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많이 가질수록 불평도 늘어나고, 감사를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감사는 진짜 행복이 감춰진 보물 상자의 열쇠랍니다. _지은이 김미나

 

 

은비네 가족은 오늘 특별한 하루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특별한 하루는 불평불만에서 시작되었지요. 엄마는 아침마다 옷장 문을 열고 마음에 드는 옷이 하나도 없다고 속상해하고, 아빠는 식탁 앞에 앉아 채소뿐인 반찬을 불평하지요. 은비는 갖고 놀던 곰 인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 인형을 갖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은비네 가족이 불평을 하던 순간 집 안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집 안에 점점 물이 차올랐고 차가운 바람도 불었지요. 아빠는 서둘러 배로 쓸만한 물건을 찾았고, 엄마는 옷장 안에서 두터운 옷들을 꺼냈어요.

 

 

 

엄마는 짜증이 났고, 아빠는 낡아 빠진 집을 산 것에 대해 화가 났지요. 그러자 번개가 치면서 더 거센 비가 내렸어요. 물은 바다처럼 넘실거렸지요. 가족들은 아빠가 마련한 배 위에 올라타 오들오들 떨었답니다. 가족들은 엄마가 꺼내 온 옷들을 겹겹이 껴입었어요. 그 모습이 우스워 한바탕 웃으며 옷들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지요. 마침 떠내려오는 물건들 사이에서 찾아낸 오이가 허기를 달래줘서 다행이었고, 심심한 은비의 눈에는 물 위에 떠 있는 곰 인형이 들어왔지요. 어느 새 밤이 되었고 가족들은 서로를 꼭 안고 잠을 청했어요. 낡고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집이 포근한 둥지처럼 느껴졌지요.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은비네 가족은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모두가 고마웠지요.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들이 너무도 많음에도 우리는 더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을 갖지요. 지금 입고 있는 옷보다 더 좋은 것, 지금 먹고 있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 지금 가지고 있는 장난감보다 더 좋은 것을 누구나 원합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그런 불평불만들은 사라져요. 작가의 말처럼 감사는 '마음속 먹구름을 물리치는 기적의 주문'이니까요.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면 마음속 먹구름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이 낡은 컴퓨터가 불만이었는데, 이 낡은 컴퓨터가 없었다면 오늘 이렇게 책을 읽고 리뷰를 쓸 수 없었겠네요. 생각해보면 이 또한 감사한 일이 되겠군요.

 

 

<<은비의 특별한 하루>>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감사'가 가지는 큰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계속 웃음이 난다고 하네요.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은비네 가족을 통해서 배워보면 어떨까요? 은비네 가족을 보면 지금 나의 이 순간들이 정말 다행스럽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느껴질 것입니다.

 

 

감사는 유아가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호의나 도움, 배려, 은혜, 베풂을 받고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기쁘고, 편안하고, 즐겁다는 것을 인식하여 그에 대한 고마운 자신의 마음을 적절한 행동이나 언어, 표정, 몸짓 등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_국립한경대학교 아동가족복지학과 최혜영 교수

 

(이미지출처: '은비의 특별한 하루' 본문,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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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화 - 1940, 세 소녀 이야기
권비영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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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 작가가 비운의 황녀 <덕혜공주>, 다문화센터를 배경으로 가족해체 문제와 각박한 사회 모습을 돌아본 소설 <은주>에 이어 일제감정기로 돌아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소재로 한 <<몽화>>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일단 믿고 읽어 보게 되는 권비영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러하지만, 아프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될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정치 외교적인 사안과 엮이며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저자 권비영은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이 상처를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름 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이도, 아직 생존해 있는 분들도 억울함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그들은 점점 사라져 간다. 사라져 가는 것이 잊히는 것이라면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살려 놓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역사의 광풍 앞에서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가녀린 소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_집필 후기 中

 

주재소 순사를 두들겨 팬 일 때문에 아버지는 야반도주하듯 만주로 떠났고, 어머니마저 아버지를 찾아 만주로 떠나게 되면서 영실은 국밥집을 하는 이모집에 얹혀 살아야했다.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모를 보며 영실은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린 채 이모의 아들인 동수를 보살피며 지낸다. 집앞 개천을 끼고 양쪽으로 이어진 마을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개천의 동쪽에는 게딱지 같은 집들이, 서쪽으로는 멋진 기와집들이 늘어서 있다. 서쪽 편 기와집들을 구경하는 일을 즐거워하던 영실은 어느 날 또래의 여학생인 은화와 정인을 만나게 된다. 기와집에 사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삶 역시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모를 잃고 기생집 주인에게 길러진 은화는 머지않아 기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워했고, 일본앞잡이인 아버지를 둔 정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에 의해 불란서로 유학을 가야만 했다. 이들은 우정을 맹세하며 서로 믿고 의지하고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기로 한다.

 

나날이 불안한 삶 속에서 이모는 훈풍의 나날을 보냈는데 그것은 든든한 후견인이 된 나카무라가 이모를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인은 불란서로 떠났고, 기생이 될까 두려운 은화는 간호부에 지원하겠다며 몰래 집을 떠났으며, 영실은 나카무라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렇게 우정맹세를 했던 세 소녀는 헤어지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속 환란의 시절, 그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기생이 되기 싫어 집을 나간 은화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안부가 되어야 했고, 불란서에서 미술을 공부하게 된 정인은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화과를 만드는 일을 도우며 학교를 다니던 영실은 만주에 있어야 할 아버지가 일본 탄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 재회하게 되지만 아버지의 삶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제 징용에 의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일주일쯤 되었을 것이다, 이곳으로 끌려온 것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누워 있던 은화가 생기 잃은 눈을 떴다. 전구 하나만 달랑 매달려 있는 방 안은 은화의 몰골처럼 휑했다. 다다미에서 나는 마른 풀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분명 여름인데, 몸이 으슬으슬한 것이 몸살이라도 걸린 듯이 추웠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은화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본문 219p)

 

 

소설은 세 소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위안부와 강제 징용의 실상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위안부와 강제 징용의 실상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시절에 살았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라본 상황은 더욱더 아프고 안타깝고 슬펐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귀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14년 만에야 빛을 보게 된 이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앞서 권비영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절대 잊어서는 안될 상처를 기억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귀향>이 그렇듯 소설 <<몽화>>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우리가 그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역사의 상처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 우리들 몸이 더러워진 것은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에요.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는 전쟁을 원한 적도 없고 전쟁에 미친 군인들을 위무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건 미친 바람이 지나간 자리일 뿐이에요. 바람은 곧 잠들 거예요. (본문 243p)

 

1940년대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그려진 소설 <<몽화>>는 잊혀져가는 그 시설의 아픈 과거와 상처들을 되살려놓고 있다. 때로는 너무 아파서, 때로는 너무 먹먹해서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운 대목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꿈꾸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려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어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고 기운을 내게 된다. 역사의 광풍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그들이 책 속에서도 나를 위로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 모두가 우리의 역사이며 기억해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허투루 책으로 읽을 수 없었다. 그동안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그들의 아픔이 오늘은 이 책을 통해 오롯이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듯 싶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이미지출처: '몽화'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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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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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책을 덮은 뒤로 단 한 번도 다시 읽지 않게 된 소설일 뿐이다. 아무리 유명한 고전이라 할지라도 다 재미있는 것은 아니니까 난 그저 그런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물론 고전 소설을 읽지 못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탓에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카뮈로부터 온 편지>>를 통해 <이방인>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카뮈로부터 온 편지>>를 읽기 전에 저자의 이력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저자 이정서는 2014년 기존 알베르 카뮈<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며 새로운 변역서를 내놓아 학계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것은 출판계와 번역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오며 자성을 이끌어냈다고 하니 저자 이정서의 정밀한 번역의 시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왔을지 알 듯 싶다. 더욱이 이 책은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번역 연재를 했던 6개월의 시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데다 실제 번역 과정을 소설로 재탄생시킨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이 작품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미뤄 짐작할수 있겠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 번역 과정을 소설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카뮈로부터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판타지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이라면 이미 수많은 출판사에서 수십 종의 번역서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불문학의 대가인 김수영 교수가 펴낸 <이방인>이 수십 년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물론 시대에 따라 재번역을 하면서). (본문 10p)

 

퇴근 무렵, 강고해 팀장이 발신인이 'A. Camus.'카뮈인 편지 한통을 건넸다. 편지의 대략 내용은 자신의 소설을 한국에서 다시 내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주인공 이윤은 죽은 카뮈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을리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수많은 출판사에서 수십 종의 번역서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불문학의 대가인 김수영 교수가 펴낸 <이방인>이 수십 년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뒤늦게 자신의 출판사에서 다시 번역해 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곧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가족 전부가 저녁을 먹게 된 토요일 저녁, 중2 작은 딸의 <이방인>이 재미없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두 딸과 <이방인>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고, 이윤은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소설을 간신히 다 읽은 이윤은 이런 소설을 두고 세계인이 열광했다는 뒤표지 카피에 아연하게 되고 큰 딸의 말마따나 이야기가 전혀 아귀가 맞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에 이윤은 카뮈의 편지를 끄집어내게 되었고 여러 권의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방인>의 지루함이 어디서 왔는지 확신하게 된다.

 

무엇보다 카뮈의 문장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깔끔했다. 혹시나 싶어서 불어판을 보니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문장을 김수영은 왜 그렇게 따분하고 모호하게 늘어놓았던 것일까?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문 23p)

 

번역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김수영이 개인적인 해석으로 따로 놀게 만들어버림으로써 <이방인>을 잘 읽히지 않고 재미가 없는 '전혀 다른'소설로 만들어버렸음을 알게 된 이윤은 <이방인>을 새로 번역하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번역자를 찾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감팀장의 권유로 인해 이윤은 직접 번역을 하기로 결심하고 연재를 올리게 된다. 이렇게해서 소설은 카뮈의 원 문장과 김미영의 번역과 자신의 번역을 비교하여 수록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어간다. 이렇게 번역을 연재해가는 과정 속에서 이윤의 심리가 탁월하게 묘사되어 진다. 이윤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오역을 바로잡아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 오역을 지적하며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음으로써 오해 받고 출계와 번역계에 논쟁을 불러 일으키면서까지 <이방인>을 출간한 저자 이정서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한마디로 놀랐다.

아무리 소설의 재미가 360도 다른 각도에서 나온다지만 이런 소재와 주제의 소설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건, 경이로움을 넘어 내 상상력의 한계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언어적 재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류의 재담이나 법정류의 청담도 없다. 아니 그와는 아주 다르게 두 사람의 <이방인>번역을 꼼꼼히 비교하며 읽어야 한다.

그러나 재미있다. 아니, 그냥 재미있는 게 아니라 너무나 재미있다. 비교된 두 개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범죄자와 법의학자의 대결을 보는 이상의 스릴이 있고, 권위주의자와 기득권을 쳐부수는 통쾌함이 있으며, 프랑스어와 영어와 국어의 같음과 다름을 경험하는 풍부한 문화여행이었다. (추천사_김진명)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도 하잖니, 서로 다른 두 언어가 딱 하나의 의미로 대응될 수 없으니(본문 13p)"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전에는 번역에 따라 작품이 주는 재미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서로 다른 두 언어가 딱 하나의 의미로 대응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로 인해 작품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정역으로 인해 작품이 가진 가치를 오롯이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과 쉼표하나, 조사 하나의 차이로 인해 작품의 의미가 달라짐에 따른 번역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된 듯 싶다. 두 개의 번역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는 실로 새로운 소재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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