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추기경
평화방송 엮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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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이기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책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고자 함은, 추기경으로서가 아닌 김수환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 「그 사람 추기경」에서 시작되었으며 열일곱 명의 인터뷰이들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을 만나게 해준다.

 

이 책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안에 남은 추기경의 모습을 되살린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기억되고 존재한다. 그리고 기억되는 한, 그는 살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안에 온전히 살아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이십 대 청년의 모습으로, 어떤 이에게는 마흔 초반의 패기 넘치는 사제의 모습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너그러운 할아버지 모습으로 생생히 살아 있었다. (본문 12p)

 

 

이 책에는 그 사람, 추기경을 기억하는 열일곱 명의 인터뷰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김 추기경의 유머 감각 외에는 모두가 닮아 있는 강우일 주교,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김 추기경의 곁을 지킨 박신언 몬시뇰, 서울교구장으로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허가한 수도원에서 오랜 세월 지도신부로 지내온 송광섭 신부, 민주화 활동에 관련된 국내외 소식들을 전하고 추기경의 뜻을 밖으로 전달하는 창구였던 '민주화의 비밀병기' 깅정남, 스스로를 김 추기경의 '법률 참모'였다고 말하는 김형태 변호사, "김 추기경은 정말 예수님 같은 분이었다"고 말하는 두봉 주교, 김 추기경 옆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들을 돕다가 라파엘 클리닉(이주 노동자 무료 진료소)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고찬근 신부, 조카 김병기와 조카며느리 문정혁, 우리 교회의 '살아 있는 전설'인 윤공희 대주교, 김 추기경의 사십 대 초반의 젊고 팔팔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준 1964년 당시 「카톨릭시보」사의 '올드미스' 기자였던 이단원, 추기경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김수환 추기경의 주치의였던 김영균 박사, 김 추기경을 모시고 등산도 다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며 격의 없이 지낸 후배 사제인 김상진 신부, 빈민 운동자 제정구 씨의 부인이며 예수회 정일우 신부의 친구인 신명자 이사장, 김수환 추기경의 유일한 서품 동기인 정하권 몬시뇰, 김 추기경이 한국에서 가장 작은 마산교구의 주교에서 서울대교장으로 임명받았을 때 첫 번째 비서 신부였던 장 익 주교, 그리고 이해인 수녀다.

 

 

김수환 추기경은 갔지만 이들 안에서 추기경의 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어른 증손주들의 재롱에 환한 미소를 아끼지 않던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병으로 인한 고통에 힘들어했지만 하느님께 의지하며 다시 일어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는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역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손 닿을 거리의 추억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임종 순간의 모습으로 , 또 누군가에게는 사십 대 초반의 다듬지 않은 머리에, 어깨 위로는 허옇게 비듬이 떨어져 있는 추기경의 젊고 팔팔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 어떤 규정이나 격식에 별로 구애받지 않으시고 굉장히 자유롭게 사신 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규정에 맡기기보다는 예수님과 복음에 맡겼기 때문에, 더 큰 구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셨기 때문에, 자잘한 것들에 일일이 얽매이지 않으셔도 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듭니다. (본문 42p)

 

저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기경님 그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이 어둠의 시대에 모든 억울한 사람들이 찾아가 말하고 싶은 분, 유일하게 소통이 되는 그런 분이셨죠. 우리에게 큰 벽이 되어주었던 분이시지요. 이제 우리한테 그런 분이 없다는, 그 상실감이 너무 큽니다. (본문 98p)

 

추기경님 본인이 안구까지 내놓으셨는데 마지막까지 다 내놓으신 거죠. 안구 기증을 얘기하신 것도 생각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내 몸 중에 유용하게 쓰일 부분이 눈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또 눈이라는 것은 빛이잖아요. 우리가 눈을 통해서 모든 걸 보게 되는 것 아닙니까. (중략) 항상 그런 걸 생각하시는 거죠. 내가 뭘 내놓을까.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더 내놓을 것 없나. 그걸 아마 평생 동안 생각하면서 사신 것 같아요. (본문 229p)

 

 

이 책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울 책이되겠지만, 종교를 떠나 모든 이들에게도 뜻깊은 책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을 통해 기억되는 그 사람, 추기경의 모습은 더없이 따뜻하고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분이었다. 또한 추기경으로서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의 모습은 위로와 위안을 주고 있다. 추기경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만나본 김수환 추기경, 비록 종교인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의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

 

이 책은 추기경의 살모가 신앙을, 그 안과 밖을 한 번에 다 만나게 해줍니다. 추기경님 역시 우리와 똑같은 고뇌를 안고 사셨다는 사실에 우리도 추기경님을 닮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바보 추기경'을 내 안에 담고 살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_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이미지출처: '그 사람 추기경'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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