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고전탐독 13
전경목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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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참 정감있고 예쁘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제목과는 달리, 생각보다 훨씬 재밌게 읽었다.

정말 우리나라 역사도 미시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모양이다.

꼼꼼한 고문서 분석을 통해 손에 잡히듯 17세기를 살았던 조선 선비들의 생활상이 그려진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확실히 조선 사회는 화폐 경제가 아닌 실물 경제, 즉 물물교환의 시대였구나 싶다.

선비들은 편지 교류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선물을 주고 받는다.

뭔가를 요청하고 또 열심히 청탁을 들어준다.

비단 벼슬자리나 송사 등에 관한 청탁 뿐 아니라, 구체적인 물건 요청이 잦다.

곡식은 물론이고 부채, 종이, 배 등등 실제 생활에 쓰이는 물건들을 부탁한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처럼 지방의 군수로 재직하면 친척은 물론 지인들로부터 끊임없는 청탁 요구에 시달린다.

돈을 주고 시장에서 물건을 살 수 없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제적인 현물을 서로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일종의 선물 경제라고 할까?

요즘 같으면 관의 물건을 지인에게 나눠주는 것이니 횡령으로 보여질 부분도 오히려 상부상조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오히려 매몰차게 거절하면 인정이 없고 청렴하다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사회적 관계를 맺지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학자였던 선비들의 편지라 그런지 극존칭과 화려한 미사여구가 사적인 편지에도 많이 등장한다.

엎드려 바라옵니다는 표현은 비단 임금에게 바치는 상소에만 등장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경신대기근의 참혹한 기아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지방관의 모습이 그려져 신선했다.

사극의 폐해인가, 조선시대 지방관이라고 하면 백성들을 착취하고 자기들만 호위호식 할 것 같은데, 그랬으면 진작 조선이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끔찍한 흉년을 당해 관내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한계를 절감하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책에 나온 대로 기아는 조선 시대의 만성적인 현상이었고 더 심할 때와 덜 심할 때가 있었을 뿐이라 양반이라고 해서 흉년의 공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런 부분은 현대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선조들을 이해할 때 항상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밥 먹었냐가 왜 인사가 됐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인상깊은 구절>

278p

앞의 편지들을 통해 기근이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간헐적이지만 반복적으로 있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당시 수령들은 대부분 백성을 구휼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비교적 풍년이 든 해에도 자칫 집안 관리를 소홀히 하면 굶주일 가능성이 높았다. 배고픔의 그림자가 일상에 깊숙이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 부풀려 이야기한다면 평생 동안 기아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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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 신화에서 역사로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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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 있는 제목보다는 다소 지루했다.

세계 각국의 신데렐라 스토리들을 소개하는데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지루한 느낌이 든다.

노아의 홍수 버전도 멀리는 수메르로부터 그리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이야기들이 근동에 퍼졌던 걸 보면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에 기초한 이른바 원형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 있는 모양이다.

콩쥐팥쥐 이야기도 전형적인 계모 구박과 주변의 도움, 그리고 왕자님에 의한 구원 구조인데 정말 유라시아 초원에서부터 세계 각지로 사람이 이동하면서 전해진 것인지 명확하게 밝히지는 못했지만 하여튼 중국과 심지어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도 비슷한 전래 동화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물론 유럽인 선교사와의 접촉에 의한 전파 가능성도 언급한다.

신데렐라에 대한 논의보다 더 흥미로웠던 부분은, 전래 동화가 갖고 있는 폭력성과 성적 코드이다.

일부러 자극적인 내용이 사실은 원본이었다고 과장한 건 줄 알았는데, 정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 만화 스토리는 페로가 매우 순화시킨 것이고 실제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훨씬 더 잔인하고 노골적인 성적 코드, 특히 근친상간 등의 암시도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악인에 대한 처벌도 잔인해 신데렐라를 구박한 두 언니는 새가 눈을 파먹어 평생 장님으로 살고, 콩쥐의 계모는 젓갈로 담궈진다. 

그러고 보면 백설공주를 질투하는 계모도 딸을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하는 거라 이상한 냄새가 나긴 한다.

에로틱한 그리스 신화들이 고대 이야기들의 자연스러운 속성인 모양이다.

유리구두는 가죽신을 잘못 번역한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저자에 따르면 원래부터 유리구두였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반짝 반짝 빛나는 상징적인 느낌이라 유리구두가 훨씬 잘 어울리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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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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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이라는 책을 읽고 진심으로 무신론자가 되었다.

어려서 교회와 성당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이 됐는데 나이가 들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 책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

그래서 나에게 이 저자는 매우 특별하다.

엄마가 선교의 의욕에 불타는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면 나 역시 이렇게까지 열심히 무신론에 관한 책을 읽고 내 신념을 다지지는 않을 것 같다.

가족으로서는 물론이고 인격적으로도 정말 존경해 마지 않는 엄마이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오직 자기 교회식의 교리만이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엄마의 전교 의지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강력할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졌는데 2부의 진화와 우주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전문적이라 다소 어려웠고 1부는 역자 후기대로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쉽게 쓰여졌다.

긴장했던 것에 비하면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생명의 기원은 진화론에 의해 더 이상 논쟁이 필요없을 정도로 입증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 신의 존재를 논증한다고 한다.

말이나 식물의 교배 등을 생각해 보면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원리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도 생명은 신이 주관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나 갈릴레오, 뉴턴 같은 똑똑한 이들이 19세기 다윈이 등장할 때까지 모른 척 했을 거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우주의 기원도 신이 아닌 자발적 탄생일 수 있다는 개념을 용기있게 받아들일 때라고 한다.

"과학에서 용기를 얻자"

이 말에 책의 핵심이 있는 것 같다.

과학은 자연과 우주가 이루어지는 생성 원리,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니 결국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종교가 아닌 과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종교가 지배하던 과거에는 노예제가 버젓히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종교가 쇠퇴했는데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인권은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보되어 간다.

이것이 종교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가?

결국 종교가 아닌 인간의 도덕률 자체가 진화한 것이므로 종교가 있어야먄 도덕적인 사회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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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도시 - 서울의 풍경과 권위의 연출
이기봉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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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는 저자의 주장이 도식적으로 느껴져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이 됐던 책이다.

왜 경복궁이 한눈에 확 들어오지 않고 넓은 주작대로가 없었는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하늘-산-궁궐 이런 3단 풍경이라는데 공감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시 모든 책은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훨씬 좋고,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소득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뒤로 갈수록 흥미로워지고 왜 한국의 전통 건축물들이 서양이나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낮고 아담한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이해하게 됐다.

저자의 주장이 정말로 확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독자로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바로 풍수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국시대만 해도 한반도에 높은 탑들이 있었다.

단순히 건축 실력이 떨어져 높은 건물을 안 지은 게 아니라 풍수라는 이념에 입각해 산을 전체적인 풍경의 하나로 인식하고 거기에 맞게 건물을 낮게 지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야트막한 야산과 눈높이에 맞는 단층의 건축물들이 다 이유가 있어 그렇게 지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느낌이다.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풍수지리설을 인용한 게 그때부터 하나의 이념으로 한반도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묘청의 서경천도설이나 조선 건국 후 무학이 한양을 수도 잡은 것도 다 그런 이유인가 보다.

단순히 정자나 탑, 궁궐 같은 건축물만 봐서는 안 되고 주변의 자연 풍경을 함께 봐야 비로소 한민족의 미의식이 느껴지는데 건축물 하나만 문화재로 지정하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그래서 요즘은 명승이른 이름으로 주변 환경까지 아울러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모양이다.

한양의 성벽이 낮은 것에 대한 설명도 인상깊게 읽었다.

한양은 무려 18km 나 되는 넓은 둘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적이 침입하면 제대로 방어를 할 수가 없다.

또 성벽이 낮고 해자가 없어 방어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바로 피난를 떠났고 개성 역시 방어용 성곽이 아니라서 몽골이나 홍건적의 침입 때 임금은 수도를 버리고 몽진을 떠났다.

한마디로 한양이나 개성은 풍수에 맞춰 지은 수도라 북경의 산해관이나 일본의 오사카성 같은 자체 방어가 불가능했던 셈이다.

나도 이 점이 늘 신기했었다.

서울은 굉장히 큰 도시인데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다 성벽으로 두를 수 있을까? 

결국 관념적인 성벽이었을 뿐 실제 적에게는 무력했던 셈이다.

그만큼 한반도는 고려 시대 이후 중국과의 관계만 잘 맺으면 외적의 침입에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적이 쳐들어 오면 식량을 불태우고 산성으로 들어가 장기 항전하는 식으로 대항했다.

몽골의 침입에 강화도로 들어간 고려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간 조선이 그런 예다.

서구와 대립되는 우리만의 자주성을 내세울 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이해하고 왜 특수한 형식으로 발전했는지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한국의 풍수지리설이 특별히 자연친화적이고 위대해서가 아니라 좋은 공간에 살려고 하는 인간의 욕구가 한반도에서는 왜 풍수라는 이념에 맞춰 발전했는지를 고찰하는 게 정말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오류>

101p

원래는 동로마제국의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1653년 오스만제국에게 정복당한 후 이슬람사원으로 기능했던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

-> 1453년에 점령당했다.

272p

불로문을 나와 다시 북쪽으로 가면 관람지와 관덕정이 나타난다.

->관덕정이 아니라 관람정이다. 관덕정은 다른 곳이다.

275p

사진 속의 두번째 정자는 청의정이 아니다. 청의정은 초가 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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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 또 하나의 임진왜란 기록, 오희문의 난중일기
오희문 지음, 신병주 해설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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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는 달리 지루하다.

그래도 다른 일기류에 비하면 현대어로 풀어 써 쉽게 잘 읽히고 저자인 오희문 역시 옛날 선비들의 전형적인 일기와는 좀 다르게 정감 표현도 곧잘 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루하다.

있는 그대로 풀어 쓰는 것보다는 이러한 고문서들이 갖는 의미를 해석해 주는 역사학자들의 글이 대중 교양서로서 더 적합할 것 같다.

각 장 말미에 쓰여진 짧은 글로는 해설이 너무 부족한 느낌이다.

보통 옛날 선비들의 일기는 오늘날처럼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밝히는 에세이라기 보다, 마치 하루의 일과를 기록한 일력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오희문의 일기는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재난 탓인지 혹은 저자의 다정다감한 성품 덕인지 일기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막내딸 숙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인상깊었다.

16세기는 아직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내리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원래 인간의 본성이 당연히 그러해서인가, 딸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지극하고 일기 곳곳에 드러난다.

전쟁 통에 병을 앓다 죽은 딸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졌을 것이다.

딸의 제사를 챙기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자신들이 죽고 나면 이 제사를 아무도 지내지 못하게 될 것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근엄한 조선 선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희문은 시경의 글귀를 인용해 자신의 딸을 "아름다운 막내딸"이라 칭한다.

주민등록증이 나온다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찍은 고3 때 내 증명사진을 아직도 지갑에 가지고 다니는 우리 아빠가 생각나 마음이 찡했다.

나는 막내딸은 아니지만 말이다.

확실히 조선 전기에는 처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오희문의 아버지도 처가에 눌러 앉아 자식들이 외할머니 손에 크게 된다.

오희문 역시 장가를 든 후 처남과 무려 37년을 함께 지냈다고 나온다.

여자들이 사회 생활을 못하는 대신에 사위를 들여 재산을 물려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병자호란 이후 지나치게 교조화 된 조선 사회의 모습이 안타깝다.

조선 전기만 해도 화폐 경제가 아닌 현물 교환 시스템이라 주변 사람들의 선물에 의존하는 모습이 나온다.

친척 중에 관인이 있으면 관아에서 나오는 물건들에 주위 사람들이 큰 도움을 받는다.

오늘날의 횡령이나 개인 착복과는 좀 다른 개념이었던 것 같다.

오희문은 지방으로 피난을 가서 친척이나 교우 관계에 있는 지방 수령들의 정기적인 도움을 받는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시장이 없기 때문에 선물의 형태로 주고 받는 일종의 물물교환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노비들에 대한 내용도 많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오희문은 성품이 잔인한 사람은 못 된 듯 하여 종들에게도 많은 정감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그 역시 상전은 분명했던 것이, 도망친 노비를 잡아다 때리고 광에 가두어 다음 날 관아로 넘기려는데 그날 밤에 죽고 만다.

얼마나 심하게 때렸으면 그 날 밤을 못 넘기고 죽어 버렸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인데도 멀쩡한 놈이 왜 갑자기 죽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냐는 글에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확실히 신분제의 전근대인의 사고방식은 요즘의 현대인과는 매우 달랐던 게 분명하다.

하긴 호랑이가 마을 사람과 가죽을 잡아가는 얘기도 자주 나오고 쥐덫을 놓자 무려 56마리의 쥐가 잡혔다는 글에 깜짝 놀랬다.

역자의 표현대로 요즘은 호랑이를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데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끔찍한 맹수였으니 현대인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매우 다를 수 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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