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체성 - 공간과 역사
페르낭 브로델 지음, 안옥청. 이상균 옮김 / 푸른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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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까 봐 부담스러웠던 책인데,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라 읽게 됐다.

표지만 좀 더 멋지게 바꾸었으면 책의 매력이 훨씬 더 살아날텐데 아쉽다.

유명한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자신의 나라 프랑스를 분석한 책이다.

원래는 더 집필할 예정이었는데 아쉽게도 중간에 끝나버렸다고 한다.

상세한 예시나 논증은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의 취지는 충분히 잘 전달됐다.

책의 핵심 키워드는 "다양성"이라 할 수 있겠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일찍이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된 나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지방분권이 강했고 방언도 많다고 한다.

진정한 중앙집권제는 철도와 자동차, 비행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초등교육이 의무화 되며, 무엇보다 대중 미디어가 확산된 20세기 후반에나 가능했다는 논평이 인상적이다.

심지어 저자는 지금도 완벽한 통일은 형식일 뿐 내부는 다양한 모습의 모자이크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통일을 이루기에는 프랑스가 너무나 큰 나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우리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립된 공간에서 관료제가 발달해 촌락까지 중앙에서 통제해 왔던 터라 프랑스와는 다를까?

김갑수라는 평론가가 왜 한국은 독일처럼 지방자치제를 못하냐고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던데, 19세기 말에나 겨우 하나의 국가를 이룬 독일과의 비교는 어불성설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래 전부터 전제군주정이 확립된 동아시아와 봉건제가 강했던 유럽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졌으니무조건적인 비교는 어려울 것 같다.

핀란드식 교육 운운할 때도, 과연 인구 500만의 나라와 5천 만인 한국을 단순비교 할 수 있나 의문이었다.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프랑스라는 나라의 형성과 본질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지루하지 않고 마치 소설책을 읽는 기분으로 빨려 들어간다.

역사책은 결국은 인간들끼리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책이라는 게 실감난다.


<인상깊은 구절>

338p

정주한다는 것은 존재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늘날과 같은 체계화된 국경이 있기 이전부터 프랑스를 구분하는 경계는 존재했으며, 프랑스는 이러한 경계를 통해 그들이 정주할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대대로 이어받은 영토와 정복을 반복하여 과거의 교통수단을 기준으로 했을 때 거대한 공간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확보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랑스는 오랫동안 광대한 지역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괴물' 또는 '대륙'과 같은 존재였으며, 마치 하나의 제국과도 같았다. 프랑스의 지방들을 불편하게 만든 지역통합 정책은 프랑스 외부에 존재하는 위험요소보다도 내부의 위험에 대처해야 하는 정치적 상황을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고, 각각의 감시 체계가 요구되었다. 1756년에 앙주 구다르는 루이 14세가 벌인 전쟁들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토 정복 후 프랑스는 요새 국가가 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수비대가 필요했다. 프랑스 왕국의 경계는 넓어졌고 군사요충지도 증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전시와 평상시의 차이가 없어졌는데, 새로운 정복을 이유로 모집되는 군사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만큼의 수비대가 필요했다."

358p

해상 교역은 절대적인 권력체계와 왕과 귀족의 사치와 끊임없이 발발하는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무거운 세금으로 확충하는 제도하에서는 번영할 수 없다. 투자가 가능한 자유로운 기업활동만이 거대한 자본가계급을 형성할 수 있다. 이들의 역할이 없으면 국내의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상업활동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프랑스 의회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이러한 경제와 기업의식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규모의 상업적 교류를 활성화 시키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야말로 프랑스의 강력한 해군력 구축의 기반을 완성하는 지름길이다.

409p

절대왕정 시대의 행정 체계와 더불어 군대는 프랑스의 단일화를 형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었다. 19세기 초 무렵 대략적인 계산에 의하면, 매년 15만 명의 이민자, 이주 노동자, 계절 노동자들이 프랑스 국내를 이동하며 이러한 혼종화에 참여했다. 그러나 군의 경우에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말기인 1709년~1713년 동안 50~100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이동했는데, 이는 공화력 2년(1793)의 국민 총동원에 필적할 만한 수치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일어난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군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커졌다.

 프랑스의 단일화는 역사적으로 사회, 경제, 정치, 문화와 같은 모든 분야의 힘이 모여 이루어 낸 과업이었다. 일드프랑스 지방의 언어가 중심이 된 프랑스어는 정치와 행정적인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프랑스의 통합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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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1-12-1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열심히 읽으시네요! 전 올해에는 거의 성적이 완전 최악이네요.. 몸도 좀 다시 아파졌었고, 다른 취미에 재미를 들인 탓도 있긴하지만...^^;;;

책을 열심히 읽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항상 marine님이 올리시는 리뷰를 보고 많이 참고 하고 있어요 ㅎㅎ

marine 2021-12-20 13:43   좋아요 0 | URL
열심히 책 읽고 싶은데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복잡해 결국에는 계획에 미달하고 말았네요.
건강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