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의 美 - 일본미술의 혼
고바야시 다다시 지음, 이세경 옮김 / 이다미디어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우키요에에 관심이 생겨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알라딘 리뷰를 보니 2011년에 읽었던 모양이다.

문득 다시 봐야겠다 싶어 빌리게 됐는데 재독인데도 더 어려운 느낌이다.

한국인이 쓴 책이 아니라 일본인이 직접 쓴 우키요에 이야기라 그런지 훨씬 복잡하고 상세한 느낌이다.

특히 각주가 친절하게 달려 있긴 하지만, 여러 문화 관습이나 양식들이 일본어 그대로 실려 있어 직관적으로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워낙 일본 문화에 대해 무지해서인 것 같다.

또 일본어 이름은 입에 잘 붙지가 않는다.

겨우 확실히 아는 화가 이름이 안도 히로시게와 가츠시카 호쿠사이 정도인데 가츠사와라고 꼭 잘못 발음을 하게 된다.

스승의 이름을 물려받아 계보를 잇는 전통 때문에 더 헷갈리는 것 같다.

겨우 10개월을 불꽃처럼 활동하다가 사라져 버린 도슈사이 샤라쿠가 사실은 조선에서 건너간 김홍도일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황당해서인지 이 책에는 언급이 없다.

우키요에의 본류는 미인도와 가부키 배우들 그림인 것 같은데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큰 감동이 안 생긴다.

특히 우키요에의 일본 미인도는 아름답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가 않는다.

왜 얼굴을 크고 투박하게 그리는 걸까?

아마도 우키요에만의 개성있는 표현방식인 것 같은데 신윤복의 미인도 같은 가녀린 느낌도 아니고, 서양화의 화려한 미인도 아니라 아주 개성있으면서도 감동이 일지 않는다.

반면 안도 히로시게나 가츠시카 호쿠사이로 대표되는 다색 풍경화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사실 나는 판화에서 별 매력을 못 느끼는데 이 다색판화의 풍경화만은 과연 고흐가 똑같이 묘사했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구도도 그렇고 서정적 풍경화라는 용어에 걸맞는 분위기와 색감이 정말 아름답다.

어떻게 이런 판화 양식을 창조해 냈을까?

18~19세기 에도의 초닌층, 즉 상인계급은 유럽의 중산층과 비슷한 개념인 것인가?

그들의 경제력이 이처럼 독특하고 매력적인 서민문화를 창조해 낸 것일까?

조선 역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유행했다고 하지만 일본의 우키요에처럼 대량 생산되어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서민문화가 아니라 여전히 엘리트 고급 예술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우키요에의 성장은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인층의 경제력 덕분인가 싶다.

우키요에의 시작이 소설에 딸린 삽화였고 유명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발전한 걸 보면 출판 문화나 공연 문화가 아주 활발했던 것 같다.

1부는 12명의 우키요에 화가들을 소개하고, 2부는 목판화 우키요에, 3부는 직접 그린 육필화를 소개한다.

좋은 도판 덕분에 잘 감상했고 안도 히로시게의 풍경화는 색감이 너무나 매혹적이라 감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집트 미술 디테일로 보는 명작의 비밀 3
수지 호지 지음, 서남희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 가서 막상 책 실물을 보니 너무 얇아서 좀 놀랬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집트실이 신설되어 관람하러 갔는데 도록이 너무 소략된 것 같아 이집트 미술에 관한 책을 읽는 중이다.

앞서 읽은 <이집트의 예술>은 너무 어려웠던 데 반해 이 책은 일단 분량이 작고 20개의 대표적인 미술품을 디테일하게 소개하고 있어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유물의 작은 부분까지 클로즈업 해 자세히 설명해 주니 작품 감상에 훨씬 도움이 되는 듯하다.

도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서문에서도 밝힌 바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런 조각상과 벽화를 남긴 것은 현대인처럼 예술품으로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순전히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위한, 일종의 제사 의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개념으로 당시 장인들에게 예술가로서의 개성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미, 내세의 편안함, 영생을 추구했던 것이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이집트 미술이 변하지 않고 견고함을 유지한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맨 마지막에 실린 로마 속주 시절의 장례 초상화를 보면, 르네상스의 전통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르네상스 시대 초상화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라 깜짝 놀랬다.

확실히 그리스 로마의 자연주의적 미학 전통은 동양의 완고함과는 다른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 테마미술강의 003
알란 보우니스 지음, 하계훈 옮김 / 서울하우스(조형교육)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책이고 무려 1989년에 강의한 일종의 강연록인데 아주아주 유익하고 재밌다.

제목만 보면 약간 자극적이기도 하고 말을 위한 말, 관념적인 얘기가 될까 걱정했는데 예술이라는 창조 행위의 핵심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 줘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는, 골방에 갇혀 천재적인 창의력으로 위대한 작품을 남기지만 세상은 인정하지 않고 가난에 찌들려 오직 예술혼을 불태우다가 쓸쓸히 죽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 고흐와 고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들도 오래 살았으면, 즉 모네나 피카소처럼 8,90대까지 장수했으면 충분히 세상의 열광과 부유함을 다 맛 볼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창작의 절정을 이루는 불꽃튀는 생산성 있는 10년 동안 평론가의 인정을 받고 컬렉터와 화상들이 작품을 사 모은다.

이들은 서서히 대중들의 취향을 변화시켜 드디어 자신의 작품에 열광하도록 만든다.

저자는 그 시간을 대략 예술의 시작점으로부터 25년을 잡고 있다.

서양 사람인만큼 수치로 정확히 얘기한다.

반 고흐의 경우 27세의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고 주변 작가들로부터 인정을 막 받기 시작할 때 죽어버렸고, 그의 작품을 알려야 할 테오 역시 죽는 바람에 평가를 받는 데 10년이나 늦어졌다.

대신 일정 시간이 지나자 세상이 반 고흐에게 열광하고 오늘날 최고의 화가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80대까지 살았다면 모네나 피카소 같은 대중의 열광과 부유함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골방에서 외로이 죽어간 천재 화가는 낭만주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동료 집단과 평론가와 컬렉터들, 그리도 마지막에는 대중들까지,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은 결코 천재를 불행하게 끝까지 놔두지 않고 그 진가를 알아본다고 할까?

결국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고갱의 경우는 본인의 우울한 기질상 파리에 전시하지 않고 타히티라는 먼 곳으로 떠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그가 유럽에 계속 살았다면 훨씬 더 일찍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한다.

사실 사후에라도 이들의 위대함을 예술계에서 인정했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겠는가.

저자는 예술가의 성공을 저해하는 두 요소로 심리적인 것과 사회경제요인을 들었다.

조울증이나 알콜 중독, 불행한 결혼 생활 등등이 창의력을 저해할 것이고, 사회적 요인으로는 2차 대전으로 전쟁에 징집되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예술가들을 들 수 있다.

여러 예술가들을 받아들인 미국은 현대 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으나 정작 그 곳으로 이주한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고갈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짐작이 된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예술가를 숙련공과 구분한다.

간단히 말해 숙련공은 기술자이고 중산층의 가정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예술가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미술관의 벽면을 채우고 예술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20대 때부터 먼저 주변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동료들은 질투심과 경쟁심 때문에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을 수 있으나 어쨌든 재능이 뛰어남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게 된다.

이런 경쟁심이 분발하게 만들고 창의력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저자는 그룹을 만드는 단체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평론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들이 대가가 될 자질을 파악하면 이제는 컬렉터나 화상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된다.

창의력이 만발하는 이 시기를 대략 5~10년으로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중이 갈채를 보내는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생각보다 빨리 인정을 받는다는 것,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진짜 예술가는 결국에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

범인과 다른 천재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냥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만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천재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바로 위대한 예술의 본질인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92p

올더스 헉슬리는 "물론 대부분의 예술은 항상 부적당하거나 중요치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술적 재능은 극히 드문 현상이다"라고 썼다. 계속해서 헉슬리는 개인의 재능을 대신할 유일한 것은 훌륭한 예술적 전통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이것을 "살아 있는 서투른 예술가들에게 지시하는 훌륭한 죽은 예술가의 망령들"이라고 정의하였다.

 나는 헉슬리의 판단과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은 아주 보기 드문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척하고 모든 예술을 똑같이 유효한 것으로 취급하며 어떤 선택이든 간에 그것은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분명해지겠지만 나는 이러한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택의 과정이 냉정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대 미술품을 구입하거나 전시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고 심지어 그것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은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매우 선택적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들 직업의 초기 단계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들이 성공할 기회가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특별한 재능은 보통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고, 명성을 향한 그들의 진로는 내가 지적한 진행의 본보기를 따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발탁되기를 기다리며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 작업을 하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이 있다는 추측은 결코 신뢰할 수 없다. 위대한 예술은 그렇게 생겨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조각공원 macs RND ins. 뮤지엄건축 시리즈 9
서민우.서상우 지음 / 미세움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관은 흔히 알려져 있어도 조각공원에 대한 관심은 적어 모르던 차에, 흥미로운 주제가 나와 읽게 됐다.

그러나...

너무 내용이 소략되고 사진도 도저히 감상이 어려울 정도로 작아 실망스럽다.

기왕이면 좀더 큰 판형으로 더 성실하게 본문을 추가하면 어땠을까 싶다.

앞서 읽은 저자의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도 유명 조각공원들 이름 나열에 그친 것 같아 아쉽다.

표지에 나온 저 멋진 조각품은 미네아폴리스 조각공원에 있는 클랜스 올덴버그의 'Spoonbridge & Cherry' 라고 한다.

이런 새로운 작품들과 유명 조각 공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소득이다.

작년 일본 여행 때 별 생각없이 들렸던 하코네의 조각공원도 꽤 유명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또 이번 여름 휴가 때 우연히 지나가다 들르게 된 바우지엄 미술관도 나와 반가웠다.

확실히 가본 곳은 책에서 다시 만나면 좀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직까지 조각 자체만으로는 큰 감동이 쉽사리 안 느껴지지만, 자연과 어울어진 야외조각은 산책과 풍경의 의미로써 훨씬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조각공원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는데 한번쯤 방문해 보고 싶다.


<오류>

122p

힐쉬호른 조각공원 (Hirshhorn Museum & Sculpture Garden)

-> 힐쉬호른이라니, 허쉬혼 조각공원이다.

144p

마이트재단 조각공원 (Maeght Foundation Sculpture Garden)

-> 원어 표시가 안 되어 있으면 어딘지 모를 뻔 했다. 매그 재단이라고 번역하지 않나? 마이트 재단은 처음 들어본다.

157p

마크 디 슈베르(Mark di Suvero)

-> 마크 디 수베로라고 번역하지 않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실, 권력 그리고 불화 - 고려와 조선의 왕실분화 석학인문강좌 94
김정희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창출판사의 <석학인문강좌>는 내용이 알차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쉽게 쓰여 아주 좋아하는 총서인데, 이번 책은 중언부언이 너무 많아 아쉽다.

주제는 흥미롭다.

보통 왕실의 불화라고 하면 불교국가였던 고려만 떠올리기 쉬운데 숭유억불의 조선에서도 왕실 발원 불화가 많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어 관심이 간다.

그런데 자료의 부족 때문일까?

2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도 같은 내용이 매 챕터마다 반복된다.

하도 자주 나오니 왕실에서 발원한 불화들의 이름을 외울 정도가 됐다.

저자가 강연 원고를 책으로 내다 보니 압축에 실패한 것일까?

어쩌면 이렇게도 같은 내용들이 계속 반복되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만큼 남아 있는 불화가 적은 탓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하다.


왕실 불화의 특징은 역시 높은 수준에 있다고 하겠다.

왕실에서 아낌없이 지원하다 보니 심지어 문정왕후 때는 순금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왕실의 화원들이 참여하여 그리는 수준이 매우 높고 재료도 아낌없이 지원을 받아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것이다.

나라에서는 불교를 억압했으나 권력에서 소외된 왕실 여인이나 종친들의 입장에서는 마음 둘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로 가면 상궁들의 재력도 풍부해져 많은 불사를 일으킨다.

지밀상궁 같은 높은 지위의 궁녀들은 영의정과 같은 최고위급 관료에 함께 시주하여 불화를 남겼다.

왕은 직접 절을 창건하는 큰 역사를 하고 왕실 여성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불화를 희사했다.

특히 과부가 된 대비들이 불화를 많이 발주했다.

그 중에서 인종비 인성왕후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관음보살32응신도가 아주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불화가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 소장되어 안타깝다.

아무래도 불교의 위상이 떨어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오랫 동안 소장이 어려웠을 것 같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원당으로 지정한 용주사의 불화는 화승 상겸 등이 25인의 화사를 데리고 그렸다고 한다.

용주사 불화는 서양식 음영법 적용으로 유명한데 보통 김홍도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김홍도가 감동을 맡았다고 하고 직접 그린 이는 화승으로 본다.

후기로 갈수록 불화에도 서양식 음영법이 많이 적용되는 걸 보면 이미 서양화 기법이 많이 알려졌던 것 같다.

왕실의 불교 후원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오류>

7p, 157p

선조의 후궁 숙원 윤씨

-> 선조가 아니라 인종의 후궁이다.

36p

헌강왕 사망 후 왕비 권씨가 출가하여

-> 왕비는 의명부인이고, 권씨는 후궁이다.

42p

광해군비 장렬왕후(章烈王后, 1576~1623)가 광해군과 세자, 세자빈, 본인 및 작고한 친정부모~

-> 장렬왕후는 인조의 계비인데 한자가 다르다. 광해군의 배우자는 문성군부인이고 왕후로 추존된 적이 없는데 각주에 나온 논문에서도 장렬왕비로 나와 의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