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 또 하나의 임진왜란 기록, 오희문의 난중일기
오희문 지음, 신병주 해설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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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는 달리 지루하다.

그래도 다른 일기류에 비하면 현대어로 풀어 써 쉽게 잘 읽히고 저자인 오희문 역시 옛날 선비들의 전형적인 일기와는 좀 다르게 정감 표현도 곧잘 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루하다.

있는 그대로 풀어 쓰는 것보다는 이러한 고문서들이 갖는 의미를 해석해 주는 역사학자들의 글이 대중 교양서로서 더 적합할 것 같다.

각 장 말미에 쓰여진 짧은 글로는 해설이 너무 부족한 느낌이다.

보통 옛날 선비들의 일기는 오늘날처럼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밝히는 에세이라기 보다, 마치 하루의 일과를 기록한 일력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오희문의 일기는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재난 탓인지 혹은 저자의 다정다감한 성품 덕인지 일기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막내딸 숙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인상깊었다.

16세기는 아직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내리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원래 인간의 본성이 당연히 그러해서인가, 딸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지극하고 일기 곳곳에 드러난다.

전쟁 통에 병을 앓다 죽은 딸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졌을 것이다.

딸의 제사를 챙기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자신들이 죽고 나면 이 제사를 아무도 지내지 못하게 될 것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근엄한 조선 선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희문은 시경의 글귀를 인용해 자신의 딸을 "아름다운 막내딸"이라 칭한다.

주민등록증이 나온다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찍은 고3 때 내 증명사진을 아직도 지갑에 가지고 다니는 우리 아빠가 생각나 마음이 찡했다.

나는 막내딸은 아니지만 말이다.

확실히 조선 전기에는 처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오희문의 아버지도 처가에 눌러 앉아 자식들이 외할머니 손에 크게 된다.

오희문 역시 장가를 든 후 처남과 무려 37년을 함께 지냈다고 나온다.

여자들이 사회 생활을 못하는 대신에 사위를 들여 재산을 물려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병자호란 이후 지나치게 교조화 된 조선 사회의 모습이 안타깝다.

조선 전기만 해도 화폐 경제가 아닌 현물 교환 시스템이라 주변 사람들의 선물에 의존하는 모습이 나온다.

친척 중에 관인이 있으면 관아에서 나오는 물건들에 주위 사람들이 큰 도움을 받는다.

오늘날의 횡령이나 개인 착복과는 좀 다른 개념이었던 것 같다.

오희문은 지방으로 피난을 가서 친척이나 교우 관계에 있는 지방 수령들의 정기적인 도움을 받는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시장이 없기 때문에 선물의 형태로 주고 받는 일종의 물물교환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노비들에 대한 내용도 많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오희문은 성품이 잔인한 사람은 못 된 듯 하여 종들에게도 많은 정감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그 역시 상전은 분명했던 것이, 도망친 노비를 잡아다 때리고 광에 가두어 다음 날 관아로 넘기려는데 그날 밤에 죽고 만다.

얼마나 심하게 때렸으면 그 날 밤을 못 넘기고 죽어 버렸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인데도 멀쩡한 놈이 왜 갑자기 죽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냐는 글에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확실히 신분제의 전근대인의 사고방식은 요즘의 현대인과는 매우 달랐던 게 분명하다.

하긴 호랑이가 마을 사람과 가죽을 잡아가는 얘기도 자주 나오고 쥐덫을 놓자 무려 56마리의 쥐가 잡혔다는 글에 깜짝 놀랬다.

역자의 표현대로 요즘은 호랑이를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데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끔찍한 맹수였으니 현대인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매우 다를 수 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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