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재미난 이야기 역사책
정기문 지음 / 책과함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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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보는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하고 막상 받아보니 너무 크기가 작아 가벼운 역사 에피소드 나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정말 흥미진진하고 전근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저자의 전작 "역자학자 정기문의 식사"도 예상 외로 재밌게 읽었고, 이 책은 더 재밌다.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학자답게 그 사건들이 갖는 의의와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설명해 준다.

전근대인은 집단으로 존재했고 우리처럼 시각에 민감하지 않았으며 수명이 짧았고 무엇보다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부족했다.

지금 생각하면 중세의 마녀 재판이 황당하지만 왜 갑자기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휩쓸고 갔는지를 모르는 14세기 사람들로서는 무엇인가 원인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너무너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죄다 옮겨 적고 났더니 시간이 꽤 걸렸다.

다만 두가지 부분에 동의하지 못했다.

첫째는 남녀의 기계적 평등 부분이다.

저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억압되어 온 여성들의 편을 들어 그녀들이 남성에 비해 얼마나 훌륭한 자질을 가졌는지 강조하고 각 분야에 여성 비율이 높아지도록 할당제를 실시하자고까지 주장했다.

그렇지만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여성들이 특별히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언어 능력이 뛰어난 만큼 육체적으로는 남성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로 좀더 나아가면, 각자의 특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오히려 제약을 두는 게 합리적일 수도 있게 된다.

의사나 판검사를 여성 할당제로 뽑지 않듯 군인이나 경찰 등도 결국은 같은 조건에서 채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 체력적으로 부족하다면 특정 분야에서 특정 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초등 교사 역시 임용고시에 주로 여성들이 합격하면 여교사가 많아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사립 여학교를 다녀서였는지 중고교 때 여교사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사춘기 아이들이 주로 남교사에 의해 교육받는 건 별 문제가 없고 꼭 초등생은 남녀 교사가 함께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두번째는, 출애굽을 역사적 현실로 가정하고 글을 쓴 부분이다.

특정 종교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 되려면 보다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경:고고학인가 전설인가"를 읽은 후부터 나는 그 책의 저자 주장에 동의하여 최소설을 지지하게 됐고 출애굽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출애굽을 이집트 역사에 끼워 맞춘 부분은 전제가 틀렸으니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 외 부분들은 정말 재밌게 읽었고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제목이 너무 길어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 아쉽다.


<인상깊은 구절>

43p

'시각적 후진성'을 갖고 있었던 전근대인들은 거울을 보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한 초상화나 영정도 개성보다는 신분에 따른 전형적인 헝태로 그려지곤 했다. 12세기 말 어느 수녀원장이 남긴 수녀 60여 명의 초상화는 밑에 새겨진 이름을 보지 않고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과 표정이 똑같다. ...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를 세밀하게 살펴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 근대 초기인 16~17세기에도 화가는 원래 모습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은 대로, 혹은 기억나는 대로 초상화를 그리곤 했다. ... 전근대인들은 가족과 친족을 행동과 판단의 중요한 준거로 생각했다. 물론 이는 전근대인들의 삶이 친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80p

유대인들은 어차피 '지옥 불에 떨어질 존재'여서 고리대금이라는 또 하나의 죄를 보탠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고리대금이라는 말 자체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중세에는 아무리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더라도 고리대금이었다. 중세에는 돈을 빌려주는 일에 위험이 많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이자율이 낮기 어려웠다. 특히 정치가나 귀족들은 상황이 어려울 때 돈을 빌리고, 나중에 지위를 이용해서 돈을 갚지 않으려고 했다.

83p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후에 클뤼니 수도원장 피에르는 유대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사라센보다 수천 배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은 죄가 많은 불신자들을 우리 곂에 놔둔 채, 사라센과 싸우기 위해 인명과 돈을 그렇게도 잃어가면서 세상 끝까지 가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111p

그리스 로마의 부자들은 이렇게 공공 행사나 건축, 시민들을 위한 축제에 돈을 기부함으로써 자신들이 평범한 시민과 다른 존재임을 확인시켰고, 이를 통해 신분을 유지했다. 이는 동료의 질시를 막는 방법이기도 했다. 고대 국가에서는 국가의 공권력이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시민들의 미움을 샀다가는 언제 어떻게 해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 그런데 그리스나 로마의 부자들은 외부인에게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즉 그들은 시민권을 가진 자만을 자기와 같은 인간이라고 여겼으며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정복 전쟁을 벌여 외국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는 것을 정당하게 여겼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스나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의 시민이었기 때문에 부자들의 보살핌을 받았던 것이다.

114p

성경에는 병을 고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병자들이 병을 고치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단순히 온전한 육체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병을 고쳐야만 성전에 들어갈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당시의 믿음 때문이었다. 예수도 병은 죄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 가난과 자선을 예찬함으로써 예수는 가난한 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 로마 시대의 교회는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라 수많은 빈자와 장애인을 거느린 구호 집단이었다. 이 때문에 로마 시대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의 종교'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신론(기독교)이 갈수록 팽창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낯선 자에게 호의를 베풀고, 죽은 자의 무덤을 돌봐주고, 경건한 생활을 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도 구걸하러 다니지 않고 저 불경스러운 갈릴리인들(기독교도들)이 자기들 종파의 가난한 자들뿐 아니라 (다른 종파의)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우리들이 서로 돕지 않고 있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 말은 비시민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로마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율리아누스는 기독교가 이 점에서 자기들의 관습, 제도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 중세 기독교는 이렇듯 예수와 빈민들을 일치시키면서 빈민들에게 베푸는 자선이 단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원과 직결된 문제라고 가르쳤다. ... 12세기 이전에 지어진 성당들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아담은 추운 겨울에 속옷만 입고 맨발로, 언 땅에 삽질을 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반면 13세기 이후에 아담은 따뜻한 봄날에 좋은 옷을 입고 쟁기를 끌거나 포도밭을 경작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노동이 죗값을 치르는 참회의 수단에서 숭고한 행위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모든 기독교인은 노동을 해야 하고 그 노동을 하는 모든 직업은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 성직자, 놀고 먹는 지배자, 부자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정신에 따라 서양인들은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심성 변화가 농업과 수공업 발전을 가져왔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추동해냈을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너무너무 동의한다. 나 역시 재산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이야말로 소중한 것이고 직업이 곧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직업 대신 건물주 부모와 돈많은 남편감을 찾는 세태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161p

왜 아담은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그 '악행'에 동참했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이 하와가 자신을 버릴까 봐 두려워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즉 하와의 길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처벌을 받는 것보다, 하느님의 길을 가서 혼자가 되는 게 더 두려웠을 거라는 말이다.

165p

오웰은 2개월간 광부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그대로 표현하면서, 사회주의 지식인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자본가가 주도하는 현재의 문명을 전복하려 하면서도 노동자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며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이게 바로 강남 좌파 아닌가?) ... 이때 오웰은 절대 권력과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절절히 체험하고 (공산주의 사회 체제는 우리가 혐오하는 파시즘과 너무나 닮아 있다) ... 그는 지식인들이 사회주의를 이상으로 꿈꾸고 있지만, 현실사회주의 체제, 특히 중앙집권화된 경제체제가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부패한 권력이 되기 쉽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다.

201p

여기에는 티스로 대변되는 민중과, 재판관들로 대변되는 엘리트의 갈등과 대립이 나타나 있다. 원래 민중은 태곳적부터 여러 민간신앙을 갖고 있었다. 고대 말에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민중은 그런 신앙을 '기독교화'했다. 즉 자신들의 원래 신앙에 기독교의 색채를 입히고는 그것이 하느님이 허용한 신성한 관습이라고 주장했다. ...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인은 이 관습을 버리지 않고 조금 수정해서 유지했다. 그들은 음주를 약간 줄임으로써 그 관습을 하느님이 허락했다고 생각했다. ... 중세 지식인들은 이런 민간신앙을 크게 제어하지 않았지만,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신교 지도자들은 중세 가톨릭 내에 존재하는 이런 민간신앙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뿌리 뽑으려 했다. 가톨릭 지도자들도 신교의 이런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으며 중세 민간신앙 가운데 존재하는 '미신'을 철폐하려고 했다. 물론 근대 초에 벌어진 이 민간신앙과 엘리트 신앙의 전투에서 승자는 지배층이었다. 엘리트들은 민간신앙을 천박하고, 사악하며, 근거 없는 미신으로 규정해버렸다. 그리하여 민간신앙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색채를 띠게 되었다.

233p

중세에 책은 이렇게 귀하고 어렵게 얻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중세 책에 담겨 있는 화려한 그림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비싼 필기 재료에 고가의 채색비가 더해지고, 거기에 필사하는 사람들의 수고비가 더해졌다. 그 모든 것이 비쌌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성경 한 권의 값은 보통 크기의 장원에서 얻을 수 있는 1년 치 수입에 해당했다. 지금으로 설명하자면 작은 기업의 1년 치 수입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248p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온갖 나쁜 짓을 해가며 선한 사람을 괴롭히고, 억울하면 결투를 신청하라고 말한다.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는 이렇게 나쁜 제도를 인정했고, 결투로 인해 사람을 죽이더라도 죄로 처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신이 결투의 승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51p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존하던 사고방식은 17세기에 이르러 극복되기 시작한다. 17세기 서양에서는 천재들이 연달아 등장하여 우주를 새롭게 설명했다. 과학혁명은 과학기술상의 몇 가지 발명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갈릴레이와 뉴턴은 우주가 신의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구성되고 운동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람들은 비가 오거나 안 오는 현상이 단순한 자연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자연의 움직임에는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알아낼 수 있는 고유한 법칙이 있다.

(근본적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성리학자였다는 것과 매우 비교된다)

266p

사람 안에 '신적 존재'가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육체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이 신적 존재를 해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철저한 금욕주의를 주창했다. 인간은 신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므로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다시 천사, 혹은 천사보다 더 높은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사실 이것이 기독교 신자들이 원하는 바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최후의 날에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구원을 받으면 천사처럼 영적인 몸을 입게 되고, 하느님의 자식으로 인정받아 천사보다 더 높은 존재가 된다. 그런 날이 과연 올까?

272p

부르주아는 재산이 넉넉해서 하녀 여러 명을 두고 집안일을 시켰다. 그 덕분에 그들의 아내는 집안일은 물론 육아에서도 해방되었으며, 그 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따. 어떤 면에서 그들의 사치와 낭비는 남편들이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내를 화려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수록 자신들의 부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내에게 성적 매력이 넘치도록 최대한 미모를 가꿀 것을 요구했다.

279p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근대 초 서양인의 종교적 열정은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해졌다. 종교개혁을 전후해서 서양인들은 교리에 따르지 않는 삶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가했다. 16~17세기는 진정 '신앙의 시대'였다. 청교도혁명, 30년 전쟁 등을 생각해보면 이 시기 서양 사람들이 신앙 때문에 혁명을 일으키고 전쟁도 불사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와닿을 것이다.

299p

서양에서는 가부장제와 기독교가 함께 발달하면서, 동양에서는 유교가 생활 속에 침투하면서 여자의 삶이 더욱더 고통스러워졌다. 남자들은 바람을 피우고 사창가를 들락거려도 별 문제가 도지 않았지만, 여자는 강간을 당해도 사회적인 멸시를 면할 수 없었다.

329p

이렇게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전근대의 모든 사회는 자체적인 인구 조절 시스템을 갖춰야 했고 이 시스템에서 많이 이용된 방법이 유아 살해, 특히 여아 살해였다. 이렇듯 고대인들이 유아을 살해했던 것은 인구 조절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현대인의 관점으로 그들을 잔인하거나 무지한 사람들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유아 살해를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고대인들은 결혼할 때면 아이를 많이 낳기를 빌었고 고대의 통치자들은 끊임없이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장려했다. 이런 모순적인 일이 왜 일어났을까? 고대인들이 인구 과잉에 시달리는 한편으로 인구 부족에 대한 우려를 씻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사회는 현대의 가장 미개하고 못사는 나라보다도 죽음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 따라서 끊임없이 후손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고대사회는 심각한 인구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대인들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자손을 낳고 그중 가장 튼튼한 놈이 살아남는 자연의 법칙을 수행했던 것이다. 물론 고대인들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했던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와 필요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등 종교와 부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던 동양인들은 후손에게서 자손이 계속 이어진다고 믿었다. 즉 후손은 또 다른 자신이고 대를 잇는 것은 자신이 소멸하지 않고 영원이 사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서양인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339p

배나 체리를 훔쳤던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이었고, 그런 '사소한' 범죄 행위는 집단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었다. 그들은 같이 어울려서 사회가 금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즉 범죄나 일탈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들이 공동 운명체이며, 다른 누구보다도 친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청소년들은 간절히 친구를 원하고, 혹시나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친구의 관심을 얻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청소년기에 친구가 갖는 의미를 인정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하곤 한다. ... 어른들은 이런 청소년의 심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대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보다 자신들이 소중한 존재임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러나 가족의 정과 친구의 정은 다르다.

356p

전근대에는 시각의 비중이 근대보다 훨씬 작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문맹이었고, 영상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인은 때때로 시각을 경시하면서 시각을 잃은 것을 곧 신비한 능력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예언자나 주술자 가운데 시각 장애인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전근대에는 근대보다 청각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근대인은 책을 읽었지만 전근대인은 시장이나 마을 공터에서 떠돌이 이야기꾼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364p

세계의 주요 종교는 모두 고대에 만들어졌고, 고대인은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창시자, 계승자, 사제는 모두 남성이고, 여성을 종교 생활에서 종속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들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교회, 성당, 절에 가면 신자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여성들이 스스로 주요 종교를 찾아 자신을 비하하는 설교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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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33fr 2022-05-1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검색하는 책 리뷰에서 몇번 마주친 후, 책에 진심인 분인것 같고 어느새 marine님의 리뷰가 책 고르는 기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 남긴, 백여개가 넘는 리뷰를 골라 읽는것 또한 즐거움입니다^^

marine 2022-05-13 11:13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요즘은 먹고 사는데 바빠 책을 못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