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로 읽는 세계사 - 살아남기 위한 세계 왕실의 치열한 생존기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전경아 옮김 / 책밥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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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은 유럽 역사의 자잘한 부분들까지 참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왕실이 아직 존재하는 나라이니 아직까지 남아 있는 왕조 국가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기는 하다.

21세기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왕실이 왠 말인가 싶지만, 아마도 헐리우드 스타들을 동경하듯 대중들은 왕자와 공주님이라는 로맨스의 주인공들이 필요한 것 같다.

평등 좋아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에서 드라마 주인공들은 거의 재벌 2세들이고, 심지어 가상 왕실 드라마까지 만들어 유행시키고 있으니 인간의 속성에는 뭔가를 숭배하고 싶은 심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아이돌 팬덤 문화를 봐도 그렇다.

음악이 너무 좋다, 영화가 너무 멋지다, 이 정도면 될텐데 자발적으로 시녀 노릇을 하려고 든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정치인도 아이돌처럼 숭배하는 나라구나!

프랑스가 유럽을 좌지우지 하는 강국이 된 것은 2천 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보병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된 점은 소득이다.

사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영토와 인구수를 자랑하는 농업 대국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이후 주변 각국의 공격을 물리치고 나폴레옹이 등장해 유럽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떤가?

프랑스보다 훨씬 더 큰 국토와 인구수를 가졌지만 변방에 위치한 탓에 일류 국가가 되지 못한 것인가?

다양한 민족과 광활한 영토를 다스려야 하는 러시아 제국의 특성상 전제 군주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마치 중국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민자들이 모여 민주정을 수립하고 세계 최고의 선두 국가가 된 미국이 놀랍다.


<인상깊은 구절>

93p

국왕 루이 16세가 처형당하자 주변 왕국들은 혁명이 자국에도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프랑스에 군사 개입을 실행하려 했다. 혁명 후, 영국과 같은 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의 개입이 없었으나 대륙에 있는 프랑스는 사정이 달랐다.

 프랑스는 자국에 개입하려는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준대를 물리치기 위해 강력한 육군이 필요했다. 이 육군 병사를 구성한 것이 하층계급인 민중이었다.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웠던 그들에게는 강한 정치적 발언권이 있어서 누구도 그들을 얕볼 수 없었다. 혁명 후, 영국의 크롬웰은 가차 없이 하층계급을 탄압했으나 프랑스에서는 하층계급에 대한 탄압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나라의 침략 위기에 노출된 프랑스에서는 하층계급 병사들이야말로 혁명 국가의 첫 번째 수호자였으므로 그들의 권리와 주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병사들에게 추대되어 단숨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나폴레옹 시대인 19세기 초에는 육군 병사의 수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는 병사의 수보다 장비와 병기의 질이 승패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강했던 이유는 인구수에 비례하여 징병 가능한 병력의 수가 다른 나라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프랑스의 강대한 군사력을 뒷받침한 것이 하층계급인 민중이었다.

131p

"개인 사이에는 법률과 계약서와 협정이 신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권력자 사이에 신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

166p

러시아의 차리즘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러시아는 슬라브계, 아시아계, 노르만계 등이 모인 다민족 국가였다. 근대 이후 러시아의 영토가 확대되면서 민족의 다양성도 늘었다.

 나아가 그들은 부족사회를 형성했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유럽의 상업국가처럼 법과 사회의 규범에 따른다기보다는 오히려 힘의 강약이 시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부족 세력이 패권을 다투며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통치자인 러시아 황제는 절대적인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반 4세가 잔악무도한 황제이긴 했지만 러시아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런 통솔력 뛰어난 카리스마의 소유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황제가 조금이라도 유약한 모습을 보이면 부족 세력이 커지고 국토가 분단되어 전란에 휘말리게 된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강한 황제가 필요했다.

 이러한 사회풍토가 러시아만의 독특한 차리즘을 낳았고, 그것이 오늘날 러시아 정치의 DNA로 계승된 것이다.

168p

표트르 1세는 이러한 주변 지역의 코사크들을 제압하고 이들을 러시아 제국의 군대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북방 전쟁을 일으켜 그들에게 활약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북방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러시아에 산재하던 코사크 세력이 모여 러시아 제국하에 결속했기 때문이다. 1721년, 승리한 러시아는 발트해로 진출하여 발트해 안에 새로운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다.

204p

약 270년간 계속된 에도의 쇼군이 사쓰마, 조슈라는 변경의 다이묘에 굴복하는 치욕을 맛봤다면 막부 세력은 사력을 다해 혁명군과 싸웠을 것이다. 그러면 정권을 쉽게 건네받지 못하고 피로 피를 씻는 끔찍한 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컸다.

 막부는 어디까지나 대정봉환으로 천황의 뜻에 순순히 따른 것이다. 사람들에게 천황이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진 덕분에 일본은 내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231p

부탄 국왕은 GDP를 중시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GNH(국민총행복지수)를 기준으로 정신의 풍요로움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GDP가 매우 낮다. 그래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GNH 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지표를 만들어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한 것이다.

 2011년,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좌파 세력은 GNH 를 열심히 추켜세웠다.

 하지만 부탄 왕국의 수도 팀푸에는 약물에 의존하는 청년과 알콜 중독자로 넘쳐난다.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은 낮아지기는커녕 상승일로에 있다. 인구 85만 명이 안 되는 부탄에서 정부가 GNH만 강조하고 어떤 조취도 취하지 않고 있으니 상황은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다.

279p

고대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국을 형성했다. 특히 아프리카 동부는 이집트와 아라비아반도 같은 외부 세력에 둘러싸여 있어 이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강대한 왕권이 필요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왕국이 존립했다. 하지만 외부 세력이 없어 집권적 왕국이 필요 없었던 서,중남부 아프리카에는 여러 부족이 난립했다

 그러다가 8세기 이후, 아프리카 전역에서 이슬람 상인과의 교역이 활발해지자 교환물자로 쓰이던 황금을 관리하기 위해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게 되었다. 8세기 니제르강 유역에 탄생한 가나 왕국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오류>

70p

부활한 서로마 제국은 오토 1세가 죽은 후, 동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으로 나뉘는데

-> 오토 1세가 아니라 카를 대제의 아들 루트비히 1세 사후 843년 베르됭 조약에서 셋으로 나뉜다.

105p

부부가 영국 왕에 공동으로 추대된 이유는 영국 왕실과 별다른 연고가 없는 빌럼 3세와 달리 아내 메리가 스튜어트 왕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 메리가 제임스 2세의 딸이기도 하지만, 빌럼 3세 역시 어머니가 찰스 1세의 딸로, 제임스 2세의 외조카이다.

이 둘은 사촌간의 결합인 셈이다.

115p

그림 9-3

마리 테레즈는 펠리페 4세와, 앙리 4세의 딸 이사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카를로스 2세는 어머니가 다르다.

즉 둘은 이복남매이다.

169p

엘리자베타 여제는 예카테리나 2세의 시백모로

-> 엘리자베타의 언니 안나 페트로브나의 아들인 표트르 3세의 배우자가 예카테리나 2세이므로 시백모가 아니라 시이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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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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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에 나온 책인데 아마도 2002 월드컵 열풍 때문에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에 관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무나 좋아하는 주경철 교수의 책이라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너무 옛날에 출간되서인지 시의성에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본 파리 역사는 본인이 유학을 한 곳이라 그런지 훨씬 생동감 있고 재밌었는데 반해 네덜란드 편은 수박 겉핥기 느낌이 든다.

네덜란드 사회에 관한 1부는 솔직히 너무 뻔했고 대신 역사를 다룬 2부는 역시 전공 분야라 그런지 상세하고 분석적이라 도움이 많이 됐다.

16세기의 독립운동과 17세기 시민사회의 형성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18세기부터 진행된 인도네시아와 아메리카 식민 지배의 역사도 같이 나와 유익했다.

네덜란드라고 하면 하멜 표류기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중국으로 파견된 마태오 리치 등의 선교사들이 학문이나 기술적으로 우수한 인력들이라 황실에 고용된 반면, 표류된 선원들은 특별한 재주가 없어 국왕 행차시 의장대 역할을 했다고 하니 재밌다.

지금도 평균 신장이 180을 넘는 인종이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주 우람해 보였을 것 같다.

하멜 표류기가 출간된 후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조선은 너무 가난해 특별히 교역할 것이 없다는 평이 실렸다고 한다.

확실히 군자가 다스리는 나라라 청빈하긴 했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초기 자본주의 시절 노동자들이 14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려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았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만 판단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정작 도시에는 먹고 살려고 농촌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실제로도 시골에서 보다 삶의 질도 나아졌다고 하니 표면적인 현상만 가지고 비판할 일은 아닌듯 싶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하는 오랜 독립전쟁 과정을 보면서 독립은 외교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피를 수반하는 강력하고 끈질긴 투쟁 끝에 쟁취하는 엄청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영세중립국이자 알프스 산속의 평화로운 나라일 것 같은 스위스가 가장 용맹한 용병들의 나라였다는 게 생각나는 대목이다.

네덜란드 복지정책의 많은 부분이 가스 발견에 의한 소득 상승에 있음도 슬쩍 언급한다.

지하자원이 없는 우리와는 다른 경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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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전쟁
로렌스 H. 킬리 지음, 김성남 옮김 / 수막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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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계속 읽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

지루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이 책도 아주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읽으려고 했던 책인데 두껍기도 하고 지루해 보여서 계속 미루다가 드디어 읽었는데 매우 만족한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과연 원시 시대가 낙원이었을까?

아르카디아는 환상이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역시나 이 책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계급이 없던 원시시대가 사실은 국가시대 보다 훨씬 잔혹했다고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밝히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을 제도와 협의를 통해 제어하지 못하던 무문자 시대, 비언어적인 시대였으니 갈등이 생기면 쉽게 폭력으로 번졌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 시대 법정 소송에 관한 책을 읽으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쉽게 폭력이 동원되고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 일어나면 살상력 때문에 현대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 같지만 전체 인구 집단의 비율로 보면 오히려 원시시대가 더 높았다고 한다.

특히 원시사회는 인구 집단의 규모가 작아 전사들이 죽고 여자들이 포로로 잡혀 가면 금방 와해되고 만다.

인구 규모가 큰 현대 사회는 아무리 큰 전쟁이 일어나도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원시사회는 말 그대로 사회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원자폭탄이라는 끔찍한 참살 이후에도 다시 일본이 재기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원시사회는 인구 부양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포로들을 잡아 놓지 않고 즉시 죽이는 쪽을 택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여러 원시 사회들을 연구한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원시사회는 전투력 자체만으로는 딱히 현대 국가에 비해 떨어지지 않으나 전쟁이라는 전체 규모에서 보면 인구수와 보급에서 딸리기 때문에 졌다고 한다.

군사들을 계속 보급해 주고 식량을 댈 수 있어야 장기전이 가능한데 원시사회는 총력전이 불가능한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말핬다.

그러고 보면 국력이 곧 전투력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매우 호전적인 일본이나 독일이 결국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에 진 것을 보면 말이다.

낭만주의 원시인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이상형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용맹한 전사도 전쟁 자체를 즐기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로운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어떻게 잘 협력하여 갈등을 풀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국제기구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고 총격 대신 외교술의 발달을 통해 매우 어려운 균형인 평화를 지속시키는 것이 인간 발전의 중요한 문제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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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기독교 석학인문강좌 54
김경현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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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좋은 책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이 책도 너무너무 재밌고 유익하다.

역사란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라 잘 쓰여진 역사책은 마치 한 권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3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밀라노 칙령의 배경과 비잔티움 제국의 성립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알기 쉽게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번역서가 아니라서 더 쉽게 다가오는 듯하다.

저자는 내용이 너무 자세하여 교양서로 부적합 할까 봐 우려하지만,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잘 쓰여 있다.

좋은 책은 내용이나 형식과는 상관없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 같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라고 하면 기독교를 공인하고 십자가의 환영을 보고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개종자가 아닌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힌 십자가를 찾아내 교회를 지어 성녀로까지 추앙된 분이다.

꼭 기독교적 측면이 아니라 해도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4황제 체제의 난립상을 해결한 중흥 군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저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회심한 것이 아니라 매우 점진적으로 바뀌어 갔다고 설명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역사책에 나오는 밀라노 칙령이 당시에는 없었고 16세기 이후부터 등장했다는 것이다.

마치 교황에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영토를 기증했다는 문서가 가짜였음이 훗날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갈레리아누스 황제 때 내려진 기독교 관용령을 밀라노 회담 때 동방 황제였던 리키니우스와 함께 다시 지키기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지러진 제국을 다시 그러모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천도까지 한 이 강력한 권력 의지를 가진 황제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만으로 기독교를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기독교는 제국 내에 널리 퍼져 있고 동방 황제와의 경쟁 속에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도들을 포섭하기 위해 전대에 있었던 관용령의 시행을 재확인했을 뿐이라는 게 진실이라고 한다.

오히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태양신을 숭배했는데 313년 이후에 발행된 주화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고대의 여러 잡다한 신들이 점점 하나의 최고 신, 즉 일자론으로 수렴되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가장 상위의 높은 신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유일신이 좀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양신도 그러한 일자론의 표현인 셈이고 예수 탄생일이 태양신 축제에 맞춰진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태양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바뀐 셈이다.

권력 의지가 강했던 콘스탄티누스는 경쟁자들을 다 처단한 후, 이복아들과 아내마저 반역 혐의로 죽이고 말았는데 이런 강력한 왕권의 지지를 위해 유세비우스의 황제교황주의를 선호했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론이 확립되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아리우스파는 쫓겨 나지만, 마치 호국불교처럼 황제를 신앙의 최고 지도자로 여기는 유세비우스의 정치신학을 받아들인다.

그가 정말로 추구했던 것은 기독교적 신앙이 아니라 제국의 통합, 안정화, 절대 권력이었던 셈이다.


마치 한 권의 소설을 읽듯 흡인력 있는 문장에 빨려 들어 단번에 읽었다.

역사는 정말 너무너무 재밌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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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2
김호동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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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동 교수의 책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정말 글을 잘 쓰시고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사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소설책도 아니고 역사책인데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나,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좋은 책은 재밌는 이야기책이 아니라 해도 독자에게 즐거움과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24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도 몽골 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핵심만 짚어서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전에는 한국에서 쓰여진 역사책은 그저 연대기 나열에 불과하고, 사회 체제와 구조를 분석하는 깊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좋은 책을 접하지 못해서 생긴 편견이었던 모양이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이라고 하면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부족 단위로 떠돌아 다니다가, 흉노나 몽골처럼 일시적으로 군사력이 강해질 때 흥기해서 뻗어나가다가 곧 농경국가에게 정복당하고 사라져 버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고대의 흉노가 한나라를 압박할 정도로 큰 나라를 이루었지만 결국은 초원을 떠돌다 소멸된 것처럼 유목민은 정주민과 달리 축적된 문화나 국가를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은 유목민에 대한 이런 편견을 바로잡아 주고 있다.

농경과 유목은 인류 생산양식의 양대 축으로, 농경민이 곡식을 생산하듯 유목민은 고기를 통해 삶을 영위해 갔다.

얼마 전에 읽은 알타이 고분에 관한 책에서도 고기만 먹었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발굴된 부장품을 보면 실제로는 곡식이 주식이었고 변경지대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도 여러 사치품과 일상용품, 곡식 등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주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수요를 충족시켰다.

중국이 자신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조공이라는 형식을 통해 무역을 했던 반면, 유목국가들은 경제적 목적으로 교역을 원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좀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교역의 목적이 전혀 다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 학자가 쓴 영락제 평전에서도, 정화의 원정이 서양인의 대항해처럼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 순전히 조공 국가를 넓혀 천명을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정화의 원정은 돈이 매우 많이 드는 비경제적인 활동이었던지라 영락제 사후 중지되고 만다.

조공 무역이 중국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없고 오히려 권위 과시를 위해 많은 돈이 들어 조선 사신들의 조공도 횟수 제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였다.

중국은 너무나 큰 나라였고 당시로서는 경제력이 최상위였기 때문에 타국과의 교역을 통해 특별히 얻을 게 없었으므로 유럽이나 유목민들처럼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으로는 굳이 교역을 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역시 필요가 발명을 만드는 것인가?

유럽이 배를 타고 바다로 뻗어 나간 반면, 유목민은 내륙에서 실크로드로 대표되는 교역로를 확대하였으나 청나라와 러시아라는 거대 제국이 생기면서 결국은 소멸되고 만다.

반대로 전통적인 중국 왕조들은 바다보다는 내륙의 방어와 확장에 집중하여 해외무역을 포기하는 바람에 결론적으로 유럽에 밀리게 된다.

중국의 항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목표가 달랐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는 서양 위주의 세계화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이 세계화의 첫 발을 내딛도록 자극한 것이 바로 몽골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부분은 동의하기가 좀 어려웠다.

몽골이 세계제국을 이루면서 서양과 중동, 중국 등을 잇는 거대한 교역망이 형성되고 세계사적인 관점이 확립되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세계지도 등이 작성되어 비로소 서양이 대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저자는 몽골 제국의 입장에서 보다 보니 그 영향력을 크게 평가하는 느낌이다.

현재의 중국이 결국은 청조의 영토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또 한족만의 국가아 아니라 여러 민족들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전통 중국이 유목민들을 일방적으로 흡수했다고만 볼 수 없다는 관점이 독특하다.

침투왕조나 정복왕조라는 표현도 그런 생각의 발로일 것이다.

그동안은 너무 중국적인 관점에서, 한족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의 말마따나 특히 몽골사는 너무나 많은 나라들의 언어로 쓰여있기 때문에 학자들 간에도 정확한 해석이 어려울 것 같고, 한국의 경우는 더더욱 중국 입장에서만 유목민들을 평가하게 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짧은 분량인데도 유목민의 역사와 세계사적 의의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고 무엇보다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서술이 가독성을 높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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