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도시 - 서울의 풍경과 권위의 연출
이기봉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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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는 저자의 주장이 도식적으로 느껴져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이 됐던 책이다.

왜 경복궁이 한눈에 확 들어오지 않고 넓은 주작대로가 없었는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하늘-산-궁궐 이런 3단 풍경이라는데 공감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시 모든 책은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훨씬 좋고,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소득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뒤로 갈수록 흥미로워지고 왜 한국의 전통 건축물들이 서양이나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낮고 아담한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이해하게 됐다.

저자의 주장이 정말로 확실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독자로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바로 풍수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국시대만 해도 한반도에 높은 탑들이 있었다.

단순히 건축 실력이 떨어져 높은 건물을 안 지은 게 아니라 풍수라는 이념에 입각해 산을 전체적인 풍경의 하나로 인식하고 거기에 맞게 건물을 낮게 지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야트막한 야산과 눈높이에 맞는 단층의 건축물들이 다 이유가 있어 그렇게 지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느낌이다.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풍수지리설을 인용한 게 그때부터 하나의 이념으로 한반도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묘청의 서경천도설이나 조선 건국 후 무학이 한양을 수도 잡은 것도 다 그런 이유인가 보다.

단순히 정자나 탑, 궁궐 같은 건축물만 봐서는 안 되고 주변의 자연 풍경을 함께 봐야 비로소 한민족의 미의식이 느껴지는데 건축물 하나만 문화재로 지정하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그래서 요즘은 명승이른 이름으로 주변 환경까지 아울러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모양이다.

한양의 성벽이 낮은 것에 대한 설명도 인상깊게 읽었다.

한양은 무려 18km 나 되는 넓은 둘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적이 침입하면 제대로 방어를 할 수가 없다.

또 성벽이 낮고 해자가 없어 방어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바로 피난를 떠났고 개성 역시 방어용 성곽이 아니라서 몽골이나 홍건적의 침입 때 임금은 수도를 버리고 몽진을 떠났다.

한마디로 한양이나 개성은 풍수에 맞춰 지은 수도라 북경의 산해관이나 일본의 오사카성 같은 자체 방어가 불가능했던 셈이다.

나도 이 점이 늘 신기했었다.

서울은 굉장히 큰 도시인데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다 성벽으로 두를 수 있을까? 

결국 관념적인 성벽이었을 뿐 실제 적에게는 무력했던 셈이다.

그만큼 한반도는 고려 시대 이후 중국과의 관계만 잘 맺으면 외적의 침입에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적이 쳐들어 오면 식량을 불태우고 산성으로 들어가 장기 항전하는 식으로 대항했다.

몽골의 침입에 강화도로 들어간 고려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간 조선이 그런 예다.

서구와 대립되는 우리만의 자주성을 내세울 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이해하고 왜 특수한 형식으로 발전했는지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한국의 풍수지리설이 특별히 자연친화적이고 위대해서가 아니라 좋은 공간에 살려고 하는 인간의 욕구가 한반도에서는 왜 풍수라는 이념에 맞춰 발전했는지를 고찰하는 게 정말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오류>

101p

원래는 동로마제국의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1653년 오스만제국에게 정복당한 후 이슬람사원으로 기능했던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

-> 1453년에 점령당했다.

272p

불로문을 나와 다시 북쪽으로 가면 관람지와 관덕정이 나타난다.

->관덕정이 아니라 관람정이다. 관덕정은 다른 곳이다.

275p

사진 속의 두번째 정자는 청의정이 아니다. 청의정은 초가 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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