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창조론의 자리는 있는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8 Vol.12 스켑틱 SKEPTIC 12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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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는 정말 나같은 사람을 위해 나오는 책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회의주의자임이 분명하다.

나 스스로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에 따른 갈등도 없는데, 말하자면 확신범인데 왜 자꾸 이런 책을 읽는 것인지 생각해 봤다.

기독교에 대한 문화적 관심도 있지만 (마치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 궁금하듯) 무엇보다 근본주의 기독교인인 엄마 때문인 것 같다.

엄마는 대학교 2학년 때 시집와, 42년 교직 생활을 하시면서 학생운동 하느라 교도소 수감되어 있는 아빠를 뒷바라지 하며 정말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

지금도 직장생활 하는 딸을 위해 반찬을 보내시고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라도 광주에서 인천까지 달려와 아이들을 봐 주신다.

시부모님도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고 실직하고 이혼한 시동생을 위해 조카까지 맡아 주기도 하셨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 아무런 불평이 없고 위암도 잘 극복하시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신다.

내가 보기에는 인격적으로 정말 훌륭하신 분인데 단 한가지, 교회 문제로 너무 괴롭다.

엄마는 가족 모두를 구원받게 하시는 게 삶의 목표인 분이시다.

신앙이야말로 누구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선택할 수 없는 신념의 문제이자 자유의지인데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압적으로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

우리 가정의 문제는 오직 이것 하나, 엄마의 강렬한 선교 의지이다.

평범한 기독교도 싫은데 이 교회는 성경을 정말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 교리를 고집하기 때문에 더 받아들기기가 힘들다.

엄마의 강권에 못이겨 몇 번 나갔던 부흥회에서 나사 연구원이라는 사람이 강연자로 나서서, 여호수아가 팔을 들어 잠깐 태양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는 기록이 천문학적으로 입증이 됐다는 식의 강연을 듣고 도저히 더 나갈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그 연구원이라는 경력도 진짜인지 의심이 됐는데 오늘 읽은 이 책에 따르면 과학자들도 교회 앞에만 가면 이성의 문을 닫고 맹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얻고 힘든 세상 살아가면서 신에게 의지하는 정도의 평범한 교회라면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 나가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설교 시간마다 성경은 과학이다, 아라랏트 산에 노아의 방주 조각이 남아 있다, 진화론은 잘못된 이론이다를 주장하는 이런 신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런 엄마의 강요에 맞서기 위해 나는 계속 무신론에 대한 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셋으로 나눴다.

첫째는 도킨스 식의 제거론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신이 그저 상상력에 불과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도 종교에서 과학적 진실을 없애 버리는 제거론자이다.

적어도 생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종교와 과학이 양립하기 어렵다고 느낄 것 같다.

나 역시 이 쪽인데, 급진적인 주장인 만큼 주변의 공감을 얻기도 힘든 부분이 있다.

두번째는 분리론이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이런 쪽이다.

예술과 과학이 서로 다르듯 종교를 예술과 같은 맥락으로 보기 때문에 서로 갈등할 일이 없다.

일반적인 기독교나 천주교가 이런 스텐스를 취하는 것 같다.

과학은 과학자의 영역으로, 영적인 부분은 종교가, 이 정도의 분리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회피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조화론이 있다.

이 부분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간다.

창조의 원리에서 형이상학적 요소를 제거하고 인격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우주 원리라고 할까?

'동일한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방식'이라고 설명한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믿었던 우주 원리로서의 신, 理神論 의 개념일까?

진화론이라는 법칙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주체를 창조주로 설정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인간사에 세세하게 관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인격신이 아니다.

여전히 종교는 인간의 삶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중을 교육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왜냐면 과학은 실재하는 현실 세계를 다루고 물리적 우주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해결책도 거기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인상깊은 구절>

55p

과학기술은 "미래의 먹거리"나 "신성장 동력"이기 이전에 특별한 유형의 지적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과학적 세계관은 합리적 추론과 객관적 증거를 집요하게 강조하는 지적 스타일이다. 겉으로는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 강국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이런 지적 전통과 문화를 향유하는 시민들이 많지 않다는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뿌리가 약한 국가에 속한다.

88p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믿을 권리가 있지만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는 누구든 들을 용의가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아는 최고의 지식을 가르칠 권리가 있다. 목사가 우리 과에 찾아와서 공짜로 성경책을 나눠줄 권리가 있듯이 말이다. 종교 근본주의는 공정한 승부를 벌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그들은 말 그대로 당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그 목표는 다름 아닌 과학과 합리주의에 대한 정면공격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경향을 과소평가하고 그것을 흔들리는 추처럼 취급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추가 되돌아올 즈음이면 우리는 갈릴레오나 다윈에게서 물려받은 땅을 굳건히 지킬 경우에 비해 훨씬 나쁜 세상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흙에서 개량된 것보다는 원숭이에서 개량된 것이 낫지 않겠는가?"

92p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열린 사고를 하지만 창조론자들은 성경의 권위에 집착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과학은 엘리트 집단의 제도로서, 과학 옹호론자들의 태도 또한 때로는 권위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창조론자들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해 상식에 호소하며 일상적인 종교문화에 걸맞은 일종의 실용주의 과학을 구상한다.

 오늘날 창조론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과 같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과학적 근거를 찾는 대신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방어한다. 창조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목격하는 생명체들 또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화론을 통해 생명의 탄생을 훨씬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음깨달았다. 

 우리가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창조론자들이 과학을 실천하지 않는다거나 특수창조설이 평평한 지구처럼 실패한 이론이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창조론이 끔찍한 실패로도 취급될 수 없는 반증불가능한 부당한 가설이므로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창조론자들은 신과 악마의 존재를 말하는데, 과학에서 초자연적인 설명은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97p

진화론은 우리가 목격하는 불완정성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기 시작했고 창조론의 설명을 대체했다. 적응력이 뛰어나고 명확하게 분류되는 생명의 형태들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후손이라는 증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증거에 부합하도록 창조론을 수정할 수도 있겠지만, 진화론과 비교한다면 일련의 변명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창조론과 같은 광범위한 이론이 무너진 이유는 일부 괴상한 '데이터'가 연역적 결론들과 상충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창조론이 틀렸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물체가 고유의 자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주장이 뉴턴 물리학에서 더 이상 논리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신성한 목적이 없다고 가정해야 생물학적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창조론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과학이 아님을 깨달았다. 과학은 자연주의적 설명만 허용하므로 성숙한 과학은 창조와 같은 개념들을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136p

과학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새로운 이론이나 가상적 존재가 단지 유용하다는 이유 때문에 (당대의 과학자들이 그 물리적 실체를 의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진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면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태양계 모델도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참이라서가 아니라 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수학적으로 더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용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원자핵, 전자, 그리고 광자도 처음에는 유용하긴 하나 물리적 실체는 없는 개념으로 생각되었다. 

 물론 모든 이론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며, 가상적 존재가 모두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지지도 않는다. 실험(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실제적 응용)에 의해서 새로운 이론의 유용성이 입증되면 이론에 내포된 개념들도 물리적 실재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과학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과학자들이 이론의 관측 가능한 예측을 생각해내고 그에 따른 적절한 실험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만일 예측이 실패하면 이론은 폐기된다. 하지만 실험이 성공하면 이론은 과학적 실재의 일부가 되고, 한때는 역설적으로 보였던 개념들에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익숙해지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반해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론은 과학적 생산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한 다른 차원이 없이도 사실을 더 잘 설명하는 경쟁 이론이 창안될 수도 있다)

196p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증명의 부담은 이 이야기가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측이 지고 있다. 아틀란티스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저 아틀란티스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플라톤이 유일한 근거라는 점만 지적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고대 작가가 기록한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모두 플라톤에서 인용했으며 모든 인용 문헌도 플라톤으로 소급된다)

226p

핸콕은 과학자들이 맹목적으로 한 가지 신념만 고집한 나머지 눈앞에 닥친 재앙을 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솔직하지 못한 고백이다. 필자는 현장의 지질학자로서,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지질학자들이 재앙의 중요성을 간과한 적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과학계는 대재앙에 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덕분에 월터와 루이스 앨버레즈는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지질학계로 하여금 공룡이 혜성 충돌로 멸종했다는 이론을 수용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핸콕은 정상적인 과학적 회의주의에 부딪힐 때마다 음모론을 흘린다. 이는 믿기 힘든 주장에 가해지는 과학적 비판을 피하려는 핸콕의 핑계일 뿐이며, 자신을 소위 거대하며 불가항력인 동일과정설에 부딪힌 소수자로 위장하려는 행위다.

230p

나는 저명한 화산 용암지대 홍수 전문가인 매사추세츠대학교의 아이작 라슨에게 영거 드라이아스기 충돌 가설과 연관시킬 수 있는 폭우가 내렸을 가능성이 있는지, 핸콕이 제기한 음모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라슨은 완곡하게 돌려 말하지 않았다. "대재앙을 일으킬 만한 단 한 번의 대홍수는 없었으며 홍수가 여러 번 일어났다는 가설에 과학계는 합의했다. 음모론에 관해서는, 과학계는 신빙성 있는 자료로 뒷받침하는 새로운 가설에 항상 열려 있으며, 결정적인 경험적 증거나 이론적 근거가 부족한 가설은 지지를 받기 힘들다고 말하겠다. 과학자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크므로, 이런 사람들 수천 명이 음모론에 얽혀 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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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신비로운 성과학 이야기
로버트 마틴 지음, 김홍표 옮김 / 궁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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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생물학 책이다.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직업에서 알 수 있듯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화와 인간의 생식, 양육, 피임 등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생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인데도 정말 오랜만에 접하게 되서 새롭다.

단순히 인간의 생식 과정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장류의 진화라는 넓은 관점에서 설명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인간의 발생을 실험실에서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신 우리의 유인원 친척들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방식으로 추정하고 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내용들

1) 인간의 두뇌는 다 자라면 출생시의 네 배가 된다.

다른 유인원들이 두 배가 되는 것에 비해 훨씬 커지는 셈이다.

그래서 다른 포유류들은 낳자마자 걷는 조숙성 새끼인 반면 인간은 생존이 어려운 미숙성 신생아로 태어난다.

9개월 간 뱃속에 있다가 출생 후 1년 동안 두뇌를 키우는데 온 에너지를 다 쏟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임신 기간이 21개월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숫구멍이 돌 때까지 열려 있는 것도 두뇌가 더 자라기 위해서이고, 산도 통과를 위해 자궁에서 최대한으로 머리가 커진 후 극적인 출생 과정을 거쳐 1년 여 동안 열심히 두뇌 성장에 투자한다.

그 후에 비로소 젖도 떼고 걷기도 한다는 것이다.

직립보행으로 골반이 좁아졌고, 머리도 크기 때문에 태아는 다른 영장류와 달리 두 번의 회전을 통해 뒤를 보고 태어난다.

넓은 어깨도 출산시 위험 요소가 된다.

큰 두뇌가 이렇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2) 보통 생리주기는 생리 시작 후 여포가 자라는 여포기 2주와, 배란이 일어난 후 임신이 안 되면 황체가 퇴화하는 황체기 2주로 나뉘는데 가임 기간은 이 주기의 중간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러운 피임법은 바로 이 배란일 앞뒤를 피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생리주기 전 기간에 걸쳐 임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공수정 한 정자는 무려 10일도 생존할 수 있고 실제 배란도 이렇게 딱 맞춰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를 이용한 피임법은 실제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셈이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배란일을 피하려다 보면 오랫동안 남아 있던 기능이 떨어지는 정자가 수정되어 건강하지 않은 배아가 발생할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날을 찾을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교조주의적인 성리학 때문에 금기일이 늘어나 왕의 생산력이 떨어졌다는 책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가장 효과적인 피임법으로 마지막 장에서 경구용 피임약을 추천한다.

놀랍게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피임법은 정관수술이나 난관수술이라고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자궁내 장치나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경구용 피임약 보다는 물리적인 장치인 콘돔이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피임법 같다.

실패율이 3% 정도라는데 매일 잊어버리지 않고 약을 꼬박꼬박 먹는 것이나 수술 등에 비하면 용인할 만한 수치 같다.

가톨릭 등의 종교단체에서는 인위적인 피임을 반대한다고 하는데, 고작 성가대 조직을 위해 19세기까지 거세를 용인했던 조직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일갈이 시원하다.


3) 대부분의 내용은 중립적인 반면 모유수유 이점과 분유수유 문제점에 대한 강력한 주장은 전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모유수유의 장점은 널리 알려져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유수유가 어려운 환경에서 분유수유를 선택할 경우 과연 책에 나온 대로 온갖 문제점에 노출되는지는 의문이다.

하는 게 좋다와, 안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좀 다른 개념 같다.

나 역시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었던지라 첫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려고 유방 마사지까지 받으러 다녔지만 결국 실패했다.

둘째는 아예 포기하고 처음부터 분유로 키웠다.

젖이 안 나오는 어쩔 수 없는 경우들이 있고 무엇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유 수유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는 것은 확실히 감염 위험이 크지만 단지 분유를 먹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모유수를 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을까?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다, 하는 식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모유든 분유든 젖병에 넣어서 먹이는 행위는 애착 형성에 문제가 된다는 지적에는 전혀 동의하기가 어렵다.

주양육자의 안정된 보살핌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 아닐까?


진화적인 측면에서 임신과 양육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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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는가 스켑틱 SKEPTIC 22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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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는 중구난방인 것 같고 여러 글들이 실려 통일성이 부족해 보였는데 몇 권 읽다 보니 아주 괜찮은 잡지 같다.

다행히 도서관에서 정기구독 해 주고 있어서 다 읽어 볼 생각이다.

이번 호의 주제는 음모론이다.

세월호 인신공양설이니 미국 잠수함 폭격설이니 하는 음모론에 질렸는데, 이제는 우파에서도 부정선거론을 펴고 있으니, 음모론은 책에 나온대로 고통을 인지적, 감정적, 도덕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인 모양이다.

부정적인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설명하는 게 음모론인데 문제는 말 그대로 음모, 즉 사실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어떤 필자는 과거의 신정론, 즉 신의 섭리라고 해석한 것을 요즘은 온갖 잡다한 지식을 합쳐서 음모론으로 만든다고 한다.

인간은 어떤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원인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원인 규명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이야기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인간의 특성상 음모론은 확산되기가 매우 쉬운 듯하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소셜 미디어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 방식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상대 주장의 허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반대로 내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진화론의 맹점을 지적한다 해도 바로 그것이 창조론을 입증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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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5 Vol.2 스켑틱 SKEPTIC 2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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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켑틱 잡지를 읽고 있다.

한 권의 잡지이면서도 읽어 볼 만한 다양한 주제들을 싣고 있어 일단 재밌다.

이번 책의 주제는 제목처럼 음식 혹은 영양학에 관한 내용이다.

음식이 곧 보약이라는 식약동원 사상을 갖고 있는 우리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들도 있다.

음식이 약이 되는 경우는, 특정 영양소가 부족한 식이 결핍성 질환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괴혈병에 걸린 사람에게 비타민 C가 풍부한 음식을 주는 경우에만 음식이 약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밥이 보약이다는 말은 그저 관념적인 서사일 뿐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다고 한다.

다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지만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구석기 시대 이래 잡식성으로 지구의 모든 환경에 잘 적응해 왔기 때문에 어떤 식생활을 영위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육식 위주든 채식 위주든 극단적인 영양 결핍 상태가 아니라면 몸이 알아서 잘 적응하니 사실 먹거리 논쟁 자체가 의학적으로 크게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처럼 보약 좋아하는 문화권에서는 거부감이 들만한 주장들이다.

서양에서 유행하는 온갖 다이어트 방법들의 허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요즘 유행하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비롯 온갖 다이어트법의 핵심은 총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게 핵심이다.

포만감을 느끼는 게 좋으니 가급적 요리를 해서 천천히 먹는 정도면 괜찮다고 한다.

비법을 주장하거나 상식을 벗어나는 이야기들은 결국 상업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공포 마케팅에 대한 칼럼도 인상깊게 읽었다.

주제는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의 과도한 정부 개입이지만 오늘날 코로나 사태와 비슷한 느낌도 든다.

저자들은 계속 미국 정부가 테러의 위험을 과대평가해 국민들의 생활을 억압하고 지나치게 과도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테러로 죽는 피해자 수가 교통사고의 1/10도 안 되는 게 현실인데 정부는 공포심을 과도하게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는 어떤가?

이 책은2015년에 나왔는데 최근호를 보면 한국 필자가 쓴 글에서 코로나 사태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의 통제에 잘 따라야 하고 격리야 말로 가장 중요한 전염병 회피법이라고 심지어 중세 페스트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정말 이것은 과도한 공포 마케팅에 해당되지 않는 것일까?

몇년 후에나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테니 좀더 기다려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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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진화심리학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5 Vol.4 스켑틱 SKEPTIC 4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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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잡지가 출간됐을 때 정기구독 할까 고민하다 차일피일 미루게 됐고 갑자기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겨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해서 받게 됐다.

잡지라는 형식답게 한 권의 책이 주는 안정감이 없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사들이 많아 흥미로우면서도 약간 정신산만 하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회의주의 혹은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들이라 계속 출간되고 있다는 게 반갑다.

잡지는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구입을 안 해 준다는데 다행히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몇 권을 비치해 줘서 쭉 읽어 볼 생각이다.

특히 이번 호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인 진화론에 입각한 심리학이라 메모할 부분이 아주 많았다.

위약 효과, 남녀의 질투와 외도 메커니즘의 차이, 사이비 오디오 과학의 실체, 젠더의 차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 등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발행인인 마이클 셔머의 "회의주의란 무엇인가"를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혹은 회의주의적 자세를 견지하는 까닭은 삐딱한 비판론자가 되고자 함이 아니고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혹은 인간이라는 종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진짜 지식을 얻기 위함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과학은 '진실'을 찾아가는 가장 유용하고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을 신뢰하고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한다.

종교나 정치적 올바름 같은 신념의 눈이 아니고 말이다.

'올해의 과학책 10선'은 다양한 책 소개는 좋았는데 국내 필자가 늘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단지 편집북 수준의 책이 늘어나는 것은 질적 향상이 아닌 듯하다.

이정모씨의 "공생 멸종 진화"를 재밌게 읽었는데 그 중 한 꼭지가 다른 번역서에서 그대로 베낀 걸 보고 너무 실망스러워 한마디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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