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해상제국 베네치아 이화학술총서
남종국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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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도 예쁘고 350 페이지 정도의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고 주제도 흥미로워 기대감을 갖고 읽은 책인데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대학 출판사에서 이렇게 예쁘게 잘 디자인해서 책을 낸다는 게 신기하다.
제목이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해상제국 베네치아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섬에 불과했던 베네치아가 어떻게 중세 1000년 동안 해상 제국의 위상을 가졌는가,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과연 베네치아는 해상 제국이라 불릴 만 했나 등에 관한 분석이다.
한 권의 책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고 그동안 발표한 논문을 손본 것들이라 그런지 겹치는 내용도 있고 상세한 자료들도 같이 실려 있어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나 같은 일반 독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좋은 책이다.

베네치아를 제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제국이라고 하면 넓은 영토와 여러 민족을 거느린 거대한 정치권력이라 생각했는데 저자는 베네치아를 상업 제국으로 규정한다.
사실 베네치가가 오스만과 대적하면서 지중해 연안의 여러 섬들을 점령하고 이탈리아 북부에도 육상 영토를 가졌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신성로마제국처럼 유럽에서 제국의 특징은 '로마'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이 있어야 한다니 그런 면에서는 과연 적임자일 것 같기는 하다.
원활한 해외 무역을 위해 해군을 파견하여 바다를 정리하고 상품을 수입하는 항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대항해 시대 이후 영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상업 제국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중세" 해양제국, 즉 이들 보다 앞서 상업제국을 이룩했다는 의미로 지었나 보다.
보통 베네치아는 향신료 무역만 중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면화의 비율도 거의 절반에 가까웠고, 예루살렘으로 기독교 신자들을 후송해 주는 순례단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지중해를 누비는 해군력과 큰 선박을 건조하여 국가에서 운영했기 때문에 해상 운송 능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증기 기관차 이전 시대였으니 선박이야 말로 교통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었을 것이다.
개인 선단도 있었지만 국가에서 아예 정기적으로 선단을 운영했기 때문에 운송비도 저렴했고 규칙적으로 교역 스케쥴을 짤 수 있어 상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다.
향신료를 수입하는 중요한 루트가 바로 맘루크 제국이 지배하는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베이루트였는데 이들 국가와의 우호적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국가가 나선다.
마치 대항해 시대 이후 영국 등으 제국주의 국가들이 무력으로 상대편의 항구를 장악한 후 상인들이 교역했던 것처럼 베네치아도 상업제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던 것이다.
포르투갈의 신항로 발견과 오스만 제국의 득세로 결국 베네치아는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지중해 무역이 바로 몰락했던 것은 아니고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도 베네치아는 상업 제국의 영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확실히 유럽은 자본주의가 탄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였고 동아시아의 전제 군주정과는 매우 다름을 새삼 깨달았다.
베네치아라고 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 티치아노의 고향이라는 정도의 관심 밖에 없었는데 상업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알게 된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세상에는 재밌는 책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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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신사계급 - 고대에서 근대까지 권력자와 민중 사이에 기생했던 계급 카이로스총서 59
페이샤오퉁 지음, 최만원 옮김 / 갈무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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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너무너무 재밌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정말 재밌게 읽었고 매 문장 하나하나마다 전부 밑줄 긋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지루할까 봐 걱정했던 책인데, 2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 이렇게도 알차게 잘 쓰여질 수 있을까 감탄했다.

저자가 구술한 것을 미국인이 엮은 책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자기 전공 분야라 해도 이런 대단한 책을 그냥 말로 풀어 쓸 수 있는 것인가 놀랍기만 하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긴 했다지만 영어 실력도 정말 놀랍다.

중국어판은 영어로 초간된 책을 다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편집 디자인과 제목만 조금 더 산뜻하게 바꾸어서 중국 역사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널리 읽었으면 좋겠다.

훌륭한 책은 재밌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흡입력이 대단함을 새삼 느끼는 바다.


사실 중국의 신사 계급이 뭔지 늘 모호한 느낌이었다.

영국의 신사는 금방 와 닿는데 중국의 신사는 우리나라의 양반이나 사대부 같으면서도 용어가 달라서 그런지 정확히 어떤 계층인지 이해가 안 갔다.

더군다나 중국은 조선과는 달리 노비 제도가 오래 전에 폐지됐다고 들어서 신사가 유럽의 귀족처럼 세습되는 신분인지, 조선처럼 양반과 평민, 노비의 구분이 확실한 것인지 궁금했었다.

이 책에 따르면 신사는 전현직 관리들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양반처럼 조상이 과거에 급제했을 경우 그 후손들도 과거를 볼 수 있는 일종의 관료 예비군으로서 대접받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든 신사는 유럽의 귀족처럼 혈통으로서 세습되는 것은 아니고, 조선의 사대부처럼 관료층이나 지식인 계층을 일컫는, 유동성이 있는 계급 같다.

그래서 이들은 유럽과 달리 정치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없었다.

왜 동양이 전제군주정이고 시민혁명이 불가능했는지 이해가 된다.

나는 단순히 서양이 산업화에 성공해 중산층이 성장했기 때문에 시민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산업화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과 달리 왕의 권력을 나눠 갖는 계급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19세기 말까지도 전제군주정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하늘의 뜻을 받아 황제가 된다는 관념 때문에 역성혁명이 가능하고 심지어 유방이나 주원장처럼 가장 밑바닥 층에서도 황제위에 오를 수 있었으나 그 개인은 역시 똑같은 전제군주가 될 뿐 누구와도 권력을 나눠 갖지 않고 똑같은 독재자가 될 뿐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지속하는 것도 오랜 중국의 역사 경험 탓도 있을 것 같다.

황제의 권한은 법에 의해 제한받지 않고 과거로 뽑힌 관리들과도 양분하지 않으므로 이들 지식인들, 즉 신사 계급은 유교적 이념으로 도덕적 권위를 내세워 적절히 규제하려고 했다.

정치적 권력은 없으나 도덕적 권위를 장악한 셈이다.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대로 중국은 너무나 거대한 나라였고 교통은 매우 열악했으므로 황제의 전제권은 지방 곳곳까지 미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 거대한 제국이 깨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이 신사 계급이 국가와 협력하여 지방 통제를 잘 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지방 자치제 개념이랄까.

그럼에도 오늘날처럼 신사 계층에 정치 권력을 양도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중앙 정부의 요구를 향촌 사회에 맞게 조정하는 역할을 했고 당연히 자신들의 특권이 세거하는 지역에서 유지되기를 기대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권위의 원천은 바로 유교, 즉 윤리도덕이었므로 실제적인 자연과학은 농민이라는 생산계급에 맡겨져 과학의 발전도 더딜 수 밖에 없었다.

동아시아에서 왜 시민혁명이나 산업화가 불가능했는지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신사 계층은 지역에서 권위를 행사해야 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종족으로서 모여 살게 된다.

마치 조선에서도 17세기 이후 장남에게 전 재산을 몰아줘서 재산이 쪼개지는 것을 막고 차남 이하는 근처에 세거하면서 지역에서 일정 부분 세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가진 게 없는 농민들은 여러 식구가 먹고 살기도 힘들어 대부분 핵가족 형태로 분산됐던 반면, 지킬 게 많은 이들 신사 계급은 한 지역에 거대한 종족을 형성하고 대저택에 모여 살았다.

이 책에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농촌에 관한 분석이다.

농업 생산성의 한계로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경우 농민들은 소작료를 내고 나면 파산하게 된다.

그럼에도 중국 농촌이 계속 유지가 됐던 것은 자급자족 사회였기 때문에 소비를 위한 추가 소득이 거의 불필요했고, 무엇보다 농번기에 양잠이나 직조 같은 가내 수공업으로 벌충을 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강제로 서구에 의해 개항이 되면서 지주계층이 이들 농가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자 농촌은 정말로 파산에 직면하고 만다.

어차피 서양 제품을 구입할 여력이 있는 이들은 지주층이라 결국 농민들은 소비자를 잃고 만 셈이다.

농촌이 지주들의 착취와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계속 늘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가내 수공업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조선 농촌에도 해당되는 말인지 궁금하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개방 전에 자본주의의 맹아니, 산업화 직전 단계였다느니 하는 말들은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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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 한중일 만두와 교자의 문화사
박정배 지음 / 따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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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이야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었다.

중국에서 시작한 밀 재배와 만두라는 음식이 만들어진 과정이 주를 이루고 한국과 일본이 곁다리로 조금 나온다.

확실히 만두는 중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것 같다.

우리에게 만두는 별미에 불과하지만 중국 북방에서는 주식이라고 하니 중요도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우리는 만두라고 통칭하지만 중국에서는 아무 것도 안 들어 있는 밀가루 발효 음식이 만두이고, 내용물이 들어 있는 비발효 음식,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두를 교자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발효된 만두를 상화라 하고 비발효된 걸 만두라 불렀는데 많이 안 먹기 때문에 만두라는 용어로 통칭하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만주, 즉 화과자 형식으로 발전했다.

각국의 변형 모습이 흥미롭다.

솔직히 요리에 전혀 관심이 없어 발효와 비발효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와 닿지가 않는다.

나는 밥을 싫어해서 흰밥은 거의 안 먹고 주로 빵을 먹기 때문에 밀 재배에는 관심이 간다.

밀은 가루를 내서 분식으로 요리해야 하는데 제분 기술이 까다로워 입식으로 알곡째 먹는 쌀에 비해 처음에는 널리 퍼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가 늘면서 봄에는 쌀이나 조, 수수 등을 심고 가을에는 밀을 심는 이모작이 활성화 되면서 중국 북방에서는 어느새 아무것도 안 들어간 발효빵 만두가 주식이 됐다.

만두라기 보다는 아무것도 안 들어간 찐빵 느낌이다.

마치 프랑스 주식이 바게뜨인 것처럼 중국 북방인도 흰 만두를 반찬과 함께 주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밀가루 만들기가 어려워 설날에나 만두를 빚어 먹었는데 이것도 하얀색을 좋아하는 조선 양반들이 떡국으로 대체해 갔다고 한다.

일본은 만두 안에 달콤한 팥을 넣어 차와 함께 마시는 일종의 과자로 변한다.

각 나라마다 어떻게 음식이 변형됐는지 과정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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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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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물고기가 37가지나 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에 관한 37가지 이야기이다.

시리즈로 묶으려고 제목을 희안하게 지은 듯하다.

하여튼 재밌다.

일본에서 발간된 책들은 가끔 오타쿠적이랄까, 너무 지엽적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적어도 학자들의 책은 훌륭하다.

주제는 물고기, 특히 청어와 대구이지만 역사학자의 눈으로 본 어업사라 아주 흥미롭다.

책 표지도 좋고 편집도 읽기 쉽게 잘 되어 있다.

지도와 도판들도 보기 편하게 잘 만들어졌다.

확실히 유럽은 작은 나라들이 서로 연결되어 계속 교역을 해서인지 상공업이 발달했고 자본주의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한반도에서 세거해 온 우리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성향을 가졌던 게 분명하다.

이런 게 바로 지리의 힘인 것 같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가 어업이 발달해야 할 것 같은데 자급자족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근해에서 물고기 먹는 수준에 그친 반면, 서양은 교역이 활발해 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리를 잡아 전 유럽에 판매하는 일종의 수산업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말린 청어와 대구였다.

말린 생선은 굴비 말고는 먹어 본 일이 없어 어떻게 요리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지만 하여튼 이 생선들 덕분에 대항해 시대가 가능했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들도 어업에 종사하면서 정부의 특허회사와 맞서 자유로운 교역권을 따내 민주주의에 이바지 했다고 하니 놀랍다.

신대륙으로 건너간 이들은 농사를 짓거나 금을 찾아 떠난 줄 알았는데 어업에도 많이 종사했던 모양이다.

공업화가 되기 전에 많은 이들이 대구를 잡아 판매하는 수산업으로 먹고 살았다는 게 놀랍다.

역사는 정말 알면 알수록 재밌다.

청어가 폭발적인 수요를 갖게 된 것은 기독교의 사순절 덕분이라고 한다.

육식을 금하는 기간에 고기 대신 생선을 먹게 된 것이다.

물고기는 육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특정 음식을 금하는 게 교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은데 하여튼 이 피쉬데이를 통해 수산업이 발달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강력한 해상 교역권을 주장했던 찰스 1세는 결국 왕권신수설에 사로잡혀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어업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한 과정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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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권내현 지음 / 너머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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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을 재밌게 읽은 탓에 신간에도 기대를 갖게 됐고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대중서를 수준있게 쓰는 좋은 필력을 가진 학자 같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프랑스의 가짜 마르텡 게르의 귀향과도 흡사한 사건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프랑스와 다른 점은 전쟁 후 귀향한 마르텡 게르가 가짜로 판명되어 교수형을 당한 반면, 이 책의 주인공 유유는 진짜로 인정되어 오히려 그를 가짜로 몰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 동생 유연이 능지처사를 당했다는 점이다.

유전자 감식 같은 과학적 기법이 없던 시절이니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나타난 가족이 진짜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참 어려웠을 듯 하다.

책의 주인공 유유는 아버지와 불화하고 집을 나가 생사가 묘연하다.

큰 아들은 사망했고 둘째 유유가 행방불명이므로 제사권과 가산은 막내 아들 유연의 차지가 된다.

그런데 어느날 서울에 살던 매형 달성령 이지가 처남을 찾았다면서 채응규라는 자를 데리고 내려온다.

그것도 춘삼이라는 첩과 정백이라는 아들까지 대동하고서 말이다.

수십 년이 흐른 상태라 실제로 그가 유유가 맞는지 아닌지 여러 사람의 판단이 엇갈리고 부모가 이미 돌아가신 상황에서 동생 유연은 가짜라 결론짓고 그를 관아에 넘기게 된다.

문제는 종친인 매형과 유유의 처 백씨가 그를 진짜 유유로 여긴다는 점이다.

재판 과정에서 일종의 보속 신청이 받아들여져 유유라고 주장하던 채응규는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실종되고 만다.

채응규의 시중을 들던 춘삼은 동생인 유연이 죽였다고 고발하고 이번에는 유연이 옥에 갇히게 된다.

형수인 백씨 역시 시동생이 재산이 뺏길까 두려워 형을 죽였다고 고발하니 어이없게도 유연이 형을 살해한 강상죄인으로 몰려 능지처사라는 끔찍한 형벌로 죽게 된다.

더 황당한 반전이 몇 년 뒤 일어난다.

이 사건은 꽤 유명했는지 전말을 알고 있던 한 양반이 평안도에서 숨어 지내던 유유를 발견하고 관에 재심을 청구하게 된다.

이 사람이 진짜 유유라는 판결이 내려져 이번에는 가짜 유유를 앞세워 처가 재산을 탐했다고 사위 달성령 이지가 잡혀가 고문 끝에 죽고 만다.

놀랍게도 죽은 줄 알았던 채응규가 잡혔는데 재판을 앞두고 자살해 버렸고 유연이 죽였을 거라고 고변했던 첩 춘섬 역시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프랑스의 마르텡 게르 사건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단순히 흥미로운 사건 기술에 그치지 않고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균분 상속이 어떻게 장자우선상속으로 바뀌는지를 서양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자세히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이 너무너무 유익했다.

아들들에게 제국을 찢어준 게르만 왕국과는 달리 조선은 철저히 적장자 한 사람에게만 모든 권한을 몰아 주고 나머지 왕자들은 약간의 재산만 준 채 사회적 금고를 당해야 했다.

그런데 양반가 자식들은 공평하게 균분상속을 했고 심지어 조선 중기까지는 시집간 딸들에게도 재산을 똑같이 물려줬다.

당연히 제사도 돌아가면서 윤회봉사를 했고 대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굳이 남의 아이를 입양시키지도 않았다.

반면 영국 귀족들의 경우는 조선의 왕들처러 전 재산과 작위를 장남에게만 상속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권한이 조선의 왕들처럼 매우 컸기 때문에 균분상속을 하면 그 힘이 나눠지므로 한 명에게 몰아 줬다는 것이다.

재산을 받지 못한 차남이 이하는 전쟁터로 나가 군인이 되거나 상업에 종사하는 등 먹고 살 길을 개척했다.

서양이 일찍부터 상공업이 발달하고 대항해 시대를 연 것은 이런 사회적 제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철저하게 농본사회였던 조선은 장남이든 차남이든 다같이 토지가 있는 지역에 세거하면서 소지주이면서 과거 준비생으로 평생을 보낸다.

조선 전반기에는 균분상속을 해도 다음대에 재산이 늘어날 여지가 있었으나 17세기로 가면서 더이상 부모만큼 살기가 어려워지자 가문의 재산이 쪼개지는 것을 막기 위해, 또 종법이 강화되면서 장남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사회가 좀더 팽창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반 계층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조선 양반들의 상속 관행과 종법의 발달에 대해 생각해 본 아주 유익한 시간이이었다.

모름지기 한 권의 책이란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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