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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영원으로 - 하 - Mr. Know 세계문학 59 ㅣ Mr. Know 세계문학 59
제임스 존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완독했다.
1권은 내 책이라 천천히 읽었던 반면, 2,3권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2주 내에 반납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지하철에서만 읽던 것을 어제는 아예 집에서 음악 틀어 놓고 안락의자에 앉아 본격적으로 읽어 제꼈다.
항상 남독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속독을 하는 편인데, 천천히 읽기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해야 하나?
한꺼번에 읽는 것보다 지하철에서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었던 게 더 맛있었다.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프리윗의 죽음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가 헌병들의 기관총에 맞아 죽고 나니 허망하고 기운이 빠졌다.
처음부터 죽음이 예상됐던 인물이긴 하지만 난 영화에서처럼 마지오가 죽을 걸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깡다구 센 이탈리아 이민자는 정신병으로 위장해 불명예 제대하고 만다.
엉뚱하게 영창의 다른 죄수가 간수에게 맞아 죽고, 특별히 그와 친분도 없던 프리윗은 자신의 정의감에 비춰 볼 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살해하고 자신도 술에 취해 몽롱한 몇 개월을 보내다가 결국 죽고 만다.
비극적인 죽음.
그나마 워든이 가장 정상적인 사람으로 나온다.
치프 초트의 말처럼 마지오나 프리윗, 워든 등은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반면 아이크나 홈스 대위는 군대 체질이다.
진정으로 군대를 사랑하는 것과 군대에 적응해 출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군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결국 그것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역설!
마치 카렌과 워든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질식시키지 않으려고 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로부터 자신이 파괴당하는 길만이 영원히 그 사랑을 지키는 길이다.
궤변 같으면서도 인생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생각한다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워든이 왜 장교 진급을 거부하는지 명확한 서술이 부족해 아쉽다.
약간 이해가 안 간다.
사병과 장교의 계급차가 이 소설에서 잘 그려지는데 사병들은 계급 상승을 위해 애쓰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계급을 사랑하는 인물들로 나온다.
신해철이 언젠가 말했던 영국 노동자 계급의 축구 사랑 같은 그런 정체성이랄까?
워든은 자신이 장교가 되면 진정한 군인이 아니고 아첨이나 하면서 정치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전락할까 두려워한다.
워든이야 말로 허울뿐인 홈스 대위를 대신하여 진정으로 부대를 꿰차고 앉은 안주인이다.
장교가 되면 카렌은 홈스와 이혼하고 그와 재혼할 생각이었다.
워든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중산층의 안락함에 기대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프리윗도 마찬가지다.
권투 선수가 되서 알마와 결혼해도 될텐데 끝까지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신성한 권리라고 믿는다.
영화에서는 홈스 대위가 사병들에게 권투를 강요했다고 해서 쫓겨나는 걸로 나오지만, 역시 소설은 한 수 위다.
그런 결말은 너무 뻔하다.
높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모든 부정을 일소에 해소해 주고 나쁜 놈을 벌주고 끝나는 결말은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할 듯 하다.
입체적이지 못하다.
반면 소설에서는 진주만 공습으로 결국 그 해 권투 대회는 열리지도 못하고 홈스 대위는 소령으로 진급해 연대를 떠난다.
워든의 말대로 프리윗은 열리지도 않을 권투 대회를 위해 그토록 학대를 당했던 것이다.
카렌이 워든과 헤어진 후 남편에게 돌아와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는 장면은 통쾌했다.
홈스는 그녀에게 매독을 옮기고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고 그녀를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카렌은 거기에 대한 대응으로 남편의 사병들과 사랑을 나눴다.
여자에게만 강요된 정조 관념을 깨버렸다는 게 시원하고, 남편이 제공하는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기꺼이 걷어찰 용기가 있다는 게 통쾌하다.
그러나 결국 카렌은 워든과 헤어지고 안전한 본국으로 떠난다.
어찌 됐든 그녀 자신의 독립적인 선택이라는 게 마음에 든다.
너무나 재밌고 인상깊게 읽은 소설이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