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여러가지 단편들이 모인 작품집에서 모든 작품이 균질하게 고른 수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 책처럼 여러 작가가 공동 작업한 책인 경우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관심을 가진 작품은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  <진실을 말할것> < 5달러짜리 드레스>

<디지와 길레스피> <빨간 머리 의붓딸> 정도다

아 <전용윤 여사의 아들 중매> 도 괜찮았다,

 

큰 스케일의 작품보다는 작고 소소한 소품같고 코지 미스테리풍의 작품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도 있고 의외로 사소하고 사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섬뜩한 순간이 더 마음이 끌린다고 할까

위 작품의 공통점을 억지로라도 찾아보자면 그런 부분이외에

관계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내가 보는 것만 본다.. 라는 점이다,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와 <빨간 머리 의붓딸>의 경우는 어른이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내가 만들어 놓은 아이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아이를  천진하고 순수한 존재로 볼 것인지 아니면 영악한 어린 악마로 볼 것인지의 전제하에 대상을 바라본다,

물론 이건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그 대상인 아이가 그동안 보여준 혹은 내가 그동안 보아온 모습에서 판단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 더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의 매덕스는 좋은 소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의 시선 역시 자기 판단에 갇혀있다,

학교에서 아이가 벌인 여러가지 사건들 분란들로 아이를 규정해버리고 이후 그 아이의 어떤 행동이든 그 나름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는 걸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판단하고 갖게 된 틀안에서 아이를 바라본다, 결국 그 아이는 도저히 손 델 수 없는 문제아이고 스스로 기회를 저버리고 자기를 망쳐버렸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 아이의 진실을 알아보는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그냥 자기 딸과 대화를 하거나 둘이서 메덕스에 대해 수군거리기만 했어도 진실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의 틀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대상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해버린다,

토마스 쿡은 그런 일상 생활속에 사람이 가지는 편견 혹은  가치관이 가지는 섬뜩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붉은 단풍>에서도 그런 점이 있었다,

<빨간 머리 의붓딸>은 또 다른 대척점에 있다, 어른들은 아이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규정한다,

일단 모범생은 영원한 모범생이다,

그 아이가 저지른 일탈은  "어쩌다가 이런 일이....." "친구를 잘못  만나서" 혹은 한 번의 실수로 넘겨버린다, 그 속에 숨은 유치해서 더 음흉하고 위험한 의도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 역시 그렇다, 똘똘하고 착한 내 딸은 늘 그러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끔찍하게 싫은 머릿니라든가 떨어지는 학업능력을 가진 의붓딸에 대한 편견이 모여서 대상을 내가 보고싶은 대로 본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은 않다,

아니 순수해서 영악할 수 있고 순수한 마음이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5달러짜리 드레스>의 할머니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갔을까?

그녀가 다가갔다면 내가 본 걸 부정한 삶을 살았던 것일테고 몰랐다면 일생을  보여지는 것 이면은 생각하지 않았음이다,

별 것 아니지만 평생 누군가에게 속았으리라는 그 삶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기도 했다,

 

<디지와 길레스피>는 슬픈 이야기다,

화려하지만 낡고 쓸모 없는 집에 남겨진 모녀의 이야기부터 그렇다,

화려한 과거를 부여잡은 엄마와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능력이 없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딸 이야기도 그렇고 자기의 잘못이 아닌데 스스로 강박증같은 죄의식으로 일을 크게 만들어버린 모녀의 행동 (특히 엄마의 행동들)이 슬펐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그 부분에 너무 몰두해서 전체를 보지 못하거나 다른 부분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다는 것 그것이 사건을 만들고 일을 크게 만든다,

후회는 언제나 늦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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