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배려는

상대가 원치 않은 것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줄까 어떻게 해줄까

이런 것들이 중요한게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행동으로 보였다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면

그걸 하지 않은 것이 최고의 배려이다,

가장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더라

 

누구나 배려하고 공감하려고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서  표현하고 싶어서

뭔가를 해주고 싶어한다

그는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데

이런 곳에 같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것들이 필요할 텐데

함께 걱정해주고 울어주고 이야기 해주고 충고해주고 그렇게 위로를 해주려고 하는데

사랑하니까 아끼니까 딸같고 자식같고 동생같고 가족같아서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친근함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사람은 사람사이의 금을 넘어버린다,

관계속에 가장 편하고 안전하게 생각하는 사람 사이의 금을 쉽게 넘는다

내가 다가가는 건 폭력이 아니다, 사랑이다, 애정이다 관심이다.. 라고 쉽게 여긴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관심이 있는데

그래서 내가 희생해가며 손해를 봐갸며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데

이마음을 몰라주다니 이 정성을 내팽개치다니

나는 뭐 이런게 마냥 좋은 줄 아나...

내가 마냥 좋지 않으면 안해도 된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주고 싶다면 적어도 안주면 죽을거 같아서 주고 싶다면 주고 그만 잊든지

주기 전에 물어보든지 정말 원하는게 뭔지 알아보는 정성이라도 보여주란 말이다,

 

내가 주고 내가 상처받고 내가 미워하고

내가 주고 혼자 만족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대를 타박하고 화를 내고

가끔 그렇게 배푼다는 생각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부하직원이 일을 잘 하니 너무 이뻐서

제자가 사랑스럽고 도와주고 싶어서

후배가 잘 되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래도 돼

누구나 그래왔고 그래도 아무탈이 없었고

내가 주겠다는데 안받는게 이상하고 까탈스럽고 그렇게 살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걱정되고

그정도로 내가 다가갔다고 조금 만졌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탈이 나는 것도 아닐텐데

뭐 좋게 좋게 넘어가야지

내 마음이 아니라는데 내가 괜찮다는데 좋은 마음이라는데....

 

그건 사랑도 도움도 격려도 배려도 아무것도 아니다,

되려 간섭이고 폭력이다,

 

용기내어 원하는 걸 말할때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지멋대로 주고싶다고 격려하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쉽게 툭툭 뱉고 다가오고 하는 짓은

배운사람이 할 짓은 아닙니다

저리로 꺼져주세요.  ㅆ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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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2-0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이 많죠.
건강한 식습관의 기본이 몸에 좋은 음식을 챙기는 것보단, 몸에 해로운 음식을 멀리하는 게 중요한 것처럼
건강한 사랑이란 상대방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끊임없이 살펴주고 배려하는 세심함 또한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합니다.
푸른희망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배려는 사랑의 중요한 속성인데도 현실의 사랑에선 크게 부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것같아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13화에서 한양을 신고한 건 엄마였다는게 밝혀졌다.

그동안 연인인 지원이 신고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였다.

그 사실을 알게된 한양은 중얼거렸다.

엄마가 왜? 엄만데.... 엄마가 어떻게....

 

그 드라마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엄마니까...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 엄마라서 할 수 밖에 없는...

 

엄마라는게 어떤 존재인지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래도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나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놈아 엄마니까 한거야.. 그래도 엄마니까 신고할 수 있었던 거야.

너 잘되라고... 제발 약하지 말라고.. 독하게 마음 먹은 거라고

그 엄마도 어려서 돈 버느라 외롭게 내버려둔 아들이 저절로 잘 큰 줄 알았을 것이다.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은 인물이고 공부도 잘했고 좋은 대학을 갔고 아마 좋은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일에 바빠 신경쓰지 않아도 무어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니 어쩌면 뭐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묵살했을 것이다) 아무 탈없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내 속도 내가 모르는데 나 아닌 타인은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알 수 없다. 당연하다.

말없는 소년이었던 한양은 그렇게 왕따가 되고 친구가 없어도 혼자만 삮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배고프다는 말에 끓여놓은 라면이나 먹으라는 엄마에게 말을 해도 표현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이 학습되었을 테니 말하지 않고 그냥 묵혀두는게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원을 만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약을 한다.

그리고 엄마 역시 아들에게 어떤 표현없이 신고하고 그대로 방치한다.

아들을 위해서라지만 그래서 밤마다 술로 눈물로 시간을 보내지만 아들은 그 속을 모른다.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배신감일것이다.

엄마니까 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시청자는 양쪽 상황을 다 아니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당사자들은 서로 상대의 마음을 모르니까

외로웠던 마음을 몰랐고 미안했던 마음을 몰랐으니까 서로 오해하고 갈등만 깊어진다.

뭐 남은 3회에 잘 봉합되겠지만 현실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인정하고 싶은 부분은 엄마가 과감하게 아들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잘못 그리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렇게 엄마를 행동하게 했다.

 

 

 

 

<현남오빠에게>의 김이설의 단편이 떠올랐다.

참 현실적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몰아갔다. 너라면 어쩔건데? 너라면 별 수 있을까 라고  숨쉴틈을 주지 않고 몰아갔다.

내 아들이 그것도 중학생 아들이 섹스를 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모범생에 우등생이고 학교에 학원에 영재원 수업까지 어느 시간 허투루 쓸 수 있는 여유조차 없던 아들이 단지 섹스를 위해 여학생들을 만나고 그 것만이 목적이란다.

엄마는 아득했을 것이다.

아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러나 아들의 답변은 정말 정답이다. 해답은 아니지만 정답이다. 어디 하나 반격할 수 없이 말은 잘한다.

서로 동의하에 했고 강압적인 것은 없었고 콘돔을 사용해서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성적이 떨어지거나 할일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건 분명히 아닌데 아들의 말에 틈을 잡을 수 없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대학에 갈 수 있으니 나에게도 숨쉴 틈을 달라고.. 내게 숨쉴 수 있는 여유는 여학생들과 섹스하는 그 순간이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할말이 없다.

그렇게 엄마에게 조목조목 말하는 순간에도 해야할 과제를 먼저 생각하고 시간을 배분하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아들이다.

엄마의 고민은 시작이다.

이게 분명히 잘못된 일인데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작 여동생은 알게 하지 말라거나.. 제 할일을 해야한다고 하면 다인가?

남편은 한 술 더 뜬다.

남자라면 그렇 충동을 겪을 나이고 제어하지 못하고 사고치는 것도 아니고 콘돔까지 쓴다니 얼마나 영리하냐고... 그나이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럼 그 상대는 그 상대 여학생들도 그게 목적이라서 깔끔하게 치부하고 넘어갈까

엄마는 자꾸 그 여학생들이 걸리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른다.

사과를 해야할 일인데 그들이 나서서 잘못했다고 따지지도 않고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말이 없다.

분명 문제는 일어났는네 누구하나 나서지 않고 잘못이라고 하지 않는다.

남편은 한 술 더 보탠다.

잘나고 똑똑한 내 아들한테 가랭이 벌리고 달려든 년들이 헤픈거지 내 아들은 잘못이 없다.

결국 합의하에 했든 어쨌든 아들은 처신을 잘한 영리한 놈이 되고  여학생들은 헤벌레하고 헤프로 괜찮은 남자면 몸으로 부딪치는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된다.

게다가 친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뒤통수를 강타한다.

성적을 위해 작정하고 경쟁자들에게 몸으로 덤비는 여학생들이 있다고

그렇게 작정하고 덤비면 순진한 남학생들은 넘어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건 어느나라 어느 시대 논리인가?

세상의 여학생은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여학생 ( 이기적이고 성적만 아는 여학생_

아이돌에 미쳐 아무 생각없는 여학생  이렇게 밖에 없다

그걸 누가 정하지?

아들 가진 부모가 결정하고 아들이 배우고 또 그렇게 상대를 판단한다.

똑똑해서 극악스럽거나 단순해서 무지하거나

이건 성녀거나 창녀거나와 다를게 없다.

엄마는 계속 고민한다. 그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해야할 일이다.

 

 

         

 

비슷하게 정이현의 소설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하고 돌아가던 도중 교통사고가 나고 그 상대 미성년자가 사망을 하고 아들은 다쳤다. 아들이 옳은 일을 한게 아니니 어쩌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상대는 죽어버렸고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면....

그저 돈으로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고 없던 일로 되돌리던 섬뜻하고 건조한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

고등학교 딸아이의 임신을 알게 되고 출산까지 하게 되지만 엄마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없던 일로 되돌리기로 한다. 상대 남자엄마에게는 책임을 나누기 위해 뭔가 따지기 위해 연락을 하지만 누구이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알지 못하게 다시 예전으로 만들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고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배워서 알고 살아가면서 알게 되고 몸으로 부딪치니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서 알게 되는 많은 옳음과 그름들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옳고 그름이 개인에게 가서 부딪칠 때 참 미묘하게 바뀌는 경우가 생긴다. 원래 그렇긴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게 뭐 그렇게 원칙대로 떨어지나? 하는 마음이 드는거

마약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게 내 자식이면 보석금으로 풀려나게 하는게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미성년이 성관계를 하고 그것도 사랑이 아닌 습관적인 성관계를 한다는 것이 옳지 않고 상대에게 상처가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누구도 뭐라는 사람이 없고 지금 내 앞에 손해를 밨다고 상처를 입었다고 나타나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두 눈 감고 술로 밤을 지새더라도 아들을 고발해 버린 엄마가 있고

상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면서 그들에게 사과해야한다고 마음 먹은 엄마가 있다.

그렇게 행동하면 뭐가 달라지나?

 

 

사실 아들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말았고

아마  다른 어린 아들은 엄마의 행동이 성가시고 쓸데없다고만 여길것이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지만 정의라서 해야하는 것일까

일이 벌어졌고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믿고 정면으로 부딪치겠다고 마음먹고 행동하는 일과

그건 한때의 치기였고 실수였으니 없던 일로 되돌리겠다고 이건 지워질 수 있는 낙서일 뿐이라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일.....

어떤 일이 옳고 그런게 아니라

더 남는 장사가 될까.. 그것이 지금 세계를 돌리는 기준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엄마에 대한 페이퍼를 쓰려는게 아니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드러난 행동의 결과는 옳고 그름으로 나뉘게 되기도 한다.

약을 하는 아들을 감싸는 것도 모성이고 꼰지르는 것도 모성이다.

문란한 성관계를 갖는 아들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도 사랑이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도록 하는 것도 사랑이다.

내 아이의 잘못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를 감싸 안고 내 사랑의 상처를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 잘못을 직면하고 반성하게 하거나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

타인의 일에는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내문제로 다가오거나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사람은 쉽게

내가 편하고 눈을 감는 방향으로 끌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때 그걸 옳다 그러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고 해야한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살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동정해서 판단을 흐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선이 쉽지 않다.

 

결국 한양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대서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도로 경찰차를 탔고

한양의 엄마는 어쩌면 차라리 처음에 보석금을 내주고 봐줄걸... 이라며 다시 한탄하며 불면의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의 엄마는 서성거리고 이미 자기가 당연하게 여긴 완벽한 가정의 기준이 무너졌음을 알게 되거나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지만 모른척 하기도 한다.

 

용기있게 한 발을 내딛였으나 그 용기에 대한 보답조차 없이 오히려 원망만 가득하고 상처만 남았을 때  그래도 한 발 내디딘 용기를 발판 삼아 다시 한 발 더 앞으로 갈 것인가? 그래 세상은 그런거야. 나만 튀어봐야  소용없지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걸.. 맞춰사는 세상이야.. 하고 그대로 다시 되돌아갈지는 내게 달려있다.

그러나.

한 발을 내 디뎠다면 다시 한 발 더 가도 괘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어쩌면 한 발만 더 가면 거긴 나보다 먼저 발을 디딘 사람이 조금 서성이며 따라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함께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드라마의 엄마 그리고 소설속의 엄마를 보며

남 같지 않아서.... 그리고 따뜻하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두서없이 끄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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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억 가운데 단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무얼 선택하시겠습니까까?

 

영화는  당혹스럽고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고 시작한다.

내가 죽었고 죽어 저 세상으로 가기전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면 그 기억 하나만 남기고 모든 것은 사리진다. 나는 단 하나 내가 선택한 그 기억만을 지닌채 이 세상을 떠나 저 곳으로 간다.

사람들은 담담하게 자기 삶을 돌아보거나 당혹스러워하며 기억을 헤어린다.

오래 산 사람은 많은 기억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곤혹스럽고

짧은 생을 산 사람은 많지 않은 기억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가장 좋았던 기억을 하나씩 꺼집어 낸다.

객석에서 나는 지금 이순간 내게 던져진 그 질문에서 나는 어떤 기억을 선택할까 생각한다.

이 사람과의 추억을 선택하자니 저 사람이 걸린다.

모두가 함께 했던 기억은 사실 내가 꼭 하나로 선택하기엔 망설여진다.

결심했다.

그냥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누군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 사랑해줬던 사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에게 집중한다.

내가 가장 좋았던 순간 언제나 꺼내 볼 때마다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는 기억은 무얼까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은 쉽게 그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자기의 삶 전체를 되돌아본 뒤에 겨우 찾아내기도 하고 선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그 한 순간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소중했던 시간은 남들에겐 별 의미 없는 순간일 수도 있고

내가 선택한 그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한 사람은 나와의 순간을 선택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흘러가는것이 삶이다.

 

그리고 선택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저승 (즉었으니 저승이 맞겠지?) 사람들은  무대를 꾸미고 그날의 색감이나 상황 분위기를 세세하게 살핀다. 아니 죽었으면 무슨 초능력이 있는거 아니었나?

아날로그적으로 몸으로 무대를 만들고 꾸미고 촬영한다.

그 과정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기억은 사실과는 다르다.

사실 그대로 재현한다면 그 사람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를 보며 그대로 만들거나 차라리 비디오의 한 장면을 짤라 써도 무방하다.

그러나 기억은 그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 상황 그리고 시간의 더께로 조금 기울어지고 덧칠해지고 한모퉁이는 떨어져 나간 오롯이 내 머리 속에 있는 나만 아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중간의 그 사람들은 자꾸 기억을 물어보고 고민하며 세심하게 각각이 가지고 있던 그 순간을 재현해준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가지고 사람들은 기쁘게 떠난다.

 

영화 가운데 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달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있는데 보는 사람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달라보이는 걸 달이 변했다고 한다고. 뭐 그런 대사.....

요즘 하는 생각인데 세상에 순수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절대적으로 순수함이란 인간의 머리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할 뿐 어떤 불 순물도 없는 순수가 있을까

중립이 불가능하고 순수도 없다.

모든 순간에 모든 상황에 각각의 입장이 있고 생각이 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선택하지 않고 중립이야 .. 이건 ㅇ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야 하는 그 수말을 뱉는 순간에도 많은 생각과 감정과 정의가 그리고 이런 저런 것들이 섞여버린다.

그래서 제각각의 입장이 있고 사정이 있고 논리가 있다.

다만 비슷하게 묶을 수 있을 뿐이지 같지 않다.

모두가 다른 기억을 가지고 떠난다.

설령 내가 선택한 기억속의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기억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건 받아들여야 한다.

 

감독은 영화에 일반인을 등장시켰다고 했는데 보는 내내 누가 배우이고 누가 일반인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자기의 기억을 떠올릴 때의 몸짓이나 표정 그 모든 것은 대본이 없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였을까?

마지막 부분에 가짜 벛꽃잎을 비닐 봉지에 담아 건내던  할머니의 무심하고 따뜻한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그건 어떤 연기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감독이 무얼 말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에서 꼭 가지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지

그리고 달은 변하지 않는데 변한다고 믿어버리는 내마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기억을 닮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춤고 너무 잔잔해서 조금 졸았지만

극장에서 나와서 자꾸 생각나도 되씹을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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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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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반전이나 트릭을 기대하진 않는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정서를 보며 감탄한다. 오래된 미스테리물이라 진부하고 고전적인 구성과 묘사도 있지만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희노애락 오욕칠정은 늙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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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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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뭐지?

그건 삶의 슬픔이나 유머따위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맞다. 그렇구나. 싶었다.

바라보는 사람이 서있는 위치, 그의 눈의 높이 그리고 그 순간 그가 가진 정서과 사고가 삶을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만들어버린다

 

결혼이라는 것과 그리고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이 대단히 스펙타클하다거나 로맨틱하지 않다.

통속적이고 진부하고 누구나와 다른 바 없는 비슷비슷한 상투성의 연속인데

사람들은 자기 삶만은 다르다고 믿고 싶고 스스로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삶에 대한 올바르고 건전한 생각일 수도 있다.

내 삶이 진부하고 보잘것 없다고 믿는다면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 책을 왜 읽었지?

책의 처음 몇장을 넘기면서 계속 생각했다.

모두가 최고의 책이라고 했고 심지어 오바마도 최고라고 했다는 말에 심하게 혹한게 아닐까 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묘사들과 결혼생활이라는게 섹스가 중심이 되어 그것만이 전부인것처럼 이어지는 것도  불편했고  '운명'편의 주인공인 남자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것도 지루했다.

그냥 반납할까 망설이다가 어느 순간 흐름을 타고 계속 읽게 된다

 

이야기는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분노의 타이틀로 여자의 이야기를 쓴다. 남자의 이야기는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일대기 방식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순간순간 위기를 겪으며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순수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마땅한 남자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속물적이다.

1장에서  사람스러운 남자 랜슬럿  이름마저 주인공이 아닐 수 없는 토로는 멋지게 좌절하고 성공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죽어버렸다. 사실 이렇게 빨리 죽을 지는 몰랐다.

그가 중심이 된 이야기속에 그의 아내 마틸드는 어떤 면에서는 쌍년이었다.

느딧없이 등장해서 아름다운 청년을 사로잡고 결혼하고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게 죽음이 갈라놓을때 까지 함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둘은 정말 진실로 서로를 원하고 사랑했다. 타인의 기대를 무참하게 깨버리면서

2장은  쌍년인지 내조자인지 헷갈리는 마틸드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연대기가 아닌 뒤죽박죽 흘러간다

어릴적 모습이었다가 과부가 된 지금의 이야기였다가 다시 젊은 시절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간의 이야기였다가 뒤죽박죽이지만 오히려 그런 구성이 그녀를 더 잘 보여준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헛헛함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어릴적 치기어린 행동으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춥고 낯선 환경에 버려진 토로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른 채 가족에게 버림받고 여기저기 위탁을 다니며 어느 순간 스스로 삶을 책임지기 위해 가장 위험한 도박을 하는 여자가 만난다.

타인의 이야기로 듣는다면 더없이 드라마틱하고 멋진 플롯이 되지만 그것이 내 삶이 되는 순간 이보다 더 절망적이고 불안하고  피하고 싶은 삶은 없다.

 

아름다운 사람 무책임한 사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조용히 사람을 밟아버리는 사람 누구에게나 매력있고 순종적이며 내조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

세익스피어가 인용되고 신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어쩌면 멋지고 매력있게 보이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 문장들속에 주인공의 삶은 드라마틱하고 멋지고 아름답지만 딱 거기까지....

읽는 동안 지루했고 재미있었고 긴장도 했지만  마지막을 덮으면서 그대로 잊혀질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다만 남는 것들은

어릴 적 애착관게는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겠구나 

잘못 형성된 애착관계와 도식들이 삶을 어떻게 흔들어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남의 삶을 바라볼 때 결국 그건 내가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를 바라보면서 세상엔 내가 아는 것을 제외한 더 큰 세상이 존재하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 이외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토로와 마틸드를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만큼 매력적인 레이첼과 샐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소개받고 알아가게 된다.

그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내가 살 수는 없다.

결국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한계도 함께 알아간다.

 

인물은 매력적이지만 이야기는 글쎄.... 호들갑스러운 찬사들은 나랑 맞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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