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빵생활 13화에서 한양을 신고한 건 엄마였다는게 밝혀졌다.

그동안 연인인 지원이 신고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였다.

그 사실을 알게된 한양은 중얼거렸다.

엄마가 왜? 엄만데.... 엄마가 어떻게....

 

그 드라마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엄마니까...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 엄마라서 할 수 밖에 없는...

 

엄마라는게 어떤 존재인지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래도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나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놈아 엄마니까 한거야.. 그래도 엄마니까 신고할 수 있었던 거야.

너 잘되라고... 제발 약하지 말라고.. 독하게 마음 먹은 거라고

그 엄마도 어려서 돈 버느라 외롭게 내버려둔 아들이 저절로 잘 큰 줄 알았을 것이다.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은 인물이고 공부도 잘했고 좋은 대학을 갔고 아마 좋은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일에 바빠 신경쓰지 않아도 무어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니 어쩌면 뭐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묵살했을 것이다) 아무 탈없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내 속도 내가 모르는데 나 아닌 타인은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알 수 없다. 당연하다.

말없는 소년이었던 한양은 그렇게 왕따가 되고 친구가 없어도 혼자만 삮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배고프다는 말에 끓여놓은 라면이나 먹으라는 엄마에게 말을 해도 표현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이 학습되었을 테니 말하지 않고 그냥 묵혀두는게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원을 만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약을 한다.

그리고 엄마 역시 아들에게 어떤 표현없이 신고하고 그대로 방치한다.

아들을 위해서라지만 그래서 밤마다 술로 눈물로 시간을 보내지만 아들은 그 속을 모른다.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배신감일것이다.

엄마니까 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시청자는 양쪽 상황을 다 아니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당사자들은 서로 상대의 마음을 모르니까

외로웠던 마음을 몰랐고 미안했던 마음을 몰랐으니까 서로 오해하고 갈등만 깊어진다.

뭐 남은 3회에 잘 봉합되겠지만 현실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인정하고 싶은 부분은 엄마가 과감하게 아들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잘못 그리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렇게 엄마를 행동하게 했다.

 

 

 

 

<현남오빠에게>의 김이설의 단편이 떠올랐다.

참 현실적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몰아갔다. 너라면 어쩔건데? 너라면 별 수 있을까 라고  숨쉴틈을 주지 않고 몰아갔다.

내 아들이 그것도 중학생 아들이 섹스를 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모범생에 우등생이고 학교에 학원에 영재원 수업까지 어느 시간 허투루 쓸 수 있는 여유조차 없던 아들이 단지 섹스를 위해 여학생들을 만나고 그 것만이 목적이란다.

엄마는 아득했을 것이다.

아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러나 아들의 답변은 정말 정답이다. 해답은 아니지만 정답이다. 어디 하나 반격할 수 없이 말은 잘한다.

서로 동의하에 했고 강압적인 것은 없었고 콘돔을 사용해서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성적이 떨어지거나 할일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건 분명히 아닌데 아들의 말에 틈을 잡을 수 없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대학에 갈 수 있으니 나에게도 숨쉴 틈을 달라고.. 내게 숨쉴 수 있는 여유는 여학생들과 섹스하는 그 순간이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할말이 없다.

그렇게 엄마에게 조목조목 말하는 순간에도 해야할 과제를 먼저 생각하고 시간을 배분하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아들이다.

엄마의 고민은 시작이다.

이게 분명히 잘못된 일인데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작 여동생은 알게 하지 말라거나.. 제 할일을 해야한다고 하면 다인가?

남편은 한 술 더 뜬다.

남자라면 그렇 충동을 겪을 나이고 제어하지 못하고 사고치는 것도 아니고 콘돔까지 쓴다니 얼마나 영리하냐고... 그나이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럼 그 상대는 그 상대 여학생들도 그게 목적이라서 깔끔하게 치부하고 넘어갈까

엄마는 자꾸 그 여학생들이 걸리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른다.

사과를 해야할 일인데 그들이 나서서 잘못했다고 따지지도 않고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말이 없다.

분명 문제는 일어났는네 누구하나 나서지 않고 잘못이라고 하지 않는다.

남편은 한 술 더 보탠다.

잘나고 똑똑한 내 아들한테 가랭이 벌리고 달려든 년들이 헤픈거지 내 아들은 잘못이 없다.

결국 합의하에 했든 어쨌든 아들은 처신을 잘한 영리한 놈이 되고  여학생들은 헤벌레하고 헤프로 괜찮은 남자면 몸으로 부딪치는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된다.

게다가 친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뒤통수를 강타한다.

성적을 위해 작정하고 경쟁자들에게 몸으로 덤비는 여학생들이 있다고

그렇게 작정하고 덤비면 순진한 남학생들은 넘어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건 어느나라 어느 시대 논리인가?

세상의 여학생은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여학생 ( 이기적이고 성적만 아는 여학생_

아이돌에 미쳐 아무 생각없는 여학생  이렇게 밖에 없다

그걸 누가 정하지?

아들 가진 부모가 결정하고 아들이 배우고 또 그렇게 상대를 판단한다.

똑똑해서 극악스럽거나 단순해서 무지하거나

이건 성녀거나 창녀거나와 다를게 없다.

엄마는 계속 고민한다. 그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해야할 일이다.

 

 

         

 

비슷하게 정이현의 소설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하고 돌아가던 도중 교통사고가 나고 그 상대 미성년자가 사망을 하고 아들은 다쳤다. 아들이 옳은 일을 한게 아니니 어쩌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상대는 죽어버렸고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면....

그저 돈으로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고 없던 일로 되돌리던 섬뜻하고 건조한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

고등학교 딸아이의 임신을 알게 되고 출산까지 하게 되지만 엄마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없던 일로 되돌리기로 한다. 상대 남자엄마에게는 책임을 나누기 위해 뭔가 따지기 위해 연락을 하지만 누구이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알지 못하게 다시 예전으로 만들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고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배워서 알고 살아가면서 알게 되고 몸으로 부딪치니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서 알게 되는 많은 옳음과 그름들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옳고 그름이 개인에게 가서 부딪칠 때 참 미묘하게 바뀌는 경우가 생긴다. 원래 그렇긴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게 뭐 그렇게 원칙대로 떨어지나? 하는 마음이 드는거

마약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게 내 자식이면 보석금으로 풀려나게 하는게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미성년이 성관계를 하고 그것도 사랑이 아닌 습관적인 성관계를 한다는 것이 옳지 않고 상대에게 상처가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누구도 뭐라는 사람이 없고 지금 내 앞에 손해를 밨다고 상처를 입었다고 나타나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두 눈 감고 술로 밤을 지새더라도 아들을 고발해 버린 엄마가 있고

상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면서 그들에게 사과해야한다고 마음 먹은 엄마가 있다.

그렇게 행동하면 뭐가 달라지나?

 

 

사실 아들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말았고

아마  다른 어린 아들은 엄마의 행동이 성가시고 쓸데없다고만 여길것이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지만 정의라서 해야하는 것일까

일이 벌어졌고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믿고 정면으로 부딪치겠다고 마음먹고 행동하는 일과

그건 한때의 치기였고 실수였으니 없던 일로 되돌리겠다고 이건 지워질 수 있는 낙서일 뿐이라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일.....

어떤 일이 옳고 그런게 아니라

더 남는 장사가 될까.. 그것이 지금 세계를 돌리는 기준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엄마에 대한 페이퍼를 쓰려는게 아니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드러난 행동의 결과는 옳고 그름으로 나뉘게 되기도 한다.

약을 하는 아들을 감싸는 것도 모성이고 꼰지르는 것도 모성이다.

문란한 성관계를 갖는 아들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도 사랑이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도록 하는 것도 사랑이다.

내 아이의 잘못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를 감싸 안고 내 사랑의 상처를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 잘못을 직면하고 반성하게 하거나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

타인의 일에는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내문제로 다가오거나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사람은 쉽게

내가 편하고 눈을 감는 방향으로 끌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때 그걸 옳다 그러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고 해야한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살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동정해서 판단을 흐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선이 쉽지 않다.

 

결국 한양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대서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도로 경찰차를 탔고

한양의 엄마는 어쩌면 차라리 처음에 보석금을 내주고 봐줄걸... 이라며 다시 한탄하며 불면의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의 엄마는 서성거리고 이미 자기가 당연하게 여긴 완벽한 가정의 기준이 무너졌음을 알게 되거나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지만 모른척 하기도 한다.

 

용기있게 한 발을 내딛였으나 그 용기에 대한 보답조차 없이 오히려 원망만 가득하고 상처만 남았을 때  그래도 한 발 내디딘 용기를 발판 삼아 다시 한 발 더 앞으로 갈 것인가? 그래 세상은 그런거야. 나만 튀어봐야  소용없지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걸.. 맞춰사는 세상이야.. 하고 그대로 다시 되돌아갈지는 내게 달려있다.

그러나.

한 발을 내 디뎠다면 다시 한 발 더 가도 괘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어쩌면 한 발만 더 가면 거긴 나보다 먼저 발을 디딘 사람이 조금 서성이며 따라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함께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드라마의 엄마 그리고 소설속의 엄마를 보며

남 같지 않아서.... 그리고 따뜻하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두서없이 끄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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